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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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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199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8.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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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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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천계_반가운 할머니

DUMMY

혼알방이 사라져도 마음숲은 평화로웠다. 혼들이 동요하지 않으니 대기도 흔들리지 않았다.


예사달은 구부정한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걸었다. 할머니의 모습이라도 다른 혼보다도 훨씬 빨랐다.


휘적휘적 걷는 그를 다훤이 쫓아왔다.


“같이 가자고! 이쪽 혼알방도 살펴봐야지.”

“볼 것도 없네. 상산대가 어련히 조사했겠지.”


“이상하지 않나? 어떻게 흔적도 없이 혼알방을 빼가냐고.”

“세상에 이상한 일이 하나둘인가.”


예사달은 혜존각을 향해 지팡이를 내디뎠다. 다훤이 그의 옆에 바짝 다가섰다.

“자네, 빛나는 알을 못 찾아서 심통 부리나? 응? 나한테만 심통이군.”


“심통이라니?”

예사달이 멈춰서서 허리를 곧게 폈다.


“능력의 한계를 느꼈을 뿐이야. 분명히 있는데 찾지 못하니···.”

예사달은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요즘은 환시도 보이지 않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는 기분일세. 역시 몸을 입어서인가···.”

“어허! 요상한 운기 덩어리로 돌아간다는 말은 하지 말게.”

다훤이 으름장을 놓았다.


“할머니이!”

사빈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어느새 달려들어 예사달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할머니이!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요!”

사빈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에구, 그렇게나 힘들었냐?”

“예. 많이, 아주 많이요.”

사빈은 예사달에게 매달려 눈도 뜨지 않았다. 더 힘껏 할머니를 끌어안았다.


다훤이 헛기침을 했다.

“험험, 사빈아, 나도 있는데···.”


그제야 사빈이 눈을 뜨고 다훤을 돌아보았다. 손은 여전히 예사달의 목을 감싸고 있었다.

“아저씨도 오셨어요?”


“서운하구나. 어째 갈수록 나는 찬밥신세냐?”

“아이, 아저씨도 참···.”

사빈은 손을 내리고 다훤에게도 꾸벅 허리를 숙였다.


“지금 네 할머니가 토라져서 심통을 부린단다. 네가 달래봐라.”

“아저씨가 또 서운하게 했군요?”

“그게 왜 나 때문이냐? 빛나는 알을 못 찾은 건 네 스승이지.”


예사달은 지팡이를 축으로 삼아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찾을 수가 없구나.”


“할머니, 그건 이제 없어요.”

“네가 어찌 아누?”

“빛나는 알이랑 말도 한걸요? 자기가 휘모랑이랬어요. 차원을 여는 씨앗이라던데요.”


사빈은 경계에서 만난 빛나는 알을 떠올렸다.

“신호를 기다렸대요. 연인과 함께 새로운 차원을 연다고요.”


그녀는 입을 삐죽거렸다.

“저한테 보답한다면서, 쳇, 간절함만으로는 되는 일이 없다나 뭐라나···. 그러고는 사라졌어요.”


사빈은 할머니를 만난 기쁨에 들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할 이야기가 산더미였다.

그러나 그녀가 이야기하는 동안, 다훤과 예사달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구나. 자세히 얘기해봐라.”

예사달은 지팡이 끝에 손을 얹고 꼿꼿이 섰다.


“여기 말고, 고운방으로 가세. 아니, 가시죠. 거기서 말씀하시죠.”

다훤이 예사달의 팔을 끌어당겼다.


*


다훤과 예사달은 의아했다.

중간자가 우주의 가장자리까지 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은 흐물거리고 물컹거렸다. 무엇이든 빨아들이고 녹여버린다. 다훤 조차 혼자서는 찾지 못하는 곳이었다.


“나토두와 함께 갔다고?”

“예. 태어날 때 제가 살려줬다고 앞으로 저와 함께 다닌대요.”


“나토두가?”

“그 천마 말이지? 만나보고 싶군. 남방홍천도 궁금하고.”


“휘모랑이 하얀 나무와 붉은 구슬을 봤대요. 제가 찾을 조각 중의 하나라고 했어요. 어디서 찾냐고 물었는데, 그냥 사라졌어요.”


사빈은 사라진 휘모랑을 생각하며 고운방의 나무 벽과 푸른 잎을 올려다보았다. 가지와 가지 사이로 햇살이 반짝거렸다.


환영에서도 보았던 것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반드시 찾아내야 했다. 고민은 찾아낸 다음에.


“나토두는 아날빛숨에 있겠구나?”

“예. 에밀레도 잠깐 다니러 왔어요.”


“며칠 동안 모로매에 가 있을 테니, 나토두와 에밀레 편에 차를 좀 가져다주겠니? 몸이 찌뿌두둥해서 온천에서 좀 쉬어야겠구나.”


“많이 안 좋으세요?”

“그 정도는 아니야. 남방홍천의 신물이 궁금해서 그런단다.”

“예. 내일 보낼게요.”


다훤은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가 아니라 다른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믐에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


“맞다! 저 한얼의 과거도 보았어요. 제가 알던 별사탕이더라고요. 정말 신기하죠?”

“인연이란 게 원래 신기하지. 한얼도 알고 있느냐?”


“예. 바나가 얘기했대요. 그때 다른 사람도 보았는데···.”

황민의 혼을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 일로 중천에 묶인 혼이 있어요. 과거를 조금 바꾸긴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보고 싶어요.”

중천에 가면 황민의 혼도 찾아봐야지.


“그리고···, 아날빛숨의 용희가 영천옥으로 돌아갔어요.”

“그런 건 고민도 아니지. 새 도우미가 금방 올 테니.”

다훤이 콧웃음을 쳤다.


“다음 마고도 그렇게 바로바로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빈이 한숨을 내쉬자 예사달이 그녀의 손등을 다독였다.


“금방 찾을 거다. 어리화가 검은 꽃이 되었으니.”

“빨리 나타나면 좋겠어요. 그믐이 또 지나가기 전에···. 혼알방 문제도···.”

사빈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혼알방···. 그거 수집가들의 짓이에요.”

“수집가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


사빈은 해담 대차사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수집가의 정체부터, 그들의 능력과 수집 방식까지.


“과연···.”

다훤은 손가락으로 차탁 모서리를 두드렸다.


“혼알방을 숨겨놓았을 거라고? 그렇겠구나. 반계까지 가기는 멀고, 나가려면 차사들에게 들키기 쉽거든.”

예사달이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뭘 숨긴다면 인간세가 좋잖아? 거기서는 우리도 눈이 어두워지니까.”

다훤이 팔짱을 끼고 앉아 기둥 사이로 하늘을 내다보았다.


“거기까지는 못 갈 거고.”

예사달도 살아있는 나무 벽을 바라보았다.


“중앙황천에서 떨어져 있고, 반계가 멀지 않고, 신장들에게 들키지 않을 만한 곳···.”

“숲센장벽!”

다훤이 소리쳤다.


“그래. 거기가 가장 적당하네. 계곡이 많거든. 대부분 얼어붙어서 차사나 능사들은 여간해서 가지 않고.”

다훤이 자신 있게 말했다.


“숲센장벽이요?”

사빈은 혼알방이나 수집가보다 백하를 먼저 떠올렸다.


‘긔니초를 구하러 숲센장벽에 갔다고 했는데···. 무시무시한 영물도 많은데, 수집가까지 있단 말이야?’


“설마 빙천골은 아니겠죠?”

“거기 골짜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중의 하나겠지.”


사빈의 표정을 보자 다훤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엥? 그런데 빙천골은 왜?”

“아니, 그냥, 저···. 갑자기 생각나서···.”


사빈이 당황하자 예사달이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백하가 거기 갔느냐?”

“예···.”

사빈은 힘없이 대답했다.


예사달은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엄장의 흔적을 찾으러 갔나? 빙천골에 무언가 남겨놓았나?’

능금원은 흔적도 찾을 수도 없을 텐데···.


“반계는 대체 얼마나 악랄해질 것인가.”

다훤이 한숨을 내뱉었다. 반계에 비하면 천계는 힘이 너무 약했다.


“반계에서 한 일이 아니예요.”

사빈이 주먹 쥔 손을 탁자에 얹었다.


“마눙님과 이루님이 그런 일을 할 리 없어요. 수집가들이 멋대로 다니는 거라고요.”

“그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예사달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맞아요. 할머니, 마눙님이 아픈 것 같아요. 눈물을 흘리면서 차라리 소멸하고 싶다고···”

언제인가 현재의 덫에서 보았다. 그때 마눙은 잠에 빠져서도 괴로워했다.


다훤이 차탁을 두드렸다.

“그렇게 현혹되면 안 돼! 반계를 똑바로 봐야 해. 그들이 어떤 놈들인지.”


“하지만, 마눙님과 이루님이 피천귀의 폭주를 막고 있다고 하셨어요.”

“누가?”

“제 아버지가요.”


다훤은 씩씩거리던 숨을 가다듬었다.

“난 모르는 이야기다.”


“자네는 계속 모르게. 사빈아, 오면서 보니 반계 근처의 피천귀들은 보이지 않더구나.”

예사달은 사빈을 향해 돌아앉았다.


“수집가가 나서면서 피천귀가 약해진 것 같다. 검은 장벽을 뛰어다니던 놈들이 보이지 않았어.”

예사달은 다리를 펴고 무릎을 통통 두드렸다.


“수집가는 사람의 혼이야. 사람이 어떤지 생각해 보렴. 권력을 쥐고 싶어 하지.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북존이나 남존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겠네요?”

“그럴 게다. 피천귀는 살아남으려고 사람이나 신제에게 의지하지만, 수집가는 자신이 최고인 줄 알지.”


“그런 위험을 알면서도 반계에서 왜 수집가를 흡수했을까요?”

“왜 그런 것 같으냐?”


“위험···하니까요?”

사빈은 대답하면서도 등골을 따라 소름이 돋았다.


“수집가들은 저희끼리 편을 지어 싸우고 있을 게다. 인간세의 방식 그대로.”

“도와줘야죠.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반계도 잘 지켜보라고요.”


“무슨 소리야?”

다훤이 버럭 고함을 쳤다.

“반계를 돕자고? 말도 안 돼. 난 못 하네. 천인들도 모두 반대할 거야.”


“다훤, 마눙님과 이루님이 정귀를 처단한 걸 잊었나?”

“그건 반계를 차지하기 위해서지. 황금들과 첫끝마을이 피로 물들었던 걸 잊었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잊었냐고!”


다훤은 씩씩거리다 벌떡 일어났다.

그는 소매를 휘적휘적 날리며 고운방을 나갔다.


예사달이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다. 언젠가 눈을 뜨겠지. 그나저나 숙제가 하나 더 늘었구나.”


“그래도 할머니 말씀을 들으니 무언가 보이는 것 같아요. 헝클어진 것들이 한 줄로 늘어서고 있어요. 느낌이 그래요. 곧 풀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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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그믐_마지막 주술 23.09.03 52 3 12쪽
149 그믐_달맞이 언덕의 뒷골목 +4 23.09.02 43 3 12쪽
148 천계_폭풍 전야 23.09.02 42 2 11쪽
147 천계_비밀회의 +2 23.09.01 42 3 11쪽
146 천계_신성한 땅의 흙 23.09.01 42 3 10쪽
145 천계_돌아오는 마음 23.08.31 42 2 12쪽
144 천계_움트는 비밀 23.08.31 44 3 11쪽
143 천계_신령수 동명 +2 23.08.30 42 3 11쪽
142 천계_두 번째 고백 23.08.30 43 3 12쪽
141 천계_숲센계곡 긔니초 23.08.29 42 2 11쪽
» 천계_반가운 할머니 +2 23.08.29 45 4 11쪽
139 천계_방법을 찾겠습니다 23.08.28 43 3 11쪽
138 천계_에밀레와 나토두 +2 23.08.27 43 3 12쪽
137 천계_떠나는 용희 23.08.26 41 4 11쪽
136 천계_기운을 훔친 대가 23.08.25 43 4 10쪽
135 천계_사라진 혼알방 +2 23.08.24 44 3 12쪽
134 그믐_빛나는 알과 만나다 23.08.23 43 3 8쪽
133 그믐_우주의 미아 +2 23.08.23 43 3 10쪽
132 그믐_소환 23.08.22 42 2 11쪽
131 그믐_대의각 앞마당 23.08.21 42 2 9쪽
130 그믐_증좌를 찾아내다 23.08.21 42 2 9쪽
129 그믐_형감어사 문휘수 23.08.20 43 2 11쪽
128 그믐_별사탕을 어찌 아는가 23.08.19 43 3 11쪽
127 그믐_사람의 눈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23.08.18 43 3 11쪽
126 그믐_판정관 황민 23.08.17 41 2 11쪽
125 그믐_억울한 누명 23.08.16 42 3 11쪽
124 그믐_그들의 비밀 23.08.15 41 4 10쪽
123 그믐_전생을 기억하는 소녀 23.08.14 42 2 11쪽
122 그믐_영함산과 만선상단 23.08.13 41 3 11쪽
121 천계_공조 23.08.12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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