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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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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242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8.31 07:27
조회
44
추천
3
글자
11쪽

천계_움트는 비밀

DUMMY

사빈은 깨어나자마자 하얀 나무부터 살폈다.

앙상하고 말라서 중천에서 본 고사목과 비슷했다. 훨씬 작고 하얗다는 것만 다를 뿐.


“벌써 죽었나?”

건드리면 바스락 부러질 것 같아 손대지 않았다.


머리 위 붉은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 딱 달라붙어 숨꼭지들이 구름 사이로 드나들며 사그락거렸다.


“저건 뭘까?”

사빈은 손으로 턱을 받치고 구름을 바라보았다.


‘환영으로 보았으니··· 내가 찾는 것이 맞는데···.’

그동안 들은 이야기는 많았다.


‘잉걸둥지만 해도 그래. 네가 부르고, 우리가 불렀다고? 허!’

잉걸둥지를 떠올리니 부글부글 속이 끓었다.


“어디 있다, 어떻게 해라 이렇게 말해줘야지! 그곳이 어디든 너는 찾아갈 거라니. 그걸 누가 몰라?”


자신은 어디로 가냐고 물었을 때도 허무맹랑했다.

‘너를 부르는 곳으로.’


사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겉만 번지르르해. 핵심이 없잖아! 핵심이!”


그녀의 이마가 불룩거렸다.

“빛나는 알은 어떻고! 보답을 한다면서? 그게 보답이야?”


나무와 구슬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네가 찾아야 하는 조각의 하나일 뿐.’


사빈은 창가에 가서 섰다.

“이게 뭐냐고요!”


허공에 대고 주먹을 흔들어댔다.

“예언을 주려면 확실하게 알려주셔야죠! 정확히 콕 찍어서! 언제 어디로 어떻게 하라고 해야 그게 진짜죠!”


사빈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수리마루님! 그렇게 수수께끼 좋아하다가 아무도 못 풀면 어쩔 거예요?”


소리치던 사빈이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그림 맞추기도 아니고···.”


*


나토두의 방에 앉아있던 에밀레가 까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아하, 우리 미움받았네.”


사빈의 목소리는 아롱재에서 떠나지 못하지만,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나토두의 방에서는 잘 들렸다.


나토두가 눈썹을 실룩거렸다.

“너도 돕지 그래?”

“지금은 아니야. 저 아이가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한다면.”


에밀레는 작은 방을 쓰윽 둘러보고 창가로 다가섰다.

“인간세에 가볼래. 구경거리는 거기가 더 많아. 여기는 몇만 배 넓지만, 천인도 너무 적고, 너무 평온해. 지루해.”


“왜? 곧 사건이 생길 거야.”

“그건 네가 구경해.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니.”


나토두가 아롱재 벽을 흘끗 바라보았다. 사빈이 끙끙 고민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빈이 마물을 상대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어. 저 아이가 아닐 수도 있고.”


나토두는 창틀에 등을 대고 기대어 섰다.

“인간세에도 수집가가 있지만, 반계만큼 흉폭하고, 잔인하지 않아.”

“그러니까 마눙과 이루가 반계로 끌어들였지. 거기 놔두면 어떻게 되었겠어?”


에밀레는 놀뫼마당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저렇게 놔둘 거야?”


“끝은 알지만, 어떻게 거기 이르는지 모르니···. 지켜볼 수밖에.”

“그래. 잘 지켜봐. 다녀올게.”


에밀레의 몸이 서서히 붉은 기린으로 바뀌었다. 가볍게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다음 순간 마음숲의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꼭 지금 가야 해? 슬슬 재미있어질 텐데···.”

나토두는 붉은 점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


모로매온천이 엷은 황톳빛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노란색이었다가 붉은빛이 짙어졌다가 언젠가부터 엷은 황톳빛이 되더니 더이상 바뀌지 않았다.


목예는 소상각 앞에 서서 온천을 바라보았다.

호수 가운데는 김이 연기처럼 솟아오르지만, 소상각 근처는 김이 올라오다 곧 사라졌다.


도우미 옥지는 빗자루를 들고 가다가 목예를 발견했다.

“어멋, 차사님!”


옥지는 손을 털며 목예에게 다가갔다.

“위화님을 보러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많이 적적해하시는데··· 잘 오셨어요.”


“좀 어떠시니?”

“히잉, 곧 무결의 고리에 드실 것 같아요.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천인들이 하는 얘기가 그래요.”


“그러니···.”

목예는 고개를 돌려 소상각 삼 층의 작은 창을 올려다보았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뭘요. 여기서는 다 알아서 하니까 일이 별로 없어요. 아날빛숨은 좀 힘들대요.”


옥지는 앞장서서 소상각으로 들어갔다.

“용희가 그렇게 가버리다니 너무 서운해요. 재미있었는데···.”


“오고 또 가야 새로운 인연을 만나지. 다음에 오는 도우미와도 사이좋을 거다.”

“금방 오겠죠? 기대돼요. 어떤 도우미가 올지···.”


삼 층 복도로 올라서자 목예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혹시 다른 일은 없었니? 평소와 달라진 거 말이다.”

“다른 일이요?”

옥지가 눈을 깜빡거렸다. 위화에 대해 묻는 줄 알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 없는데요. 그래도 과일은 잘 드세요.”

옥지가 시무룩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위화는 비스듬히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목예를 보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냥 앉아 계세요.”

목예는 날 듯이 다가가 위화의 팔을 잡았다.


“괜찮아. 이 정도는 움직여줘야지.”

위화는 목예의 손을 토닥이며 옥지를 돌아보았다.

“옥지야, 상생농장에 다녀오려무나. 다로즙이 마시고 싶구나.”


상생농장이라는 말에 옥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다로즙이요? 금방 다녀올게요.”

“천천히 와도 돼. 해지기 전에만 오면 된단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옥지는 벌써 상생농장으로 가고 없었다.

옥지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자 위화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느낀 것을 자네도 느꼈구먼.”

“예. 끝까지 숨기려는 것 같아요.”

“그렇겠지.”


목예가 차를 따랐다.

“혼알방이 사라져도 가만히 있다니··· 이상했어요. 생각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아요.”

“내 느낌도 그래. 대차사와 상산대원만 알겠지. 인도자들도 모를 거다.”


“예. 모르는 눈치예요.”

“그럼, 우리도 모르는 것으로 해야지. 지나실이나 요선이 알면 사빈이 아는 건 시간문제야.”


위화의 말에 목예는 푸흡 웃음을 지었다. 지나실과 요선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보였다.


“이번 어리화는 위험하네요.”

“검은 꽃이 될 때까지 기다린 게지.”


“설마 반계에서 마음숲을 차지하려는 건 아니겠죠?”

“글쎄다···.”


위화는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어쨌거나 난 이곳을 지킬 거다.”

“위화님, 무슨 일을 하시려고요?”


위화는 주름진 손으로 찻잔을 쓰다듬었다.

“난 모로매가 아니었으면 이미 무결의 고리에 들었어. 어차피 때가 된 것, 의미 있는 마지막이 좋지 않니.”


목예는 목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도 차 한 모금으로 마른 목을 적셨다.


“위화님도 이번 그믐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너도 그리 생각하는구나.”

“사빈에게 알리지 않는 걸 보니 그믐이 중요해 보여요.”


“상산대원들이 아주 조심하고 있어. 혼알방의 혼들이 동요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니까.”

“위화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이런 얘기 할 수 있다니. 혼자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요.”

목예가 살며시 웃었다.


창밖으로 다훤과 예사달이 보였다.


그들은 호수를 내려다보며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사달은 할머니가 아니라 다훤 또래의 무사로 모습이었다.


“다훤님과 예사달님도 와 계시네요. 벌써 알고 계시겠죠?”

“음. 우리보다 더 태연한 분들이야. 우리도 이 순간을 즐기자고.”

위화는 빈 찻잔을 내밀었다.


*


아날빛숨에서는 사빈의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빈은 탁자를 닦으면서도, 찻잎을 나르면서도 흥얼거렸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사빈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무슨 일일까? 그새 연인이 생겼나?”

“연인요? 어머, 아니에요.”

사빈이 콧소리를 내자 초연이 탁자를 내리쳤다.


“백하가 고백했구나! 응, 그래서 너도 허락했고?”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빈의 볼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아직 거기까지는···.’


“그믐 외출 말이에요. 그믐! 이번에는 느낌이 좋아요. 이번에야말로 다음 마고를 만날 것 같거든요.”

사빈이 콧소리에 맞춰 어깨를 까딱거렸다.


“혼알방도 돌아오겠죠? 구멍도 막힐 거구요. 새로운 마고가 오면 모든 문제가 끝나는 거죠! 싸악!”

사빈은 두 팔을 들어 올려 만세를 불렀다.


“너는 얼음대감이랑 알콩달콩 살고?”

“그, 그런가요?”

사빈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가슴 한쪽이 뚫린 느낌은 그대로지만, 구멍이 작아진 것 같았다. 목이 막히던 기분도 조금 덜했다.


‘사라진 것이 돌아올까? 그럴 수도 있겠지?’


이번 그믐에 갔다 오면 백하가 검술도 가르쳐준다고 했다.

‘아움을 제대로 쓰면 앞으로 내 몸은 내가 지킬 거야.’


“아! 대감에게 보답을 해야죠. 아움을 주셨으니.”

“선물도 받았어?”

“예. 얼음칼 아움이요.”


초연이 놀라 사빈에게 다가가 앉았다.

“그거 대단한 거야. 아무리 빙천술의 대가라도 다른 이에게 내줄 때는 엄청난 천력이 필요해. 목숨이나 마찬가지야.”


‘아움이··· 그런 거였어?’

얼음칼을 만들던 백하를 떠올리니 사빈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초연이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그래서, 뭘 주려고?”


사빈이 소맷자락으로 눈 밑을 닦았다.

“차는 강녕액이 있으니까 술을 담그려고요. 아침햇살처럼 맑은 술이 좋겠죠? 이슬처럼 맑고 풋풋한 맛과 향을 내보려고요.”


“혼례에 쓰려고?”

“예? 아니오. 성공하면 화평축제에 내놓아야죠.”


초연이 생글거리며 빛글 쪽지를 내밀었다.

“그전에 이거부터 봐.”


“뭔데요?”

쪽지를 열어보던 사빈이 우왓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혼례식요? 초연님이랑 대취님?”

“거창한 건 아니야. 함께 식사하는 거지. 산여와 다담도 함께 할 거야.”


초연의 말에 사빈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천인의 혼례식이라니!’

마고가 되고 처음 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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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그믐_마지막 주술 23.09.03 52 3 12쪽
149 그믐_달맞이 언덕의 뒷골목 +4 23.09.02 43 3 12쪽
148 천계_폭풍 전야 23.09.02 43 2 11쪽
147 천계_비밀회의 +2 23.09.01 42 3 11쪽
146 천계_신성한 땅의 흙 23.09.01 42 3 10쪽
145 천계_돌아오는 마음 23.08.31 43 2 12쪽
» 천계_움트는 비밀 23.08.31 45 3 11쪽
143 천계_신령수 동명 +2 23.08.30 42 3 11쪽
142 천계_두 번째 고백 23.08.30 43 3 12쪽
141 천계_숲센계곡 긔니초 23.08.29 42 2 11쪽
140 천계_반가운 할머니 +2 23.08.29 45 4 11쪽
139 천계_방법을 찾겠습니다 23.08.28 43 3 11쪽
138 천계_에밀레와 나토두 +2 23.08.27 43 3 12쪽
137 천계_떠나는 용희 23.08.26 41 4 11쪽
136 천계_기운을 훔친 대가 23.08.25 43 4 10쪽
135 천계_사라진 혼알방 +2 23.08.24 44 3 12쪽
134 그믐_빛나는 알과 만나다 23.08.23 43 3 8쪽
133 그믐_우주의 미아 +2 23.08.23 43 3 10쪽
132 그믐_소환 23.08.22 42 2 11쪽
131 그믐_대의각 앞마당 23.08.21 42 2 9쪽
130 그믐_증좌를 찾아내다 23.08.21 42 2 9쪽
129 그믐_형감어사 문휘수 23.08.20 43 2 11쪽
128 그믐_별사탕을 어찌 아는가 23.08.19 43 3 11쪽
127 그믐_사람의 눈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23.08.18 43 3 11쪽
126 그믐_판정관 황민 23.08.17 41 2 11쪽
125 그믐_억울한 누명 23.08.16 43 3 11쪽
124 그믐_그들의 비밀 23.08.15 41 4 10쪽
123 그믐_전생을 기억하는 소녀 23.08.14 42 2 11쪽
122 그믐_영함산과 만선상단 23.08.13 41 3 11쪽
121 천계_공조 23.08.12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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