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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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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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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8.1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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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그믐_그들의 비밀

DUMMY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낮게 깔렸던 구름도 물러가 깨끗하고 눈부셨다.


산을 내려오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모두 이번 거래에 기대가 컸다. 마음이 들뜨니 손발이 빨라질 수밖에.


“이대로 신수성까지 꽉 잡는 거야.”

“우리가 누구야? 그 정도는 되고도 남지. 하하.”

젊은이들이 기대에 부풀어 떠드는 사이, 경험 많은 장로들이 앞장서 출발했다.


나는 해령과 함께 맨 뒤의 수레를 따라 걸었다.

해령은 걸으면서도 새를 불러 내게 보여주었다.


“예쁘죠?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고 싶어요. 어디서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거예요.”

“그것 좋겠다. 이왕이면 솔개로.”


“왜요?”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잡아먹는 쪽이 좋잖아?”

“아, 그런 거라면 전 봉황할래요.”

해령이 큰소리로 웃자 손끝에 앉아있던 새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앞쪽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성문이 보인다!”

“내가 왔다! 기다려라!”


“구본성 여인들이 그리도 아름답다던데, 알아?”

“그런 여인이 너한테 눈길이나 줄 거 같냐?”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크고 높아졌다. 걸음도 빨라졌다.


구본성 북문 앞에는 삼사십 명의 병사들이 버티고 있었다. 모두 칼과 창을 들고 있었다.

보루 위에도 줄지어 서 있었다.


아직 성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단단하고 뻣뻣했다.


“원래 저렇게 병사들이 많아?”

“아직은 미사홀파가···.”

해령은 속삭이다가 말을 뚝 끊었다. 알겠냐는 듯 눈짓을 보냈다.


그럴 만도 했다. 단주 만길의 설명대로라면 미사홀파가 언제 공격할지 모르니까.


구본성은 백선국에서 가장 북쪽이라 수도인 신수성에서는 멀어도, 산과 강, 넓은 평야가 갖춰진 곳이다.

미사홀파가 남진의 본거지로 삼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성주가 신왕에게 먼저 나섰구나.’

줄을 잘 섰다고 해야 하나,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하나.


성문 앞에는 여행자들도 줄을 지어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만선상단의 말과 수레까지 더해지면 저 줄이 성문 앞뜰을 지나 광장까지 이어질 것이다.


성문에 가까이 가는데, 갑자기 바나가 컹컹 짖었다.

“왜 그래?”


“주인님, 사람 냄새여라.”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당연하지.”


“아니어라. 어제 산에 있던 그 사람이어라.”

“뭐?”


그들이라면 피냄새가 나던 무사들이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바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었다.

“가보자!”


“언니, 어디 가요?”

해령이 소리쳤다.


“잠깐, 확인할 것이 있어. 들어가서 기다려! 찾아갈게.”

나는 해령에게 손을 흔들고 성벽을 따라 달렸다.


*


바나는 구본성의 뒷산으로 내달렸다. 성의 뒷산이라도 영함산 자락이라 꽤 높았다.

갈수록 수풀이 빽빽해지고, 습기도 많아 숨이 턱턱 막혔다.


인간세가 탁해 가뜩이나 숨쉬기 어려운데, 습하고 어두우니 다리도 무거웠다. 땀을 뚝뚝 흘리며 산을 올랐다.


삽살개 바나는 으슥한 중턱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나무 뒤에서 몸을 낮추고 나를 기다렸다.

“주인님, 저기여라.”


넓은 터에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대충 엮어 비와 바람만 간신히 막을 정도이니 사냥꾼들의 피난소 같았다.


나무 벽이 여기저기 무너져있었다. 창구멍을 받친 나무판자도 떨어졌다.

그 덕분에 안에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잘 보였다.


한 사람은 어제 영함산에서 본 나이 많은 남자였다.

이 정도 거리면 사람에게는 안 보이지만, 마고의 눈에는 날카로운 눈매와 상처까지 보였다.


그 옆에 서 있는 남자는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검고 네모진 모자를 쓰고 있으니 구본성의 관리일 것이다.


다른 남자는 관군복을 입었다.

성문 앞 병사들과 비슷한 모양에 장식이 더 달렸다. 지휘관인가?


바나가 끄그극 이빨을 갈았다.

“주인님, 음모여라.”

“알아. 여기서 지켜보자.”


수풀 속에 숨어 오두막을 바라보았다.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흰 두루마기의 관리가 묻자 무사가 대답했다.


“상단은?”

“성문 앞에.”

이번에는 관군 지휘관이 대답했다.


“실패하면 안 된다. 마지막 기회야.”

관리가 한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꽉 쥐었다.


“기필코 미사홀의 나라를 세운다.”


‘미사홀파?’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백선국과 맞서는 무리잖아.


“신이당 녀석들, 깨끗이 밀어주마.”

관군 역시 부드득 이를 갈았지만, 나는 그들이 실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젯밤, 모닥불 옆에서 꺼낸 이야기는 꾸며낸 것이 아니다.

초대 신왕을 이어서 동생이 왕이 될 거고, 백선국이 앞으로도 삼백몇 년간 이어지니까.


신왕이 미쳐버려서 왕위에 있던 기간은 짧아도 나라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럼··· 내가 왜 여기로 왔지?’

허리띠에 매달린 꽃수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수명환을 건넬 사람도 없고, 다음 마고도 없는데 여긴 왜 왔어?

저런 걸 구경하러 왔을 리가 없는데.


흰 두루마기가 입꼬리를 올리며 으스댔다.

“양한, 미사홀님께 내 이름도 전해주게.”


그는 관군 지휘관을 양한이라고 불렀다.

“상단 놈들 설득하느라 애 좀 먹었거든.”


‘뭐? 상단···?’

나는 바짝 귀를 기울였다.


“돈이 있는 곳에 상인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설득할 게 뭐 있나?”

“모르는 소리. 숫자를 채우려면 얼마나 필요한 줄 아나?”


“흔적은 남기지 않았겠지?”

“물론, 문제가 될 만한 건 깨끗이 치웠네. 그렇지 않나. 무명?”

흰 두루마기의 관리가 무사를 바라보았다.


“예.”

무사는 대답했지만, 내게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어제 산길에서 들었던 그들의 대화. 거기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있었다.

‘보물은 우리 거야. 흥. 세상에 믿을 놈이 어디 있어? 그러니···.’


그러니···, 그 다음은 뭐였을까?


“시작했겠지?”

“성문을 열자마자 잡아들이라 했네.”

흰 두루마기가 키득거렸다.


“성주의 신경이 그들에게 쏠리면 돼. 병사들은 옥사에 집중시켰네.”

“황씨는 내게 맡기게. 역도라면 눈에 불을 켤 테니. 그들은 어찌할 건가?”


“새로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의미 있지 않나.”

양한이 턱을 치켜들자 흰 두루마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가 옆에 선 무명을 바라보았다.

“몇 명만 처형하면 없는 말도 술술 불 거다. 알겠나?”


“예.”

무사 무명은 감정 없는 말투로 짧게 대답했다.


“이틀 후에 문을 열겠네.”

지휘관 양한이 성큼성큼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한달음에 숲으로 들어갔다. 빨려들듯 순식간이었다.


흰 두루마기도 오두막에서 나왔다.

그는 소매 안에서 팔을 엇걸고 점잖은 걸음으로 천천히 지나갔다.


무사 무명은 그를 노려보다가 땅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가볍게 뛰어올라 반대편 숲으로 사라졌다.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상단 사람들을 볼모로?’


바나가 발톱으로 풀을 잡아 뜯었다.

“주인님, 무슨 일이어라? 위험하여라?”


“저 정도면··· 거짓 증거도 이중삼중으로 만들어놓았을 거야. 찾아내야 해.”

나는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


북문 앞은 깨끗했다. 싸움이 일어난 흔적은 없었다.


만길이 만들어준 통행증으로 복래 거리까지는 무사히 들어왔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물어볼 사람을 찾아 둘러보았다.

거리는 어수선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중에서 말하기 좋아하고 나를 의심하지 않을 사람을 찾아야 했다.


땔감을 파는 지게꾼에게 다가갔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가 호기심이 많아 보였다.


“어르신, 오늘 장사꾼들이 들어오지 않았나요? 물건을 기다리는데 안 보이네요.”

“쉿!”

지게꾼은 검지로 입을 가렸다.


“그놈들이 미사홀파라네. 조금 전에 관군이 와서 알려줬다오.”

“조금 전이요?”


“진짜 장사꾼인 줄 알았지. 행차도 번지르르하더라니까. 감쪽같았어.”

그는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지푸라기와 나무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다. 신발도 어질러져 있고,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가 바람에 펄럭였다.


“짐짝에서 미사홀파의 기밀문서가 나왔다네. 구본성을 빼앗으라고.”

“기밀문서?”


“하마터면 다 죽을 뻔했다니까. 어휴, 무서워라.”

지게꾼은 웅크리고 진저리를 쳤다.


“어디 또 숨어있을 거야. 아가씨도 속지 말고.”

지게꾼은 목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밀문서? 단주가 품고 있던 그 문서일까?’

가슴의 옷깃을 두드리던 단주 만길이 생각났다.


상단 사람들을 미사홀파로 몰았으니, 성주는 그들을 잡아 두려고 온 힘을 쓸 것이다.

모든 병력이 그쪽으로 몰리면, 진짜 미사홀파가 군대를 이끌고 오겠지.


“가자. 사람들이 다치기 전에.”


바나는 떨어진 물건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바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쪽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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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그믐_마지막 주술 23.09.03 52 3 12쪽
149 그믐_달맞이 언덕의 뒷골목 +4 23.09.02 43 3 12쪽
148 천계_폭풍 전야 23.09.02 43 2 11쪽
147 천계_비밀회의 +2 23.09.01 42 3 11쪽
146 천계_신성한 땅의 흙 23.09.01 42 3 10쪽
145 천계_돌아오는 마음 23.08.31 43 2 12쪽
144 천계_움트는 비밀 23.08.31 45 3 11쪽
143 천계_신령수 동명 +2 23.08.30 42 3 11쪽
142 천계_두 번째 고백 23.08.30 43 3 12쪽
141 천계_숲센계곡 긔니초 23.08.29 42 2 11쪽
140 천계_반가운 할머니 +2 23.08.29 45 4 11쪽
139 천계_방법을 찾겠습니다 23.08.28 43 3 11쪽
138 천계_에밀레와 나토두 +2 23.08.27 43 3 12쪽
137 천계_떠나는 용희 23.08.26 41 4 11쪽
136 천계_기운을 훔친 대가 23.08.25 44 4 10쪽
135 천계_사라진 혼알방 +2 23.08.24 44 3 12쪽
134 그믐_빛나는 알과 만나다 23.08.23 43 3 8쪽
133 그믐_우주의 미아 +2 23.08.23 43 3 10쪽
132 그믐_소환 23.08.22 42 2 11쪽
131 그믐_대의각 앞마당 23.08.21 42 2 9쪽
130 그믐_증좌를 찾아내다 23.08.21 42 2 9쪽
129 그믐_형감어사 문휘수 23.08.20 43 2 11쪽
128 그믐_별사탕을 어찌 아는가 23.08.19 43 3 11쪽
127 그믐_사람의 눈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23.08.18 43 3 11쪽
126 그믐_판정관 황민 23.08.17 41 2 11쪽
125 그믐_억울한 누명 23.08.16 43 3 11쪽
» 그믐_그들의 비밀 23.08.15 42 4 10쪽
123 그믐_전생을 기억하는 소녀 23.08.14 42 2 11쪽
122 그믐_영함산과 만선상단 23.08.13 41 3 11쪽
121 천계_공조 23.08.12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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