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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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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269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8.2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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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천계_사라진 혼알방

DUMMY

“사빈!”

초연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온몸에 힘을 준 탓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곧장 달려가 사빈을 와락 끌어안았다.

“뭐야! 보름 만에 오는 게 어딨어!”


“보름이요?”


“마고님, 너무 하세요. 그동안 어땠는지 아세요? 걱정돼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용희가 훌쩍거리며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초연은 사빈의 어깨를 잡고 이리저리 돌려세웠다.

“어디 보자, 다친 데는 없어?”


“그럼요. 이번에는 안 다쳤어요.”

사빈은 생글거렸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쳤지만, 우주의 가장자리를 헤매는 사이 아물었다.

영함산에서 문휘수와 겨룰 때도, 구본성에서도 무수히 칼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얼음칼 아움에 끌려다니느라 무릎과 발등도 많이 긁혔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다행이다. 이리 멀쩡하다니. 그런데, 왜 아롱재가 아니라 문으로 들어와?”

초연은 이상한 생각에 입을 떡 벌렸다.


“그러고 보니···, 잠도 안 잤는데 이렇게 멀쩡한 거야?”


“예. 지금 막 마음숲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여긴···.”

사빈은 자신을 따라 들어온 나토두를 가리켰다.


천마 나토두는 마음숲에 들어서자마자 소년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연회색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맸고, 미색 저고리와 주홍빛 바지를 입었다. 남방홍천의 천인들이 즐겨 입는 옷이었다.


다른 천마들은 코가 크고 긴데 나토두는 작고 오뚝했다. 동그스름한 얼굴과 작은 몸집, 크고 맑은 눈 때문에 열서너 살 정도로 보였다.


초연과 용희의 눈길이 나토두에게 쏠렸다. 남방홍천의 천마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천마 나토두입니다. 사빈님을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나토두는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어머, 진짜 천마네. 사빈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초연이 나토두의 손을 잡았다.


“다행이네, 사빈이 중간자라서 너무 약하거든. 그믐 외출 때마다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신물이 보호해주면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렇지?”


초연은 나토두의 손을 이끌어 주방 앞자리에 앉혔다.


“어쩜 이렇게 귀엽고 잘 생겼을까. 차사님, 제가 차를 준비할게요.”

용희는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토두가 자리에 앉자마자 바나가 문 앞에 나타났다. 하얀 털을 휘날리며 날 듯이 뛰어왔다.


“주인님! 늦었어라!”

“바나, 잘 지키고 있었어?”


“얼음대감이 엄청나게 화냈어라. 피하느라 고생했어라.”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사빈의 물음에 바나는 끼잉 소리 내며 고개를 돌렸다.


“팬들을 위해···, 주인님이 안 계시니 순찰을···, 왕. 주인님 대신 마음숲을 보살폈어라.”

“으응. 놀러 다녔다는 얘기구나?”


“아니어라. 청소도 했어라. 요리가 남는다고 걱정하기에 깨끗하게 치웠어라.”

바나는 혀를 날름거렸다.


“나 때문에 걱정 했어?”

“왈, 걱정 없어라. 아롱재 꽃수 열쇠가 멀쩡하면 주인님도 멀쩡하다고 했어라.”

바나가 고자질처럼 이르는 말에 초연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빈은 바나를 안아 무릎에 앉혔다.

바나는 싱글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나토두와 눈이 마주쳤다.


바나의 몸이 한순간 돌처럼 굳었다가 풀어졌다.

눈동자도 희미해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몸을 웅크리고 사빈의 품으로 기어들었다.


“바나, 여기는 새로운 친구. 나토두라고 해.”

“끄응. 저분이··· 나토두여라?”


나토두가 바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잘 지내보자. 바나.”


바나는 풀쩍 뛰어내려 나토두의 발아래 섰다. 앞발을 내밀어 넙죽 엎드렸다.

“형님! 형님으로 모실 거여라.”

“그래? 우리 사빈님을 위해 열심히 해보자.”


“왕왕, 주인님을 잘 모실 거여라.”

바나가 사빈과 나토두 사이를 풀쩍거리며 뛰어다녔다.


용희가 쟁반을 들고나오자 초연이 주전자를 들었다. 차를 따르면서도 현관을 기웃거렸다.

“올 때가 됐는데···.”


“그렇죠?”

용희도 알아듣고 눈웃음을 쳤다.


그들의 말을 신호로 커다란 문이 벌컥 열렸다. 하얀 형상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대감···?’

사빈은 백하를 보자 몸이 바짝 굳었다. 얼굴도 뜨거워졌다.


‘그대를 사모하오. 그대가 어디에 있든 내가 가면 되는 것을.’

가시버시날 들었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아움이 날 살렸으니 인사를 해야지.’

사빈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사빈님!”

백하는 사빈을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았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오? 그대가 사라지는 줄 알고···.”

“괜찮아요. 아직 그믐이 남았는 걸요.”

사빈은 백하의 품에 안긴 채 그의 등을 토닥였다.


백하가 더 힘껏 끌어안자 사빈은 헉 숨이 막혔다.

“대감, 이것 좀···.”


“아,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백하는 한 걸음 물러나 사빈을 살펴보았다.


상처도 없고, 기운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표정도 밝았다. 그제야 제대로 숨을 쉬며 옆자리에 앉았다.


“상산대감님이십니까? 저는 나토두입니다.”

나토두가 고개를 숙였다.


“소문은 들었네. 남방홍천의 천마가 다섯 성천을 돌며 수련한다고. 사빈님이 살려준 그 천마인가?”


“예. 사빈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신물의 힘이 필요했는데. 강아지 한 마리로는 영 불안하여.”


바나가 풀쩍 뛰어올랐다.

“왕! 아니어라! 잘 싸웠어라. 무사들이 몰려와도 다 해치웠어라. 사람들 많이 죽었어도 주인님을 지켰어라!”


“바나!”

사빈이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초연과 백하, 용희의 시선이 사빈에게로 쏠렸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전쟁터에?”

초연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니에요. 전쟁까지는 아니고 다툼이 좀···.”


“그···.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고 다 나은 거구나. 그렇지? 그래서 일부러 늦게 온 거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초연이 울먹거리자 사빈이 손사래를 쳤다.


“많이 안 다쳤어요. 다행히 대감이 준 아움 덕분에···.”


“아움을 부를 정도로 심각했다는 거군.”

백하가 진지하게 말하자 사빈은 더는 둘러댈 수 없었다.


분위기가 엄숙해졌는데도 바나는 자신의 활약을 자랑하고 싶어서 꼬리를 흔들었다.

“거기서 한얼님의···.”


사빈이 재빨리 바나의 입을 가리고 번쩍 안아 올렸다.

“바나, 나 대신 마음숲을 보살폈다고? 다녀보니 어때? 아무 문제 없지?”


바나는 사빈의 손을 떨쳐내려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낑낑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문제 있어라, 내 팬이 없어졌어라.”


“팬이 없어져?”

“샛강 건너 혼알방에 팬들이 많어라. 냄새도 알고 있어라. 그런데 냄새가 없어졌어라.”


“그게 무슨 말이야?”

사빈이 물었으나 바나는 횡설수설할 뿐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백하가 사빈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가봐야겠소. 바나, 앞장서라.”


바나는 바닥으로 뛰어내려 씩씩하게 머리를 곧추세웠다.


*


샛강을 따라가며 바나는 코를 킁킁거렸다. 샛강 옆에서 골목을 두 개 지나자 멈추어 섰다.


백하와 사빈, 나토두도 그 자리에 멈추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혼알방의 기운도 주인과 제대로 공명하고 있었다. 자갈돌 모양의 혼알방에서 색색의 파장이 퍼져 나왔다.


“이상한 점은 없는데?”

“아니어라. 여기 내 팬이 있었는데 없어졌어라. 냄새가 사라졌어라.”

바나는 아쉬워하며 골목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이상하네. 달라진 것이 없어.”

사빈이 중얼거리자 나토두가 물었다.


“혼알방에 이상이 있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주인이 없으면 혼알방의 파장이 달라져. 주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공명을 제대로 못 하거든. 불안해진 기류를 상산대원이 알아내서 주인을 찾는 거야.”


“그럼, 혼알방이 사라지면요?”

“뭐?”

사빈은 얼어붙은 듯 말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지릿거렸다.


“그거요.”

백하가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바닥을 살폈다.


“상산대는 공명과 파장으로 알아내오. 신호를 내보낼 혼도, 공명하는 혼알방도 없다면 상산대는 알아낼 수 없소.”


바닥에도 특별한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바나는 모양을 기억하지 않고 냄새로 기억하니 여기 있던 혼알방은 진짜 사라졌을 거요.”


“그 혼과 혼알방이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부터 알아내겠소.”

백하는 휘익 휘파람으로 바나를 불렀다. 골목 끝까지 들어갔던 바나가 깡충깡충 뛰어왔다.


“바나, 사라진 팬이 또 있을 거다.”

“왈, 팬이 사라지면 안 되어라. 내가 찾아낼 거라.”


“그래, 이제부터 너도 상산대원이다. 당장 수색을 시작한다.”

“왕! 알겠어라.”

바나는 다른 골목을 향해 뛰어갔다.


“사빈님은 아날빛숨에서 기다리시오. 이제부터 상산대가 처리하겠소.”

“저도 도울게요.”


사빈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데···, 대체 언제 사라졌을까요?”


상산대에서 천기공을 보강하고, 결계를 다시 쳤다. 중앙황제가 한긋장벽의 비틀어진 틈을 메웠다.

축을 바로 세웠는데도 혼알방이 사라지다니.


‘그보다 이전에 들어왔구나. 계속 숨어있던 거야.’

피천귀일까, 수집가일까? 얼마나 들어왔을까.


‘그래, 가시버시 축제 때!’

사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모두 가면을 쓰고 길놀이 하던 날이었다. 그 사이에서 스쳐간 이상한 냄새와 낯선 기운.


‘마음숲에서 나지 않던 냄새였어. 몹시 서늘하고 기괴한. 잘못 맡은 게 아니야.’

그때의 느낌이 기억나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 정도라면 피천귀는 아닐 것이다.


‘그럼, 그것이···?’


*


상산대원들은 지도를 들고 혼알판 사이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혼들이 동요하면 안 되므로 느긋하게 걸으면서 예리하게 눈을 빛냈다.


그 무리 속에 삼을라도 끼어있었다. 그는 운와가 이끄는 조에 들어갔다.

삼을라는 싱글거리며 입꼬리를 내릴 줄 몰랐다.


“헤헤, 내가 상산대원이 되었당게. 시상에 이런 일도 있당가.”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건에 깃털이 잘 꽂혔는지 손으로 더듬었다.


혼들은 삼을라를 보며 키득거렸다.

“삼을라,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도마중은 어쩌고?”

“이, 나도 상산대를 위해 일한당게.”


“상산대가 무슨 일? 무슨 일 났어?”

“고것이 아니고잉, 혼알방 지도를 다시 만든당게.”


“지도?”

“잉, 느그들처럼 공명이 강하믄 전언으로 혼알방 위치를 알잖여? 공명이 약하믄 지도를 보여주거들랑.”


삼을라는 지도첩을 툭툭 건드렸다.

“빠진 것이 있나 살펴봐야 딱 맞는 지도가 된다 이거여잉.”


“그런데 왜 삼을라가 해? 상산대원들이 더 잘할 텐데?”

“뭐시라? 이건 안내소 나도마중의 것이여. 지도를 젤루 잘 보는 것이 내고, 지도를 고칠 수 있는 것도 나 아니겄어잉?”


삼을라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제일이랑게. 보셔, 빠진 혼알방을 벌써 네 개나 찾아냈다고잉.”


삼을라가 지도를 가리키자 옆에 있던 운와도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십 분의 일도 돌아보지 못했는데, 그가 맡은 구역에서만 벌써 네 개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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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천계_폭풍 전야 23.09.02 43 2 11쪽
147 천계_비밀회의 +2 23.09.01 42 3 11쪽
146 천계_신성한 땅의 흙 23.09.01 43 3 10쪽
145 천계_돌아오는 마음 23.08.31 43 2 12쪽
144 천계_움트는 비밀 23.08.31 45 3 11쪽
143 천계_신령수 동명 +2 23.08.30 42 3 11쪽
142 천계_두 번째 고백 23.08.30 43 3 12쪽
141 천계_숲센계곡 긔니초 23.08.29 43 2 11쪽
140 천계_반가운 할머니 +2 23.08.29 45 4 11쪽
139 천계_방법을 찾겠습니다 23.08.28 43 3 11쪽
138 천계_에밀레와 나토두 +2 23.08.27 43 3 12쪽
137 천계_떠나는 용희 23.08.26 41 4 11쪽
136 천계_기운을 훔친 대가 23.08.25 44 4 10쪽
» 천계_사라진 혼알방 +2 23.08.24 45 3 12쪽
134 그믐_빛나는 알과 만나다 23.08.23 44 3 8쪽
133 그믐_우주의 미아 +2 23.08.23 43 3 10쪽
132 그믐_소환 23.08.22 43 2 11쪽
131 그믐_대의각 앞마당 23.08.21 42 2 9쪽
130 그믐_증좌를 찾아내다 23.08.21 43 2 9쪽
129 그믐_형감어사 문휘수 23.08.20 43 2 11쪽
128 그믐_별사탕을 어찌 아는가 23.08.19 43 3 11쪽
127 그믐_사람의 눈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23.08.18 43 3 11쪽
126 그믐_판정관 황민 23.08.17 41 2 11쪽
125 그믐_억울한 누명 23.08.16 43 3 11쪽
124 그믐_그들의 비밀 23.08.15 42 4 10쪽
123 그믐_전생을 기억하는 소녀 23.08.14 43 2 11쪽
122 그믐_영함산과 만선상단 23.08.13 41 3 11쪽
121 천계_공조 23.08.12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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