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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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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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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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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사로잔_새놀호수

DUMMY

새놀호수는 바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넓고 깊었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고, 달과 삭에 이끌려 물 높이가 달라질 정도였다.


사로잔과 다루영은 절벽 위 정자에 앉아 드넓고 평화로운 호수를 바라보았다. 구름이 흐르는 대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물빛이 달라졌다.


철썩이는 물소리가 마음을 다독이며 지친 몸도 위로해주었다. 다루영은 바다를 닮아 수평선이 보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풍경에 젖어 들었다.

“일함 부부는 약 잘 드시겠지?”

“효과를 느꼈으니 잘 드실 거야.”


사로잔은 대자로 누워 정자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작고 귀여운 용이 알록달록 칠해진 천장은 그림책을 펼쳐놓은 것 같아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해무찬이 잘 찾아올까?”

“어떻게든 올 테니 걱정 마. 추적술은 이런 때 쓰라고 배운 거니까.”

사로잔은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다루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린애 같아서 혼자 놔두면 불안해.”

“어린애? 하하하.”

사로잔은 웃음이 터져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어린애라니. 용각국의 소태장군 해무찬을 어린애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에 그녀 뿐일 것이다. 다루영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사로잔이 웃음을 멈추었다.

사뭇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래. 찬은 무사할 거야.”


다루영이 난간에 앉아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괴물이 산다는 악명과는 달리 아무리 봐도 아름다운 호수였다.

사로잔도 일어나 기둥에 기대앉았다.

“신비의 호수라면서 뭐가 신비롭다는 거지?”

“소문이 그냥 나올 리는 없어. 뭔가 있겠지.”


사로잔이 호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는 있는지 몰랐는데 시간을 두고 찬찬히 살펴보니 사소한 것이 크게 보였다.

“저길 봐.”


호수 가운데 솟은 몇 개의 섬 중에서 왼쪽 작은 섬을 가리켰다. 물과 맞닿은 표면에서 하얗게 물거품이 일어나며 물결이 거세졌다.


다루영이 소리쳤다.

“정말로 어룡이 있어. 한 마리, 아니. 두 마리.”


사로잔도 거기 초점을 맞추었으나 일렁이는 파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나족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거리였다.


다루영이 눈으로 어룡을 쫓았다. 두 마리 어룡은 장난치듯 헤엄치며 물살을 만들었다. 어룡이 자리를 옮기니 물살이 가라앉았다.


다루영이 뭔가를 발견하고 소리 질렀다.

“저기, 저기.”

“어디?”

“물거품이 일어나던 곳에 구멍이 보이지? 동굴 입구 같아.”

사로잔은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았지만, 다루영이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곧바로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호숫가에는 엉성한 뗏목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


물거품이 보글보글 솟아나는 구멍으로 다가가니 어룡이 다가왔다.

물 밖으로 이마와 눈만 내놓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물이 맑아 물속에 잠긴 모습까지 똑똑히 보였다. 소문과는 달리 귀여운 모습이었다.


다루영의 푸른 용에 비하면 훨씬 짧고 통통했지만, 꼬리 끝까지의 길이가 나룻배의 두 배 정도라 사람들이 두려워할 만 했다.


두 마리 어룡은 비늘 색깔만 조금 다를 뿐 생김새는 똑같았다. 동그랗고 장난기 어린 눈으로 뗏목을 감싸고돌았다.

작은 입으로 뻐끔거렸다.

“용족이잖아?”

“맞아. 용족이네.”


사로잔에게는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면 나는 그런 소리였다. 다루영은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손을 내밀었다.


“너희들이 어룡이구나.”

“응. 여기서 호수를 지키고 있어. 난 백질이야, 얘는 흑질이고.”

“맞아. 내가 흑질이야. 넌 여기 왜 왔어?”

“성물을 찾으러. 어떻게 동굴에 들어가지?”


바람이 불자 다루영의 푸른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나부꼈다. 옅은 회색의 어룡 백질이 물 밖으로 머리를 치켜들고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동굴이 있는 것도 알고. 성물이 있는 것도 알고. 진짜인가 봐.”

어룡은 자기들끼리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 진회색 어룡 흑질이 으흥 콧소리를 냈다.


“거긴 결계가 있어. 주인이 아니면 깰 수 없어.”

“주인도 같이 왔어. 동굴은 어디 있지?”

두 마리 어룡은 꼬리를 철퍽거리며 동굴 입구까지 앞장섰다.


절벽 가운데 뚫린 구멍은 물이 차 있지만 안쪽은 오르막길로 이어졌고, 꼭대기 작은 구멍으로 빛이 스며들었다.


다루영이 입구에 올라섰다. 첫 번째 계단에 올라서니 찌릿하고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그 벽은 따가운 바늘과 함께 소리 없는 암시를 주었다.

‘여기 들어오면 네 몸이 타버릴 것이다.’


어룡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뗏목 주위를 맴돌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크면 파도가 세지고, 서서히 헤엄치면 잔잔해졌다.

뗏목이 계속 출렁이자 사로잔은 주저앉아 그들이 움직임을 멈출 때를 기다렸다.


다루영이 뗏목으로 내려섰다.

“결계가 있어. 아주 강력해. 너희가 결계를 쳤니?”

어룡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뗏목이 아래위로 출렁였다.


“아니, 우린 그런 힘없어. 우린 안내자야.”

“문지기이기도 해. 너희 중에 누가 주인이야?”

“주인이 아니면 타죽을 거야.”


다루영은 사로잔의 허리띠에 묶인 단검을 바라보았다. 사로잔도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네가 주인이야.’


대체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맨손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동굴 앞에 섰다. 조심스럽게 첫 번째 계단에 올라섰다. 이상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오르막에 올라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결계가 어디 있다고?”

다루영을 돌아보았다. 놀아서 굳은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결계가 사라졌어. 정말 주인이네.”

“우리도 따라가자. 조상님의 예언이 이루어지나 보다.”

“진짜 주인이 오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어룡은 사람의 몸으로 변신하여 입구에 들어섰다.

몸만 사람이고 머리는 그대로였다. 그들은 폴짝폴짝 뛰며 노래하듯 빽빽 소리 질렀다.


그들의 반응에 사로잔은 머릿속이 찌릿거렸다. 어룡이 하는 말이 들렸다. 웅웅거리던 소리를 알아들었다.

그것이 당연한 듯 자연스러운 자신이 더 놀라웠다. 상상도 못 한 일인데 담담했다.


발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저절로 오르막으로 움직였지만, 이 상황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자신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결계를 깬 것이 단검 휼이야, 나야? 내 몸은 또 왜 이래?’


사로잔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을 때 다루영은 부푼 마음으로 어룡과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어룡은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바위를 뒤뚱거리며 올라갔다.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다루영은 이렇게 귀엽고 예쁜 어룡을 왜 괴물이라고 하는지 의아했다.

“왜 너희를 괴물이라고 하지?”


“자기들한테 필요한 것만 보니까 그래. 예전엔 안 그랬어. 육백 년 전만 해도 사람들과 어울려 놀았어. 함께 물고기도 잡고.”

“맞아. 여기 자기들만 사는 줄 알아. 다른 건 다 나쁘다고 해.”

“여긴 살아있는 호수거든. 거대한 너른벌 안에 새놀호수가 살고, 그 안에 우리가 사는 거야. 그런데, 다 자기 거라면서 우리더러 괴물이래.”


“성물은 어떤 거야?”

“몰라. 주인이 올 때까지 호수를 잘 지키면 세 번째 눈을 얻을 거라고 하셨어.”

“세 번째 눈?”


“세 번째 눈이 있으면 선계의 호수에 태어난대. 영진성님이 사는 곳 말이야.”

“네가 진짜 주인이면 우리는 선계의 용이 되는 거지.”

“선계의 용이래! 까르르르.”

두 마리 어룡은 폴짝폴짝 뛰면서 서로 손뼉을 맞추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사로잔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니 고민이 부질없어졌다.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계란 터지듯 탁 풀어졌다.


오르막이 끝나고 경사가 완만해지자 멈춰서서 숨을 돌렸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 가늠하려고 머리 위를 살펴보았다.


동굴 꼭대기에서 무언가 반짝 빛을 냈다. 빛을 보는 순간 찌릿한 감각이 정수리에서 등을 뚫고 발목까지 전해졌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녹디사원에서 자신을 부르던 소리였다.

“그 목소리야! 날 부르고 있어!”


쏜살같이 뛰어올랐다. 삐죽 솟은 모서리에 옷이 찢겨도 아랑곳하지 않고 빛이 보이는 바위기둥으로 올라섰다.


기둥 위에 빛나는 보석이 모여 있었다. 원석처럼 여러 가지 모양이지만, 햇빛을 받아 무지개처럼 맑은 빛을 뿜어냈다. 너른벌에서는 보지 못한 보석이었다.


사로잔은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다가갔다.

보석은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가운데 커다란 구술은 영롱하게 빛을 내며 숨 쉬고 있었다.

그녀가 다가가니 보석들이 스르르 길을 열어주었다. 숨 쉬는 구슬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구슬은 사로잔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머뭇거리던 구슬은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사로잔이 팔로 얼굴을 막았지만, 이미 몸속으로 스며든 다음이었다. 눈을 떴을 때 구슬은 보이지 않고 바닥에는 보석만 놓여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몸이 바뀐 것을. 신경과 혈관을 타고 알 수 없는 힘이 몸 안에 가득 찼다.

‘이건 뭐지?’


사로잔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것도 성물이었나? 이젠 확인할 수 없으니···. 아쉽군.’

새로 들어온 감각은 소금이 물에 녹듯 사라졌다. 이미 하나가 되어 떼어낼 수 없었다.


다루영과 어룡이 뒤이어 올라왔다.

반짝이는 보석이 하나씩 떠올라 사로잔 주위를 맴돌았다. 탐색하듯 그녀를 맴돌더니 줄을 지어 다루영과 어룡의 주위로 몰려왔다.


“이거 왜 이러지?”

사로잔이 비켜서서 어룡에게 물었다.


“주인을 찾고 있나 봐. 하늘의 성물은 스스로 주인을 찾는다고 했어.”

“이 안에 우리의 눈이 있을까?”

각기 다른 모양과 빛깔의 보석이 자그락자그락 소리를 냈다. 풀벌레 소리 같기도 하고 자갈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


떠다니던 두 개의 보석이 어룡에게 다가가 이마에 자리 잡았다. 세 번째 눈처럼 보석이 박혔다.

“어, 어. 이거 봐, 이거!”

“너희가 이 보석의 주인인가 봐.”

다루영이 외쳤다.

어룡 두 마리는 어설픈 다리로 펄쩍펄쩍 뛰었다. 이마에 자리 잡은 보석은 점점 더 밝게 빛났다.


“와, 그럼 우리도 선계로 가는 건가?”

“선계의 수호용이 될 수 있어!”

어룡 두 마리가 풀썩거리는 데도 공중을 떠다니는 보석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둥글고 납작한 보석 네 개가 다루영의 손바닥에 앉았다. 네 개의 다른 표창이 되었다.

자신이 무엇인지 알려준 뒤에는 보름떡 모양의 돌멩이로 돌아갔다. 네 가지 색과 모양의 표창. 다루영은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이건 너른벌의 물건이 아니야. 대분성전투에서 내려온 하늘의 무기야. 스승님이 말씀하셨어. 성물은 주인에 따라 모양이 바뀐다고.”

다루영은 가슴이 벅차올라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아도대사님, 드디어 스승님의 소원에 한 걸음 다가갔어요.’


사로잔에게 머문 것은 수정 막대기였다. 곤봉처럼 짧은 막대기는 모양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단검 휼의 옆자리에 자리 잡았다.

“막대기? 이거 신기하네.”


어룡은 여전히 폴짝거렸고, 사로잔과 다루영은 자신을 찾아온 성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에도 다른 보석들은 계속 허공을 헤맸다.


다루영이 크고 넓은 앞치마를 풀어 바닥에 놓았다.

“그렇게 데리고 다닐 순 없잖아. 여기 담아가자.”

“어떻게 내려놓지?”

“네가 주인이니까 네 말은 들을 거야.”


사로잔이 내려앉으라고 손짓하니, 보석들이 다루영의 앞치마 위에 내려앉았다. 앞치마로 만든 꾸러미 속에서 보석들이 재잘대며 스스로 크기를 줄였다.

“말이 많은 녀석들이네. 우리를 만나 즐거운가 봐.”


다루영은 떨리는 손으로 앞치마의 네 귀퉁이를 묶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노래로만 내려오던 전설이 사실이었다.


사로잔을 올려다보았다. 단검의 주인, 결계를 여는 주인, 하늘의 성물을 손짓으로 부리는 사람.

그녀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저 용각국의 소명장군 사로잔일까.


가슴이 벅차기는 사로잔도 마찬가지였다.

용각국에서는 상상도 못 한 신비를 체험한데다 보물 사냥꾼으로서 첫 수확을 얻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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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사로잔_성물의 주인 22.05.29 47 1 9쪽
» 사로잔_새놀호수 22.05.29 48 1 13쪽
30 사로잔_변수 22.05.28 61 1 12쪽
29 사로잔_증거물 22.05.28 54 1 11쪽
28 사로잔_뒷거래 22.05.27 49 1 10쪽
27 사로잔_망나니 22.05.27 54 1 12쪽
26 사로잔_부망 약초시장 22.05.26 56 1 13쪽
25 사로잔_일함루 이곤 22.05.26 53 1 13쪽
24 사로잔_부망으로 22.05.25 53 1 12쪽
23 사로잔_거대상단 아순치 22.05.25 57 1 11쪽
22 선계_호위무사 22.05.24 52 1 10쪽
21 선계_노각부줄 22.05.24 62 1 11쪽
20 아랑누_사람의 손 22.05.23 52 2 10쪽
19 아랑누_폭풍 전야 22.05.23 61 1 9쪽
18 아랑누_무언의 암시 22.05.22 5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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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랑누_귀령송환사 22.05.18 66 2 13쪽
11 사로잔_결심 22.05.17 72 2 12쪽
10 사로잔_비르삼 알찬 22.05.16 64 2 11쪽
9 사로잔_여행 준비 22.05.15 68 2 12쪽
8 사로잔_타내 대모 22.05.14 75 2 11쪽
7 사로잔_단검의 주인 22.05.14 75 2 15쪽
6 사로잔_용족 다루영 22.05.13 84 3 12쪽
5 사로잔_녹디사원 22.05.12 12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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