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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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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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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사로잔_부망 약초시장

DUMMY

약초시장은 거대상단 부망지부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지부에서 직접 관리하기에 담장 옆 골목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상점이 약초 거리를 만들었다.


다루영은 필요한 약초가 있는지 시장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좋은 처방이라도 구할 돈이 없으면 소용없었다. 효과 있는 처방 중에서 이곤이 살 수 있는 약초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사로잔과 해무찬은 악기를 수리하러 시장의 반대편으로 갔기에, 다루영은 약초 말고도 새놀호수에 대해서도 알아볼 작정이었다.


어제 광장을 지날 때 새놀호수에 어룡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룡이 산다면, 분명 말이 통할 거야.’


용족은 인어족과 마찬가지로, 민물의 어룡과 바다의 해룡과 대화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런 존재를 본 적은 없지만, 스승인 아도대사에게 들은 바로는 그랬다.


이번 기회에 시험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하늘의 성물에 대해 사람보다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다루영은 다양한 이름의 약초 푯말을 하나씩 읽으며 걸음을 옮겼다.

약초를 구경하던 그녀는 어느 가게 앞에서 얼어붙었다. 그곳에는 ‘독지린’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독지린은 용족의 비늘이었다. 세상의 어떤 독이든 찾아낼 수 있고, 아무리 강한 독이라도 죽지 않을 정도의 해독이 가능했다.

용족이 어떤 경우에도 중독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용족이 용으로 변신했을 때 죽여야만 얻을 수 있었다. 가엾은 용족이 독지린 사냥꾼에게 희생된 증거였다.


‘누가 저런 짓을!’

머리가 지끈거리며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속이 메스꺼워 구역질이 나오려 했다.

비틀거리다가 뒤로 쓰러지는 순간 누군가와 부딪쳤다.


“어머나!”

약초를 구경하던 아가씨였다. 감물 빛 머리카락에 정교한 머리 장식을 달고, 얼굴의 반은 얇은 옥사 가리개로 가린 아리수였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어지러워서.”

“큰일 날 뻔했네요. 잠시 앉아서 쉬세요. 저기 의자가 있어요.”

아리수로 변장한 아순치는 여인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원래 목소리가 신비로웠기에 여인처럼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루영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현기증을 가라앉혔다. 그녀를 바라보는 아순치의 눈빛이 빛났다.


머리카락을 올려 묶고 회색 두건으로 가렸지만, 귀밑으로 짙푸른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내렸다. 핏줄이 들여다보일 것처럼 하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 바다 같은 눈동자.

‘용족? 너른벌에 얼마 남지 않은 순수 용족이잖아!’


그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광검국에도 여러 종족이 모여 살지만, 용족은 보지 못했다. 순수 용족이 평범한 여인의 옷차림으로 약초시장에 나타나다니. 그것도 혼자서.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어디서 왔지? 혼자인가?’

수많은 의문부호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숨을 고르던 다루영이 천천히 일어났다.

“고맙습니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갈래요? 마침 제가 아는 분이 근처에서 약차를 팔거든요.”


다루영이 거절하려고 손을 들자 아리수가 재빨리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

“새로 들어온 약차를 소개한다고 오늘만 공짜랍니다. 혼자 가기 민망해서 망설였는데 같이 가실래요?”

“그럼, 잠시 들렀다 갈게요.”


다루영은 아리수의 간절한 눈빛을 거절할 수 없었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친절한 여인을 흘끗 바라보았다.

‘잘 됐다. 이 아가씨에게 새놀호수에 관해 물어봐야지.’


약방 주인이 아리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했지만, 손을 휘휘 젓는 그녀를 보며 무슨 일인가 눈을 끔쩍댔다.

“아저씨, 새로 들어온 약차 맛보기 한다면서요? 저 그거 마시러 왔어요.”


아리수가 차탁에 앉아 고갯짓하는 데도 주인은 엉거주춤 서서 바라보았다. 눈짓으로 다루영과 주방을 가리키자 주인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사로잔과 해무찬은 수리한 악기를 소중히 감쌌다. 사로잔은 자신의 비파를, 해무찬은 월금과 대금을 짊어졌다.


꽃떡을 사 먹으며 느긋하게 시장을 구경하던 사로잔이 해무찬의 팔을 두드렸다.

“찬, 다루와 혼인한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왜 진전이 없어?”

“아아, 그거.”

해무찬도 작은 꽃떡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여행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잖아? 몇 개월이 될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불편하면 안 되니까. 부담을 주긴 싫거든. 하지만 걱정 마. 다루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단검의 주인이 여기 있으니 말이야.”

“오, 제법 많이 고민했는데?”

평소라면 무소처럼 밀고 나가던 해무찬이 그런 결론을 내렸다니 믿기 어려웠다. 그 정도로 다루영을 소중히 여기는 건가.


“곧 날 받아들일 거라고. 은근하고 강인한 매력이 후광처럼 빛나지 않냐? 해태족은 은둔과 끈기야.”

“그래, 건투를 빈다.”

“그나저나 이 여행 언제까지 이어질까?”

“보물을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아직 단서 하나 못 건졌어.”

사로잔이 시무룩해 있자 해무찬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왕 여행하는 거 즐겁게 하자고.”

다루영과 함께 있으려는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사로잔도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검을 뽑았으니 보물은 못 찾아도 자유를 즐겨야지.”


해무찬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건너편 과자가게 앞으로 달려갔다.

“맛있겠다. 다루에게 사다 주자. 여행은 역시 맛집이지.”


사로잔의 얼굴이 금새 달아올랐다.

“야! 숙박비도 빠듯하다고 했잖아!”

“어이, 쩨쩨하게 왜 이래? 목숨 걸고 따라왔는데. 이 정도는 봐줘.”


사로잔은 씩씩거리면서도 과잣값을 계산했다.


*


아리수가 알려준 대로 다루영은 규모가 가장 큰 약초 가게를 찾았다. 약초를 사려는 사람들과 약초의 효능과 가격을 설명하는 점원들로 실내는 부산스러웠다.


다루영도 신기한 약초를 구경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이 지긋한 주인은 먼저 온 손님과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 건 유리산에서나 구할 수 있을까···.”

처음 듣는 이름에 귀를 세우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지만, 주인은 딴청을 부리며 손님을 피했다.


“거기 비밀의 책이 있다니 댁네 주인을 구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어디 있소?”

“유우대륙 어디쯤이라고 얼핏 들었소만.”


“그렇게 따지면 인어족의 으뜸초를 찾아가란 말이나 다를 게 없잖소!”

“그러니까 구할 도리가 없다 이거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야 무슨 방법이 있겠소?”

주인이 애원하자 손님은 짜증을 내며 가게에서 나갔다.


주인이 계산대에 혼자 남자 다루영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다.

“지금 말한 유리산이 으뜸초와 관련 있나요?”


주인은 또 골치 아픈 손님이 왔나 다루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가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반짝이자 천천히 찌푸렸던 이마 주름을 폈다.

“무슨. 유리산이나 으뜸초나 이름만 들었지 자세히는 모른다오. 허나, 새놀호수라면 좀 알지.”


주인이 계산대 위로 목을 쭉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손님들은 가격을 흥정하느라 이쪽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어마어마한 어룡이 산다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 약초를 구하러 가던 길이었는데 물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

주인은 양팔을 벌릴 수 있는 크게 벌렸다.


“정말 그렇게 큰 짐승은 처음이었소. 다리가 후들거려서 간신히 빠져나왔다오. 다시는 그 근처에 가지 않는다오. 사람도 잡아먹는다니까. 어휴.”

가게 주인이 진저리를 쳤다.


조금 전 아리수가 한 말과는 아주 달랐다. 다루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엽고 착한 어룡이라고 했는데? 장난이 좀 심한 것뿐이라고.’

여하튼 새놀호수에 어룡이 산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주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거기 가려고?”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같아서요. 저, 이 약초 구할 수 있을까요?”

다루영은 종이를 주인에게 내밀었다.


주인은 글자에 초점을 맞추려고 실눈을 떴다.

“이거랑 이건 부망에서는 못 구한다오. 다른 건 모두 우리 집에 있소. 지금 사겠소?”

“아뇨. 나중에요. 지금은 알아보는 중이거든요. 다시 올게요.”


다루영은 주인이 표시해준 종이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


만나기로 약속한 만둣집에는 사로잔과 해무찬이 먼저 와 있었다. 다루영이 반달음으로 다가오자 사로잔이 자리를 내주었다.


“갔던 일은 잘됐어?”

“응. 재미있는 걸 알아냈어. 여기서 서남쪽으로 가면 새놀호수가 있대.”

“서남쪽이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네. 그 호수가 왜?”


“어룡이 보물을 지키고 있다는 거야. 뭔가 있을 것 같지?”

“혹시 하늘의 성물?”

해무찬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만두를 집어 들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이유가 있으니 그런 소문이 생겼겠지. 비밀은 들키려고 만든다잖아.”

사로잔이 팔짱을 끼고 만두를 노려보았다.

“더 자세한 정보는 없어?”


“어떤 사람은 무시무시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장난기가 많다고 해. 누가 맞는지는 가봐야 알겠지.”

다루영이 기대에 차서 환하게 웃었다.


사로잔과 해무찬은 새놀호수와 성물에 대해 생각하느라 맞은편 탁자에 누가 앉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루영은 등지고 있어서 그를 보지 못했다.


감물 빛 머리카락, 아름답고 또렷한 이목구비와 왼쪽 뺨의 상처. 허리에 매달린 채찍, 거대상단의 소단주 아순치였다.

그는 만두 한 접시를 시키고는 등 뒤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예인의 옷을 입고 있어도 무사의 기운까지 감출 수는 없지. 용족의 호위인가? 저 붉은 머리 해태족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순치는 목걸이에 매달린 작은 유리구슬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굴렸다.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럼, 새놀호수로 가자. 나침반도 그 방향이니, 어룡의 보물이 무엇인지 확인해야지.”

사로잔이 결론을 내리자 다루영이 손을 휘저었다.

“잠깐, 일함루 부부가 조금 나아지면 출발하자. 이삼일만 시간을 줘. 완치는 아니어도 방법이 있을 것 같아.”


“그래야지. 그런 건 무조건 다루를 따라야 해.”

해무찬이 볼을 부풀리며 접시에 만두를 덜었다. 다루영이 그를 바라보며 대답하듯 생긋 웃었다.


두 사람의 눈빛을 보니 사로잔은 웃음이 나왔다.

“이삼일이라고? 그렇다면 나도 의견이 있어. 찬, 이곤을 도울 수 없을까?”

“무슨? 아, 무술대회? 너 무술대회 나가려고?”

해무찬이 목소리를 낮췄지만, 효과는 없었다. 만두집의 모든 사람이 듣고도 남을 크기였다.


“우리가 나갈 것까지야···. 그냥 도와주고 싶어.”

당장은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로잔은 말없이 만두에 집중했다.


*


세 명의 악사가 떠나고도 아순치는 그 자리에 남았다.

‘왜 그리 새놀호수에 관심이 많나 했더니. 어룡을 찾는다고? 무술대회는 무슨 상관이지?’


무술대회의 의문은 곧 풀렸다. 해무찬을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냈다.

어릴 때 한 번 본 얼굴이라도 그런 인상을 쉽게 잊을 리 없었다.

‘지곡대사의 제자였어···.’


그들의 이야기는 곱씹을수록 의문투성이였다. 하늘의 성물, 나침반, 비밀···.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었다.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드디어···. 드디어, 때가 온 건가?’


아순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터져 나온 환호성이 만둣집을 흔들었다.

주인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시 후 검은 옷을 입은 키 작은 여인이 그 옆에 섰다.

날렵한 몸가짐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아순치가 고개를 돌리자 여자가 허리를 숙였다.


“훤화, 조금 전에 나간 사람들 조사해줘. 누군지, 지금 어디 묵는지.”

“네.”

짧은 대답과 함께 훤화는 곧 자취를 감추었다.


아순치는 세 명의 악사 중 마지막으로 나간 여자의 모습을 되새겼다.

강인한 무사의 기운, 날카롭지만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 절도 있는 움직임, 어딘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왼쪽 손의 장갑은 분명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


그는 웃음을 지우고 손가락 끝으로 식탁을 톡톡 두드렸다. 다른 한 손은 유리구슬 목걸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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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사로잔_성물의 주인 22.05.29 47 1 9쪽
31 사로잔_새놀호수 22.05.29 48 1 13쪽
30 사로잔_변수 22.05.28 61 1 12쪽
29 사로잔_증거물 22.05.28 54 1 11쪽
28 사로잔_뒷거래 22.05.27 49 1 10쪽
27 사로잔_망나니 22.05.27 54 1 12쪽
» 사로잔_부망 약초시장 22.05.26 57 1 13쪽
25 사로잔_일함루 이곤 22.05.26 53 1 13쪽
24 사로잔_부망으로 22.05.25 53 1 12쪽
23 사로잔_거대상단 아순치 22.05.25 57 1 11쪽
22 선계_호위무사 22.05.24 52 1 10쪽
21 선계_노각부줄 22.05.24 62 1 11쪽
20 아랑누_사람의 손 22.05.23 52 2 10쪽
19 아랑누_폭풍 전야 22.05.23 61 1 9쪽
18 아랑누_무언의 암시 22.05.22 53 1 10쪽
17 아랑누_흰 호랑이 호설 22.05.22 5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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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로잔_비르삼 알찬 22.05.16 64 2 11쪽
9 사로잔_여행 준비 22.05.15 68 2 12쪽
8 사로잔_타내 대모 22.05.14 75 2 11쪽
7 사로잔_단검의 주인 22.05.14 75 2 15쪽
6 사로잔_용족 다루영 22.05.13 84 3 12쪽
5 사로잔_녹디사원 22.05.12 12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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