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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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만 도화란 인간 주제를 보니 큰 밀수는 못 하고 그야말로 자잘한 생계형 밀수나 하던 자였다. 이제야 도화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배도 잘 다루고, 배 타고 오다 들은 말로는 왜어도 좀 한다던가? 그때 눈치 못 챈 것은 뱃멀미에 정신이 반은 저승사자와 블루스를 추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 그 아는 왜놈인지 안내나 해라.”
배주길은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진즉 도화가 밀수꾼인 것을 알았다면 이리도 마음 걱정 안 해도 되었으리라. 물론 어쩌면 아예 도화를 거부했을 수도 있지만...
“예. 예. 나리 그럼 따라오십쇼.”
도화가 이끄는 대로 좀 가니...
“저게 집이요?”
말동이 중얼거렸다. 초가집도 아닌 것이 다 스러져가는 그런 집이었다. 저기서 사람이 살까? 하는 생각이 드는...
“와... 상여집보다 더 귀신 나오게 생겼네.”
따라온 누군가의 말이 그 집을 제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어이! 암상이 있나?”
도화가 크게 외쳤다. 그리 크게 외치지 않고 작게 말해도 집 안에 다 들릴 정도로 허름한 집이건만...
“아이고... 이게 누군가? 이노시시 아닌가?”
그 말에 배주길은 그만 킥! 하고 웃었다. 이노시시. 일본어로 멧돼지란 말이었다. 복숭아꽃이란 예쁜 이름보다 훨씬 도화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했다.
“이노시시가 아니라 도화라니까! 네놈이야 말로... 음... 아이구 나리. 저 놈이 소인이 말한 그 놈입니다.”
“아... 그런가?”
배주길이 보니 행색이 영... 머리는 대충 올렸는데 이게 웬 수세미인가 싶었다. 참으로 빈곤하게 생긴 얼굴에 수염이 지저분하게 났고, 뭘 그리 자랑할게 있다고 입은 옷이라고는 훈도시 하나였다. 그나마 훈도시가 밑으로 출 늘어져있는 바람에 그 사이로...
‘젠장! 눈 버렸다. 아... 눈 썩네...’
정말 못 볼 것을 봤다고나 할까?
“누, 누구...”
암상이라 불린 왜인은 그제야 배주길 일행을 보며 당황해 물었다.
“누구시긴! 네 녀석에게 돈 벌어다 주실 나리시다!”
그리고는 배주길을 보며 말했다.
“이놈 이름이 암상이고 뭐 여기서는 이와우에岩上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바위 위에서 그 짓 하고 생겨서 이와우에라고 했다나요? 하아... 집도 아닌 곳에서 뭔...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태연하게 합디다.”
“아... 그래.”
배주길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가 일본어였다. 사실 제2 외국어였다지만 학교 졸업 후에도 일본어는 오하요 고자이마스, 곤니찌와, 곰방와, 사요나라.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기모치. 이 정도였다. 그나마 기모치는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었다. 그 후 인천 카지노에서 일하면서 그곳에 드나드는 일본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기도 했지만...
‘젠장 모르겠다.’
암상인지 이와우에인지 하는 사람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당연한 것이 21세기 일본말 그것도 도쿄의 말이 중심이 된 일본말과 16세기 일본 시골의 말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배주길도 처음 조선으로 왔을 때 얼마나 고생했었던가. 마을 사람들 중에는 북쪽의 오랑캐냐고 물은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으니...
“그나저나 저 자가 상인인가?”
일단은 이것이 중요했다.
“상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암상이를 통해 상인을 만날 수 잇습지요.”
“흠... 그런 도화 너... 자넨 지금까지 어떻게 왜인들과 밀거래를 했던 건데?”
그 말에 도화의 눈이 접시만큼이나 커졌다.
“그, 그걸 나리께서 어찌 아시는 겁니까요?”
“티나.”
“예?”
“딱 보면 안다고!”
“허....”
정말 대단한 양반이다... 라고 도화는 생각했다.
“아무튼 도화 자넨 어찌 거래를 한 건데?”
“소인이야 뭐... 암상이를 통해서... 그냥 조금씩 하는 거라 굳이 상인 통하지 않고 암상이만으로도 되는 일이었습죠.”
“그런가? 대체 뭘 밀거래했는데?”
“소인에게 뭐 거래할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막사발이라거나... 짚신이라거나... 뭐... 거적같은 것이라거나...”
“그런 게 팔린다고?”
배주길이 놀라 물었다.
“예. 그냥저냥 그럭저럭... 여기가 원체 시골이라 그런 것도 많이 않은 듯 합니다.”
“하... 그래. 팔린다 치고. 그래서 도화 넌 뭘 받았는데?”
“쌀을 좀...”
“쌀?”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일본은 말이야. 우리나라보다 저위도에 위치했어. 뭔 소리냐하면 적도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고... 그래도 이해 안 돼? 그랴. 쉽게 가자. 우리나라보다 더웠어. 뭐? 북해도... 거긴 18세기에 들어 차지하 곳이고! 일단 일본은 일본 남부와 큐슈에서 시작했다고 봐야 하지. 일본이 우리나라에 임진왜란 일으키던 시대만해도 일본의 중심은 오사카였거든. 도쿄는 말 그대로 권력권 밖의 깡촌. 그래서 풍신수길이 덕천가강 견제하려고 그곳으로 보낸 거고. 흐음... 도요토미 히데요시랑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무튼... 어쨌든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운 곳이라 고대부터 쌀농사가 잘 되던 곳이야. 우리나라가 1모작 할 때 2모작 3모작을 했지. 같은 시기 한국보다 쌀이 남아돌았던 거야.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그렇게 남은 쌀이 일본 상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자신에게 역사에 대해 가르쳐 주었던 강철성이 해 준 말이었다. 즉 이런 깡촌 마을이라도 쌀은 여유가 있었을 거란 것이었다.
“저... 소인이 밀거래 한 것은 관청에 고하지 말아 주십쇼.”
“아. 걱정마라. 나 입 무거운 사내야.”
배주길은 믿음이 가는 음성과 말투로 도화를 안심시켰다.
‘미쳤냐? 그걸 말하면 내도 밀수하려는 것 들통 날 텐데.’
그렇게 배주길은 왜국에 첫발을 대디뎠다.
* * *
“대구라...”
갑자기 대구매운탕이 먹고 싶어지는 배주길이었다.
‘나 살던 집 목포식당이 대구탕은 끝내줬는데...’
이젠 다시 맛 볼 수 없는... 맛보고 싶다면 최소 500년은 더 살아야 하는 음식을 생각하며 눈 앞의 왜인을 바라보는 배주길이었다.
“상인이라고?”
“예.”
“그래서 무얼 파는데?”
“그냐... 떡을 좀...”
“떡? 그래. 그 떡 한 번 맛이나 보자.”
외국에 나갔으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봐야 하는 법. 특히 고급 식당보다 길거리 음식이 더 그 나라의 특색을 담는 법.
‘16세기 일본 떡 맛을 보겠네.’
배주길은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없습니다요.”
“없어? 아... 다 팔렸군. 맛이 좋은 모양이지? 아니면 장사 수완이 좋든가.”
“다 팔리기는요. 반도 못 팔았습니다.”
“그런데 왜... 쉬어서 버린 건가?”
“그건 아니고... 하긴 어차피 하루 지나면 쉬어서 못 파니 제가 다 먹었습니다. 덕분에 배탈이 나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 말에 배주길이 탄식했다.
“저런! 쉬어버린 것이 있었던 모양이군. 그래서 안색이 별로 안 좋아보였군.”
“그게 아니라 그 떡을 다 먹었더니...”
“응? 혼자?”
“예. 혼자.”
“떡이 남았으면 이웃과 나눠 먹으면 되는 일 아니었나?”
“무슨 말씀입니까? 왜 나눠줍니까? 그 사람들이 먹으려면 돈 주고 사 먹어야지.”
“하... 그, 그래...”
배주길은 오구치의 말이 좀 어이가 없었다. 배주길의 상식으로는 팔다 남으면 옆집도 좀 주고... 친구도 좀 주고... 이러는 거였는데...
‘하지만 오히려 잘 됐어. 저렇게 남에게 베푸는 것 없이 자기 실속만 챙기려는 자라면 나도 내 이익만 뽑고 언제든 버릴 수 있으니까.’
씁쓸한 부분에서 오구치가 마음에 드는 배주길이었다.
“그런데 나리...”
분위기가 괜찮아 보이자 이와우에가 배주길을 보며 은근히 말을 붙였다.
“조선의 좋은 물건을 팔려면 아무래도 사람이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런데 왜?”
“흠흠... 저기 이노시시 아니 도화도 보증하겠지만 소인이 썩 괜찮은 놈입니다요. 음...”
“그래. 쓰도록 하지.”
“예?”
“암상 널 쓰겠다는 거다. 열심히 장사하도록!”
“아이구 감사합니다.”
이와우에는 넙죽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도화가 가져오는 자질구레한 몇 개 안 되는 물건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물건이 거래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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