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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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말 이거로 됩니까?”
말동이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말동은 여러 자기를 배주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세상에... 배주길이 가져 오라는 것이 금가고 깨진 것만 아니면 다 가져 오라니...
“괜찮어, 괜찮어. 단! 그 자기 바닥에 제대로 써 넣기만 하면 되니까.”
“아, 아니 그래도....”
절로 한숨이 나오는 말동이였다. 도공으로서의 자긍심이 있지 이런 당장 깨버려야 하는 잘 못된 것을 팔다니...
“자아... 말동이 네가 빚진 것이...”
“아이고 씁니다. 써요!”
말동이는 투덜대며 자기 바닥에 정성껏 글자를 썼다.
-이 물건들은 잘 못 만들어져 당장 깨버려야 할 것이나, 어리석고 무지한 왜놈들에게는 이마저도 귀한 것이라. 이에 왜인들에게 파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알면 당장 난리 날 것을 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요. 왜인들이 이것을 읽으면...”
“한자도 아닌 훈민정음이잖아. 왜놈들이 읽기는...”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그 글자 위든 밑이든 어디의 누가 언제 만든 건지 적.. 귀찮다. 대충 아무 시조나 하나 적어 넣으면 그 시인 걸로 알 거야.”
“하... 거 참...”
말동이 배주길을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손을 열심히 놀렸다. 빚진 놈은 힘이 없으니까.
“자아... 그럼 대충 준비는 된 건가?”
배도 구했고, 팔 물건도 구했다.
“그런데 형님도 가시는 겁니까?”
말동이 물었다.
“그래야지.”
이번 밀수를 주도하는 사람은 배주길 자신이었다. 즉 배주길이 빠진다면 일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물론 제대로 길만 터 놓으면 굳이 배주길이 가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길 수 있겠지만 최소한 첫 거래는 배주길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밀수만 남았다.
* * *
도화는 정말 대단한 자였다.
“저기가 바로 왜입니다!”
우렁찬 도화의 외침. 그 말이 그렇게도 반가울 수 없었다. 배를 타고 가던 그 시간...
“우웨!”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한 배주길이었다.
“아이고 형님. 배 처음 타보쇼?”
말동이 혀를 찼다. 그런 말동을 향해 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우웁!”
나오는 말이 이런 것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평생 배를 탄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시절에도 그 흔한 한강 오리배도, 레저용 바나나 보트도 한 번 안 타봤었다.
“애고 쯧쯧... 배멀미로 욕지기하는 것이 애 밴 아낙네 입덧하는 꼴과 똑같네 그려.”
말동이 다시 한 번 혀를 찼고...
“너... 주... 욱!”
이번에도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육지가 보인다는 도화의 말은 정녕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햇님 달님의 오누이의 심정이 이럴까?
“내립니다요.”
드디어 뭍에 배를 댄 도화가 말했고, 배주길은 배에서 내리며 말동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노라고...
“으다다다!”
“조심하시구려! 배멀미 걸지게 하신 분이 그리 몸을 움직이시면 넘어집니다요!”
겨우 도화의 품에 안겨 넘어지는 꼴은 면한 배주길이었다.
“어이... 도화 너 가슴팍 한 번 탄탄하구만.”
“쯥! 그런 말 같은 사내에게 듣고 싶지 않수다. 객쩍은 소리 하지 마시고 어서 내리십쇼. 나리.”
“내려야지. 아암. 내려야지.”
하지만 결국 도화의 품에 안겨 내리는 배주길이었다.
* * *
오구치大口는 큐슈의 작은 상인이었다. 딱히 기반도 대단찮은... 그저 장대 양 끝에 바구니를 달고 그 안에 떡을 넣고 파는 그런 하루 장사해, 하루 벌어먹고 사는 그런 상인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항상 일확천금을 꿈꾸는 자이기도 했다.
“어떤 대단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비싸고 좋은 물건을 독점적으로 공급해준다면...”
몇 년째 품는 꿈이지만 꿈은 꿈이었다. 그런데...
“거참... 요상하단 말이지.”
간밤의 꿈이 이상했다. 산보다 더 거대한 덩치의 거인이 자신의 집에 나타나 똥을 싸고 가는 꿈을 꾼 것이었다.
“하핫. 오구치. 그거 괜찮은 꿈이야. 내가 조선 좀 알잖아. 그러데 조선에서는 똥 꿈을 꾸면 재물을 얻는 꿈이라고 하더라고.”
친구에게 물어보니 해 준 대답이었다.
“재물을 얻을 꿈이라... 애고... 오늘 떡이나 다 팔렸으면...”
어제는 떡이 반도 안 팔려 남은 떡을 혼자 꾸역꾸역 먹느라 고생을 했었다. 지금도 속이 더부룩했다. 하지만 그래도 장사는 나가야 했다. 그래서 오구치는 오늘도 떡을 들고 나섰다.
* * *
“작군.”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배주길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최선인가?”
“하이고야... 나리. 우리가 지금 나라 허락받고 장사하러 온 것이 아니잖습니까.”
도화의 말에 배주길은 혀를 찼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과연 이런 곳에서 제대로 장사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지고 온 물건이 백자였다. 도자기린 지금 시대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흙으로 만든 보석일 정도인 물건. 왜국 최고 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막사발을 애지중지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 물건이 이런 작은 시골 어촌 마을에서 팔릴 리가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여기에 무슨 상인이 있겠냐고. 게다가 이런 깡촌은 외부 사람들 경계가 심한데. 그건 동서고금 공통이란 말이지.”
이게 가장 문제였다. 배주길은 괜히 돈 쓰고 고생만 한 것 아닌가 걱정이 팍팍 드는 상황인데...
“제가 아는 왜놈이 한 놈있습니다.”
도화의 한마디였다. 그 말에 배주길도, 말동이도, 같이 온 다른 자들도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 아는 왜놈이 있다고?”
“하하... 예. 사실은 예전에 바다에 나갔다 풍랑을 맞아서...”
도화가 설명을 시작했다.
“뭐 어린 객기였습죠. 아무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마침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지나기에 그 등에 올라타 겨우 물귀신 되는 것은 면했습죠. 아 그런데 글쎄 그 물고기가 희한한 것이 아가미가 왼쪽 오른쪽 다섯 개 씩 10개나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모두들 이구동성 속으로 외쳤다.
‘그거 상어야!’
그러거나 말거나 도화의 말은 계속 되었다.
“아무튼 그 예쁜 놈 타고 흘러가다보니... 여기는 아니고 좀 더 떨어진 곳이었는데... 거긴 사람 사는 곳은 아니었고요. 아무튼 거기에 겨우 닿아 살았습죠. 거기서 왜놈 하나 알게 되었고 뭐... 아무튼 그렇습니다요.”
“하아... 그런가?”
배주길은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판타지스런 놈이 다 있다냐?’
그리고 또 하나 알수 있는 것은...
‘이놈! 밀수하던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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