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예 기갑수색대대
이 인근에서 소련군과 독일군이 한참 교전중이었기에 인근 건물들 대다수가 뼈대만 남은 상태였다. 포격으로 벽면이 얼룩덜룩했고, 포탄이 터질 때마다 콘크리트 가루가 우수수 쏟아져내렸다. 병사들이고 민간인이고 모두 콘크리트 가루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타샤는 계속해서 먼지를 털어냈지만 그래봤자 한 시간 뒤면 먼지가 쌓여서 포기했다. 키라가 중얼거렸다.
"목욕 한 번만 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렇게 나타샤 일행은 식사를 마치고 진지로 사용 중인 건물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했다. 많은 건물 중에 이 건물이 진지로 선정된 이유는, 건물 내부에 모든 가구가 불타서 연소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닥과 벽면에는 불에 탄 그을음만이 남아 있었다. 이런 건물의 장점은, 이미 가구 등이 다 불타버렸기 때문에 또 다시 포탄이 떨어지더라도 불이 붙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병사들이 바닥에 널부러져서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병사들은 자신의 물품이 도난당하지 않도록 물건들을 베개처럼 베고 기절하듯 잠을 자고 있었다. 야전삽, 총, 대전차 로켓 등은 귀중한 무기이기 때문에 도둑맞지 않도록 반드시 잘 관리해야 했다. 만약 도둑맞으면 다른 동료의 야전삽을 훔쳐야 할 것 이다. 나타샤 또한 자신의 물건들에 커다랗게 이름을 써두었다. 뽈리나가 말했다.
"내 야전삽을 훔쳐가다 걸리는 녀석이 있으면 이걸로 뚝배기를 깨줄거야!"
그런데 건물 구석에서 몇 병사들이 배를 쥐고 쓰러져 있었다. 안나가 말했다.
"가스 공격때 마셔야할 해독제를 술인줄 알고 마셨대."
소련 병사들은 보드카를 못 먹게 되자 참을 수 없는 금단 증상이 발생해서 술로 보이는 것은 뭐든지 마셔대고 있었던 것 이다. 심지어 치료를 받을때 써야하는 소독용 알코올을 방독면 활성탄 여과 장치로 거르고 마시려다가 위생병한테 걸린 녀석들도 있었다.
뽈리나가 말했다.
"한심해..."
키라가 말했다.
"그런데 파시스트 놈들이 가스 공격하면 해독제가 없는데 어떡하죠?"
나타샤가 말했다.
"걱정 마. 파시스트는 한 번도 가스 공격한적 없어."
그리고 나타샤는 아까 전 건물을 순찰하다가 발견한 깨끗한 여성 속옷을 잡낭 안에 집어넣었다. 전시 상황에 깨끗한 속옷만큼 귀한 것은 없었다. 나타샤는 이걸 어떻게 써먹을까 궁리했다.
'통조림 바꿔 먹을까? 아니다...그냥 내가 입을까?'
그 때, 인근에서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고, 나타샤와 동료들은 반사적으로 건물 바닥에 엎드리고 머리를 감쌌다.
'!!!'
쿠궁!!!
뿌연 연기가 솟구쳤고, 나타샤는 계속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가스다!!!"
'가스라고!!!'
나타샤는 해독제가 없었기 때문에 황급히 자신이 새로 구 속옷을 잡낭에서 꺼낸 다음 아무도 없는 작은 방에 들어가 속옷에 급하게 오줌을 쌌다. 그걸 얼굴에 덮으려는 순간, 누군가 외쳤다.
"일반 포탄이야!!"
"가스가 아니야!!"
나타샤는 오줌이 묻은 자신의 새 속옷을 창 밖으로 던지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좆 같은 세상!! 다 망해버려!!'
그리고 이 순간 오토 소대의 진지에는 엄청난 지원군이 올 거라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에밀이 말했다.
"케르베로스 대대일까요?"
마티아스가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네! 놈들이 보전 협동 전술이랑 시가전 전술만은 일품인데 말이야!"
현재 오토 소대와 보전 협동을 해야하는 그라들 소대는 병사들의 전투력은 뛰어났지만 그라들 소대장이 영 미덥지 못했던 것 이다. 그리고 잠시 뒤, 모스크바 시가전에서 활약할 최강의 전투 부대가 도착했다. 옥상 위에서 쌍안경으로 인근을 살펴보던 오토는 익숙한 엔진 소리를 들었다.
트으으으으으으으으으
파울이 중얼거렸다.
"스포츠카 엔진 소리 같은데?"
우크라이나 출신의 페도로가 방금 도착한 전투 부대를 보고 감탄했다.
"저...저 정도면! 티거 전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진입할 수 있겠어!!"
전폭 2m, 전고 1.7m에 MG 기관총 2문이 장착된 최고 속도 37km/h의 1호 전차들이 모스크바 외곽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1호 전차들은 워낙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상당히 규모가 큰 잔해 더미를 오르락내리락할때마다 옆으로 전복될 것 같았다. 티거에 비하면 정말 작고 귀여운 1호 전차가 좌측 궤도로 잡석을 넘어가며 열심히 전진했다.
트트트 트트트트트 트트트트
오토는 군사 학교에서 훈련 받을 때 1호 전차들을 탔던 것을 떠올렸다. 그 시절에도 이 전차들은 워낙 성능이 약해서 훈련용으로나 쓰이겠구나 싶었다. 알프레트가 말했다.
"저거 정찰용으로도 퇴출된거 아냐?"
에밀이 중얼거렸다.
"이걸 모스크바에서 볼 줄이야!"
1호 전차뿐만 아니라 1호 전차에 15cm 견인포를 장착한 1호 자주포, 47mm 대전차포를 탑재한 1호 대전차 자주포, 36호 대전차포 또한 모스크바 구석구석에 배치되었다. 지크프리트 4인조 또한 이 광경을 보고 중얼거렸다.
"작아서 연료는 덜 잡아먹겠군."
한 1호 대전차 자주포는 무려 47mm 대전차포를 탑재하고 있었다.
"저 빈약한 차체에 무려 47mm가 탑재되네!"
"그래서 이동하다보면 자꾸 퍼지잖아."
"어차피 연료도 없으니 골목에 배치해두고 쓰면 되겠네."
그리고 2호 전차 또한 전폭 2.22m, 전고 1.99m의 우람한 위세를 자랑하며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왔다. 페도로가 말했다.
"저건 대전차포 몇 미리까지 막을 수 있지?"
"모든 대전차포에 다 뚫린다고 보면 되네!"
"그럼 장갑이 무슨 소용이야!"
"소총탄이나 수류탄 파편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1호 전차의 전차장과 2호 전차의 전차장은 기갑수색대대로서 모스크바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는 것에 매우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다. 이 경전차들에는 모두 무전기가 장착되어 있었고, 2호 전차장들은 일부러 뽐내듯이 헤드셋을 머리에 걸고 해치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참고로 구데리안 전쟁이 독소전 초기에 1호 전차와 2호 전차를 보고
"내가 이 놈들이 전장에 투입되는 꼴을 봐야만 한다니"
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 기갑부대원들에게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다. 이건 1호 전차와 2호 전차병들에게는 기갑부대로서 최악의 치욕이었다. 그리고 이 치욕을 씻기 위해서 1호 전차와 2호 전차병들이 이를 갈고 모스크바로 온 것 이었다.
그리고 오토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헤르베르트 아닌가?"
군사 학교 시절 오토, 스테판, 게오르크, 헬무트, 볼프강, 블라덱의 동기인 헤르베르트는 워낙 노는 것을 좋아해서 계속 낙제만 받았다. 머리도 좋은 녀석이었는데 워낙 노는 것을 좋아했던 헤르베르트는 진급에 썩 욕심도 없었다.
군사 학교에서 실전 격투술을 배웠는데 실전 격투는 일반 격투기와는 달리 목조르기, 불알 공격 등 급소 공격이 허용되었다.(물론 안전을 위해 보호대를 장착했고 힘을 조절한다.)그 때마다, 헤르베르트 녀석은 운동 선수 출신의 헬무트를 상대로 급소 공격을 해서 실전 격투에서 승리하곤 했다.
오토 또한 그 당시 동료들과 함께 수 많은 실전 격투 훈련을 통해서 대인 격투 기술을 갈고 닦을 수 있었다. 일반 복싱 기술에서는 상대방의 급소 공격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토와 동료들은 수 많은 상황을 가정하면서 상대방의 급소를 공격하는 실전 격투를 연습했다.
오토의 군사 학교 동기 헤르베르트가 1호 전차로 이루어진 소대의 소대장로 싸우고 있었던 것 이었다. 헤르베르트가 오토의 티거를 보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1호 전차의 전차병들과 티거 전차병들은 모두 이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오토가 1호 전차를 보며 말했다.
"군사학교 시절 훈련용으로 썼던 전차를 모스크바에서 보는군!"
오토의 도발에 1호 전차병들은 모두 속으로 분노했다.
'저...저런!!'
헤르베르트가 오토의 티거를 보며 말했다.
"시가전에서 티거는 연료만 잡아먹는 애물단지 아닌가!"
헤르베르트의 도발에 티거 전차병들이 분노했다.
'애물단지라니!!'
한 1호 전차병들도 수근거렸다.
"시가전에서 티거는 비싼 값을 못 한다고!"
오토가 1호 전차의 7~13mm 장갑을 두들기고 말했다.
"자네의 장갑은 몇 미리 대전차포까지 막을 수 있나? 아! 모든 대전차포에 뚫리지!"
헤르베르트가 이에 대응했다.
"시가전에서 티거는 궤도에 대전차 지뢰 하나만 끼워도 기동불가가 되지!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거대한 덩어리에 불과해!"
전차병들은 이에 분노해서 이글거리며 의지를 태웠다.
'반드시 크렘린 궁에 우리 소대가 먼저 도착할 것 이다!!'
오토와 헤르베르트는 현재 전차병들의 사기를 돋구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도발을 한 것 이었다. 오토는 헤르베르트와 함께 건물로 들어간 다음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토가 말했다.
"지금 시가전에서는 경전차와 소구경 야포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네."
15cm 견인포를 장착한 1호 자주포가 인근 사거리에 비치되고 있었다. 이윽고 견인포가 소련군이 점령한 구역으로 포탄을 발사했다.
트엉!!
독일군이 소구경 야포를 활용하기 시작하가 전부터 소련군 또한 모든 주요 길목길 잔해 더미 마다 소구경 야포와 기관총 등을 연계해서 설치하고 방어전을 펼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 한 광장에는 소련군 병사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깊이 1.5m 정도의 참호가 파여 있었다. 소련 병사들은 이 참호를 이용해서 포탄을 안전하게 전달했다. 밖에서 보면 소련군들의 철모만 참호 위로 조금씩 튀어나와서 움직이는 것 처럼 보였다.
"고개 숙여!! 대가리 총알 맞고 싶냐!!"
독일군 또한 저격수를 활용했기 때문에, 소련 병사들은 자세를 낮추고 참호를 따라 가며 포탄을 운반했다. 이런 참호는 모스크바 곳곳에서 개미굴처럼 파여 있었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무너져내려서 내부에 계단이 훤히 보이는 폐허 같은 건물에서 소련군은 각자 편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사격했다.
탕! 타앙! 탕!!
현재 모스크바에 있는 수 많은 잔해더미들은 작은 언덕들을 형성하였고 수 많은 능선들이 병사들의 엄폐물이 되어주었다. 저격수들은 이 능선을 주시하며 독일군의 슈탈헬름이 튀어나오기를 기다렸다.
저격수 류드밀라는 벽에 난 총안구를 통해서 저격총을 겨누고 있었다. 총안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류드밀라의 눈가를 비추었다. 관측수 안나는 소련군의 박격포가 설치된 담벼락 안쪽 골목에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상 없음...'
독일군 소련군 양측 다 포격의 피해가 너무 심했기에, 5~6명 정도의 소규모로 조를 짜고 기습적으로 적의 약점을 노리는 공격 전술로 나아갔다. 지크프리트 4인조는 날카롭게 야전삽의 날을 갈았다. 로베르트가 말했다.
"세계대전 때가 떠오르는구만!"
호르스트가 날카롭게 날이 갈린 자신의 야전삽을 보며 말했다.
"그때도 이게 최고였지!"
야전삽은 전쟁터에서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었다. 참호나 진지 등에서 변이 급할때 똥을 싸고 야전삽으로 똥을 밖으로 던져버릴때도 필요했다. 그래서 모든 야전삽마다 병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잠시 뒤, 지크프리트 4인조는 파울, 페도로와 함께 소련군 진영으로 잠입했다. 크리스티안이 수류탄을 투척한 다음, 나머지 일행이 잔해 더미를 넘어 서둘러 달려갔다. 그리고 독일군의 1호 전차 한 대가 기관총으로 이들을 엄호해주었다.
드득 드드드득 드드드득
1호 전차의 엄호 속에 지크프리트 일행은 연막을 뚫고 소련군의 거점으로 쓰이는 작은 건물로 진입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페도로가 소련군을 향해 MP40를 긁었다.
트드등 트등 트드드등
지크프리트 일행은 순식간에 소련군을 학살했고, 호르스트는 뿌연 연기가 뒤덮이고 피로 뒤범벅된 건물 안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서류를 가져왔다. 서류를 가져온 다음 러시아를 읽을 수 있는 병사를 통해 확인해보니, 지크프리트 4인조가 사살한 것은 놀랍게도 소련군의 관측 장교였다. 이는 어마어마한 전공이었다. 파울이 속으로 생각했다.
'소련군 관측 장교를 잡다니!! 엄청나다!! 조만간 훈장을 받겠군!!'
지금 독일군이고 소련군이고 양쪽 다 서로의 관측 장교를 잡기 위해서 며칠 넘게 저격수들이 그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소련군 상부에 전달되었다. 블라슈크는 반드시 독일군의 관측 장교를 사살해서 피의 복수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베리아 출신의 저격수가 이 임무를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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