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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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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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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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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87화

DUMMY

강태수는 그 순간 어떤 말로 대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내 멋대로 유추했을 뿐이지.’


강태수는 박정필이 그저 권력을 탐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겨 왔었다. 강태수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박정필의 모습을 되짚어 보았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지나고 나서, 강태수가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를 오해했었나 보군.”


강태수의 이야기에 박정필이 피식 웃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이봐, 태수. 내가 그렇게 못돼 처먹은 놈은 아니야. 다만 나도 권력이 욕심 나기는 했었지. 내 뜻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데, 마다할 사람들은 없지 않나. 그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면 그걸 마다할 리가 없지. 인생을 이끄는 건 결국 욕망인데.”


강태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면 태수 자네는 왜 그 자리에 앉고 싶었나?”


강태수가 담배 연기를 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네.”


강태수의 대답은 짧고 강렬했다. 박정필의 입이 막힐 만큼. 별다른 부정이 돌아오지 않자 강태수가 말을 이었다.


“이 자리에 앉지 못하면 제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강태수의 이야기는 사실에 가까웠다. 박정휘는 강태수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없애기를 바랐었다. 그때마다 박정휘를 말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필이었다.

박정필이 지금 터놓기 전까지 강태수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지. 의장께서는 태수 자네가 혁명에 참여하는 일을 처음부터 못마땅해 하셨네. 그런데 그게 자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네가 너무 뛰어나서였지. 태수 자네는 나보고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고 말했지만, 자네는 사람들의 경외를 사거든.”


팅.


강태수가 가볍게 라이터를 튕겼다. 습관처럼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러니 자네와 대적하려는 자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어.”


팅.


강태수의 손끝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강태수는 어째서인지 후련해 보이는 친구의 얼굴을 응시했다.


“승패가 뻔한 싸움에 눈이 돌아가는 건 어릴 때나 할 수 있는 짓 아니겠나. 이제는 철저한 계산 속에서 싸우는 게지. 그렇지 않다면 너무 많은 걸 잃는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으니 말일세.”


강태수는 박정필의 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동질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정필 자네도 생각이 많군.”


강태수의 말에 박정필 또한 어깨를 으쓱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이렇게 많은 것들을 알고, 알게 되는데.”


강태수는 순식간에 재만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껐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고 매번 생각하게 돼. 조심하지 않고, 경계하지 않으면 이 세상을 모두 안다고 착각하게 돼 버릴 것만 같거든.”


강태수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강태수가 원한다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강태수가 알고 싶은 상대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상대의 집에 있는 베개의 개수부터, 사소한 습관과 자신도 모르는 버릇들까지 전부.

강태수는 이 힘을 원하는 대로 휘두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힘을 사적으로 쓰고 싶어지는 순간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그것은 강태수 스스로에게 하는 말과도 같았다. 언제나 모든 순간마다 경계해야 했다. 강태수 자신과, 자신이 만질 수 있는 정보라면 모두. 박정필이 강태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오는 것들도 그러한데, 태수 자네가 다룰 수 있는 것들은 더 크겠지. 그래도 안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나.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롭게 쓸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 아니겠나.”


강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박정필이 강태수를 따라 웃었다.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선거가 제 격일 텐데, 국민들의 인식을 알아본 결과로는 아직도 투표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들이 존재하긴 하더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인식이 한순간에 바뀔 수는 없지 않나.”

“안타까운 일이야.”


강태수는 진정으로 안타까웠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속도와 행정의 속도가 맞지 않았다. 걸음이 맞지 않으면 언젠가는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강태수는 그 상황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태수 자네는 누구한테 정권을 이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하군. 눈에 띄는 사람은 딱히 없지 않나.”

“으음.”


강태수는 눈앞에 있는 서류들을 확인했다. 민주당의 인사였던 인물들을 비롯해서 이름이 있던 정치인들을 정리해 둔 서류였다.


“아무래도 해 보았던 사람이 해 보는 게 낫지 않나 싶으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군.”


강태수가 누구를 말하고 있는 건지 알아차린 박정필이 고개를 저었다.


“장면 총리는 지금 의장이 제일 적대시하는 인물 중 하나네. 위험한 생각일 수 있어.”


박정필의 말대로 장면 총리는 현재 엄청난 감시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박정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태수 자네를 장면 총리와 비교하는 신문들도 몇 가지 난 마당에, 태수 자네가 그렇게 움직인다면 오해를 사기 쉽네.”

“의장을 척진다는 오해라면, 그것은 오해가 아니라 사실에 가까울 테지. 그런데 정필.”


강태수가 보고 있던 서류 뭉치를 엄지 손끝으로 슥 훑었다.


“척을 진다고 그게 꼭 나쁜 쪽은 아니지.”

“자네 지금 그 말은 너무 위험해.”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뜻은 아니야.”


강태수는 흐름을 볼 줄 아는 사내였다. 작은 물꼬가 트이면 그대로 길을 낼 줄도 알았다. 수없이 해 본 일이었다.


“정권이 또 한 번 바뀌게 된다면 국민들이 피로해할 수도 있어.”

“민간에 정권을 조속히 이양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군사 정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돼. 그리고 지금은 그 조속히와 계속 멀어지고 있다는 것도.”


강태수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강태수의 강경한 대답에 박정필은 할 말을 잃었다. 틀리지 않은 이야기였다. 오히려 불편한 진실에 가까웠다.


“시간이 느려지면 느려질수록 문제가 생길 걸세. 의장을 대통령으로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 또한 나타나겠지.”


강태수는 그 부분이 걱정되었다. 한 번 생겨난 인식은 쉽게 바꾸기 어려웠다. 그전에 다잡아야 한다는 것이 강태수의 의견이었다. 한참 대화를 나눈 끝에, 박정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태수 자네의 생각은 잘 알겠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


강태수는 박정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일들을 겪고도 나를 믿나? 왜 나에게 이런 것들을 전부 이야기해 주는 거지? 내가 지금이라도 의장님께 가서 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면 자네는 내란죄라는 명목으로 끌려가게 될 게 훤한데. 더군다나 나는 그분과 가족으로 묶여 있는 사이가 아닌가. 그런데 무얼 믿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네.”


강태수는 박정필의 이야기에 기분 좋은 듯한 웃음을 보이고 난 뒤에 입을 열었다.


“그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지.”


강태수의 말에 박정필이 헛웃음을 지었다.


“하, 내가 자네를 자꾸 간과하는군.”


강태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박정필이 어떤 이유로 강태수에게 그 말을 꺼낸 것인지 알았다. 그렇기에 강태수는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였다.


“나는 자네의 눈빛을 믿는 걸세.”


박정필은 그게 무슨 이야기냐는 듯 강태수를 바라보았다. 강태수가 덧붙였다.


“정필 자네가 보여 주던 눈빛들과, 보여 주는 눈빛들을 믿는 거지. 어제 나를 찾아온 자네의 눈에는 진정함이 있었어. 길에서 만나고 온 아이들을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온기도 나는 보았네.”

“···.”

“자네가 권력만을 탐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표정은 지을 수가 없지. 뭐, 그것이 연기라면 내가 자네보다 한 수 낮은 사람이 되는 거고.”


강태수 식의 농담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정필이 피식 웃었다. 강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이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로만 두어야 해. 우리 둘 다 떨어져나간다면 이득이 생기는 쪽은 한쪽밖에 없으니. 그리고 독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네.”


*


강태수와 박정필이 이렇게 계획을 세우는 동안, 강태수와 박정필 모두에게 사람을 붙여 두었던 박정휘도 둘 사이의 관계가 바뀌었음을 눈치 챘다.


“요즘 들어 다시 전처럼 식사도 함께 하고, 외출을 같이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합니다.”

“흐음, 그래? 알아봐.”

“예.”


태지욱을 비롯한 여러 장정들이 박정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강태수와 태지욱은 바로 지하 감옥에서 만났다.


“자네가 박정필 대령과 다시 어울려 다닌다고 이야기를 일부러 우리 앞에서 꺼내더군.”

“박정휘의 성격이라면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태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자네를 만날 때마다 내가 가슴이 얼마나 작아지는 줄은 알아?”

“염려하실 만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도 한두 번이어야 믿지.”


타박하는 말과는 다르게 태지욱은 웃고 있었다. 강태수는 금방 본론을 꺼냈다.


“박정휘 의장은 저를 여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제가 장면 총리가 해내지 못한 부정축재를 해결했다는 식의 신문 기사들이 나고서는 이전보다 더 그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태지욱이 어느새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께서도 측근에서 보고 계시니 아시겠지만, 의장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를 막기 위한 적절한 때라고 저와 정필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윽.


강태수의 말을 듣던 태지욱이 팔짱을 꼈다. 태지욱이 처음으로 보인 방어적인 자세였다. 강태수는 다음 말을 성심성의껏 고르기 위해 신중을 기울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사람들을 부리는 권력에는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 하나뿐입니다.”

“흐음.”

“그러나 박정휘 의장이 대통령이라는 허울을 가지게 되는 순간, 제가 원하는 바람들과 국민들이 지난 4월 흘렸던 피가 전부 허사가 되고 말 겁니다.”


본능은 때때로 정확하다. 강태수의 본능은 처음부터 박정휘를 경계해 왔다. 박정휘의 곁에 있으면서도 강태수는 한순간도 긴장을 놓친 적이 없었다. 방심했다가는 그것이 어느 순간이든 간에 사지 중 하나가 잘려 나갈 것만 같았다.

강태수는 지금도 왕처럼 사는 것과 다름없는 박정휘를 떠올렸다. 허울은 사람에게 구실을 만들어 주고는 했다. 지금 박정휘는 누구보다도 그 구실을 원하고 있었다. 감옥의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숨을 내쉴 때마다 폐부에 달라붙었다가 다시 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이 정권을 민간에 이양할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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