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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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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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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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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68화

DUMMY

강태수는 수많은 정보들을 다루면서, 상대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고 느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면 된다.’


강태수가 지켜봐 온 사람들 중, 그 순간 방심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었다. 정보전은 언제나 고도의 심리전을 요구했다. 자신의 패를 들키지 않기 위해 모든 조각을 가진 듯 굴어야 했고, 오히려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듯 행동해야 했다.

단 한순간조차 치열하지 않게 살아 본 적 없었지만, 강태수가 지금만큼 도박에 가까운 시도를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확신만 있다면.’


오늘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들였다. 더군다나 박정필은 자신이 움직이는 판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니, 강태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


강태수를 호기롭게 ‘화양’으로 데리고 갔던 것과는 달리, 강인수가 중정에 제 발로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박정필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박정휘를 만나고 돌아온 지금도 아직 군산에서 원하는 대답을 받지 못했다. 배경목이 자신 있게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을 때는 언제고, 상황은 지지부진 늘어지기만 했다.


‘’형제‘가 기부금을 멋대로 사용했다는 증거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것 하나면 휘청거리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건이었건만.’


“쯧.”


아쉬움이 고개를 드는 것은 인간인 탓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완벽한 증거가 박정필 자신의 손에 있지 않았나?

박정필은 방금 박정휘에게 보고를 올렸던 장부를 있는 힘껏 그러쥐었다. 자신이 아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불러 몇 날 며칠 동안 이 장부 하나만 분석하도록 주문했다.


‘몇 년 동안의 자료가 상세합니다. 거짓 내용으로는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교수, 그 말을 책임질 수 있소?’

‘대령님의 말씀처럼 이게 만약에 조작된 장부라면, 조작한 사람을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누군가 작정해서 몇 년 치의 자료를 전부 새로 짠 게 아니라면, 진짜 장부일 겁니다.’

‘흐음, 그럼 우선 믿겠소. 이 교수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믿을 만하겠지.’


처음 이 자료들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함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교묘한 시기였다. 강태수가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시기. 정보들을 얻었음에도 이토록 오래 진위를 가릴 수 없던 적은 처음이었다.

강태수가 ‘형제’가 부정 축재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않았더라도, 박정필은 더욱 오랜 시간을 쏟았을 터였다.

잠긴 문을 따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잠긴 서랍을 여는 것 또한 손쉬웠다. 오늘은 박정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이 상황 역시 뒤집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저벅.


박정필은 여유로워 보이지도, 그렇다고 초조해 보이지도 않는 강인수의 앞으로 향했다. 강인수는 사감이 섞인 기색 대신에 조용히 묵례했다.


“다들 나가 봐.”

“예!”


그래서 박정필은 궁금해졌다. 이 흉흉한 기색을 내비치는 군인들과 한 공간에 있었으면서도 어떻게 눈에 띄는 동요를 보이지 않을 수 있는지.

강태수는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거나 압박하는 편이 아니었다. 원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으나, 그런 방법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았다. 웬만한 장정들도 중정의 이 지하실에 불려오면 태곳적 기억부터 털어놓았다.


“꽤 담담하십니다.”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으니 말입니다.”


강인수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대꾸했다. 그날 식당에서 말을 놓기로 했던 기억은 없다는 듯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툭.


박정필이 장부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며 자리에 앉았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아십니까?”

“자세히 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중앙정보부. 이 나라의 새로운 근간이 될 곳입니다.”


제법 도발적인 발언이었으나 강인수는 그저 가만히 박정필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식당에서 마주했던 사내와는 다른 인물 같았다.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뜻이겠지.’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라면, 강인수는 최대한 빠른 상황을 마주하고 싶었다.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을 벌어도 될 것 같다는 강태수의 말에 고개를 저은 것도 강인수였다.


‘형님, 아직 준비가 완벽하지 않습니다. 시기를 조금 더 미루시는 게,’

‘태수야, 시기를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한다. 내가 이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시기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어떤 일이 닥친다고 해도 대비할 수 있을 만큼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다.’


강인수는 눈앞에 보이는 장부를 그저 응시할 뿐이었다. 저게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다는 듯한 무감한 눈빛은 오히려 상대의 김마저 꺼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필은 보란 듯이 손을 뻗어 장부를 펼쳤다.


“밖에서 있던 일은 전해 들었습니다. 벌써 강 사장님의 일장연설이 호외로 퍼지고 있다는 소식 또한 들었고 말입니다.”


강인수가 중정 앞에서 한 이야기는 바로바로 호외를 타고 퍼졌다. 다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중정 앞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강인수는 놀랐다는 듯 눈을 키우고 대꾸했다.


“그게 그렇게 퍼질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난감해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말을 골랐을 텐데 말입니다.”


말을 마친 강인수가 싱긋 웃음을 보였다. 박정필은 강인수에게서 시종일관 느껴지는 이 여유가 싫었다. 강인수의 여유는 강태수의 것보다 한 수 위였다.

강태수가 풍기는 여유가 초연함이라면, 강인수가 보여 주는 여유는 도발에 가까웠다. 상대의 평정을 깨뜨릴 정도의 도발.


“부디 오늘 이 중앙정보부 앞에서 뱉은 말들이 전부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박정필이 으득 이를 갈고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믿고, 또 찬양해마지 않았던 ‘형제’가 아주 상습적으로 부정 축재를 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박정필은 그 침묵을 강인수의 혼란으로 알아들었다.


‘이럴 줄 알았지. 벌써 입을 다물다니. 계속 세게 나가는 것이 방법이겠군.’


강인수는 당당한 얼굴로 다시 말을 잇는 박정필을 차근히 바라보았다.


“국민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 겁니다. ‘형제’가 보였던 신의가 전부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제일 먼저 등을 돌릴 자들이지 않겠습니까. 배신은 그런 것이니 말입니다.”


스윽.


“그리고 제 손에 그것을 해낼 증거가 있습니다.”


박정필이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침을 삼켰다. 까만 취조실 벽 너머에 박정휘가 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짜릿한 고양감이 느껴졌다.


‘오늘 임자가 무엇을 해내느냐에 따라, 이 남산의 주인이 정해지겠구만.’


이 지하로 내려오면서 몇 번이고 되짚은 말이었다. 오늘을 위해 제일 친애하던 친구의 등마저 외면했다.


‘하지만 이것이 살아남는 방법 아니겠나, 태수.’


박정필이 장부를 펼치고 훑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동안 ‘형제라면’을 팔아먹으면서 사람들에게 무엇이라 이야기했습니까? ‘형제라면’을 통해 얻는 수익은 아이들에게 되돌아갈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내가 조사한 정보들과 강인수 사장의 발언들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더군요.”

“···.”

“‘형제의 집’으로 들어오는 기부금과 물품들을 사적으로 사용했고, 국가를 상대로 한 공사에서 수주 금액을 부풀려 부당으로 이득을 취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몇 번이나!”


박정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강인수가 무겁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움직였다.


“고령교 공사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강인수의 눈빛이 그날 낙동강의 급류만큼 거세졌다. 강인수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감정만은 분명했다.


툭.


강인수가 깍지 낀 손을 책상 위에 올렸다.


“나는 그때 빚을 아직도 갚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부정 축재를 저질렀다면, 그 빚을 진작 전부 갚고도 남았겠지요.”


강인수는 그때 어마어마한 적자와 함께 빚을 졌다. ‘형제’라는 이름은 꽤 공고해졌지만, 아직도 빚은 남아 있었다. 강인수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수주 받은 공사는 몇 개 되지도 않습니다. 내가 수주 받은 공사들은 대부분 미군의 공사였습니다. 미군이 ‘형제’를 신뢰하여 준 공사들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 얻은 이익들은 모두 세금 처리가 끝났습니다. 단 한 푼도, 단 한 푼도 더 얻지 않고 그대로 납세했습니다.”

“그건 이전 정권에서 있던 일 아닙니까? ‘형제’가 정치권과 남몰래 어떤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었을지 누가 압니까?”


강인수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강태수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싶었다.


“커넥션이라고 했습니까?”

“부패한 정권들에 정치 자금을 대지 않았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그 부패한 정권에 정치 자금을 대지 않아서 내가 무슨 적자를 보고 있는 줄 압니까? 시멘트 공장을 짓기 위해 수차례 국가에 허가 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강인수는 시멘트를 직접 생산해 공사의 원가를 낮추고 싶었지만, 다른 이들의 수없는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 광산은 아직도 매각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의 면적으로, 얼마를 이용해, 얼마의 시멘트를 생산하고 값을 매길 것인지 수없이 고치고 고쳐 보냈으나 매번 돌아오는 것은 거절과 불합격이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처음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던 강태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내가, ‘형제’가 로비하지 않은 것.”


그 후에 ‘형제’가 대외적으로 시멘트 생산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 소문은 지금까지도 진실이 아니었다.


“나도 한 가지 묻겠습니다.”


강인수의 형형한 눈빛이 이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까?”


고개를 돌리려던 박정필이 필사적으로 참았다. 강인수도 까만 벽 뒤에 누군가 서 있을지 알고 있었다. 강태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나, 필요한 것은 모두 이야기했다.


‘오늘 형님은 원하시는 것을 하나쯤은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아무리 오래도록 실패했던 것이라도 말입니다.’


박정필이 어금니를 꾹 물었다가 다시 대꾸했다.


“말씀을 가려서 하셔야 할 겁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으나 원하는 대답이었다. 있는 불빛이라고는 머리 위의 전구 하나가 전부였으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깨질 듯 날카로웠다. 강인수가 장부를 가리키며 주제를 돌렸다.


“‘영광’에서 제안을 하더군요. ‘형제의 집’을 운영하기 빠듯하다는 사실을 아니, 자신들에게 ‘형제의 집’을 넘기기만 한다면 제가 우려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영광’. 강인수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온 순간, 박정필은 알아차렸다.


“소문이 돌던 순간부터 직감했습니다. 그들이 나를 치기 위해 움직이고 있구나, 말입니다. 하지만 그대로 지고 있어서야, 당하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아비는 내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모든 일을 하는 법입니다.”


강태수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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