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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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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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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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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67화

DUMMY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한껏 당황이 묻어 있었다. 강태수는 박정필에게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기 직전에, 강인수에게 연락했다.


‘뜻대로 돼서 다행이군.’


만약이라는 가능성에 기대 움직인 것치고는 큰 도박이었으나, 성공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강태수가 박정필에게 이야기한 국숫집은 쿠데타 이전에 박정필이 자주 가던 곳이었다.


‘그곳을 이야기하면 이렇게 반응할 줄은 알았다만.’


강태수는 어째서 오늘 박정필이 자신을 ‘화양’으로 데리고 온 것인지 어렵지 않게 유추했다.


‘나는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고, 나는 네가 나를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강태수는 오늘 이 행동이야말로 오랜만에 보는 박정필다운 행동이라고 느꼈다. 강태수에게 가끔씩 보여 주던 과감한 판단들을 떠올려 보면, 그동안 박정필이 지나치게 신중을 기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친구기에 망설인 것인지, 더 큰 기회를 얻기 위해 신중히 움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오늘, 강태수는 박정필이 과시하고 싶은 순간을 적당히 파고들었다.

제일 무서운 칼은 등 뒤에 꽂히는 칼이 아니라, 포옹과 함께 가슴에 들어오는 칼이었다. 등으로 따라붙는 시선이 매서웠다.


저벅, 저벅.


보폭을 크게 디딜 때마다 불어오는 여름 바람이 습했다. 갈수록 공기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곧 장마겠군.’


기습은 성공해야만 기습이다.

강태수는 ‘화양’의 연못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


강인수가 직접 남산으로 걸음 했다는 소식은 금세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강인수는 중앙정보부에 들어서기 전, 벌써 몰려든 기자들을 슥 훑어보았다.


“강인수 씨! 오늘이 지난번 말씀하신 그 ‘때’인 겁니까?”

“강인수 사장님! 오늘 직접 중정에 걸음 하신 이유가 뭡니까!”

“‘형제’가 정말 부정 축재를 저질렀습니까?”


내용은 전부 비슷했지만 계속해서 쏟아지는 질문은 그들이 얼마나 ‘형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증명했다. 그러나 강인수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강인수의 뒤에 서 있는 정지석도 마찬가지였다.

강인수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군인들이 어느새 모여든 군중들을 제지해 보려 했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인수 사장님! 사장님이 그러셨을 리 없다는 사실은 저희들이 제일 잘 알아요.”

“사장님이 그러셨을 리가 없지.”

“우리 강 사장님이 어떤 분이신데, 그럴 리가 있겄어요!”

“저희는 사장님을 믿십니더.”

“참말로 믿는당께요.”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중, 단 한 번이라도 강인수에게 ‘형제라면’을 얻어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신뢰를 한 번 쌓기는 어려웠지만, 한 번 만들어진 신뢰는 잘 고장 나지 않았다. 강인수가 자신도 모르게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여러분.”


강인수는 한참 동안 말을 고른 끝에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소란이 정리되며 군인들이 팔을 벌려 온몸으로 막고 있어야 했던 인파가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태수는 일부러 자리를 비우겠다고 했으니.’


강인수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제가 여러분의 ‘형제’로서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십 년이 다 되어 갑니다.”


강인수의 담담한 이야기는 천천히 인파를 타고 뻗어나갔다.


“저에게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지키고 살고 싶고, 아직까지도 지키고 살고 있는 신념 말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강인수는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부끄럽지 않게 살자. 내 아내에게, 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자. 나의 동생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형이 되자. ‘형제’ 역시 내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지 않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부끄러움은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양심의 감각이었으며, 행위를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했다. 강인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신념이 아주 오랫동안 저를 끌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쏟아지던 시기와 질투는 감정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몇 번이고 강인수의 발목을 잡았다. 요동치는 단가와 저열한 소문들에 흔들리지 않았지만, 강인수 역시 사람이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을 순간들이 수없이 많았고, 포기할까 고민하던 지난밤들이 단 한순간도 무겁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펑.


카메라의 불빛 몇 번을 제외하고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는 중앙정보부 앞에서, 강인수는 강인수의 이야기를 이었다. 가벼운 여름 정장을 입고, 차근히 입을 여는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제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형제’들 덕분이었습니다.”


강인수가 이야기하는 ‘형제’는 ‘형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부터 언제나 중의적인 뜻이 되었다.

덕분이라 말하는 강인수의 부드러운 웃음은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강인수는 언제나 신뢰의 상징과도 같았다. 강인수 또한 그 사실을 언제나 알고 있었기에 악용하지 않으려 애썼다.

강인수는 강태수에게 술김에 몇 번이고 다시 이야기했던 말을 대중 앞에 꺼내 놓았다.


“어느 날 신문을 하나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형제’라는 단어를 듣고 자신들의 피붙이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형제’와 ‘형제라면’을 떠올린다는 기사가 적혀 있는 신문이었습니다.”


최민영이 직접 강인수에게 가져다주었던 신문이었다. 얼른 확인해 보라고 부추기던 웃는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아내가 먼저 발견하고, 제가 오자마자 그 신문을 주었습니다. 그날 신문의 글자가 전부 번지고, 신문이 전부 찢어질 때까지 울었습니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으니까요.”


그 말은 아직도 강인수가 나아가는 힘이 되어 강인수의 발밑을 받쳐 주었다.


“내가 잘 살고 있다. 해내고 있다. 그 생각에 차오른 눈물이었습니다.”


강인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군인들은 이미 물러나 있었다. 이제는 그 어떤 동적인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제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쥐고 있던 건지 아내의 손에 까만 잉크가 묻어 있었습니다. 아내의 손이 그날 유독 따뜻했었습니다. 아직도 그 따뜻함이 종종 기억납니다.”


여전히 강인수는 생각했다. 그날 부산에서 했던 결심처럼, 여전히 강인수는 살고 있었다.


“저는 그 따뜻함으로, 그 기억으로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끄럽지 않은 ‘형제’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강인수는 후련한 얼굴로 웃었다.


“제가 오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꾸벅, 강인수가 허리를 숙였다.


*


상황을 보고 받은 박정휘는 멀리서 담배를 태우며 강인수를 지켜보았다.


“제 동생만큼 위험한 작자군.”


깔끔하고 정확한 평이었다. 박정휘의 뒤에 서 있던 우락부락한 군인들의 기세가 험악해지는 것을 느낀 박정휘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만들 해. 자극해 봐야 좋을 것 없는 인물이야. 저 앞에 넋 빠진 사람들 안 보이나?”

“각하께 위협이 되는 인물은 그냥 둘 수 없습니다!”


박정휘가 강태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강태수를 제대로 마주해 보지 않은 인물들은 어째서 강태수가 그토록 좋은 평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품었다가도, 강태수를 마주하면 그 이야기에 수긍하고는 했다.

그렇기에 박정휘는 일부러 자신들의 측근들을 강태수와 일면식이 없는 자들로 꾸렸다. 더불어 박정필과도 큰 인연이 있는 자는 아니어야 했다.

박정휘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이 될 만한 인물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앉은 자리인데.’


고개조차 숙이고 싶지 않아 시작한 ‘혁명’이었다. 그런 박정휘는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허리를 숙이는 강인수가 흥미로웠다. 이제는 굴지의 재벌의 반열에 들었으면서도 호화로운 집 대신 여전히 살고 있는 집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이따금 들려 올 법한 추잡한 소문 역시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박정휘가 담배 연기를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위험한 만큼 탐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보구만. 위험한 건 원래 잘 길들일수록 더 제 몫을 하는 법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각하?”

“별말 아니네. 그래서 정필은 언제 들어온다고? 강태수 대령이랑 같이 나갔다고 하던데.”

“복귀 중이라고 전달 받았습니다!”

“정필은 바로 나한테 오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군인들이 일제히 크게 외쳤다.


*


박정필은 서둘러 중앙정보부로 복귀했다. 정신을 차리고 바로 나온 것 같은데, 강태수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박정필은 ‘화양’에서 중정으로 오는 내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강태수는 도착하자마자 강인수가 사람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강태수는 진실한 마음으로 허리를 숙일 수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형의 뒷모습을 쫓고 있는데, 어디선가 뜨거운 눈빛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빨리 복귀했습니다, 강태수 대령?”

“아, 차주철 차장.”


방금까지 박정휘의 뒤에 서 있던 차주철이었다. 차주철은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휘의 경호차장을 맡아 언제나 박정휘의 뒤에 서 있었다.

강태수는 가볍게 인사한 뒤에 고개를 까딱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강태수가 걸음을 떼는 순간, 차주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시오.”

“그런 짓은 한 적이 없다만, 참고하겠습니다.”


강태수는 동요를 보이는 대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참고? 하, 저 건방진 새끼. 의장님이 오냐오냐해 준다고 기세등등해서!”

“참으셔야 합니다!”


차주철은 금방이라도 강태수를 쫓아가려 했으나 주변에서 그를 뜯어말렸다. 강태수도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었으나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는 게 먼저였다.


“강 대령! 대령님의 형님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저도 방금 보고 쫓아온 길이네. 형님께서는 어디로 가셨는지 혹시 아는가?”


이미 강인수와 이야기를 끝내 두었으나 내색할 수 없었다. 강태수는 자신을 붙든 소령에게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소령은 난감한 얼굴로 결국 머리를 긁고 나서 강태수에게 알려 주었다.


“지금은 혼자 계시는데, 곧 박정필 대령님이 직접 대면하신다고 했습니다. 의장님께서 와 계십니다.”


‘차주철이 와 있던 이유가 있었군.’


“고맙네!”


강태수가 소령의 어깨를 두드리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박정필의 귀로 강태수가 강인수를 찾아다닌다는 소식이 들어갔다.


“둘이 절대 못 만나게 해.”

“예!”


박정필이 명령할 동안, 강태수는 자신의 방에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강태수 자신은 강인수를 만날 생각이 없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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