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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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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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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77화

DUMMY

지금 돌아가는 모든 상황, 그 짧은 말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해방 후 정국은 한순간도 심상치 않았던 적이 없었으나 지금의 요동은 단순한 파도가 아니라 사방을 모두 집어삼킬 해일이었다.

장준하 선생이 강태수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너무도 급진적인 변화를 맞고 있소.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지. 이것은 어린애의 몸으로 어른의 검을 들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소. 요령 없이 휘두른 칼에도 칼의 무딤이 살아 있기만 하다면 벨 수는 있는 법이 아니요.”


강태수는 장준하 선생이 고려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사람들은 저들의 재산이 국고로 환수되면 삶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적어도 배는 곯지 않을 거라 기대하는 게, 나는 그 기대가 국민들의 살을 다시 파먹을까 봐 겁이 나는데, 강태수 대령의 생각이 듣고 싶어 묻는 게요. 내가 강태수 대령을 도와 이 일을 하면, 저들의 막연한 기대가 적어도 어느 정도는 현실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오.”


나라를 진정으로 위하는 이는 누굴까, 그 순간 강태수는 생각했다.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자들이 이런 자들이 아닐까. 어쩌면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었겠으나 강태수는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를 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일면식도 없는 자들을 끌어안고 사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모르는 이들까지 위하면서 하는 것이 정치고, 알지 못하는 자들마저도 이롭게 하는 것이 애국이었다.

그러한 지금, 나라는 애국으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강태수는 또 한 번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하려는 행동이 ‘형제’를 위한 것인지, ‘형제’만을 위한 것인지. ‘형제’들을 위한 것인지.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이윽고 강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태수의 분명한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강태수가 그 목소리를 십분 이용해 말을 이었다.


“국민들은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말 그대로 천지차이입니다. 혹자들은 ‘사상계’를 인텔리들의 보여주기 식 전유물이 아니냐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시기하기 때문에 퍼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시기는 제일 명백한 감정 중 하납니다.”


강태수는 눈앞의 장부를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제가 선생님께 회사들의 이름을 한자과 한글을 함께 표기해 달라고 부탁드린 것은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알기를 바라서,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국민들이 현 상황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장준하가 데려온 기자가 강태수의 말을 받아 적었다. 만류하는 장준하 선생에게 강태수가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직접 닥친 일이 아니라면 안일해집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산다는 것이 녹록지가 않은데. 내 인생만 챙기고 살아도 없는 게 시간인데.”


강태수는 몇 년 전의 패기 넘치던 자신을 기억해냈다.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과거의 강태수를.


“하지만 선생님, 옳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사는 인생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옳은 일에는 위협이 존재했고, 강태수는 그 위협을 제압해야 했다. 위협을 걱정할 시간에 요소부터 제거하는 게 훨씬 이로운 처사였다.


“선생께서 환수된 재산이 어떻게 쓰일지 염려하시는 점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저도 선생님과 같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 재산들이 어떻게 쓰일지, 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부끄럽고 참담한 심경이었으나 사실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장준하 선생은 강태수의 그 말을 듣고 나니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여론에 다시 불을 붙여서 저들이 멋대로 굴지 못하도록 하자는 뜻이 맞소? 나는 그렇게 이해했소만.”

“예, 맞습니다. 장면 정권을 쳐낸 이유가 부정 축재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몇 달 동안이나 떠들어 대던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지난번에 그 글을 직접 드렸습니다.”


장준하는 강태수에게 자신이 직접 글을 쓰겠다고 이야기했었으나 강태수가 완강한 뜻으로 거절했었다. 저쪽에 빌미를 줄 수 없었다. 강태수는 강태수 자신을 걸고 도박판 위에 올랐고, 그 패는 지금 놀라울 만큼 성공해 강태수에게 득점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지금도 상당수들이 회사들과 긴밀하게 따로 연락을 갖고 있고, 그들은 지금 때마침 중정의 지하에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우습게도 연줄이 있는 자들이 직접 심문을 하겠다고 지하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강인수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장준하와 친밀한 사이인 만큼 강인수도 지난번 일과 이번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자신들과의 연을 직접 끊기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다시 형님을, 바깥에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인 형님을 노리기 위해 더러운 수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박정필이 지금 쥐고 있는 패는 그게 전부였다. 강태수는 한때 자신의 제일 절친했던 친우가 그 정도의 바닥은 아니기를 바랐으나,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은 곧 그렇다는 사실의 반증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당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을 거짓과 감정으로 호도하려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럼 때 맞춰 이것만 발간하면 된다는 게지.”

“맞습니다.”

“그럼 특별판을 내는 게 더 낫지 않겠소?”

“고려하지 않은 바는 아니나, 본질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은 너무 미리 준비했다는 분위기를 풍겨서는 안 됩니다.”


강태수의 말에 장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지. 이번 일도 큰 차질은 없을 것이오.”

“감사합니다. 아마 이게 마지막 부탁일 겁니다.”


강태수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강태수의 대답에 장준하가 허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언제나 사실만을 말하기 위해 노력할 거요. 강태수 대령의 개인적인 부탁 내 친우와의 친분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오. 나 또한 이 일이 옳은 일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그런 거지.”


부정한 일이었다면 장준하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군사 정권에 나날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 중에 제일 대표적인 인사인 그가, 강태수와 이렇게 만난다는 것은 강태수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장준하는 뒤돌아 나가는 강태수를 마지막으로 붙잡았다.


“그런데 강태수 대령, 이 일의 마지막 목적지가 어딘지 물어봐도 되겠소?”


이제 강태수는 이 질문에 뜸을 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남산의 공정한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군. 뒤에서 흡족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강태수는 걸음을 옮겼다.


*


좋은 세상이란 어떤 세상일까. 강태수는 종종 고뇌했다.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게 그저 배고픔만 해결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눈앞에 제일 크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가난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움직일 힘이 남았다는 것은, 아직 지키고 싶은 의지가 남았다는 뜻이었다. 국민들은 그리하여 움직였다. 살려 달라는 말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치 않게 가난해졌고, 원치 않게 나라에 앉은 이들이 바뀌었다. 그래서 생각해야 했다. 누가 우리를 배부르게 해 줄 것인가.

표퓰리즘이니, 뭐니 그런 어려운 단어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배가 고팠다. 배가, 배가 고팠다.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에게 줄 게 없었다.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았다. 기부 받은 라면 하나를 아끼고 아껴서, 면을 불릴 대로 불러서 나눠 먹었다. 그래도 좋았다. 입에 무언가를 넣을 수 있으면 다행인 하루였다.

강태수는 일부러 빈민촌을 자주 다녔다.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얼마나 호화스럽게 사치를 누리고 있는지 제일 여실하게 보여 주는 장소였다.

그들은 거지를 없애야 한다며 빈민들을 노역에 동원하자고 했으나, 이들은 자신들의 눈꺼풀 하나 들어 올릴 힘조차도 없었다.

내몬 사람은 없다는데, 내몰린 사람들이 존재했다. 강태수는 휴가 동안 군복을 입지 않았다. 군복 하나만 입으면 모든 곳에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었고, 어떤 제한도 받지 않았으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강태수는 장현영을 찾아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이 강태수를 반겼다.


“일을 거하게 벌였던데.”

“해 주신 말씀을 좀 참고했습니다.”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고.”


강태수의 예상대로, 박정필은 ‘형제’ 역시 부정하다며 기자들과 신문사를 사 조작된 기사를 뿌려 댔다. 거짓 장부를 증거로 들이대며 ‘형제’가 ‘형제’들을 배신했다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강태수는 예상대로 흘러가는 전개에 안도하는 한편, 마음 깊이 실망했다. 벌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은 언제나 반대에 있었다.

박정필이 사활을 걸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강태수는 가마솥에 물을 부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몸놀림이었다. 근처 국밥집에서 사람들이 밥도 제쳐 두고 신문 두 개를 옹기종기 모여 나눠 보고 있었다.


“내용이 두 개 다 너무 다른 거 아니여?”

“신문마저도 이제는 반으로 쫙쫙 갈라지는구만.”

“예끼, 이 사람아. 그런 말 함부로 했다가는 잡혀간다니까!”

“지금 나 잡아갈 시간은 없을걸? 중정 지하가 아주 만실이라던데. 지금 이 신문도 봐. 둘이 아주 다른 얘기만 해 대잖아.”


숨죽인 채 낄낄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강태수도 픽 웃었다.


[‘형제’들을 버린 ‘형제’]

[저들은 ‘형제의 집’을 왜 탐내는가]


박정필이 사주한 사설은 지나치게 어려웠다. 온갖 한자와 어려운 말들로 점철된 말들과, 전문가들이나 알아볼 수 있는 장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어려웠다. 자극적인 제목은 시선 한 번만 끌 뿐이었다.

장준하는 강철수가 보낸 내역들을 그대로 붙인 한 편, 보기 좋게 정리해 두었다. 숫자들로 가득했으나 알아보기는 쉬웠다. 장사를 조금이라도 해 본 이들은 전부 알아볼 수 있었고, 돈을 조금이라도 써 본 이들 역시 모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만큼 간단한 내용이었다. ‘형제의 집’을 운영하면서 ‘형제’가 얻은 수익은 없었다. 오히려 적자에 가까웠다.


“왜 자꾸 ‘형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땅 판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다고.”

“오늘 국밥 대신에 라면이나 사 먹을 걸 그랬나?”

“아무래도 그럴 걸 그랬군.”


강태수는 장준하 선생이 [저들은 ‘형제의 집’을 왜 탐내는가]의 마지막에 붙인 말을 이미 보고 장현영에게 온 참이었다.


[그릇된 욕망을 앞을 못 보게 하는 가리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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