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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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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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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83화

DUMMY

강태수는 연달아 쏟아지는 신문들 속에서 희미하게 웃음을 드러냈다. 강태수를 이빨 빠진 사냥개라 칭할 때는 언제고, 평판이 눈에 띄게 바뀌어 있었다. 강태수는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힘으로 움직여야 할까.’


지금 세력을 키우려 했다가는 오히려 박정휘의 견제만 살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몸을 웅크리기만 한다면 밟고 지나가려 할 것이 분명했다.


‘박정휘는 내가 실책을 하거나 실패한다면, 그 빌미를 들어 박정필을 이 자리에 앉히려고 하겠지. 자신의 완벽한 수족으로 부리기 위해서. 당장 박정필에게 이 부장 직함을 주지 않은 것은 나를 도약의 발판으로 쓰기 위함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것이 강태수가 며칠 동안 생각한 결론이었다. 재산을 환수하는 데에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불법으로 쌓은 재산이라는 명목 아래 국가사업을 위한 곳간에 ‘영광’의 전리품들을 쌓았다.

‘형제’를 건드린 결과에 대한 강태수의 개인적인 감정도 일부 섞여 있기는 했으나, 제일 부정한 일들 역시 많이 저지른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국민들이 이 그림을 더 좋아했지. 정의는 살아 있다며 울부짖었다는 사람들도 꽤 된다는 보고도 있었고.’


어찌 보면 이번 일은 ‘심판’하는 그림에 가까웠다. 그리고 아주 자극적으로 다루기도 쉬운, 그런 그림. 강태수는 신문에서 떠드는 말들을 하나하나 눈에 새겼다. 방심은 실패를 불러온다.


‘저들이 사주한 신문도 있을 테니.’


강태수의 예상대로, 이번 일은 강태수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냐며 비난하는 기사들이 조금씩 보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군.’


툭.


강태수가 책상 위로 신문을 던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후우.”


강태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으라고 등 떠미는 전장에서 돌아오는 장군을 주군은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가 유구하게 증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태수는 죽고 싶지도 않았고, 떠미는 등에 고개를 끄덕이며 떠날 생각도 없었다.

그대로 뒤돌아 등 떠미는 이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으면 몰라도.


*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왔다. 62년이 되기 전, 12월이었다.

이제 성예진의 배도 임신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불러 있었다. 강태수는 중정부장으로 계속해서 소임을 이어갔다. 강태수가 자신의 집에 와 있는 강인수와 대화를 나눴다.


“다음 달이면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될 겁니다.”

“5개년? 그게 무슨 뜻이냐?”


장면 정권이 만들어 두었던 5개년 계획안을 참고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다.


“만약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장면 정권이 곧 추진했을 겁니다. 군사 정권이 올해인 61년에 미국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원조 자금은 장면 정권이 연 초에 한미경제협정을 체결하며 환율을 절상한 덕분에 얻은 환율 안정금입니다.”

“흐음.”


강태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7월에 있었을 장면 총리와 케네디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거액의 재원을 받기로 예정돼 있었다고 합니다. 5개년 계획에 대한 자금 말입니다.”


중정부장이 되니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이 달라졌다. 강태수는 습관처럼 앉아 있던 의자의 손잡이를 손끝으로 톡, 톡 두드렸다. 강인수도 마찬가지였다.


“장면 정권의 계획을 그대로, 일부 수치만 바꾸었으니 베낀 것과 다름없습니다. 다만 수치가 조금 바뀌었지요.”

“그렇게 바꾸어도 괜찮은 것이냐?”

“확신할 수 없습니다. 장면 정권이 연평균 5.6 퍼센트의 성장을 이야기했는데, 박정휘 의장의 의견은 7.1 퍼센트였습니다.”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장면 정권과 군사 정권의 경제 개발 내용은 사실 거의 비슷합니다. 다르다고 할 수 없는 정도니 말입니다. 철저히 내수를 통한 자력갱생의 성장 방식을 표방합니다.”


강인수가 강태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께서 중정에 오셨던 그때, 제가 드렸던 말씀 기억하십니까?”


강인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꾸했다.


“시멘트 공장 말이냐?”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곧 ‘영광시멘트’의 공장이 경매에 부쳐질 겁니다.”


‘영광’은 재산을 환수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부실하게 이어가던 회사는 한 번 휘청거리자 그대로 무너졌다. 강인수는 그런 ‘영광’이 전부 쓰러지기 전에 원하는 노동자들은 ‘형제’의 공장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했다.


“장면 정권이 국토 건설 사업처럼 뉴딜 정책을 주력으로 삼고, 사회의 간접 자본을 육성하는 것과 더불어 일자리를 만들어 성장하는 것을 주된 방향으로 잡았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강태수의 다음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강인수는 왜 강태수가 중정에 왔던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 수 있었다.


“중공업 육성을 목표로 하겠다고 합니다.”

“중공업 육성이라···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리는구나.”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상태는 현재 아이의 걸음마 수준이었다. 중공업은 거창한 수준이었기에, 강인수의 우려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슨 돈으로, 누구 돈으로가 그 골자입니다.”

“후우.”

“그래서 군사 정권은 외자보다는 내자를 이용해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는 의사를 미국에 비치는 것과 동시에, 국가 성장을 목표로 해 개발 5개년 계획서를 공표할 예정입니다.”

“복잡한 문제구나.”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태수 네 말대로라면··· 경매가 치열하겠구나.”


두 형제가 같은 생각을 했다. 강인수는 그때 이후에 박정휘로부터 승인을 받아 가지고 있던 광산을 시멘트 공장으로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었다.

‘영광’의 시멘트 공장을 인수한다면 설비를 사들여야 하는 비용적 설비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광산과 거리가 얼마 되지도 않고.”


‘영광’에서 계속해서 강인수의 광산을 탐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강인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말을 미리 알고 있는 자들은 이미 있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말이야 늘 빠르니.”


강태수가 걱정하지 말라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경매는 형님이 따 놓은 당상입니다. 그 공장을 얻는다고 해도 또 막대한 정치 자금을 내야만 운영할 수 있을 텐데, 지금 그 자금을 한 번에 댈 수 있는 곳들이 없습니다.”


벌금의 금액 책정은 강태수가 아닌 박정휘가 했다. 그러나 강태수의 진짜 우려는 따로 있었다.


“박정휘가 종합제철소를 울산에 세우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저는 이게 탐탁치가 않습니다.”

“이유가 있는 게냐?”


강태수가 깊은 한숨을 내쉰 후에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비관적으로 평가한 걸, 의장이 자존심이 상한 것을 견디지 못해 밀어붙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태수가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언제나 가족뿐이었다. 강태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미국 대사는 현재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제대로 된 데이터도 아니고, 눈대중으로 짜맞춘 데이터가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까.”


말을 하면서도 참담한 심경이었다. 강태수는 마른세수를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정권의 경제참모라는 사람이,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수정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는 게··· 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통계 자료가 부족한 탓에 생각으로 적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강태수는 미국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공부에 쏟았다. 돌아가는 상황이 모두 주먹구구식의 어린아이 장난 같은 방향들이었다. 강태수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미국의 국제개발처장이 박정휘 의장에게 연 7.1 퍼센트의 성장은 확률 상 어렵다며 경제 개발 계획을 수정하자고 이미 제안했습니다. 수출 전략도 없이 한국의 내수 시장만을 이용해 그만 한 발전을 이루는 것은 꿈에 가까운 일이니 말입니다.”


강인수 또한 강태수의 말에 침묵으로 동의했다. 강인수가 엄지로 턱 끝을 몇 번이고 매만졌다. 강인수가 고뇌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강태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한국의 내자內資만으로 종합 제철소를 짓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벌금을 징수하고 있는 회사들에게 자금을 더욱 내놓으라 종용한다고 해도, 그 일은···.”

“···.”

“불가능할 겁니다.”


강태수는 문 밖에 있을 성예진과, 조카인 강연우, 형수인 최민영을 생각했다. 가족을 생각했다. 이 일에 참여하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있거나, 있었거나, 생길 것이었다.


“박정휘는 이런 미국의 조언을 그저 흔한 내정간섭 중 하나라고 치부하고 있습니다. 이미 박정휘의 자존심이 긁혔기 때문입니다.”


박정휘는 본인의 자존심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강태수가 생각하기에 지금 상황은 폭풍전야와 다름없었다. 고요한 듯 오는 최악을 대비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강태수는 느리게 숨을 골랐다.


“형님, 제가 이 자리에 앉고 나서 깨우친 생각 중에서 제일 깊이 깨우친 것이 뭔 줄 아십니까.”


강인수가 대꾸하는 대신 눈으로 물었다.


“‘하면 된다’는 말처럼 위험한 말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강태수는 몇 달 동안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정보들을 파악하려 애썼다. 강태수가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태수는 더욱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을 때, 그 상황이 주는 예감을 알았다.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강태수는 중앙정보부를 이용해 국영기업인 한국전력주식회사의 주가를 고의적으로 올리는 방법을 실행하려던 정부에 제동을 걸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일이었다. 박정필은 중앙정보부장의 자리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대령으로 있었다.


“내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입니다, 강태수 부장.”

“그래도 이 방법은 안 됩니다. 많은 국민들이 큰 손실을 보게 된다면, 그것이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해도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앞으로 정치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정치자금을 국고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돈은 땅을 파면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증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 한 게 잘못입니까? 원래 증권시장은 투기꾼들이나 모이는 곳입니다. 돈을 얻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 보는 사람이 있는 것이 이치입니다.”


강태수가 잠시 박정필을 바라보았다. 박정필이 의기양양하게 주변의 중진들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한 이 방법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의 CIA가 부족한 공작비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썼던 방법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모방해 보자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강태수와 박정필은 첨예한 대립을 펼쳤다. 침묵하던 강태수가 박정필의 마지막 말을 조용히 되받아쳤다.


“전국의 공무원들에게 증권을 사라며 장려하고 있는 건 정부입니다. 그럼 박정필 대령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곧 정부가 투기꾼이라는 소리와 다름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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