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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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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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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69화

DUMMY

먹이를 집어삼키기 위해 몸을 숙인 맹수와, 마찬가지로 같은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고개 숙인 맹수가 타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둘 중 하나를 죽이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타협점은 오히려 끝에 도달했을 때 명료해지는 법이었다. 강태수는 보이지 않는 올가미로 주변을 켜켜이 채웠다. 발목부터 시작된 올가미가 이윽고 목덜미에 다다랐을 때, 강태수는 손에 힘을 주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쥐고 태어난 인생은 아니었으나, 원하는 것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끊임없이 배웠다. 강태수의 주된 동력은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동력이었으며, 그럴 때면 강태수는 과감히 움직일 수 있었다.


‘어떻게? 태수에게 붙여 놓은 자들도 별다른 기색을 감지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토록 은밀하게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패배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박정필은 무엇이 이 형제를 이토록 붙들 수 있는지를 놓쳤다. 강인수는 아비라면 자식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이야기했지만, 그의 자식은 강연우와 강지우뿐이 아니었다.

강인수는 아주 오래도록 강태수와 강철수의 아비로 살았다. 강지혁과 주해완이 사라졌던 그 순간부터.

강인수의 눈빛에는 한 점의 온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느껴지는 냉철함은 아득할 정도로 명료했다. 박정필은 그제야 눈앞의 장부를 내려다봤다.


‘가짜다.’


굳이 되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인수가 보여 주는 태도는 오만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사람이 주는 느낌이었다. 박정필은 어째서 저 여유로움이 이토록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해했다.


‘나도 속으로는 알고 있던 것이지.’


강태수는 조용히 덫을 놨고, 자신은 그 안에 빠졌다는 사실을.

강인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일에는 대비가 필요한 법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든 일을 대비하며 살 수는 없겠다만 그와 비슷하게는 살 수 있지요.”


강인수는 이 건물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동생을 떠올렸다. 만약 강인수가 일순간 비명횡사하는 일이 생긴다 하여도, 강인수는 큰 걱정 없이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었다.

오로지 강태수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태수라면 어떻게든 그 상황을 해결할 테니까. 전적인 믿음이 주는 것은 그러했다. 그렇기에 강인수는 직접 중앙정보부로 찾아올 수 있었다.

강태수가 이 상황을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믿음은 언제나 더 큰 대답으로 돌아왔다.


“‘형제’는 그 어떤 부정한 짓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이건 내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목숨을 걸고. 강인수는 일부러 그 말을 강조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수십 번, 수백 번 거리에 울려 퍼지던 말이었다.


[목숨을 걸고 일어났으니,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혁명을 일으켰다. 이 모든 것은 군인들의 덕이다.]


온갖 신문이 그들의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옳은 일만이 존재했던 것처럼. 옳은 일들만이 존재할 것처럼. 기대와 고양감에 부풀었던 몇 개월이 그렇게 지났다.

그리고서 강인수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만약을 생각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 장부였다.


“그 장부에 무엇이 적혔는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잃어버리기 위해 만든 패는 잃어버렸을 때 소용을 다했고, 강인수가 해야 할 일은 강태수를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도 말입니다.”


박정필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렸다. 장부를 쥐고 있는 손에 지독히 강한 힘이 들어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영광’에서 ‘형제’를 위협할 때 그들을 잡아넣기 위해 내가 직접 만든 가짜입니다.”


쾅!


벽 너머의 누군가가 거세게 문을 닫고 자리를 떠났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강인수와 박정필 둘 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


“임자, 자네 이게 무슨 일인가?”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체면을, 이걸 어떻게 할 셈이야. 중앙정보부의 부장으로 언급되는 사람의 정보력이 그 정도여서야 되겠어? 이런 모습을 보고 내가 어떻게 임자에게 중앙정보부를 맡기냔 말이야.”

“··· 죄송합니다.”

“쯧!”


박정휘가 거칠게 혀를 찼다. 박정휘가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야 임자가 잘해 보려고 하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신중해야지. 장부에 이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영광’의 이름이 강 사장의 입에서 왜 나온단 말이야? 그것도 이런 이유로?”


‘영광’이 그 어느 곳보다도 정권 친화적인 기업이라는 것은 세 살배기 아이도 다 알 정도였다. 이승만부터 정권이 세 차례나 바뀐 지금까지도 명맥을 꿋꿋이 이어왔으며, 그 능력은 주로 로비에서 기인했다.

‘영광’이 군인들을 대대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강인수는 그런 ‘영광’이 ‘형제’를 견제하다 고꾸라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한 번 돌려 이야기했다.


“강 사장 입에서 이 말 기자들한테 전해지는 순간, 혁명이고 뭐고 다 재 끼얹게 되는 거야!”


쾅!


“이제야 분위기가 잡히는 참인데!”


박정휘가 분에 찬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책상을 내리쳤다. 군사 정권이 민간에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고 외치던 자들을 철저히 검열한 결과였다.

박정휘는 박정필을 향해 검지를 세웠다.


“이 상황은 임자가 책임지고 해결해.”

“해결하겠습니다.”

“그럼 나가.”

“예.”


허리를 숙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박정필이 장부를 바닥에 내던졌다.


“이런 치졸하고, 얕은 수에 당하다니!”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모른 척 박정필을 찾아왔던 강태수가 문 밖으로 들리는 고함에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걸음을 돌렸다.


“부디 자네가 걸리지 않기를 바랐던 수지.”


‘자네가 내 방에 몰래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강태수의 마음을 채우는 감정은 계획대로 이뤄졌다는 고양감이 아니라 쓸쓸함이었다.

결국 친구를 잃고 말았다는 쓸쓸함.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었다. 박정필 역시 강태수가 오랜 시간 계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강태수는 이제 박정필이 어떻게 나올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


“형님.”


이상하리만치 잠잠한 이틀이 지났다. 그 후에도 강인수는 곧바로 돌아갈 수 없었으나, 강태수는 계속해서 매 끼니마다 강인수를 찾아와 따뜻한 밥을 챙겨 주었다.

공간이 주는 압박감과는 다르게 두 형제는 자연스레 식사를 했다. 강인수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태수야, 그런데 지금이 몇 시냐. 네가 오는 때가 아니면 도무지 시간을 알 수가 없구나.”


창문이 없어 시간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차고 있던 시계는 들어올 때 몸수색이라는 좋은 구실로 빼앗겼다.


“형님께서 이곳에 오신 지 사흘이 지났고, 지금은 오후 두 시입니다. 바깥 상황은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형수님도 아침에 만나 뵙고 왔습니다. 걱정하시고는 계시지만, 안심시켜 드리려고 노력했고요.”

“그건 다행이다. 애들은 별 탈 없고?”

“예, 마찬가지입니다.”


강태수는 강인수가 처음으로 박정필을 대면했던 직후를 떠올렸다. 박정필도, 박정휘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취조실은 모든 대화 내용을 도청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형제는 태평했다. 지켜보는 이들마저 슬슬 의문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박 대령님 말씀에는 ‘형제’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던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저희가 강 대령님을 감시해야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에게 제일 잘해 주시는 분 아니십니까?”


두 형제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박정필의 수하들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조용히 해. 팔다리 지키고 싶으면.”


그들을 만류하던 남자의 얼굴 역시도 탐탁지 않아 보였지만, 구태여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이곳은 모든 말이 새어나가는 곳이었다.


[형님,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쪽잠 자는 습관이 유용할 줄은 미처 몰랐구나.]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상황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아무리 들어도, 다른 대화는 찾을 수가 없었다. 형제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늘 예진 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못 본 지 꽤 되었겠구나. 신혼에 떨어져 지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신혼이 아닌 나도 민영 씨가 이렇게 별 탈은 없다고 해? 예진 씨 건강이 좋지 않지 않으냐. 요양은 길수록 좋기는 하다만.”

“지내던 곳에서 지내는 것이 오히려 예진 씨의 건강에 더 좋은 것 같아 보여 걱정됩니다.”

“웬 걱정. 제수씨가 서울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되는 것이냐?”

“아뇨, 서울에 돌아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지 걱정이 됩니다.”


누가 들어도 아내와 제수를 염려하는 대화였기에 강태수와 강인수를 감시하는 이들도 신경을 조금 풀었다. 그러나 형제는 지금 상황에 꼭 필요한 대화만을 나누고 있었다.


‘오늘 군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별 문제는 없는 것이냐?’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서둘러야 하는 것이냐?’

‘아직은 일을 마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에 강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다시 예진 씨에게 의견을 물어볼 예정입니다. 정말 서울에서 지내도 괜찮을지.”

“그게 좋겠다.”


강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강인수는 일주일을 꽉 채워 중앙정보부를 나올 수 있었다. 일주일은 긴 시간도, 짧은 시간도 아니었으나 소문과 말들이 살을 키워 나가기에는 적합했다.

햇빛이 눈 부셔 한참을 찡그리고 있어야 했다. 따가운 느낌이 조금 가시자 강인수는 오랜만에 맡아 보는 깨끗한 공기를 크게 들이켰다.


“후우. 바깥이 좋긴 하군.”


실없는 농담이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근래 들어 오늘만큼 개운하게 웃어 본 적이 없었다. 강인수가 주변을 미처 살피기도 전에 벌써 그를 발견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어! 강인수 사장이다!”

“어디!”

“아이고! 사장님!”


진을 치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강인수를 발견하자마자 강인수에게 달려왔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신 거지요?”

“이제 아무런 일도 없는 거지요?”

“강인수 사장님! 진실이 뭡니까! 다들 진실을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국민들을 속인 것이 사실입니까?”


강인수를 걱정하는 자들의 얼굴도, 강인수에게 질문하던 자들도 모두 얼굴이 눈에 익었다. 강인수는 웃으며 다시 며칠 전의 모습과 똑같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딱 한마디였다. 이만 하면 충분했다.


“이제 다들 집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한여름의 햇살이 뜨겁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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