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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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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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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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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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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80화

DUMMY

박정휘가 단호하게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이 맴돌았다. 전부 눈치를 보며 손을 들지 않았다. 박정휘와 강태수에게는 투표권이 없었고, 중진들은 전부 눈앞의 세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정휘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박정휘는 이 상황이 흡족했다. 자신이 손을 드는 쪽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벌인 일이었다. 종이도, 그 무엇도 아닌 거수.

다수결은 언제나 공정의 탈을 쓰고 있지만, 권력이 끼어들었을 때는 그 어떤 수단보다 악용할 수 있는 패로 작용했다.

이 자리에서 숨을 쉬고 있는 모두가 알았다. 그들은 그저 박정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손 안 들고 뭣들 해.”


박정휘의 익살스러운 대사는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어깨를 한 번 으쓱인 박정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먹 쥔 강태수는 손 안에 배어나는 땀을 느끼며 침을 조용히 삼켰다.


‘지금 모든 게 결정되겠군.’


침을 연거푸 삼켜도 입안에 고였다. 웬만한 일에 동요하지 않는 강태수였으나, 이번만은 예외였다.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모래성이 될 수도, 커다란 성의 주춧돌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럼 내가 제일 먼저 들어야겠군.”


일생일대의 순간, 강태수는 박정휘의 손이 올라가는 장면이 아주 느리다고 생각했다.


*


호외가 하늘에 나부꼈다. 투표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강태수와 박정필 둘 중 누가 중앙정보부장에 앉을지 몰라 두 가지 모두 작성해 두었던 기자들이 이제는 하나를 골라 하늘에 던졌다.


“호외요, 호외!”

“중정부장이 드디어 뽑혔다는 호외요!”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바닥에 떨어진 호외를 주워들었다.


“드디어 그 자리가 채워졌군.”

“오래 비어 있긴 했지. 그런데 또 그럴 만했으니, 뭐.”

“이제라도 채워진 게 어디여.”


사람들이 저마다 말을 얹었다.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은 읽을 줄 아는 이들을 찾아가 물었다.


“누구야? 누가 됐어? 얼른 읽어 달라니까!”

“아,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읽어 주쇼!”


상황이 그렇다 보니 아예 어느 곳에서는 호외를 들고 두 손으로 소리 높여 읽는 모습도 보였다.


“아, 아! 딱 한 번만 읽을 거니 다들 잘 들으쇼!”


[중앙정보부의 장이 드디어 채워졌다. 오늘 오전 투표가 치러진 결과, 중정부장의 자리는 강태수 대령에게 돌아갔다. 강태수 중앙정보부장은 그 무엇보다, 그 언제보다 공정을 약속했다.]


“강태수 대령이군!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정말 잘된 일이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잘된 일이고, 당연한 일이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연히 반감을 가지는 이도 존재했으나, 소수였다.


“잘된 일은 잘된 일이지만, 박정필 대령의 체면도 말이 아니겠군.”

“크흠, 좋은 날에 그런 말을 꼭 덧붙여야겠어?”

“자네한테는 좋은 날이겠지. 자네만큼 ‘형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을라구.”

“자네는 왜 그렇게 ‘형제’를 싫어해? 그 형제들이 잘못한 게 뭐 있다고.”


한 사내의 일침에 불만스러운 얼굴의 남자가 덧붙였다.


“자네가 지금 뭘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누구든 잘 사는 사람은 다 싫어해. 공평하게 싫어한다고.”

“그럼 자네는 오히려 더 강태수 대령을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강태수 대령이 일전에 나쁜 놈들이 나쁜 짓 하는 걸 다 까발려 줬는데, 좋아해야지.”

“그것도 싫다고. 자기만 잘난 것같이 구는 것도, 자기만 깨끗하다고 구는···.”


신나게 입을 열던 남자가 그제야 주변에서 쏟아지던 매서운 눈길을 느끼고 말을 줄였다.


“저런 말 듣는 데에 시간 쓰지 말고, 우리는 일이나 하러 가자고.”

“쯧, 그러지.”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중정부장이라는 이야기도 당장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거창한 일일 뿐이었다.

그 시각, 사장실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강인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정말 다행이군. 하아, 정말 다행이야.”


강인수는 호외를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만약이라는 말은 언제나 상황을 뒤집었다. 만약에라도 강태수가 중정부장이 되지 못한다면, 강인수는 ‘형제’를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자리였다. 모두가 탐을 낸다는 그 자리.

강인수는 손바닥에 배어 나왔던 식은땀을 손수건에 닦으면서 다시 숨을 골랐다.

마당의 평상에 누워 동생에게 묻고 났던 며칠 뒤, 강태수는 강인수를 찾아와 입을 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얼굴로, 그러나 들뜬 얼굴로.


‘형님, 제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 드렸던 그때 기억하십니까. 어깨 위에 별을 달아 보겠다고 했던 그 말 말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호기롭게 외쳤던 저를 말입니다.’

‘기억하다마다.’

‘저는 늘 모든 것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이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그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가정은 언제나 끝없는 구렁텅이로 이어져 있었고, 그 구렁텅이 속에서 저는 벽을 타는 법을 배웠습니다. 맨손으로 벽을 잡고, 올라가는 법 말입니다.’


강인수는 동생의 얼굴이 상기돼 있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강인수 자신도 놀랄 만큼 많이.


‘머리 위에 있는 태양을 좇고 싶었습니다. 닿고 싶어서 항상 안달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정신 차리게 만든 건 태양이 너무도 멀리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구덩이 속의 벽을 짚으며 생긴 상처들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만든 상처들이겠지요.’


강인수는 강태수가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마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은 선의를 간혹 믿지 못하고, 자주 부정하고, 여러 번 이용합니다. 그런데 형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딛고 일어나서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돌고, 돌아서라도 희망을 줄 수 있는 그 선의.’


강태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강태수 자신은 선인이 아닐지언정, 강태수의 주변에는 선의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있었다. 그들의 의도에는 뜻이 없었고, 그저 해야 하는 일이라고만 대답했다.

강태수는 눈앞의 결과를 보았다. 박정휘는 아주 느리게 오른손을 들었고, 순식간에 과반 수 이상이 따라서 손을 들었다. 마치 파도라도 치는 것처럼, 그렇게.

그 장면을 보며 강태수는 성예진을 떠올렸다.


‘왜, 상황이 어려워졌는데도 멈추지 않았습니까?’


성예진에게 왜 ‘바다집’을 닫지 않았느냐 물었을 때도, 성예진은 이렇게 대꾸했다.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었다고.


‘그리고, 아주 적을지 몰라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태수 씨 당신처럼요. 결국 나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끈 건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니까.’


강태수는 깊게 생각했다. 해야 하는 일이 뭘까. 강태수는 항상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짝!


박정휘가 박수를 크게 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과가 정해졌군. 축하하네, 강태수 대령. 아니지, 이제는 부장이라고 불러야겠군. 축하하네, 강태수 부장.”


누구보다도,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고조돼 보이는 박정휘에게 강태수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허리를 숙인 사이에, 강태수는 떨리는 주먹을 쥐고 있는 박정필을 보았다. 박정필로서는 배신감과 치욕의 자리였을 것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강태수 부장.”


강태수는 박정휘가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지난번처럼 손을 으스러뜨릴 것 같았던 악력이 아닌, 그저 평화로운 악수였다. 강태수의 손을 몇 번이나 흔든 박정휘는 웃는 모습 그대로 강태수와 함께 카메라에 찍혔다.


“노력하겠습니다.”


강태수는 손을 들었던 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해 두었다. 그들 중 정말 자신의 신념으로 강태수를 뽑은 자들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허수아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했다.


짝, 짝, 짝.


무거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삼분의 이라는 쾌거였으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손뼉을 맞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강태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는 짧게 숙였다.


*


강태수는 즉시 한동안 비워져 있던 중정부장실로 짐을 옮겼다. 사라져서는 안 될 자료들을 챙기는 강태수에게 박정필이 다가왔다.


“축하하네, 태수.”

“고맙군.”


강태수는 짐을 챙기던 손을 멈추고 박정필이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적이 깨졌다.


“태수 자네도, 나도 이게 어떻게 생긴 결과인지는 둘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툭.


강태수는 상자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지금 하는 게 좋겠군. 정필 자네가 최근 들어 내게 쌓인 것들이 좀 있을 텐데.”


박정필이 핏발 선 눈으로 강태수를 노려보았다.


“태수 자네, 이게 공정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무어라 대꾸해야 할까, 강태수는 잠시 고민했다. 그 고민이 기우였다는 듯 박정필이 성큼 다가오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자리는 내 자리였어.”

“···.”

“내가 몇 년 전부터 생각했던 자리였지.”


강태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박정필을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는, 단련된 무감함으로. 강태수는 박정필과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더불어 박정필에게 되돌릴 수 있는 기회 또한, 수없이 주었다.

잃고 싶지 않았던 친구였기에. 강태수는 다음으로 이어진 박정필의 말에서 깨달았다. 어쩌면 이 우정이 끝난 건 꽤 오래전이 아닐까. 내 생각보다도 더 오래전이.


“자네는 늘 너무 쉽게 이루는군.”


마지막까지 입을 열지 않을까했던 결정이 점점 날아가기 시작했다. 강태수는 박정필이 보란 듯이 전시해 두었던 ‘화양’의 지하, 성예진의 사진을 떠올렸다.


“정필 자네는 늘 너무 꼬아서 봐.”

“!”


강태수는 차근히 말을 덧붙였다.


“자네가 내게 원한 것들이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도 괜찮았네. 그것도 결국 나의 일부이니까. 내가 살아오면서 애쓴 대가로 얻은, 그런 것들이니까.”


강태수는 지난 몇 개월의 기억을 하나하나 짚어 보며 다시 손을 움직였다.


“‘혁명’이 아닌 ‘쿠데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는 괴로웠지. 언제부터 목숨이 이렇게 걸기 쉬운 것이었는지 생각하는 동시에, 권력이라는 게 사람을 얼마나 추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알게 됐어. 그러니 고맙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했거든, 자네가.”

“강태수! 너 이 새끼, 지금 말 다 했어!”


상자를 절반 정도 채웠을 때, 강태수가 그대로 박정필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무엇을 쉽게 이루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맙네.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어.”


주인이 떠난 강태수의 방에 박정필이 혼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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