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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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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2.03.1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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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75화

DUMMY

아빠, 강태수가 자신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할 말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단어였다. 그래서 강태수는 순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성예진은 강태수가 왜 침묵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인내심 있게 사랑하는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성예진은 잠시의 침묵 이후에 강태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태수 씨.]

“예, 예진 씨.”


모든 일에 능숙하면서 사랑에는 서투른 남자를, 성예진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예진은 웃으면서 강태수에게 물었다.


[지금 제가 보고 싶어요?]

“예.”

[방금까지 제 생각도 하고 있었구요?]

“예.”

[그럼 딱 한마디만 하면 돼요.]


강태수도 이번에는 정답을 알았다. 그에게는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었으니까.


“사랑합니다, 예진 씨.”

[나도요, 태수 씨. 사랑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강태수의 진심어린 말에 성예진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예진 씨가 이야기하던 정답이 이거였나 보군.’


웃음기 가득한 대답은 여러모로 강태수의 마음에도 들었다.


[이따 밤에 집에서 봐요.]


맑고 깨끗한 성예진의 웃음소리가 종일 강태수의 귀를 간지럽혔다.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온종일 가슴께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계속됐다.


‘아버지가 된다면···.’


깊게 해 본 적 없는 상상이었지만 머릿속에서 매끄러운 모습들이 그려졌다. 아이를 안고 있는 성예진, 점점 자라서 강태수에게 뛰어오는, 강태수와 성예진을 닮은 아이들.

강태수는 그 순간 깊은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강렬한 희망을 맛봤다. 누가 무엇을 이야기하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결코 꺾이지 않는 희망.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태반이 희망이었다.

강태수는 누구보다 절망 속에서 살았으나 그렇기에 희망이 주는 힘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있다고, 이제는 누구보다 더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은, 더구나 부모는 지켜야 할 게 생긴 그 시간부터 모든 것을 바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이 기분이, 이 절박함이 그다지 나쁘지 않아. 아이들의 얼굴 한 번, 목소리 한 번 들으면 모두 사라지는 피로에 가깝지. 나는 태수 네가 이 기분을 꼭 느껴 봤으면 좋겠다.’


강태수가 성예진과 결혼하던 날, 강인수가 강태수를 불러 한 이야기였다. 그때는 강인수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이가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강태수는 이 말을 이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거군.’


헛웃음이 나올 정도도 손바닥 뒤집듯 바뀐 강태수 자신의 태도였다. 그러나 그렇기에 강태수는 아이가 얼마나 큰 힘을 주는 건지 오히려 더욱 실감하게 됐다.

극적일수록 강력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강태수는 정보원들이 가져다 둔 사진들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강태수가 아는 얼굴들은 모두 찍혀 있었다.

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 중앙정보부에 묶여 있는 동안, 강태수는 시간을 번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일의 대가로 박정휘에게 며칠간의 휴식도 얻어 낸 참이었다.


‘그럼 며칠 정도는 예진 씨와 지낼 수 있겠어.’


장부는 협조가 필요한 만큼 넘겼다. 박정필과 연줄이 있던 자들이 대거 자진 출두하면서 축 역시 기울었다. 강태수와 박정필 중 가늠하던 자들 중 상당수가 이번 일로 박정필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 강태수를 붙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강태수가 자연스럽게 흡수할 영역에 존재했다.


‘하루 빨리 저 자리에 앉아야겠는데.’


중앙정보부 건물에서 나와 뒤를 돌아본 강태수가 중정의 제일 꼭대기 층을 보며 생각했다.


*


강태수는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흘릴 수 있다는 사실에 꽤나 감탄하고 있었다. 아무리 사람 마음에 따라 훅훅 뒤바뀌는 게 상황이라지만, 이번만은 강태수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성예진이 도착할 거라고 이야기한 시간까지 두 시간도 남지 않았으나 강태수의 마음은 반나절처럼 느끼고 있었다. 집 안을 몇 번이나 걸어다니다가, 직접 성예진을 마중하러 갈까 생각하다가, 그러다 일이 꼬이면 어떡하지 생각하는 강태수의 머릿속은 말 그대로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치고 들어오는 일에 관한 생각들에 걸음을 멈추고 무서울 만큼 집중했다.


‘지금 더 움직이는 건 굳히기가 아니라 자충수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예진 씨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한동안 비밀로 하는 게 좋겠어.’


약점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제일 먼저, 제일 확실히 처리해야 했다.


‘그래도 형님에게는 알리는 게 좋겠지.’


강태수는 며칠 주어진 시간 동안 되도록 많은 것들을 해결하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 해낼 테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쉬운 거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는 조금 쉴 수 있나 했는데. 그래, 일을 제대로 해결하는 게 중요하지.’


무슨 일이든 빨리 해결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다룰 수 있는 일과 아닌 일은 명백하게 달랐다. 순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무너져 버리는 건물 공사처럼, 보이지 않는 일 또한 지켜야 하는 순서들이 존재했다.

강태수는 성예진이 돌아올 시간을 한 번 더 가늠하고 나서 서재로 들어가 남은 일들을 처리했다.


‘이제는 형님의 사장실에 남겨 둔 도청 장치를 떼 버려도 되겠군.’


며칠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강태수는 자신이 원하는 위치까지 차근차근 오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강태수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강태수 대신 박정필에게 힘을 실어 주던 누군가가 일전에 강태수를 향해 충고랍시고 말을 붙인 적이 있었다.


‘이봐요, 강태수 대령. 강태수 대령의 능력이 아쉬우니 내가 한마디만 하겠소. 그렇게 모든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려고 하면, 발에 딛고 있던 돌이 물에 빠지는 것도 모르는 법이요. 사내가 그렇게 고민이 많아서야 대소사를 시원히 관장할 수 있겠소?’


정재계의 주요 인사들이 아주 많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였고, 그건 강태수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기 위한 이야기였다. 고민이 많다는 말은 우유부단하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었고, 아쉽다는 말은 자못 강태수의 객관적인 판단으로 들릴 수 있었다.

그때에 강태수는 대꾸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대놓고 상대 쪽에서 걸어 오는 시비에 말을 섞는 건 좋지 못한 판단이었다.


‘뭐라고 대꾸 좀 해 보시오, 강태수 대령. 지금도 대답을 고민하고 있는 거요?’


남자의 말에 주변에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가 곧 큼큼, 하는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마저도 대꾸하지 않으려던 강태수는 뼈가 도드라질 만큼 주먹 쥔 강인수를 발견하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


‘지금 한숨 쉰 거요? 이 내 면전 앞에서?’

‘면전 앞에서 못 할 말도 하는데, 한숨을 쉬지 못할 이유는 뭐가 있겠습니까.’


강태수의 조용한 반문은 침묵을 불러일으켰다. 남자는 씩씩거리며 강태수에게 삿대질했고, 이후에 본인들의 무리가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남자 역시 강태수의 장부에 있었다.


“지금쯤이면 취조 중이겠군.”


강태수는 자신이 쥐고 있던 것이 장부보다는 살생부에 가까운 건지 잠시 고민했으나,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죗값을 받는 게 뭐가 어떻다고.’


부정 축재로 쌓은 재산은 국고로 환수될 테고, 그렇다면 세금으로 쓸 수 있을 것이었다.


‘문제는 그 돈들이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건데···. 마땅한 해결책이 생각이 나지 않는군.’


강태수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 일을 하나둘 처리할 무렵, 성예진이 오랜만에 집에 도착했다. 서재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본 성예진이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강태수가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집중하고 있던 탓에, 강태수는 그토록 기다리던 성예진이 집에 왔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태수 씨.”


성예진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강태수에게 서운해 하는 것보다,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워 강태수를 불렀다.


“태수 씨!”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이 남자의 얼굴에 이토톡 사랑이 가득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나 집에 왔어요.”


강태수는 웃으며 팔을 벌리는 성예진을 단숨에 안아들었다.

성예진의 결 좋은 긴 머리카락이, 성예진의 웃음소리가 강태수의 가슴을 간지럽혔듯 그의 뺨을 간지럽혔다.


“보고 싶었습니다.”


강태수는 어쩌면 자기가 평생 바라면서 살았던 게 원대한 꿈이나 목표 같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소소한 일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


강태수는 오랜만에 온기가 가득한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에는 성예진과 함께 강인수의 집으로 향했다.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강인수도, 최민영도 뛸 듯이 기뻐했다. 어른들의 대화를 듣던 강연우도 입을 열었다.


“그럼 나, 또 동생 생기는 거예요?”


성예진은 천진하게 묻는 강연우의 앞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연우야. 지우 예뻐해 주는 것처럼 새로운 동생도 예뻐해 줄 수 있지?”

“네!”


가족이 늘어난다는 것은, 더구나 새로운 아이가 찾아올 것이라는 소식은 오랜만에 훈풍을 불러왔다. 성예진은 점심을 준비한다는 최민영을 도우러 부엌으로 향했고, 강태수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강인수는 강태수가 성예진을 눈으로 좇는 모습을 보고 나서 장난스럽게 강태수의 등을 툭 쳤다.


“제수씨 등 뚫어지겠다.”


강인수의 장난스러운 농담이 강태수 역시도 반가웠다. 치열하게 지낼 만큼 지냈으니, 지금 잠시의 평온이라도 누리고 싶었다. 강인수는 강태수를 강지우가 잠든 방으로 데려갔다.

강인수는 잠든 강지우의 뺨을 가만히 쓸어 보았다. 강태수는 강인수의 눈빛에서 끝이 없는 사랑을 보았다. 형이 가족에 얼마나 큰 정성을 쏟는지 강태수 역시 잘 알고 있었으나, 눈빛이 말하는 것들은 종종 알고 있는 것들을 뛰어넘었다.


“이른 아침에 집에 돌아와야 할 때면··· 이렇게 잠들어 있는 지우 얼굴을 보고는 했어.”


기업과 회사의 총수라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중정에 묶여 있는 지금, 강인수가 자유롭다는 사실은 강인수의 결백을 증명했다.

일을 처리하려 해도 거래처들이 거의 태반은 멈춰 있었기 때문에 강인수도 예상치 못한 휴가를 얻었다.


“연우가 태어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저렇게 컸지. 시간이 빠르다는 걸 그때마다 느끼게 된다. 달력을 보고 느끼는 게 아니라, 내 자식이 내 무릎을 지나 허벅지, 허리까지 오는 걸 보면서 느끼게 돼.”


열린 문 바깥에서는 강연우가 두 여인에게 무언가를 질문하고 있었고, 최민영과 성예진은 최대한 아는 만큼 대꾸해 주고 있었다. 아이 특유의 웃음소리와, 사랑하는 여인들의 웃음소리는 기분을 고조시키는 힘이 있었다.

강태수는 지금 낯설 만큼 평탄한 평화가 어색했다. 강인수를 따라 강지우의 말랑하고 따뜻한 볼을 쓰다듬으면서, 강태수는 그 어느 때보다 강인수의 말을 이해했다.


“아비는 정말··· 무엇이든 하게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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