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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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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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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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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78화

DUMMY

장준하는 한 줄만으로 모든 이야기를 했다. 가리려고 애쓰는 자들의 욕망은 그릇된 것이라고. 그 한 문장에는 많은 뜻이 함축돼 있었다. 전체 맥락을 알지 못하는 자들도 오늘 나온 다른 신문을 보고 다시 그 신문을 보면 자초지종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장현영은 면을 젓는 강태수를 한 번, 신문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한 번 보고 난 후에 어깨를 으쓱였다.


“참 이상하지 않아? 저렇게 이야기를 해 대는데, 정작 당사자가 여기 와 있다는 사실은 모르니 말이야.”

“꼭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강태수는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장현영의 농담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저쪽에서 더 격하게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상관없습니다.”

“참 성의 없는 대답인데, 묘하게 늘 믿음이 가. 이것도 참 이상한 일이고.”


장현영은 만나면 만날수록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강태수는 그런 장현영의 모습이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다. 장현영은 강태수가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태수 청년, ‘형제라면’ 말이야. 계속 내가 이렇게 싼값에 받아 와도 되는 게 맞아? 장부를 보니 적자만 있던데.”


강태수가 매운 냄새를 퍼뜨리는 국물의 간을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간이 알맞은 걸 확인한 후에야 강태수는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은 내용이 아니던데.”


장현영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게 눈에 보였다. 강태수가 그릇에 라면을 나눠 담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직은 버틸 만합니다.”

“아직은?”

“예, 아직은요.”


강태수는 라면 시식회에서 강인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형제’가 버틸 수 있도록 도와 달라던 형의 이야기는 언제나 잊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형제의 집’은 ‘형제’가 버티면서 지탱하고 있었다.


“후원도, 기부도 적지 않게 들어오고는 있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해진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서 물어본 거였지. 그렇게 밑 빠진 독처럼 운영했다가는 ‘형제’에도 타격이 가고 말 테니까.”


장현영은 강태수가 덜어 놓은 라면을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나눠 주고 돌아왔다.


“형님과 고아원을 하기로 했던 건··· 순전히 제 동생 때문이었습니다.”


강태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래전, 강철수를 북으로 보낸 뒤에 강태수가 거뒀던 아이들은 이제 ‘형제’나 ‘형제의 집’에서 일하거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삼 형제의 뜻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든 최대한 도와주고,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밀어 주는, 말 그대로 든든한 ‘형제’이고자 했다.

강태수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부산으로 아이들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아이들도 있고, 이제는 군산에 가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 미안해서, 한 아이를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그 아이는 강철수가 제주도에서 데리고 왔던 부승윤이었다.


“자기는 좋다고 하더군요. 너무 좋았다고. 어디를 다니는 건 꿈도 못 꾸는 인생이었는데, 덕분에 움직여 봤고, 그때마다 사람들을 만났고, 자기가 사람들도 그리고 또 아이들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그래서 선생이 되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강태수는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인생에서 했던 제일 옳은 일은 그 아이들을 길원상에게 보낸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을 구하면, 한 세상을 구한다는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정녕 틀린 건 아니구나, 하고 말입니다.”


장현영은 세월이 묻어나는 눈으로 강태수를 바라보았다.


“우리 ‘형제식품’과 ‘형제라면’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는 자들도 전부 그때부터 거뒀던 아이들입니다. 전쟁이 나기 전부터 거두었던 아이들 말입니다.”


빚이라고 생각한다면 빚이겠으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선물이었다. 강태수는 그렇게 느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순리일 것이나, 그 순리 속에서도 방향을 찾는 건 개인의 몫이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그 방향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 주는 것은 어른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저는 오래도록···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자식들보다 나라가 중했고, 자식의 미래보다는 나라의 미래가 중하신 분들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커서는 제 부모님을 자랑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어릴 때는 그 누구보다 지독히도 원망했습니다. 지금도 종종 어떻게 그렇게 원망할 수 있었는지 생각합니다만, 돌이켜보면 그건 미움보다는 그리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태수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독립운동을 하니 가세가 기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집은 점점 더 작아졌고, 식사도 갈수록 어려워졌고, 형은 공부하는 대신에 밭을 갈아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돌아온다고 하던 부모님을 생각했고, 생각의 결과는 의문이었습니다. 우리 형제들보다 나라가 더 중요한지에 대한 의문 말입니다.”


강인수의 등을 보고 자랐기에 강태수는 강인수에게 오랜 부채감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알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목숨을 버린 것도 결국 우리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여름 햇빛이 쨍하게 머리 위로 쏟아졌다. 뜨거운 열기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강태수는 물 한 모금을 넘긴 후에 다시 말을 덧붙였다.


“독립이 되지 않은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건, 자식들의 미래가 모두 빼앗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돌아오셨다면 더욱 좋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어도··· 부모님의 의거가 독립에 보탬이 되었었다는 말을 오래 떠나 있던 동생의 입으로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나 듣게 되었는데도, 그랬는데도 좋았습니다. 그렇게라도 소식을 알게 됐으니까요. 헛된 일이 아니었구나, 내가 잃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은 무형으로라도 나를 지키고 살고 있었구나.”


강태수는 여름이 되면 유독 많은 꿈을 꿨다.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목소리를 거의 잊은 강지혁과 주해완이 꿈에 찾아왔다. 어린 강태수는 어린 형과 어린 동생들의 손을 잡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 둘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주해완의 품에 안겨서 강태수는 평생 해갈되지 않았던 결핍이 조금이나마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뭘 해야 할까. 결심이 선 후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늘 결심이 몇 배는 어려웠습니다.”


빈 그릇 대신에 부른 배를 끌어안은 아이들을 보며 강태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형제라면’이 다른 형제들을 배부르게 한다면 형님은 오래도록 버티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의미만으로도 충분한 일들도 가끔씩은 있는 거라면서요.”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득에 취중해서 나아가는 일이 아니니 아직은 괜찮습니다. ‘형제’가 버티는 한 ‘형제의 집’도 버틸 겁니다. 그러니 라면 값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태수 청년 이야기 들어 보니까 내가 했던 걱정들이 전부 기우라는 건 알겠네. 그래, 걱정 안 할게.”


누군가에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속을 비친 적이 있던 적이 없었다. 몇 년을 붙어 다니던 박정필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강태수는 그 이유가 자신을 보며 웃는 장현영의 얼굴이 주해완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


생각은 살아 있는 불씨 같아서, 바람에 따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면서 모양을 바꿨다. 그 불씨들이 모여서 여론이 되면 어떤 이들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특히 정권을 쿠데타로 잡은 자들은 아직 정권이 안정되지 않은 만큼 더욱 머리를 굴리고, 눈치를 봤다.

박정휘는 자신의 집에서 은밀히 불러 모은 자들과 비밀 회담을 가졌다.


“지금 일이 복잡하게 되었어.”

“예, 의장님. 자금줄이라고 믿고 있던 자들이 모조리 잡혀 들어와서 돈을 융통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하나같이 거리로 나와서 부정 축재자들의 돈을 국고로 환수하고, 그걸 자기들에게도 돌려 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에서도 목소리를 죽이고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일은 강태수 대령이 너무 크게 움직였습니다. 깊이 개입돼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일만 지나면 목줄을 채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박정휘가 혀를 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너무 자랐지.”

“때를 놓친 게 아쉽군요.”

“그래도 여전히 이용할 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박정필의 공작을 역공으로 이용한 걸 보면 정치적 능력도 탁월한 듯합니다.”


내내 침묵하던 사내가 무겁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그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강태수 대령을 아예 얼굴 마담으로 새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대외적인 얼굴로 말입니다.”


그 뜻은 앞으로 일이 생기면 어떤 칭찬도, 어떤 비난도 강태수가 맞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 역시 그 함의를 쉽게 이해했다. 절로 솔깃해지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자리에 있던 이들은 기쁜 내색을 온전히 내비치지 못했다.


“장군 뜻은 그러면 강태수 대령을 중앙정보부장 자리에 앉히자는 뜻과 별반 다를 바 없는데, 그렇게 되면 박정필 대령이라는 변수가 생깁니다.”


쉽게 말해 곤란해진다는 뜻이었으나,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한 명의 눈치를 보았다. 박정필은 박정휘의 조카사위였고, ‘혁명’의 주역 중 하나였다.


“박정필 대령을 내치자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각하.”


사내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됐어. 뭘 그렇게까지 해. 능력 없으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박정휘의 말은 지금 자리에 없는 자들까지 모두 찌르고 지나갔다. 잠시 침묵이 공간을 휘감은 뒤에, 허리를 숙였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중앙정보부장의 자리를 가리는 투표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공정하게 뽑혔다고 국민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더불어서, 결과가 어떻든 둘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겁니다.”


강태수와 박정휘를 지지하는 자들 또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절로 솔깃해지는 제안이었다. 박정휘가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 참 좋군. 그거야말로 국민들이 부르짖는 민주주의 아니겠어. 투표로 정했는데 그 누가 반대하겠냐, 그 말이야.”


박정휘의 대꾸에 다들 너도나도 찬성을 외쳤다. 박정휘 또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난 다음에 때를 다시 의논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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