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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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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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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71화

DUMMY

동생에게 곧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강인수는 만족스러웠다. 그 누구보다도 고뇌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강태수의 침묵은 언제나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머리 좀 식히고 들어와라. 그럴 더위가 아니긴 하다만.”

“예, 먼저 주무십시오.”

“그래, 너무 오래 있지는 말고. 더위 먹는다.”


강태수가 다 컸다는 사실을 강인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나 마음은 언제나 어린 동생을 대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하하. 예, 늦지 않게 들어가겠습니다.”


강태수는 강인수가 어째서 가끔씩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았기에 웃으며 대꾸했다. 형제는 놓친 시간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과 유년 시절에 서로가 부재했기에, 강인수는 지금껏 강태수를 어떻게 해서라도 투정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태수야, 그리고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라. 언제든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된다. 이 형에게는 말이야.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버릇이다만, 그렇다고 참는 것도 좋은 습관은 못 된다. 속에서 곪고, 터지는 건 언제든 덧나게 돼 있어.”


강태수는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대꾸하지 못했다. 강인수는 그런 동생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걸음을 옮겼다.

강인수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고도 강태수는 한참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강태수는 별들을 보면서 지난날을 떠올렸다. 지난날과, 오늘과, 다시 올 내일을 생각했다.

처음 안아 봤던 강연우와 강지우. 강태수가 더 얻은 가족들의 웃음과 포격 소리와, 총성과, 비명. 손가락 사이로 흐르던 뜨거운 피.

성예진의 말간 웃음소리와, 바닷가를 달리며 휘날리던 머리칼, 바닷물을 뿌리던 손끝, 그리고 다시 웃는 얼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순간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태수의 머릿속을 채운 모습은, 강태수와 성예진 자신을 반씩 닮은 아이를 안고 웃는 성예진의 모습이었다.


“아.”


성예진의 품 안에 안긴 아이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이 그려지는 그때, 강태수는 이해했다.

강인수가 이야기하던 아비란 무엇인지.


*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강태수는 날이 밝자마자 집을 나왔다. 어제 ‘화양’에 해 둔 것들이 그대로인지 확인해야 했다.

나무계단 밑은 끝없는 어둠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았다. 불을 켜는 방법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어제는 찾을 수 없었다.

오늘 강태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날 배경석의 지하 감옥에서 강태수에게 정보를 주었던 노인이 ‘화양’ 앞에서 강태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을 제외하면 오늘도 역시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에는 확인해 봤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아무도 없습디다.”


강태수는 그 말에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눈앞의 노인, 한철범은 장준하 선생이 강태수에게 직접 소개해 준 인물이었다.


‘한 선생은 수 년 동안 내 손발과 다름없던 사람이요. 강 대령에게도 꼭 필요한 사람이 돼 줄 거요.’


장준하의 호언대로, 강태수는 한철범과 일을 함께하고 난 후로 꽤 편해졌다. 강태수는 다시 닫아 두었던 가벽에 자신이 남겨 두었던 흔적을 확인했다.


‘다녀간 사람은 없다. 입구가 여기 하나라면 말이지.’


강태수는 다시 한 번 한철범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한철범은 날랜 속도로 전원을 찾았다. 계단 아래 공간에 불이 들어오자,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머물렀다는 증거 역시도 남아 있었다. 먼지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것 또한 부재가 길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창문이 없는, 집처럼 꾸민 공간이었다. 강태수는 배경목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한참을 뒤졌다.


‘이 밑까지 전기가 들어올 정도라면 그 이유가 있을 텐데, 유추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전부 사라졌군.’


강태수가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태수와 다른 쪽을 찾고 있던 한철범이 강태수를 불렀다.


“강 대령님, 이쪽으로 와 보십쇼.”


한철범은 벽에 몸을 딱 붙이고 있었다. 강태수는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곧장 알아차렸다. 강태수와 한철범이 벽에 손을 짚고 힘껏 밀었다.


끼익.


드러난 공간에는 커다란 책상과, 온갖 사진과 종이가 여럿 붙은 벽이 있었다. 대부분 강태수의 사진이었고, 강태수의 이야기였다. 강태수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듯이, 박정필도 이곳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툭.


강태수가 벽에 붙은 사진을 한 장 뗐다. 강태수가 군산으로 향하는 성예진을 배웅하는 사진이었다. 강태수가 일부러 찍혀 주었던 사진 중 하나였다.


“이게 전부 여기 있었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사진들 말입니다. 사진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박정필만이 아니었습니다. 저 또한 일부러 찍혀 주었었습니다, 몇 번.”


다행히도 성예진의 사진은 얼마 없었다. 강태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줄 알면서도 둔 것은, 발견하라는 뜻이겠고.’


충분히 살핀 후에 다시 벽을 닫으려는 한철범을 보며 강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내가 일부러 들어오도록 한 것이니까. 괜히 힘들이지 말고 돌아갑시다.”


한 번 정도는 적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과만한 적을 상대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적···. 이제는 내가 정필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군.’


강태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었다. 사실은 어느 때보다 명료했고, 강태수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박정필이 이번에 ‘형제’를 상대한 일은 명백한 실패가 되어 그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중이었다. 강태수에게는 시간이 생겼고, 박정필은 점점 더 초초해졌다.

그럼에도 강태수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일말의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강태수의 생각보다도 큰 것 같았다. 강태수는 처음 집이 들었던 딱 한 장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거의 나오지 않은 옆모습이었으나 사랑하는 여자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왜 내가 이곳을 찾도록 둔 걸까. 배경목을 숨겨 둔 곳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박정휘는 ‘강인수’의 일로 강태수를 찾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침묵은 의문을 불러오는 법이었다. 이 의문이 해결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박정휘까지 ’영광‘의 줄이 닿아 있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해당 일을 몰랐는지 강태수 자신을 문책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는 처사였다. 한철범은 강태수의 지프로 익숙하게 미행을 따돌렸다. 결국 목적지는 중앙정보부였지만 과정이 중요했다.

강태수는 일부러 한철범을 인파가 가득한 곳에 내려주었다. 인파 속에 섞인 한철범이 물 흐르듯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강태수는 잠시 그대로 멈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 주는 동력은 그 무엇에도 비견할 바가 되지 못했다. 지친 얼굴 속에서 보이는 한 줄기 웃음, 강태수는 끊임없이 그 웃음을 찾아다녔다.


“엄마!”


한 아이가 소리 높여 부르자 여러 여인들이 돌아봤다. 그 움직임에 어젯밤, 부드럽게 묻던 형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네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태수야.’


이제는 답을 알 수 있었다. 강태수가 원하는 세상은 저들이 먼저인 세상이었다.

국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먼저인 세상. 그들을 위한 세상.

다시 한 번 정권이 바뀌며 세상도 바뀌는 듯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강태수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부패한 자리를 잘라내면 다시, 또 다시 생겨났다. 강태수는 사실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앉는다한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이 같은 지독한 회의감이 밀려올 때면 강태수는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찾았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바쁜 발끝과,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강태수는 쌀가게의 쌀을 뺏어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음을 비난하였지만, 그 사실이 국민들에게 준 기쁨을 모르지 않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의 애환을 알고 있었다. 강태수 역시 젊은 날을 그렇게 보냈기 때문에.

강태수는 가만히 생각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찰나에 무언가가 강태수를 홀린 듯이 끌어당겼다.


‘··· 라면 냄새.’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인 앞으로 시선이 끌렸다. 라면을 끓여 아이들에게 나눠 주는 여인이 보였다. 라면을 끓여 아이들에게 나눠 준다는 사실을 안 후로 ‘형제’는 꾸준히 여인에게 ‘형제라면’을 기부했다.

강태수는 차에서 내려 그곳으로 향했다.


“아주머니.”

“아, 태수 청년. 웬일이야. 장가를 가더니 더 잘생겨졌네.”


강태수를 발견한 여인이 반갑게 웃으며 강태수를 반겼다.


“오랜만입니다.”


강태수는 한여름에 불 앞에서 큰 솥을 붙들고 있던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끓기 시작한 면이 잘 풀리도록 크게 저어 줘야 했다.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강태수는 익숙하게 라면을 마저 끓이고, 그릇에 담아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 사이 장현영은 한숨 돌리며 강태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군복을 입은 강태수를 경계하던 아이들이 결국 고개를 꾸벅 숙이며 라면을 받아 갔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아이까지 전부 보내고 나서, 강태수는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았다.


“힘들지?”


장현영이 손수건을 건네며 웃었다. 강태수 역시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힘든 걸 어떻게 매번 하실 수 있는 건지 가늠이 안 될 정도입니다.”


강태수는 가끔 이렇게 장현영을 도와주러 왔지만, 그때마다 땀에 흠뻑 젖은 꼴이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몸 쓰다 보면 생각은 없어져.”


장현영의 말에 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강태수가 잠시 멈칫했다.


“도움이 좀 됐는가 모르겠네, 태수 청년.”

“어떻게 아셨습니까?”

“모를 수가 없지. 아직도 온 세상이 자네와 자네 형의 이야기를 하는데.”


강태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자네의 고민은 조금 달라 보이지만, 그래도 티는 난다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겁니까?”

“자식을 키워 본 부모라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거지.”


장현영의 아이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입을 여는 장현영의 표정이 너무도 쓸쓸해서, 강태수는 다른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그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말이야. 그 작은 얼굴 안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속들이 보여.”


강태수는 장현영의 시선을 따라 라면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장현영은 강태수를 보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은 오로지 강태수를 위한 말로 움직였다.


“그러니 자네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해. 언제나 정답에 가깝게 살지 않았나. 나한테는 태수 청년도 아들이나 마찬가지니까. 어미는 늘 자식이 옳은 길로 가기를 바라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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