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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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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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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63화

DUMMY

강태수는 집에서 머무는 동안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성예진과,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집 안은 안락했고, 평생 가져 보지 못한 행복이 그곳에 있었다.

행복이 주는 달콤한 감각은 끊기 어려울 정도로 중독적이었다. 아무래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럼 도망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강태수가 이 공간의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할수록, 더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무색해졌다. 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강태수 자신이 지금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가족도, ‘형제’도 그대로 멈춰 버리고 말 것이었다.

지금 멈추는 일은 영구히 무너지는 결과만을 불러올 터였다. 수십, 수백 개의 명분으로 사람들은 옥에 갇혔다. 강태수라고 언제까지나 예외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제일 먼저 처리하려고 하겠지.’


강태수는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알려고만 한다면 더욱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박정휘는 강태수 역시도 견제할 것이 분명했다. 강태수는 잠든 성예진의 이마에 입 맞추며 다시 다짐했다.


‘베기 위해서만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칼.’


그리고 그 다짐을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전하기 위해 강인수를 찾아온 것이었다. 강태수는 여전히 창밖으로 느껴지는 기척들에 웃었다. 갑자기 입꼬리를 올려 웃는 강태수를 보며 강인수 역시 멋들어지게 웃었다.

장준하 선생은 형제의 웃는 얼굴이 아주 닮았다고 생각했다. 불안했던 기분도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자 눈 녹듯 사라졌다. 이상한 힘이었다.

강인수와 함께 있을 때도 긴장이 풀리긴 했지만, 강태수가 등장하자 마음이 놓였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태수를 발견하자마자 그러했다. 강태수의 온몸에서 확신이 가득했다. 그의 열기는 피부를 타고 흘러 공기에 스며들었다.

장준하 선생이 마른 입술을 한 번 축이고 입을 열었다.


“강태수 대령,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알고 말하는 것이라고 믿겠소.”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강 대령이 치기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내가 방금 들은 말이 현실이 맞는지 고민하게 되는군.”


강태수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지난번 차에서 드린 말씀과는 조금 변화가 있으니 말입니다.”


강태수는 지난번에 자신의 지프에서 장준하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선생님, 지금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강 대령. 뜻이 아니라니?’

‘선생님과 함석형 선생께서 진실을 보셨습니다. 지금 저들은 정권을 이양할 마음이 없습니다.’

‘역시 그들은 믿음을 저버렸고,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군.’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혁명이라도 일으키자는 뜻이요? 4.19처럼.’

‘아닙니다. 그때 흘린 피들은 아직도 식지 않았습니다. 민중에게 또다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강태수의 말에 장준하가 잠시 침묵했다. 강태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저들을 속여야 할 때입니다.’

‘강태수 대령, 사방이 저들의 눈과 귀요.’

‘그러니 제가 ’트로이의 목마‘가 되겠습니다.’


강태수는 그날 그렇게만 이야기했다. 자신이 ‘트로이의 목마’가 되겠다고.


“지난날에 이야기한 그 이야기요?”


장준하 선생의 물음에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수는 강인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적을 이기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정 어려운 방법은 적을 속이는 것입니다.”


어느덧 무거운 침묵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강태수는 가만히 창밖을 가리켰다.


“적들의 영역 한가운데로 들어가 속에서부터 찢고 나오는 방법, 그것만큼 파괴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도전적이고, 위험한 방법도 없었다. 들키는 즉시 목숨은 날아갈 것이었다. 강태수가 ‘트로이의 목마’에 빗댄 자리는 단순한 자리가 아니었다.


“태수야. 나는 너를 언제나 응원하고, 언제나 믿는다. 하지만 그 계획은, 그래. 솔직히 무섭구나.”


따뜻하게 데워 두었던 차는 전부 식어 있었다. 강인수의 손도 차갑게 식어 갔다.


“형님.”


강태수가 희미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죽게 될 겁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가정이었으며,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결론이었다.


“저들은 정보를 얻는 대로, 그것들을 모조리 이용할 겁니다. 눈엣가시였던 사람들을 간첩이라며 누명을 씌워 죽이고, 정권을 이양하라며 시위하는 이들을 끌고 가 고문하고, 또다시 고문해서 적들의 사주였다는 거짓 자백을 받게 할 겁니다.”

“···.”

“벌써 지금부터 재채기 한 번 마음 편하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준하 선생이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고 이야기했고, 믿는다는 답을 받았으나 그 답의 실체는 미행입니다.”


이 자리에 강태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장준하는 강인수의 집에 오기 위해 신문 배달부로 위장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휘는 지금 저와 박정필에게 경쟁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편도 노골적으로 들지 않으면서, 상황을 키워 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럴수록 박정필에게도, 저에게도 세력이 붙기는 어려우니 말입니다.”


중앙정보부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더라도, 지금 박정휘의 입지는 날로 단단해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문제들만 골라 해결하는 탓에, 민중들의 눈에는 그들의 일처리가 빨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조차도 박정필이 미리 세워 두었던 계획이었다. 강인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이리, 하나도 쉬운 게 없는지 모르겠다.”


강인수의 한숨이 집 안에 퍼져 나가는 동안, 강태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쉽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잠깐은 분위기가 제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강태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박정필이 옷을 벗고 백수였던 동안, ‘사상계’에 지원서를 냈다가 퇴짜를 맞았던 일에도 불구하고, 박정필은 쿠데타에 성공하자마자 ‘사상계’를 포섭하고 싶어 했다. 결과는 매번 실패였다.

그러던 중 강태수는 단 한 번에 ‘사상계’와 장준하를 끌어들인 인물이 되었다.


“강태수 대령이 그간 보여 준 행보 덕분이요. 내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 것도 더불어서. 쿠데타가 있고 나서 그동안 내가 만난 군인들은 모두들 아직 나라가 안정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했소.”


강태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한숨으로 조용하게 내뱉었다.


“혹시라도 권력에 탐이 나서, 그 자리에 한 번 앉고 나니 벗어나고 싶지 않냐 물으면 화를 내고, 욕을 했지. 그렇기에 7월호에 그 글이 실리도록 한 것이요. 그들의 진실한 반응을 보고 싶었고, 덕분에 나는 답을 보았소.”

“그 부분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강태수 대령이 사과할 필요는 없소. 사과할 사람들은 따로 있지. 그래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요?”


강태수가 자신의 손을 맞잡아 깍지를 끼고, 잠시 고민한 후에 입을 열었다.


“아무리 박정휘여도 중앙정보부장의 자리를 오래 비워 둘 수는 없을 겁니다.”


자리는 거의 두 달 동안 공석이었다. 내정자가 강태수와 박정필 둘로 좁혀졌다고는 하나, 권력을 원하는 자들이 늘어날수록 일이 복잡해질 터였다. 밑을 제압하는 제일 효율적인 방법은 본인을 제외한 가장 센 인물을 앉혀 놓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휘는 하나를 앉힘으로써 아래의 수많은 인원들을 자신의 아래에 둘 수 있었다.


“박정휘와 박정필은 사돈으로 묶여 있고, 수년을 함께 지낸 사이입니다. 제가 그 틈을 이 짧은 시간 만에 비집을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제 등 뒤에 형님과 ‘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강태수는 강인수뿐만 아니라 장준하 선생 역시 정확한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승만 정권에 반대했고, 독재에 가장 열렬히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저들은 벌써 장준하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다.


‘처음부터 싹을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박정휘는 저와 박정필에게 힘겨루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자신의 옆에서 자리를 지켰던 박정필에게는 힘을 보여 달라는 것이고, 제게는 자신을 향한 충성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어디 한 번 해 봐라, 어디 한 번 이긴 놈이 앉아 봐라. 선생님 덕분에 이번 한 번은 제가 이겼고, 다음번은 어떻게 될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강태수의 얼굴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강태수가 입꼬리를 올려 그 어느 때보다 멋들어지게 웃었다.


“그래도 기습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강태수는 본래 반격보다 습격에 능한 사내였다.


*


정보전에서라면 강태수는 박정필에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강태수는 집에 머무는 동안에도 꾸준히 정보원들에게서 정보를 전달받았다. 그 정보 중에는 쓸 만한 것들이 꽤 있었다.

신혼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강태수를 다들 반겨 주었다. 그중에서 강태수를 제일 열렬히 반겨 준 것은 박정필이었다.


“태수, 그 며칠 사이에 얼굴이 꽤 좋아졌는데. 역시 신혼이 좋은 거군.”

“농담이 짓궂네, 정필.”


강태수는 아무렇지 않게 박정필에게 대꾸했다. 둘은 여전히 사이좋은 동기, 막역한 친구처럼 보였다. 속에는 둘 다 각기 다른 칼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강태수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으로 따라 들어오는 박정필을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편이 자연스러웠다. 강태수는 별다른 동요 없이 서랍을 열었다.

강태수는 결혼식 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건드릴 수밖에 없는 곳에 흑탄으로 조그마한 표식을 남겨 두었다.


스윽.


흑탄은 강태수가 남겨두었던 것에 반해 미미하게 묻어났다.


‘보라고 둔 것이니, 쓸모를 다했군.’


강태수는 고개를 숙인 채 배부른 맹수처럼 흡족하게 웃었다. 박정필은 강태수가 서랍에 넣어 두었던 서류의 내용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었다.

제일 교묘한 거짓은, 커다란 진실 속에 숨은 몇 줄의 혼란으로 만들어졌다.


스륵.


강태수가 서랍을 부드럽게 닫았다.


“내가 쉬는 동안 정필 자네가 내 일까지 떠맡은 건 아닌가 걱정되는군. 바쁜 사람한테 괜히 일을 더 준 듯해서 말이야.”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나, 자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인들을 태수 자네에게 주선하고 싶어 했는지 알면서 말이야. 그런 친구에게 결혼식 당일까지 신부의 얼굴은 보여 주지도 않고.”

“하하, 서운했나 보군. 안 그래도 아내가 자네를 궁금해해. 내게도 친구가 있냐면서 말이야.”

“하하! 태수 자네의 아내가 된 여인다운 말인데!”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큼은 박정필의 이야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강태수가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그래서 말인데, 정필. 조만간 우리 집에 초대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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