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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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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2.03.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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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81화

DUMMY

강태수의 인생은 언제까지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끝없는 여정이었다. 하나를 이루면 다시 새로운 하나가 나타나고, 하나를 해결하면 다시 여럿의 문제가 생겼다. 장애물과 방해가 나타났을 때, 어린 날의 강태수는 온몸으로 들이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요령 없는 방식보다 어떻게 행동하는 게 효율적인 방향인지 깨달았다. 절벽 아래를 보지도 않고 뛰어내리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강태수는 커다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몇 개월 동안 비어 있었으나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강태수는 몸을 감싸는 의자에 앉아 등을 묻었다.


‘이 자리 하나가 뭐라고.’


이 의자에 앉기 위해 그동안 숨 한 번 돌리지도 못하고 뛰기만 했다.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강태수가 더욱 잘 알았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성예진의 웃는 얼굴 말고는.

지키고 싶은 게 생기면 사람은 언제나 모든 수단을 찾게 돼 있었다. 강태수가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강태수를 붙든 것은 늘 높고 맑은 그 웃음소리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처럼 간지러운 웃음소리.

강태수는 상자에서 액자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다른 마음을 먹거든, 그 순간을 바로잡기 위해서. 뒤편의 금고에 상자 속 내용물들을 전부 넣고 나서 강태수는 몸을 일으켰다.

집에 돌아가서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기 위해.


*


강태수는 자신을 마당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던 성예진과 함께 집에 들어오자마자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성예진 역시 강태수의 등을 마주 안고 토닥였다.


“고생했어요, 여보. 장을 좀 보러 갔다가, 소식 듣고서 바로 집으로 왔어요. 심장이 진정이 안 돼서, 아직도 쿵쿵거리는데.”

“놀라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아기에게 안 좋을 수도 있는데.”

“태수 씨를 닮았을 게 분명한데요, 뭘. 우리 아기는 엄청 튼튼할 거예요.”


강태수는 성예진의 어깨를 감싸 안고 고개를 묻었다. 성예진의 부드러운 머리칼과 따뜻한 체온을 느끼자 그제야 피로가 몰려들었다.


“해 줄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태수는 성예진을 품에 안은 채 이야기를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정돼 있던 것 같습니다.”


몇 시간 전 강태수가 맛보았던 공기는 위화감 그 자체였다. 부조화스러운 모든 움직임과, 경직돼 있던 사람들 속에서 눈치를 보던 이들까지 전부 다.


“뭐가요? 설마 부장 자리가요?”


강태수의 옆에서 강태수에게 안기다시피 하고 있던 성예진이 놀라서 몸을 떨어뜨렸다. 강태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했던 생각이었다. 강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투표는 투표였지만, 거수였습니다. 제일 처음 손을 든 사람 역시 의장이고.”


강태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몇 번 눌렀다.


“그런데 의장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짐작해 보려고 해도, 이제는 조금 어렵게 느껴집니다.”


강태수는 박정휘가 강태수 자신에게 무엇을 더 얻고자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형제’는 강태수가 중정부장의 자리에 앉은 이상 더욱 치밀한 관심 속에서 살게 될 터였다.

강태수와 강인수, 그리고 강철수가 형제사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간첩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었다.


“지금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부정 축재 문제를 내가 강력한 조치로 해결해 버린다면, 재벌들의 반감은 살지언정 여론을 안게 됩니다. 하지만 의장은 내가 큰 힘을 가지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몇 달 동안 나와 박정필을 경쟁하도록 부추겼으니 말입니다.”


쿠데타 이후에 장관에서부터 각 시도지사까지에 이르러 현역 군인들이 모두 한 자리씩은 꿰차고 앉게 된 상황이었다. 그렇게 현역 군인들이 군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이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군사 정권은 쿠데타 직후에 이 쿠데타에 반대했거나 불만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내비치는 지휘관들은 줄줄이 옷을 벗겨 버렸습니다.”


쿠데타가 발발한 지 두 달 만에 일 만여 명 이상의 장교와 장성들이 옷을 벗게 되었다. 대신에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들은 모두 한 계급씩 진급했다.


“그중에서 박정휘 의장은 이번에 쓰리 스타를 달았습니다. 그 이유로 권력이 무엇인지 더더욱 알게 됐을 겁니다.”


그러나 나누더라도, 공평하게 나눌 수 없었다. 중앙정보부라는 기관은 8기생들의 소관이라고 보아도 무관했다.


“중정부장 자리를 한참 비워 두는 동안에도 권력을 지나치게 몰아주는 것이 안인지라는 불만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를 보란 듯이 앉혔다는 건, 분명히 꿍꿍이가 있을 겁니다.”


태지욱에게 부탁해 강태수 자신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게 하라는 말을 한 것은 강태수였다. 하지만 자꾸 미세한 부분이 신경을 긁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하나 잊은 것처럼.


“의장은 본인보다 계급이 높았던 선배들을 모두 퇴역시키거나 외국으로 보냈습니다. 대사의 자격으로 말입니다. 사실상은 추방에 가깝지만.”


그렇기에 강태수는 더욱 박정휘의 의도를 가늠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예진이 다정하게 강태수의 등을 토닥였다.


“오늘은 더 생각하지 말아요, 태수 씨. 한동안 잠도 못 잤잖아요. 잠깐이라도 눈 붙이는 게 좋겠어요. 피곤해 보여.”


성예진의 말에 이상하리만치 긴장이 풀렸다. 강태수는 짧은 시간 동안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깼어요?”


강태수는 앞치마를 두르고 국을 끓이고 있던 성예진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옆에 없어서 놀랐습니다.”

“아이, 참. 내가 어딜 간다고 그래요.”

“한 달 넘게 떨어져 있었더니, 어쩔 수 없습니다.”


커다란 고민은 잠시라도 전부 제쳐 두고 싶었다. 그날 강태수와 성예진은 오랜만에 소소한 저녁을 맞았다.

강태수가 중앙정보부의 부장이 된 날에.


*


강태수는 현실에 살아야 하지 않겠냐던 성예진의 말을 종종 떠올렸다. 그렇게 말하면서 웃던 얼굴을 떠올리면, 무슨 일이든지 버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정부장으로 중정에 도착하자마자, 강태수는 박정휘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했는지 알게 되었다. 강태수는 취조실에 남아 있는 이들을 일일이 대면해야 했다.


“내가 부정 축재를 내 손으로 원해서 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소. 법이 그렇게 생겨 먹은 걸 내가 어떻게 하란 말이요. 다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나도 먹고살아야는 하지 않겠소.”

“이득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정 축재라 몰아가는 것은 좌익적인 생각이 아입니꺼?”

“돈을 벌어야 먹을 것 먹고, 입을 것 입어 가며 사는 것인데, 왜 이것이 불법이란 말이야?”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고개를 숙였던 재벌들이 강태수의 앞에서 목을 빳빳이 들고 핏대를 세우며 큰소리 쳤다. 그 순간 강태수는 수법이 너무 치졸하다고 생각했다. 유치한 것도 더불어서,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 준다면 나야 고맙지만.’


강태수는 뻔뻔하게 되묻는 이들에게 굳이 하나하나 대꾸하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누구의 사주인지 알 수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 박정필의 소관 아래 있던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강태수는 각기 다른 대답을 했다. 말이 새어나간다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장치였다.


“지금은 효수梟首하지 않는 시대이긴 하나, 시대는 언제나 만드는 것이 흐름이지 않겠습니까.”

“원해서 쌓은 부가 아니라면 국가에 환원하면 되겠습니다.”

“합법의 선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 아닙니까? 그러나 벌금을 낸다면 상황은 점점 잠잠해질 겁니다.”


환원과 벌금. 하늘과 땅 차이의 이야기였다. 환원이라는 말을 들은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벌금이라는 소리를 들은 남자의 얼굴은 이것보라는 듯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환원!? 그런 미친 소리를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아시오!”

“내 그럴 줄 알았지. 강태수 부장의 형도 이 사업하는 사람이니 분명히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니까, 어? 벌금 정도야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마음으로 충분히 낼 수 있다고. 그래서, 그 벌금이 얼만가?”


전혀 다른 이야기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원해서 얻은 부가 아닌데 환원하지 못할 이유는 뭐란 말입니까? 본인 손으로 한다면 환원이고, 나라가 힘을 동원한다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겁니다.”

“그건 정해지면 알게 될 거고.”


길들이겠다는 명목으로 강하게 굴 생각은 없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저들이 협조하지 않는 것을 내가 무슨 수로.’


강태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부장실로 돌아왔다. 상반된 반응들이 금방 퍼져나갔다. 강태수가 각기 다른 말을 했다는 사실 또한 암암리에 입과 입을 타고 전해졌다. 강태수는 흐르는 말들을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알 만한 회사들의 수장이라는 이유로 꽤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반출하고 반입하는 것 또한, 며칠 동안 두고 보았다.

강태수는 부장실에 올라온 정보원에게 그동안 흐른 것들을 확인했다. 정보원이 난감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들이 부장님을, 이빨 빠진 사냥개라 칭하며 기롱하고 있습니다.”

“이빨 빠진 사냥개라···.”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사냥개란 말인가. 강태수는 평생을 사냥하며 살아왔으나 누군가의 목줄에 매여 산 적은 없었다. 가소로웠다.


“처리해야 한다면 하겠습니다.”

“그냥 둬.”


방심해 주겠다는데, 사양할 필요는 없었다. 웃고 떠드는 순간에 목덜미를 뜯겨야 현실을 느리게 깨닫는 법이었다. 강태수는 정보원을 돌려보내고 창밖 아래를 바라보았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인영들을 보면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든 허수아비로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났군.’


그러나 박정휘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강태수는 상대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이를 악물고 달려들게 되는 성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든 또 해결해야겠군. 방법을 찾아야겠어.’


강태수는 상황을 더욱 면밀하게 살피기 위해 신경을 기울였다. 가만히 당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저들이 원하는 상황이니까. 저들에게 흔들리기를 바라고 있는데, 원하는 대로 흔들릴 수는 없다.’


그 후에 강태수는 일주일 동안 더 잡아 두었던 수장들 중에서 유독 말이 적었던 사장 하나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런 상황에 하는 말이라 조금 우습긴 합니다마는, 나는 강태수 대령, 아니지. 강태수 부장을 단둘이 만나게 되는 날만 고대해 왔소. 강인수 사장의 동생이라는 이유 때문에도, 전쟁 영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도 아니라, 내 아들 때문에 말이요.”


상대는 강태수도 익히 알 정도의 큰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내였다. 익숙한 얼굴이 기억날 듯하면서 기억나지 않아, 강태수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많이 늦었지만, 내 아들의 목숨을 구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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