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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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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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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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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73화

DUMMY

“나를 이해시켜야 할 걸세.”


짧고, 간단한 말이었다. 반대로는 이해시키지 못한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었지만, 강태수는 개의치 않았다. 강인수가 중앙정보부에 제 발로 왔던 일이 강태수의 입지를 유지하게 만들었던 일이었다면, 이번에는 강태수 스스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 했다.

권력에 취한 오만한 사람이 하는 실수는 주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강태수는 이제 누구도 박정휘에게 국민들이 정권 이양을 바라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 스스로도 정권을 이양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은연중 내비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는 것은 때때로 독이 되었고, 주로 득이 되었다.

그렇기에 강태수는 박정휘를 이해시킬 생각이 없었다.


‘이해는 하는 것이지, 시키는 것이 아니라.’


박정휘는 보란 듯이 의자를 등 돌려 앉아 있었다. 강태수는 등받이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상대를 구태여 마주 보게 할 필요 또한 없었다.


“사람들? 무슨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인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두 지켜 본 사람들 말입니다.”

“흐음.”


강태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장부는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것들이 아닙니다. 사상계 8월에 적힌 회사들의 간부들이, 혹은 간부였던 자들이 자발적으로 제게 준 것입니다.”


강태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어디에 있고, 어디에 있었든지 간에 가리지 않고 모두를 만나기 위해 애썼다. 강태수의 정보원들과 함께 만나거나, 따로 만났다.

강태수에게 정보를 준 자들은 대부분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형제’를 필두로 하며 부정 축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는 말이 퍼진 것과 동시에, 여러 회사들의 회계를 담당하거나 혹은 제일 가까웠던 실무자들을 내몰았다.

개중에는 정말 정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닌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장부와 목숨을 걸고 거래를 하자는 이들 역시 존재했다.

박정휘가 여전히 의자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얻은 정보겠지?”

“예.”


뒤탈이 날 리 없냐는 속뜻에 강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런 거래를 시도했을 때는 대부분.’


강태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살아남고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전쟁 영웅’이었습니다. 원치 않았지만, 제게 제일 과분하게 붙은 칭호입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의 강태수는 전쟁 영웅이자 ‘형제’를 이끄는 강인수 사장의 동생입니다.”


강태수는 수많은 이들이 강태수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이 조직 안에서조차 그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명확히 깨닫고, 착각한 적 없었다.

박정휘가 왜 강태수 자신을 마지막에 설득하러 왔는지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은 강태수의 배경이 필요했고, 강태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과 그 의지가 필요했다.

한쪽의 이해관계는 충족했으나 다른 한쪽은 기운 지 이미 오래였다.


‘추를 다시 세워야 할 때지. 이 이상 늦어서는 안 돼.’


강태수는 몰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던 날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어디에도 평범한 남자인 강태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복을 입지 않은 강태수를 알아보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기를 바랐기에, 강태수의 마음도 한결 놓였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강태수’도 군복을 벗으면 평범한 사람처럼 섞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내내 온전히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느낌으로 붕 뜬 듯이 살아왔으나, 역설적으로 강태수 스스로 제일 상징적이라 믿어 왔던 군복을 벗은 순간 기이한 소속감을 느꼈다.

강태수가 내내 느끼는 위화감이 그 기원이라는 사실을 모른 척할 생각은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의 원인이 강태수의 눈앞에 있는 남자라는 것 또한 명백했다.


“사람들은 ‘강태수’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이가 당사자일 거라는 생각은 하는 듯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묻는 이 역시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 사이에 섞여 최대한 일반적인 국민들의 생각을 듣고자 애썼습니다.”


장현영의 도움을 받아 일꾼처럼 분장하고 여러 사람들의 대화를 귀동냥했다.


“국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일관적입니다.”


강태수는 눈앞의 남자에게는 트리거와도 다름없을 말을 당겼다.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쾅!


“뭐라고!”


반응은 즉각적이었고, 박정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척!


강태수는 총구를 들이미는 박정휘를 동요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박정휘가 방아쇠를 당긴다면 중상을 입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아무 말도 없이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질수록, 강태수의 손에 배어 나왔던 땀은 점점 사라져 갔다.


“의장님.”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면,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거겠지. 아니면 죽고 싶다는 말을 돌려 했거나. 내가 이 방아쇠를 아직 당기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일세. 강태수 대령이 그간 쌓은 공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이유 하나 말이야. 방금 강태수 자네를 살린 건 과거의 자네야. 하지만 그것도 한 번뿐이지.”


강태수는 박정휘의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바라보았다.


“오 분 안에 나를 이해시켜야 할 걸세. 그렇지 않다면 자네는 오늘 이 방을 걸어서 나가지 못할 테니까.”


강태수는 차근히 다시 입을 열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잠깐의 평화가 아닙니다. 잠깐 동안 굶주림을 면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를 살아갈 돈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총구는 눈앞에 형형히 버티고 있었다. 이 정도의 압박은 충분히 고려했던 바였다. 사실은 박정휘가 꽤나 인내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하고 있었지만.


“‘형제’의 강인수 사장과 처음 라면을 논의했을 때, 수익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시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형님께 말씀드렸던 방법은, 사람들의 허영심을 활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허영심?”

“예, 그렇습니다. 12원짜리 ‘형제라면’을 꾸준히 구매하는 자들에게 ‘이번 달의 기부자’ 명패를 세워 주기 시작하면서, ‘형제라면’을 먹지 않으면서 ‘형제의 집’의 명패에 걸리고 싶어 라면을 구입하는 자들이 종종 나타났습니다.”


내막은 자세히 모르지만 박정휘 역시 들어 본 적 있는 이야기였다.


“그 명패 하나로 ‘형제라면’의 판매량은 늘었지만 정작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자들에게 돌아갈 라면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라면을 생산해야 했고, 적자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

“그러한 때에 강인수 사장과 다시 고려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방법으로 이 소위 좀 있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활용할 수가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명패’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라면을 사는 것보다 싼 값에 매달 꾸준히 ‘형제의 집’에 직접 기부를 하면, 그 돈으로 다시 라면을 구입해 아이들을 먹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그 기부자의 이름으로 명패를 세워 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영광’에서는 이 부분을 책잡으려고 했고, 실제로 협박을 해 오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영광’의 이름을 듣자마자 박정휘의 팔이 잠시 휘청했다.


“그러고는 그들도 고아원을 만들겠다고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며 아이들을 그저 수단으로 취급하면서 말입니다. 그 증거 역시 모아 두었습니다.”


툭.


박정휘가 그제야 책상 위에 총을 내려놓았다.


“장부에 있는 이들에게 자진 출석 권유하십시오. 호명하지 않으며 신문에 공고를 내고, 그리고 의장님의 이름으로 사상계에 투고한 이를 밝히십시오.”

“내 이름으로 말이야?”


강태수는 박정휘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글을 쓴 게 강태수 대령이라고 말입니다.”


강태수가 장전돼 있는 총을 한 번 흘긋 바라보았다.


“꼴이 우스워지지 않겠어?”


어느덧 박정휘의 기세는 눈에 띄게 누그러져 있었다. 우스워지지 않겠냐고 묻는 이의 행동과 달리 박정휘는 머릿속으로 강태수가 이야기한 그림들을 확인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세 가지의 구실을 전부 잡게 됩니다.”


강태수는 그때를 본능적으로 알았고, 그대로 쐐기를 박았다.


“대중들이 믿고 있는 사상계라는 ‘옳은’ 입을 빌린 것부터, 군사 정권이 국민들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과, 부정 축재를 진정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세 가지 말입니다.”


잠시의 침묵이 지나갔다. 강태수가 몇 번 겪어 본 결과, 이 침묵은 긍정의 침묵이었다.


“그렇게 해.”

“예.”

“대신, 아무도 모르게 해.”

“명심하겠습니다.”


박정휘는 이미 모든 계산을 끝낸 후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먹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잘 짜인 판이었다. 지금 걷어차 버린다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몰랐다.

박정휘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강태수는 이 상황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그 누구도 무고한 자가 나오지 않도록, 억울한 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갖은 애를 써 가며 움직였다.


“나가 봐.”


강태수가 허리를 깊이 숙이고 방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신문들은 각기 같으면서 다른 말들을 쏟아냈다.


[사상계 8월호 투고자는 강태수 대령]

[군사 정권은 국민들의 바람을 듣고 있다]

[‘영광’ 배경목 이사 중앙정보부 자진 출석]

[‘동우’ 김진평 사장 중정 자진 출석]


누군가 중정으로 걸음 할 때마다 하늘에 호외가 나부꼈고, 여론은 순식간에 움직였다. 사람들은 모일 때마다 강태수와 사상계, 중앙정보부를 이야기했다.


“사상계에 그 글이랑 장부 투고한 게 강태수 대령이라던데, 봤어?”

“당연히 봤지! 지금 그 일을 모르면 간첩 아니야, 간첩!”

“지금 아주 줄줄이들 들어가고 있던데, 남산이 아주 문전성시야!”

“저 나쁜 놈들이 쌓은 재산은, 그럼, 어? 우리도 좀 나눠 주나?”

“꿈들 깨쇼!”


하지만 냉정히 말한 사내도 결국은 슬쩍 웃고 말았다. 복잡한 장부는 읽을 줄 모를지언정, 그 액수가 일평생을 일만 한다고 해도 만져 볼 수 없는 정도라는 사실은 모두들 느꼈다.


“나쁜 놈들 잡아서, 어? 나라에 돈 많아지면 우리도 좀 나눠 주고 그러지 않겠어? 군인들이 맨날 그랬잖아. 다 같이 잘 사는 나라 만들겠다고.”

“그렇긴 한데, 한두 번 속아? 더 속을 힘도 나는 없다고. 뒤통수가 아주 납작해, 이제는.”

“그래도 강태수 대령이면 믿을 만하지 않나?”

“그건 자네의 말이 또 맞지만···. 아무튼 나는 이제 몰라. 신경도 쓰기가 싫다니까!”

“성건이 자네, 강인수 사장 남산에 자진 출석했다고 했을 때 막걸리 마시고 주정 부렸던 것 세상 사람들이 다 아네! 그때 자네가 뭐라고 했지?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그랬지. 그러고 일주일 뒤에는 또 뭐랬더라!”

“아이! 그 이야기는 왜 하고 그래!”


오랜만에 시장에 활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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