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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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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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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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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76화

DUMMY

그야말로 강태수의 인생에서 일어난 일들 중 제일 마법 같은 일이었다. 평생 이해할 리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감정들이 물 밀 듯이 밀려와 강태수를 덮쳤다.


“저는 제가 그 무엇도 놓치고 산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바람이었다. 쉼 없이 달려오느라 잃어버린 것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가질 수 없다면 탐하지 않았고, 가질 수 있다면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는 것이 강태수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럴수록 뒤로 미루고 산 것들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강태수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지독하게 살고 싶구나.’


생에 대한 의지를 생각하는 일은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언제까지고 머리를 헤집었다. 강태수는 종종 혹자들이 이야기하는 강태수 자신의 신중한 점이, 생각이 많다는 점이 자신의 약점이 아닐까 여겼었다.

그러나 강태수는 매 순간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해 왔다. 끊임없이 내달렸고, 끊임없이 걸었다. 그것이 정녕 질주는 아닐지라도, 그것이 정녕 쾌속은 아닐지라도.

강태수는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는 형의 체온을 느끼면서 동생을 떠올렸다. 강철수는 강태수의 부탁에 따라 군산에 가 있었다. 성예진이 ‘바다집’을 비운 동안 어떻게 하면 ‘형제의 집’과 ‘바다집’을 능률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알아보겠다는 말에 강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염려하시지 않아도 될 겁니다, 형님.’


언제까지나 강태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동생이었다. 강태수가 나이를 먹으며 달려오는 동안 강철수 역시도 나이를 먹었는데도.

강태수는 잠에서 깨 강인수에게 팔을 벌리는 강지우를 보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강지우를 익숙하게 안고 어르는 강인수의 모습은, 강태수가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족들은 그렇게 식사를 끝낸 후에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강인수는 최민영에게 종종 의견을 물었고, 성예진에게 생각을 물어보는 것은 강태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군산에서도 여러 말이 많았어요. 전국의 나쁜 놈들이 이제야 벌을 받을 거라고 다들 들떠 있었죠. 그런데 한, 음. 서른 명 중에 한 명 정도는 부정적인 반응이 있었어요.”


성예진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한마디로 보여주기 식인 게 아니냐는 말이었어요.”


이 이야기는 서울에서도 종종 나왔던 말이었기 때문에 남은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예진은 배경목이 군산에서 하려 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강태수 또한 강인수와 같이 듣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미뤄 두었었던 이야기였다.


“배경목 그 사람은 ‘바다집’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했어요. 그럼 돈을 주겠다고. 아이들을 사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죠.”


주먹까지 쥔 성예진의 얼굴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나라에서 곧 고아원 지원 사업을 할 거라고 했어요. 자기가 알고 있는 거니까, 확실한 소식이라고.”


성예진의 이야기에 강인수가 강태수를 바라보았다. 강태수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국가사업 후보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들어갈 정도의 규모는 아닙니다. 아마 박정필이 배경목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를 쓴 것 같습니다.”


강태수는 손을 뻗어 성예진의 손을 잡았다. 성예진이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자기 말을 안 들었다가는 큰일이 날 거라고 했어요. 서울에서 도와줄 사람 같은 건 안 올 거라고, ‘형제’에 무슨 일이 생길 줄이나 아냐고···. 지금이 기회니까,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지금 자기한테 ‘바다집’을 넘기라고 말이에요.”


웬만하면 인상을 쓰지 않는 최민영조차 미간을 찌푸렸다. 최민영도 아이들을 돌본 세월이 오래됐기 때문에, 배경목의 술수가 얼마나 인간답지 않은 처사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모습은 확신하는 사람에 가까웠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전부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말이에요.”


문득 깨달은 듯한 최민영이 다시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나기 전에 이상한 말을 했어요. 자기가 ‘형제의 집’ 장부를 가지고 있다구요.”


강태수와 강인수가 서로 은밀히 시선을 교환했다. 이 이야기는 성예진이 일전에 강태수에게 해 주었지만, 강태수와 강인수는 그것이 ‘형제’의 장부라고 여겼다. 그게 강태수가 박정필을 위해 만들어 두었던 함정이었으니까. 강태수가 입을 열었다.


“장부 말입니까? ‘형제’의 장부가 아닌 ‘형제의 집’ 장부요?”

“네, 정확히 그렇게 말했어요. 그것만 세상에 공개되면 ‘형제’의 편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거든요.”


성예진의 이야기에 강인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알기로는 ‘형제의 집’ 장부 역시 ‘형제’의 장부 안에 속해 있어. 그것만 따로 존재할 수가 없는데. 철수가 내게 매달마다 정리한 내역서를 보내 오고 있고···.”

“알아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철수에게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휴가는 오늘이 끝인 것 같군요.”


강태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강인수가 안타까운 얼굴로 강태수에게 손을 저었다.


“너는 그냥 쉬어라, 태수야. 이번 일은 내가 해결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저쪽에 빌미를 주면 안 돼. 지금 다들 독이 바짝 올라 있을 거다.”


*


강인수의 말처럼 박정필은 말 그대로 독이 올라 있었다. ‘형제’에서 일부러 만든 거짓 장부에 속은 것도 모자라 강태수는 ‘사상계’까지 움직여 완전히 판도를 흔들어 놓았다.

박정필은 취조실에 묶인 자들 중에서 자신이 입을 막을 수 있는 자들을 가늠하기 바빴다.


“젠장, 젠장!”


아무리 일을 축소하려고 뛰어다녀도 장부가 모조리 공개된 판에 다른 수를 쓸 수가 없었다. 자금줄로 믿었던 ‘영광’마저 이제는 끈 떨어진 연처럼 나풀거렸다. 이번 부정 축재 감사가 끝난다면 ‘영광’은 꼼짝없이 도산하고 말 것이었다.


‘그전에 발을 빼야 하는데.’


그러나 박정필은 그들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상관없었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그 영향이 미치지 않으면 됐다.


‘그렇기만 하면 언제든 재기할 수 있다. 강태수가 중정부장이 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강태수가 중앙정보부의 부장 자리에 앉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터였다. 박정필은 분했다. 육사를 함께 다닐 때도 강태수는 언제나 여유로웠다. 박정필 자신은 죽어라 노력해서 수석을 따냈는데, 차석이 된 강태수는 그럴 줄 몰랐다는 반응이 전부였다.

어쩌면 강태수를 향한 선망과 열등감이 뒤섞인 기이한 감정은 육사 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십 년 넘게 해묵은 감정이 일순간에 사라질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런 중요한 때에 연쇄작용을 불러오는 일이라면 더욱.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정말 앞뒤가 전부 막혀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여기저기서 나를 끊어내겠다는 비겁한 이들만 나타날 뿐···.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태수였다면 어떻게···.’


강태수가 상황이 꼬일 때마다 박정필처럼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듯이, 박정필 또한 강태수처럼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강태수가 휴가라는 사실은 중정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그렇기에 강태수의 집무실 역시 비어 있었다. 강태수에게 집중돼 있던 일들도 지금은 일시 중지한 상태였다.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열렬하게 부정 축재 처벌을 부르짖었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서 ‘형제’는 제일 먼저 그 올가미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또 태수의 함정일 수도 있어. 지금은 이 방법을 쓸 때가 아니다.’


취조실에 갇힌 이들의 죄목이 늘어날수록 박정필의 고민이 깊어져 갔다.


*


강태수는 말리는 강인수에도 불구하고 함께 ‘형제’의 사옥에 도착했다. 강태수는 강인수의 사장실에 남아 있던 도청 장치를 전부 치우는 것과 동시에 건물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더 의심할 건 없습니다.”

“다행이구나.”


강인수가 강태수의 이야기에 대꾸하며 자물쇠로 잠가 두었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강철수가 정갈한 글씨로 모두 기록해 둔 ‘형제의 집’의 후원 내역이 있었다.


“장부를 조작할 때도 철수가 보내 준 이걸 제일 많이 활용했다.”


강태수는 강인수가 내미는 종이 뭉치를 받아들었다. 종이에는 날짜와 요일, 달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숫자만 아는 이라면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하게 적힌 내역이었다. 잠시 종이를 하나하나 훑어본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다시 한 번 활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말이냐?”

“정보원들이 박정필이 중정부장이 되기를 바라는 자들이 협잡꾼들을 끌어들여, ‘형제’의 장부 또한 공개하라고 하고 있다고 여론을 선동하려 한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형님께서는 직접 중정을 다녀가시면서 그 혐의를 풀었으나,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 의혹을 제기하면 다시 문제가 생길 겁니다.”

“네 말대로 틈을 주게 되겠구나.”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까지 살피던 종이 뭉치를 들고 온 가방에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상대가 먼저 나온 후에 움직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때마침 저들은 우리의 거짓 장부를 가지고 있고, 궁지에 몰리면 그것까지 쓰려고 들 겁니다. 여론을 환기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 말입니다.”


강태수의 말처럼 박정필은 자충수일지라도 그 장부를 이용하고 싶어 고민하고 있었다. 몇 시간을 그 장부만 노려보던 박정필이 결심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강태수와 강인수가 장준하 선생과 함께 장준하 선생이 소개해 준 믿을 만한 기자들을 만날 때였다.


“오랜만이요, 강태수 대령. 건강해 보여서 좋군.”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많은 덕을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강태수는 자신의 손을 맞잡아 오는 장준하 선생의 강한 악력이 매번 그답다고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요.”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이지 않습니까.”


그 후에 안부를 잠시 주고받던 강태수와 장준하 선생은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했다.


“그럼 그 신분이 발간되고 난 직후에 우리도 이 자료를 뿌리면 된다는 말이겠군.”

“예,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강태수 대령, 궁금한 게 하나 있소.”


그렇게 묻는 장준하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강태수는 지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입안이 마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 선생님.”

“강태수 대령은 이 모든 게 옳은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지금 돌아가는 모든 상황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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