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이수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모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천이수
작품등록일 :
2016.12.01 19:07
최근연재일 :
2018.04.21 07:16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19,593
추천수 :
42
글자수 :
450,893

작성
17.06.11 11:35
조회
338
추천
0
글자
13쪽

니안의 작전

DUMMY

"투고, 가이안과 함께 절벽길을 올라 후퇴하라구! 여기는 내가 막아 볼테니."

끊임없이 압박해오는 연합군 앞에서 협곡 절벽의 주칸부대는 이미 패색이 짙어졌다. 그들은 좁은 절벽길을 막아선채 한동안 적을 맞아 싸웠지만 크고 작은 상처와 바닥난 체력에 이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절반 가까운 병력을 잃고 이제 그들에게 남은것은 절벽위를 기어올라 몇이나마 목숨을 구하는 것 이었다.

"피융"

"크윽!"

아민투스의 마지막 화살이 아만의 옆을 스치며 아만을 향해오는 연합군 병사의 오른쪽 눈을 꿰뚫었다. 적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뒤로 나가떨어졌고 그는활을 등뒤로 매고 검을 빼들었다.

"너를 버릴 것이였다면 그 옛날 코르틴에서 그리 했을것이다."

투고는 여전히 눈앞의 적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채 피식 웃어보이며 아만에게 대꾸했다. 아만은 투고의 말에 힘을 얻은듯 크게 검을 휘둘러 또다시 달려드는 적의 허리를 반으로 가르고는 검의 피를 허공에 뿌렸다. 연합군은 처음보는 두 거구의 괴력에 서로 앞으로 나서길 주저하기 시작했다.

"하! 좋소. 대신 내앞에 나서지 말라구. 내 검에 다칠 수 있으니 말이야."

투고는 아만의 호쾌하고 건방진 목소리에 가슴이 들끓었다. 오랜시간 아만과 함께한 투고는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단순하고 거칠긴 하지만 거짓이 없고 사람의 정에 약한 사내였다.

아만은 여전히 자신보다 한발 앞에서 적을 막고 서있었고 언제든지 그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형제인 투고 자신을 지키려 할것이었다. 투고는 그런 그와 뜻을 같이했다.

"가이안, 그대는 살아서 헤르반님과 카루온님을 따르게."

투고의 말투는 비장했지만 가이안은 그속에 감춰진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아만의 옆에 서있는 가이안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투고가 아만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말로이님, 이제 다시 모시기는 힘들겠군요...'

가이안은 등줄기를 흐르는 땀방울이 마치 말로이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한번도 자신의 손을 잡아준적은 없지만 옛주인의 따뜻한 언행에서 그는 늘 어머니가 어깨를 다독여 주는듯한 애틋함을 느꼈었다.

"그럴수는 없소. 살든 죽든 그대들과 함께하겠소. 모두들 그렇지 않은가!"

가이안의 말에 세사람의 뒤를 따르던 주칸의 병사들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전투는 다시 시작됐지만 먼저 공격을 시작한것은 네그라스군이 아니였다. 주칸군은 더이상 나약한 노예가 아니였고 그들은 죽음을 돌아보지 않은채 무서운 기세로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투지는 그렇게 결코 뚫을 수 없는 방패를 향해 끊임없이 뚫고 또 뚫었다. 제국 최강의 군대 네그라스 연합군은 먼 남쪽의 주칸 땅에서 처음으로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카로안님, 정찰병이 돌아옵니다!"

주칸을 향해 빠르게 진군하던 스페스군은 카로안 오카스의 지시에 일순간 바위가 된듯 멈춰섰다. 해가 저물가 가는 오후,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여전히 온몸을 녹일듯 피어올랐지만 스페스군 병사 어느 한명도 흔들림이 없었다. 스페스군은 열사병을 막기위해 온몸을 가죽으로 덮었고 날카롭게 연마된 굽은 칼이 각기 병사의 등에 매여 가죽옷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보병이었으나 그들의 등에는 하나같이 활과 화살이 걸려있었다.

어느새 루투칸 오카스 앞에선 정찰병은 말에탄채 서둘러 소식을 전했다.

"주칸 성은 일부 병사만이 머물러 있었고 대부분은 아카론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협곡 안에 네그라스군으로 보이는 시체가 즐비하지만 적군은 이미 협곡을 빠져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주칸의 적은 몇이나 되느냐?"

"300여명 정도입니다 "

"음...시간을 너무 치체했다. 알린, 멜리크! 주칸을 공격해 성을 빼앗아라! 적의 루투칸은 반드시 생포해야한다! 그리고 멜리크는 주칸을 사수하고 알린은 곧바로 아카론 전투에 합류한다."

"넷!"

오카스는 자신을 뒤따르던 우나프 두명을 호명한뒤 앞서 출진을 명했고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명에 따랐다.

"에일로, 그대는 그대의 나테이(나테루의 후계자)님 구해야겠지?"

"물론입니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에일로라 불리는 우나프는 당장이라도 진군하고 싶은듯 오카스를 재촉하는 말투였다.

"에일로, 우리의 작은 넬칸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엔카나! 에일로와 함께 선두에 서서 아카론으로 간다. 왕자님과 카잔님을 구할때까지 진군을 멈추지 마라. 너희의 뒤는 내가 막아줄것이다."

"넷!"

스페스 카로안인 오카스의 진군명령에 우나프 엔카나와 에일로는 나란이 선두에 서서 아카론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물어 가는 태양을 보며 오늘밤 아누크와 멘티스 카로와나의 영광스런 첫 전투를 기필코 승리로 역사에 남기리라 투지를 불태웠다. 더불어 자신들의 주인인 왕자와 나테이를 구해 종족의 미래를 지키리라는 다짐도 함께 새겼다.

네그라스와 아카론의 첫 전투가 벌어질때 아카론을 떠났던 엔카나는 스페스로 향하는 길목에서 스페스군을 이끌고 오던 오카스를 만날 수 있었다. 엔카나는 니안이 일러준 대로 오카스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칸과 아카론을 동시에 공격하라 일러주었고 오카스는 넬칸의 뜻에 따라 왕자의 충성스런 세노테인 니안의 계략을 그대로 따랐다. 오카스가 이끌고 온 병력은 2800으로 스페스의 모든 카로와나와 일부 마크란이 포함 된 숫자였다. 이중 카로안 오카스와 엔카나가 이끄는 군사 1500은 우루안 왕가의 소속이였고 나머지는 모두 나테루의 군사였다. 이중 제1 나테루 주드란의 군사를 이끄는 우나프 에일로는 나테이 카잔을 구하기 위해 주드란의 명으로 우루안의 군사에 버금가는 800의 군사를 이끌고 왔다. 사실상 주르단 가문의 모든 카로와나와 마크란이 총동원된 것이었다. 스페스를 이루는 올맥족을 넘어 밀림 도시 전체의 나테루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주드란의 후계자 카잔의 고귀함은 카루온 왕자에 버금갔다.


해가 떨어진 직후, 밝은 달이 떠오르며 주칸의 성안에서 커다란 함성과 함께 불길이 피어올랐고 같은 시각 아카론의 협곡 앞에는 스페스의 1800여 병사들이 가죽옷을 등에 접어 매고 날카로운 만곡도를 들어 전투를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협곡에 쌓인 적들의 시체를 밀림 속 나무뿌리 밟듯 거침없이 헤쳐나갔다.

"공격하라!!"

순식간에 협곡을 빠져나간 스페스 병사들은 카로안 오카스의 명령에 하나같이 달려나갔고 선두의 두 우나프는 아카론의 바위산을 오르며 네그라스군의 후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네그라스군은 승리를 코 앞에 두고 예상치 못한 후미의 공격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도대체 어디서 온 군사들이란 말인가!"

"루투칸님, 저기를 보십시오. 주칸성에 불길이 일고 있습니다!"

네그라스 연합군의 티메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동시에 일어난 적의 반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많은 노예반란군의 숫자와 뛰어난 전투력은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승리가 코앞이오. 티마스군은 후미의 적을 격파하고, 에로크군은 그 길로 주칸으로가 칸주르님과 아군을 살펴주시오. 내가 이곳을 맡겠소."

티메르는 서둘러 연합에 속한 두 도시의 우나프를 후방으로 되돌려 보낸뒤 자신은 직접 네그라스의 본대를 이끌고 전투의 최전선으로 나섰다. 그는 서둘러 바위산 정상에 남아있는 적을 전멸 시키고 후미로 합류해 이 전투를 끝내고자 했다.

하지만 전투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후미의 적에 한눈판 사이 방금전까지 싸웠던 눈앞의 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 것이다. 닿아 있는것은 하늘 뿐이라 여겼던 바위산의 꼭대기에 숨겨진 탈출로가 있는것이 분명했다. 티메르는 전진과 후퇴의 갈림길에서 또다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페루스는 서둘러 티메르를 재촉했다.

"적이 탈출하려는것 같습니다. 분명 후미의 적은 많은 수가 아닐것입니다. 탈출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는 것일테니 저에게 1000의 군사를 주십시오. 적을 뒤쫒겠습니다."

티메르는 페루스의 말을 따라 그에게 다른 우나프 두명을 뒤따르게 한 뒤 자신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티메르는 검술에 있어 칸주르에 뒤지지않는 뛰어난 전사였지만 부족한 전투경험에서 비롯된 자신의 지휘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한동안 흔들렸던 평정심을 되찾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카론 바위산의 정상을 눈앞에 두고 절벽과 날카로운 바위들 사이로 눈여겨 보지 않았던 작은 동굴들이 눈에 띄었다. 비록 대군이 한꺼번에 이동하기는 힘들어보였지만 소수의 병력이 나뉘어 탈출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티메르는 분함을 삭히기 힘들었다.

"쥐새끼같은 놈들!! 라메타는 들어라! 루아즈의 우나프를 따라 적을 뒤쫒는다!"

티메르는 자신이 이끄는 본대의 라메타들에게 명령했고 티메르의 명령에 따라 네그라스의 남은병사들은 수십개의 동굴로 나뉘어 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적의 여왕을 잡기위한 군대개미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티메르는 자신이 전군을 지휘하는 루투칸이라는것도 잊은채 맨 앞에서서 동굴로 진입해 들어갔다. 그의 생각과 달리 동굴은 상당히 비좁았고 매우 어두웠다. 네그라스 군은 금새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티메르는 다시 햇불을 만들어 적을 쫒으라 명했고 그는 동굴 깊이 아래로 아래로 적을 쫒아 내려갔다. 간간히 나타난 적의 시체와 아군의 시체가 계속해서 네그라스군을 이끌었으나 잠시뒤 그들은 길을 잃고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어두운 동굴속을 해매던 티메르의 입안에 '후퇴'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그는 결국 그것을 입밖에 내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알지 못했다. 아카론의 동굴 속이 자신의 무덤이 될것이라는것을....


카루온의 주칸군은 병력의 대부분을 잃고 정상의 진지를 탈출했다. 사실 그것은 미리 계산된 니안의 전략이었지만 스페스의 원군을 기다리는 동안 카루온은 너무 많은 병력을 잃고 말았다. 2000에 가까웠던 병력을 모두 잃고 이제 카루온에게 남은 병력은 바라쿠타의 전사들 뿐이였다. 더군다나 협곡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아군의 생사를 알길이 없다는것이 카루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는 냉정해져야만 했다. 스페스의 원군이 적의 후미를 공격해 주지 않았다면 그나마 남은 병력 마저 전멸할 뻔했고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후미의 전투에 적이 당황하는 사이 카루온과 헤르반이 이끄는 바라쿠타 전사들은 미리 점찍어 둔 비상탈출로를 따라 지하의 호수로 내려갔다. 이미 몇차례 이 길을 오갔던 주칸의 병사들은 조금도 길을 헤매지 않았다. 칠흙같이 어두운 동굴을 계속 내려가다 보면 희미한 불빛이 보이고 빛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어느새 초록빛이 반짝이는 호수를 마주하게 된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지하의 호수는 땅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얼마 전 처음 호수에 내려왔던 카루온은 그 초록 빛이 호수에 사는 벌레가 내는 빛이라는것을 알고 매우 신기해했다. 니안 역시 벌레의 불빛에 매료되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러다가 니안은 문득 햇불 대신 벌레를 이용해 동굴을 밝힐 수 있다는것을 생각해내고는 크게 기뻐했다. 니안은 언젠가 오늘 같은 긴박한 상황을 예견했던 것이다. 니안은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병사들을 시켜 벌레를 작은 유리병에 담아둔 뒤 탈출하려는 동굴에 햇불대신 놓아 두었다. 카루온의 병사들은 벌레가 내는 불빛을 따라 빠르게 동굴을 벗어날수 있었고 맨 뒤의 병사들은 유리병을 거두어 탈출하면서 적의 추적을 막았다. 니안의 치밀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적군의 눈을 피해 적과 아군의 시체를 끌어다 어두운 동굴 곳곳에 놓아두었다. 마치 전투가 벌어진것처럼 동굴안을 꾸며 놓은것이었다. 하지만 시체가 놓인 그 동굴들은 지하 호수로 통하지 않았다. 그곳이 결국 끝이 막힌 함정이라는것을 네그라스군은 동굴 끝까지 가서야 깨닫게 될 것이었다. 니안은 태어나 처음으로 신에게 부탁했다. 네그라스군이 동굴 끝까지 내려가 이 전투를 멘티스의 승리로 끝낼 수 있도록 빌었다. 그리고 니안의 기도가 끝날무렵 주칸군은 초록빛의 호수를 뒤로하고 동굴 밖을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붉은모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 티트하리 황제 17.08.13 194 0 18쪽
50 타르누스 용병대2 17.07.30 258 0 19쪽
49 타르누스 용병대 17.07.23 166 0 9쪽
48 외전3 - 붉은눈의 아누크2 17.07.16 149 0 17쪽
47 외전2 - 붉은눈의 아누크 17.07.09 194 0 13쪽
46 외전1 - 카라자스 17.07.08 193 0 9쪽
45 승자가 없는 싸움. 17.07.02 219 0 15쪽
44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17.07.02 208 0 9쪽
43 진격 또 진격 17.06.25 211 0 11쪽
42 죽음의 길 17.06.18 205 0 11쪽
» 니안의 작전 17.06.11 339 0 13쪽
40 네그라스 연합군 침공 2 17.06.04 199 0 11쪽
39 네그라스 연합군 침공 17.05.28 268 0 16쪽
38 새로운 인연 17.05.21 198 0 13쪽
37 계속되는 전쟁 17.05.14 202 0 10쪽
36 하나로 뭉친 주칸 17.05.14 177 0 21쪽
35 떠나는자 17.05.07 167 0 14쪽
34 두번째 주칸전투 17.04.30 158 0 14쪽
33 계속되는 전쟁 17.04.30 151 0 11쪽
32 모욕적인 패배 2 17.04.23 259 0 16쪽
31 모욕적인 패배 17.04.16 157 0 10쪽
30 루아즈 침공 17.04.09 163 0 15쪽
29 전설의 프로렌스용병 17.04.01 133 0 15쪽
28 첫번째 전투 17.03.25 113 0 16쪽
27 프로렌스의 반역자 17.03.19 219 0 15쪽
26 돌아온 헤르반 17.03.11 251 0 14쪽
25 주칸의 피난민 17.03.05 210 0 18쪽
24 주칸전투2 17.02.26 154 1 16쪽
23 주칸전투 17.02.25 260 0 18쪽
22 영광의 역사가 시작된다. 17.02.18 200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