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이수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모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천이수
작품등록일 :
2016.12.01 19:07
최근연재일 :
2018.04.21 07:16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19,617
추천수 :
42
글자수 :
450,893

작성
17.02.25 23:16
조회
260
추천
0
글자
18쪽

주칸전투

DUMMY

주칸 시민들 중 마크란으로 착출된 남자들은 5일전 루아즈에서 온 징집마차에 올라 주칸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떠난 카루온의 첩자는 어제밤 주칸으로 돌아와 루아즈의 출병소식을 전했다. 때를 맞춰 카루온과 그의 병사들은 주칸을 점령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카루온의 병사는 300이 조금 안되었고 그중의 반은 말을 탄 기병으로, 나머지 반은 검을 쓰는 보병과 궁수로 나누어 편제했다. 주칸을 지배하는 세 귀족의 사병과 루아즈 카로와나 소속의 주칸 수비대의 병사들을 모두 합치면 150에 가까운 숫자였기에 카루온이 주칸을 점령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였다. 더욱이 이번 전투에서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 해야 이어질 루아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꺼란 생각에 카루온의 마음은 긴장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루아즈가 프로렌스로 출병한지 하루가 지난뒤 수많은 생각과 긴장으로 하루를 꼬박 보내고 다시 해가 기울 무렵, 카루온은 자신의 병사를 집합시켰다. 슈말의 저택 앞에 바라쿠타와 아카론의 병사가 줄지어 서자 그 모습은 제법 군대의 위용을 뽑냈다. 바라쿠타의 병사들은 니안의 의견에 따라 편제되었다. 1군은 카루온이 지휘하며 50의 병사로 루아즈로 통하는 서쪽성문을, 2군은 헤르반이 이끌며 역시 50명의 병력으로 1군을 도와 서문을 장악한 뒤 가장 세력이 큰 샤몬의 저택을 맡게됐다. 3군은 투고가 이끌며 바라쿠타의 노예병사 50을 편제했고 나리지언가를 맡았다. 4군은 아만이 지휘하며 아카론 병사 50여명을 이끌고 바로안가를 맡았다. 그리고 마지막 5군은 니안과 이고르가 맡았으며 그들은 미리 주칸 성내로 숨어들어가 안에서 호응하기로 하였다.

어스름한 일몰의 태양빛이 그들의 검은 가죽옷을 붉게 비추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카루온은 끌어오르는 흥분과 뜨거운 열망을 느끼며 몸이 활활 타오르는듯한 묘한 기분을 느꼈다. 키가 크지 않은 카루온은 슈말이 마련한 단상에 올라 그들을 내려다 보았다. 난생 처음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두고 카루온은 자신과 함께 할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서있는 카잔과 헤르반 그리고 투고와 아만이 여유롭고 흥분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고 그 뒤로 바라쿠타와 아카론의 병사들의 조금은 긴장된 표정이 보였다. 카루온은 한동안 그들을 바라보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두어진 주칸의 사막에 울려퍼졌다.

"오늘 우리는 주칸을 공격 할것이다. 우리들의 검과 창으로 이곳 주칸에서 아누크인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우리 멘티스만의 도시를 세울것이다. 긴 시간 고생했다. 나의 형제들이여. 이제 그동안 당했던 수모를 저들에게 돌려주자. 오늘 밤이 지나면 너희들은 더이상 노예가 아니다. 가자 나의 형제여! 주칸의 노예를 해방시키자."

카루온의 의기 충만한 목소리에 바라쿠타의 병사들은 고무되어 큰 함성을 지르며 흥분했다. 이어 총지휘관인 카루온이 말에 올라 공격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자 헤르반이 큰소리로 외치며 말을 몰아 달려나갔다.

"공격!"

슈말의 저택에서 일제히 출발한 바라쿠타의 병사들은 곧이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주칸의 북쪽 성문에 도착했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사막에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던 주칸 수비병은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캄캄한 밤의 사막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수상한 적의 움직임이 들어올때는 이미 불화살이 헤르반의 손을 떠난 뒤였다. 그리고 그 불화살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성문 안쪽에서 몸을 숨기던 니안과 이고르의 눈에 들어오자 주먹 쥔 니안의 손이 높이 하늘 위를 향했다.

"슈욱"

니안의 신호에 그의 뒤에 있던 궁수 10여명이 일제히 주칸 수비병을 향해 화살을 날렸고 동시에 이고르는 성문으로 달려 그들의 남은 숨통을 끊어 놓기 시작했다. 그들의 동작은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간결했고 주칸의 성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카루온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손쉽게 주칸 북쪽 성문을 통과한 바라쿠타의 병사들은 곧이어 세 갈래로 흩어진뒤 각각 서쪽 성문과 나리지언, 바로안 귀족의 저택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카루온은 니안과 합류한뒤 주칸에서 루아즈로 통하는 성문인 서문과 남문을 향해 방향을 잡았고 순식간에 중앙광장을 통과하여 서문을 장악했다. 주칸 수비대 소속의 50여 병사들은 의연하게 맞서려 했으나 그 수가 너무 적었고 그마저도 4개의 성문에 나누어 배치된 까닭에 바라쿠타의 병사들에 감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서문을 장악한 카루온은 카잔과 일부 병사를 남겨 둔 뒤 퇴로를 차단하게 하였고 즉시 니안, 이고르와 함께 남문으로 이동하며 도주하는 적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헤르반은 카로온이 떠나는 것을 본 뒤 곧장 샤몬의 저택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뒤 샤몬과 바로안, 나리지언의 저택에는 거의 동시에 멘티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퇴로를 막는 임무는 슈말에게 맡겨졌다. 그는 카루온이 카잔과 함께 서쪽 성문을 장악하는 동안 1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북문과 동문을 수중에 넣고서는 성문을 굳게 닫아 한명도 도망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였다. 모든것은 니안의 계획대로 이루어 졌고 주칸은 순식간에 카루온의 손에 떨어졌다.

갑작스런 바라쿠타의 공격에 주칸의 시민들은 아카론의 하갈리스가 도시의 중심까지 쳐들어온걸로 착각하고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늘 주칸을 지켜주던 카라자스가 전쟁으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하갈리스가 공격한것으로 여기고는 제각기 집으로 숨어들어 굳게 문을 걸어 닫고 감히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와중에 주칸 귀족들의 저택에서는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저택을 지키는 사병들의 수가 대략 30여명 정도로 적지 않은 숫자였으나 그들은 워낙 갑작스러운 공격에 쉽사리 대처하지 못한채 바라쿠타의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투고와 아만은 너무도 손쉽게 바로안과 나리지언 두 귀족의 저택을 제압하고는 몇몇 귀족을 제외한 모든 아누크인을 제거해 버렸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한 그들은 곧장 상업시설이 밀집된 주칸의 오아시스 일대의 시장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곳엔 분명 많은 재물과 멘티스가 있을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투고와 아만은 간과하고 있었다. 아누크인들은 그리 손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아누크인들은 대체로 멘티스에 비해 체격이 컸으며 호전적인 성향으로 전투에 익숙한 족속이었다. 멘티스들의 계급사회에 비교해 볼때 전사들의 권위가 높았고 명예 또한 드높은 만큼 전사계급의 실력과 전투력은 멘티스들의 상상 이었다. 특히 샤몬의 저택을 지키는 아누크병사들은 실력이 매우 출중하여 헤르반도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귀족의 저택을 지키는 사병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검술은 꽤나 강력해서 그의 생각보다 많은 수의 바라쿠타 병사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상비군인 카로와나 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가진이들로 샤몬에 의해 특별히 뽑힌 자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제압할수 없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으나 겨우 몇 달동안 검술을 익힌 바라쿠타의 병사들에겐 충분히 두려움을 느낄만한 상대들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아누크 병사들쪽이 더했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길게 상황을 살필 경황도 없었지만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이 인근의 도적패인 하갈리스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을 느꼈다. 일개 도적패라고 할수 없을 만큼 적들의 검술은 뛰어났고 쉬운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더욱이 말을 탄 이들가운데 자신들보다 더 긴 검을 사용하는 이 사내는 고도로 훈련된 전사로 무거워 보이는 검을 무척이나 빠르고 가볍게 휘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장검의 사내와 몇번 검을 부딪히자 마자 여지 없이 바닥에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적을향해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던 헤르반은 자신의 병사 3~4명이 맥없이 죽고나자 공격신호를 멈추었다. 그는 병사를 뒤로 물리고 재정비한뒤 자신이 선두에 서서 아누크 병사들을 서서히 포위해 들어갔다. 아누크 병사들은 거의 두배에 가까운 적들의 포위를 뚫기위해 달려들었지만 선두에 선 헤르반의 장검에 하나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사병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는 사이 샤몬의 아우인 토리에는 식솔들과 노예를 이끌고는 저택의 창고에 보관중인 각종 문서와 돈, 보석들을 챙겨서 저택의 지하에 마련된 비상통로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둘러 통로를 발견한 니안의 추격에 결국 주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헤르반님! 주변 여관에서 우리병사 10여명이 죽었습니다!! 검술이 뛰어난자가 여럿이라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팔목을 베어 뼈가 드러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병사 하나가 헤르반이 있는 샤몬의 저택에 달려와 급히 소식을 전했다. 병사는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황의 급박함을 전하며 헤르반에게 도움을 청하고는 안내를 자처했다. 상황이 심각하다 여긴 헤르반은 포박한 토리에와 그의 식솔에게 감시병을 붙인뒤 남은병사를 이끌고 서둘러 병사가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부상병이 안내한 곳은 샤몬의 저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주칸의 상업구역내 가장 큰 여관이었다. 오아시스를 따라 길게 늘어선 여관들 이곳 저곳에서 이따금씩 비명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헤르반은 자신을 책망했다. 사막을 여행하는 대상들은 도적때의 습격을 대비해 용병을 구해 대동하기도 한다는걸 잘 알고 있었지만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헤르반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검을 뽑아들고 여관문에 들어섰다. 그의 뒤에는 재빨리 따라온 병사 대여섯이 함께 하고 있었다. 여관 안 여기 저기엔 카루온의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지만 적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바닥엔 아군의 시체 뿐 적의 시체는 찾아볼수가 없었다. 헤르반은 적의 동태를 쉽게 헤아릴수 없었다. 그때 때마침 들려오는 아군의 외침에 헤르반은 급히 여관 밖을 나와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갔다. 방금 나온 여관에서 멀지않은 또다른 작은 여관 안에서 아만의 큰 목소리가 들리고 그곳으로 달려간 헤르반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가까스로 몸을 돌려피했고 그 화살은 뒤따라온 헤르반 병사의 눈을 꿰뚫었다. 짧은 외마디 비명과함께 쓰러진 병사는 온몸을 떨다가 그대로 죽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숨이 떨어지는걸 지켜볼 새도 없이 화살이 떨어진 적은 검을 빼들고 헤르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검은 아만에게 비견될만큼 빨랐다. 헤르반은 사선으로 베어오는 검을 몸밖으로 쳐낸뒤 그대로 베어 적의 목을 떨어뜨렸다. 비로소 장애물이 사라진 그의 눈앞에는 왼팔을 베인채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아만과 부러진 도끼대신 검을들고 있는 투고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 너머엔 흰머리가 비치는 노안의 사내와 그의 오른쪽에 검을 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한명의 젊은 사내가 보였다. 넓은 터가 아군의 시체로 뒤덮혀 매우 좁게 느껴졌다.

"아만 뒤로 물러서라."

헤르반은 서서히 걸음을 옮기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부상당한 아만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뿐이었다.

"아직 싸울수 있...."

"아만!!"

아만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투고의 말까지 거역하지는 못했다. 그는 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뒷걸음쳐 헤르반의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검을 쥔 그의 오른손은 여전히 내리지 않았고 눈빛은 흔들림없이 적을 바라보고있었다.

"매우 강한 상대다...."

조심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헤르반의 귀에 들릴듯 말듯한 투고의 말이 스쳤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이제야 헤르반의 귀에 전해졌다. 헤르반이 투고를 지나쳐 노인에게 다가서자 젊은 사내가 노인의 앞으로 나섰지만 그의 앞을 다시 노인의 검이 막아섰다. 흰머리의 노인은 늙었음에도 허리가 굽지않았고 키는 헤르반만큼이나 컸으며 체격또한 여느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의 검붉은 마누아 검은 한눈에도 보통 강철검보다 좋아보였다. 필히 검날이 부딪힌다면 자신이 검날이 부셔질것을 헤르반은 직감했다. 범상치 않은 기운에 헤르반은 쉽사리 공격할수 없었다. 순간 그의 눈에 잡히지 않을만큼 빠른 속도로 노인의 검이 헤르반의 목을 향해 찔러들어왔다. 검으로 막을새도 없이 발을 빼 몸을 젖히고 가까스로 검을 피한 헤르반은 이어지는 노인의 공격에 왼쪽 무릎위를 베이고 말았다. 그마저도 검을 들어 막으려 하지 않았다면 이어지는 세번째 공격을 피할수 없었을것이다. 노인은 헤르반의 빠른 방어에 공격을 멈추고 다시 자세를 갖추었다.

다행이 상처가 크지 않았지만 헤르반은 난생처음 마주한 노전사 앞에서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의 검술은 놀라울 만큼 빠르고 힘이 느껴져 도저히 노인이의 검이라고 믿기힘들었다. 일생에 처음 마주하는 최상위 실력의 전사였다. 헤르반은 순간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다시 노인의 공격이 들어왔다. 땅끝을 향하던 검끝이 헤르반의 복부를 가로질러 오른 어깨를 향해 그어지고 그자리엔 붉은 선혈이 남았다.

'분명 닿을수 없는 거리인데....'

검이 늘어난것만 같은 착각이 들때쯤 헤르반은 본능적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검을 피하고 상대의 목을 노려 오른손을 뻗었다. 동시에 노인의 검은 베어졌던 그길로 다시 그어내려오며 헤르반의 등허리를 베려하고 있었다. 헤르반의 장검이 노전사의 목에 닿으려는 찰라 노인의 검은 방향을 틀어 헤르반의 검을 막았고 그의 몸은 뒤로 튕겨져 나갔다.

헤르반의 빠른 반격에 노전사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놀라운듯 물었다.

"노예 주제에 어디서 검술을 익혔느냐?"

"나는 노예가 아니다. 내 검은 멘티스인에게 배운것이다."

헤르반은 짧게 말을 마치고 그대로 검을 비스듬히 눕혀 노인의 목줄기를 향해 빠르게 오른팔을 뻗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투고는 그의 빠른 검을 누구든 피할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지금껏 그가 보아왔던 헤르반의 검은 그의 진정한 능력의 일부였을 뿐이라는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방금전까지 아만과 함께 노인을 대적했던 자신이 노인의 검을 막기에도 급급했었던것을 떠올리며 투고는 지난날 자신의 자만이 부끄러워졌다. 검을 쥐고있는 오른손이 떨리며 눈동자는 노인의 목을 향했다. 하지만 투고의 예상과는 달리 노인은 너무도 쉽게 헤르반의 검을 피했다. 노인의 몸은 오른쪽으로 숙여지며 오히려 헤르반의 복부를 향해 검이 파고들었다.

'위험하다'

찰나의 순간 헤르반의 패배를 직감한 투고는 검을 들어 노인의 검을 쳐내려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이 구름처럼 한없이 느리게 느껴지는것을 느끼며 결코 그의 검을 막을수 없다는걸 깨달았다. 투고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는 차마 헤르반의 마지막을 볼 수 없었다. 곧이어 짧은 단발마의 신음소리와 함께 공중에는 붉은 검을 쥔 손이 날아올랐고 곧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바닥에 떨어진것은 분명 노인의 손목이었다. 손에는 여전히 아귀힘이 남은듯 검을 꼭 쥔채였다. 피가 스며드는 손목을 감싼채 노인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고 옆구리를 베인 헤르반은 상처를 돌보지 않고 노인을 향해 다시 검을 겨누었다.

"테르가님!!"

그제껏 노인의 뒤에서 자리를 지키던 젊은 전사는 검을 들고는 헤르반을 노려보며 노인의 앞에 섰다. 하지만 노인의 하나 남은 왼팔의 그의 어깨를 잡으며 그를 제지했고 그는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에 눈물을 쏟으며 검을 내려놓았다.

"헤르반! 괜찮습니까?"

헤르반의 뒤에는 어느새 소식을 듣고 찾아와 말에서 내린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카루온이 있었다. 노인과 충분한 거리를 두었지만 헤르반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카루온을 맞이했다. 헤르반을 걱정하며 달려온 카루온이었나 곧이어 수많은 바라쿠타 병사들의 시체를 본 그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뒤따라온 병사들을 시켜 즉시 노인을 죽일것을 명했다. 하지만 헤르반은 카루온에게 그의 목숨을 살려줄것을 간청했다. 그것은 헤르반의 진심이었다. 카루온은 잠시 망설였으나 고민한 끝에 노인과 젊은 전사의 검을 빼앗고 포박한 후에 그들을 끌고가라 명했다. 아군의 20여명의 목숨을 빼앗은 자를 살리는것은 카루온에겐 힘든 결정이었지만 투고는 헤르반의 심정을 이해할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만한 가치를 지닌 적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낼수 있는 전사들에게 적은 곧 나와 다르지 않으리라... 투고는 헤르반의 심성마저 훌륭하다 여기며 진심으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멘티스여... 너와의 싸움을 기억하겠다."

바라쿠타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여관을 빠져나가기 전 노인은 헤르반을 향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원망따위는 찾아볼수 없었다.

"...테르가라고 했소? 그대와 싸울수 있어서 영광이었소."

헤르반은 난생처음 마주한 아누크 전사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테르가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상처입은 손을 천으로 감싼채 아누크인이 집결한 중앙광장으로 병사들과 함께 이동했다. 그제서야 그가 떠난 자리에 놓인 바라쿠타 병사들의 시체가 헤르반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가슴속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였다.

'저 노인이 나와 같은 나이였다면 분명 내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헤르반은 자신의 생각이 틀림없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붉은모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 티트하리 황제 17.08.13 194 0 18쪽
50 타르누스 용병대2 17.07.30 258 0 19쪽
49 타르누스 용병대 17.07.23 166 0 9쪽
48 외전3 - 붉은눈의 아누크2 17.07.16 149 0 17쪽
47 외전2 - 붉은눈의 아누크 17.07.09 194 0 13쪽
46 외전1 - 카라자스 17.07.08 194 0 9쪽
45 승자가 없는 싸움. 17.07.02 220 0 15쪽
44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17.07.02 208 0 9쪽
43 진격 또 진격 17.06.25 212 0 11쪽
42 죽음의 길 17.06.18 206 0 11쪽
41 니안의 작전 17.06.11 339 0 13쪽
40 네그라스 연합군 침공 2 17.06.04 200 0 11쪽
39 네그라스 연합군 침공 17.05.28 268 0 16쪽
38 새로운 인연 17.05.21 199 0 13쪽
37 계속되는 전쟁 17.05.14 203 0 10쪽
36 하나로 뭉친 주칸 17.05.14 177 0 21쪽
35 떠나는자 17.05.07 167 0 14쪽
34 두번째 주칸전투 17.04.30 158 0 14쪽
33 계속되는 전쟁 17.04.30 152 0 11쪽
32 모욕적인 패배 2 17.04.23 260 0 16쪽
31 모욕적인 패배 17.04.16 157 0 10쪽
30 루아즈 침공 17.04.09 164 0 15쪽
29 전설의 프로렌스용병 17.04.01 133 0 15쪽
28 첫번째 전투 17.03.25 114 0 16쪽
27 프로렌스의 반역자 17.03.19 219 0 15쪽
26 돌아온 헤르반 17.03.11 251 0 14쪽
25 주칸의 피난민 17.03.05 210 0 18쪽
24 주칸전투2 17.02.26 155 1 16쪽
» 주칸전투 17.02.25 260 0 18쪽
22 영광의 역사가 시작된다. 17.02.18 201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