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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림이 님의 서재입니다.

상태창을 물려받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태림이
작품등록일 :
2022.10.30 23:11
최근연재일 :
2022.11.22 09: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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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08
추천수 :
1,194
글자수 :
141,099

작성
22.11.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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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전화위복, 최고의 길드로

DUMMY

‘드디어 나타나셨군.’


서브 시나리오, 군단장의 사면.

하장군 하클리스 랭포드가 훈련소장 따위의 한직으로 쫓겨난 굴욕.


‘예상대로다. 나는 튜토리얼 맵에 빙의했군.’


델론이 있다면, 하클리스도 있다.

그건 예상한 대로.

그렇다면 지금은 게임 시작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의미다.


‘아티팩트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아티팩트의 유무는 중요하다.

특성이 캐릭터의 포텐셜을 결정한다면, 아티팩트는 그 포텐셜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동부전선에도 아티팩트가 있다.’


오히려 동부전선이야말로 아티팩트의 밭.

고인물이라면 구태여 이런 황무지에 발길을 돌리지는 않는다. 게임을 빠르게 클리어하는 데에 필요한 아티팩트는 정해져 있고, 고작 아티팩트 몇 가지를 얻고자 동부전선까지 공략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타팅 포인트가 동부전선.’


죽음의 바다.

해안선이 가파르고 수심이 얕아 예로부터 침몰 사고가 잦았던 지역.


‘이 바다 밑에 잠들어 있는 아티팩트, 모조리 회수해주마.’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한데, 나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주먹을 꽉 쥐는 녀석이 있었다.


‘유라이어.’


잘근.

유라이어가 제 입술을 깨물었다.

워낙 이목구비가 화려한 탓에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났다. 저런 얼굴을 두고 배우상이라고 하는 건가.


“이번 기수는 흥미진진하군.”


쿵.

쿵.

유라이어의 비현실적인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였다.


‘지진?’


그럴 리가.

여기는 바다 위.

잔잔한 수면 위에 떠 있는 범선이다.


‘미친···.’


그리고 나는 이윽고 지진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올리버 풋맨.

소수민족 출신의 우량아.

현대의 단위로 따지자면 족히 2M가 넘는 거구.

일찍이 21세기에서도 본 적이 없던 거대한 체격.


한데···.


‘차원이 다르다.’


더 큰가?

아니 키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사나이는 옆으로도 2M는 돼 보였다.


‘곰··· 아니, 오우거.’


그리고 나는 이 오우거 같은 사내를 잘 알고 있다.


‘하클리스 랭포드.’


통일 제국의 하장군.

지금은 모종의 죄를 사 훈련소장이라는 한직에 처박혀 있지만, 머지않아 군단장이 될 사나이.


쿵.

쿵.


걸음마다 지진을 일으키며, 그 사내는 똑바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기마르크 훈련병!”


눈에 보이는 체격은 곧 목소리와 비례했다. 포화를 터뜨리듯 터져 나오는 커다란 울림에 훈련병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나는 자네 같은 사람을 좋아하네.”


쿵, 쿵···.

하클리스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향하는 길에 서 있는 훈련병들이 지레 겁을 먹고 양옆으로 길을 텄다.


결국, 나와 하클리스가 일대일로 독대하는 그림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내 곁에 버티고 서 있는 유라이어가 다 고마울 지경이었다.


‘뭐야.’


한데 아니었다.

유라이어는 치렁하게 늘어뜨린 백금발 사이로 매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자식도 정상은 아니다.

이 상황에서도 나를 의식하는 건가.

과연, 배짱이 두둑해서 좋다고 해야 할지···.


“체력 훈련은 낙오를 거듭하다가 교관들의 봐주기로 겨우 통과. 전술, 전략 시험 성적도 형편없어. 허나!”


쾅!

훈련소장이 그 두꺼운 다리를 굴렀다.

갑판이 내려앉을 듯 흔들렸다.


“군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임무 수행 능력. 훈련소에서 실시하는 모든 훈련과 시험은 결국 실전을 위함. 그런 의미에서 가르마크는 천상 군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마르크입니다···.”


장군은 나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움직였다. 머잖아 그 거구와 마주 보고 섰다.


턱!


‘뭐, 뭐야.’


어깨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술통을 들어 올리는 훈련을 할 때도 경험한 적 없는 무게감이 나를 덮쳤다.


‘이게 정녕 사람 손인가.’


압도적인 무게감의 정체는 손이었다.

훈련소장의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단순히 격려하는 동작에도 내 몸은 휘청거렸다. 모름지기 탑승 특성이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을 것이다.


“······.”


그때였다.

위풍당당하던 하클리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단세포에, 목소리만 큰 전형적인 늙은 덕장의 모습이던 하클리스의 눈빛이 일변했다.


‘특성 안광.’


썩어도 준치.

장군의 눈에는 안광이 형형했다.


‘초인과 맞먹는 최상위 특성.’


그 안광이 나를 훑었다.

꼭 뱀 앞에 선 생쥐처럼 온몸이 굳었다.

그러나 안광의 진정한 위력은 정신 지배와 통찰에 있다. 하클리스는 안광을 통해 내 능력을 엿봤을 것이다.


‘유라이어. 그리고 루돌프라고 했나.’


나와 나란히 서 있는 두 명의 훈련병.

그들은 용케도 최상위 특성 안광을 버티는 듯했으나, 순서대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쓸 만한 녀석들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플레이어였다. 옆에 서 있는 이들이 아직은 사람보다야 유닛으로 보였다.


턱.

그때, 나를 격려하던 하클리스의 손바닥이 천천히 내 몸을 떠났다. 마침내 하클리스가 등을 돌렸고, 비로소 내 몸이 자유로워졌다.


한편으로 안광에 시달려 게거품을 물고 있던 유라이어와 루돌프 또한 숨통이 트인 듯했다.


“델론.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해라.”

“알겠습니다.”


쿵, 쿵···.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하클리스는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며 자치를 감췄다.


“아, 그 전에 세부 사항을 조율하겠다. 집무실로.”

“받들겠습니다.”




*




“델론.”

“예, 장군.”


범선의 집무실.


“내가 이곳에 부임한 지가 얼마나 되었지?”

“열 기수째. 바야흐로 오 년입니다.”


벌써 오 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 오 년간, 동부전선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모두 하클리스 랭포드 하장군의 영향력이었다.

그도 그럴 게, 훈련소장에 하장군이 임명된 것은 제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들개나 하이에나가 군림하던 황무지에 사자나 호랑이가 왕림한 격.


하필 황무지나 다름없는 동부전선에서 태어나, 제 팔자를 원망하던 재능들에게는 두 번 다시 안 올 절호의 기회였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하장군의 밑으로 모여들었다.


그 결과.

동부전선 해군 훈련소는 유례없는 황금기를 누렸다. 기수마다 제국 정예군으로 직행하는 천재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성에 차지 않는다.’


그 누구도 눈에 차지 않았다.

제국 정예 기사에 비견할 만한 재능이 출몰하고는 했으나, 하클리스의 눈에 차지는 않았다.


하클리스 랭포드.

그는 정예 기사들을 한낱 장기 말로 다루는 제국군 우두머리 출신. 성에 차는 인재가 나타났다면, 왕도로 보낼 게 아니라 제 밑으로 거둬들였을 것이다.


···그런 줄로 알았다.

그 깡마른 소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가르마크···.”

“장군, 기마르크입니다.”


쿵.

동부전선 해군 훈련소장 하클리스 랭포드가 교관 델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 장군···.”


그러자 델론의 무릎이 흔들렸다.

솥뚜껑 같은 손의 무게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델론조차 이럴 진데.’


동부전선 해군 훈련소 교관 델론.

그는 이전에 하클리스 랭포드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소대장이었다. 당연히 어렸을 적부터 촉망받는 기대주였으며, 그 기대를 훌륭히 충족하는 정예 기사가 되었다.


한데···.


‘그 허수아비 같은 소년이 어찌 그 정도의 힘을.’


훈련소장은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안광으로 바라본 기마르크는 이미 완성된 군인이었다. 훈련소에 있을 재목이 아니었고, 이미 어엿한 기사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닐 듯했다.

기마르크의 눈에서는 수백, 수천 개의 전장으로부터 생환한 영웅의 기백이 엿보였다.


“흐으음···.”


장군의 풍성한 수염이 꼭 가을바람을 맞이한 갈대처럼 요동쳤다. 수염을 빗는 손길이 거칠었다.


델론은 제 주군의 심기가 요동치고 있음을 단숨에 파악했다.


“장군. 분부만 하시지요. 장군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클리스가 델론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는 집무실에 난 창문을 통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죽음의 바다라는 동부전선이었으나, 파도가 밀려오는 동틀 녘의 수평선은 꼭 그의 심경처럼 깊어 보였다.


“델론. 코르크마개를 추적 감시하라.”

“······기마르크입니다.”





*





우리는 방을 배정받았다.

방이라고 해봤자 여덟 명이 함께 사용하는 선원실이었다. 그런 선원실이 총 네 량으로, 각 방마다 팀장과 부팀장이 존재했다.


‘낯이 익은 얼굴은 없다.’


다른 훈련병들의 낯을 살펴보니, 마침내 몸 뉠 곳이 생겨서 좋은 감정이 반, 낯선 훈련병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게 되어 긴장한 얼굴이 반이었다.


그들은 미처 모르는 것이다.

그룹 단위 평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미 하클리스 랭포드 훈련소장의 심복들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을 테다.


심지어는···.


“야.”

“어···어···?”

“나랑 자리 바꾸자. 나는 창문 쪽에서 잠을 못 자거든.”

“나도 그래···.”

“씨발···. 좀 바꾸자니까?”

“······알았어.”


제 동기를 상대로 우격다짐을 행사하는 저런 모습은 당연히 감점 요인이 될 것이었다.


“기마르크.”


생각 없이 행동하는 녀석들이 존재감을 떨치고자 설치는 반면, 그들이 만들어준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상황을 파악한 훈련병이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 브레메르라고 해.”


브레메르.

내 방의 부팀장.

이름을 들어도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루돌프와 같은 엑스트라 NPC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한테 좋은 인상은 없겠지.

기마르크를 플레이할 적, 나는 이 게임의 생초짜였고 고르는 선택지마다 최악의 선택지였으니까.


“바다 위에서 있었던 일이 꿈만 같아. 단순한 노 젓기일 뿐인데, 모두 뭐에 홀린 것처럼 치열했지.”


한데 웬걸.

브레메르가 살갑게 악수를 건넸다.


‘친해지자는 의미는 아니군.’


그러나 호의로 내민 손은 아니었다.

브레메르는 내 얼굴 근육의 변화를 살피고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악수하는 동작이 어색해서 경직하지는 않는지 파악하는 눈빛이었다.


이런 식으로 생존해온 건가.

나는 이번이 인생 2회차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 시선을 눈치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동기들은 순전히 이 악수 한 번에 걸러졌을 공산이 크다.


‘정치력이 높은 캐릭터인가.’


앞으로의 훈련을 염두에 둔다면, 이쯤에서 녀석의 그릇을 한 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브레메르. 어디까지 알고 있지?”

“알고 있냐니, 무얼?”


녀석은 능숙하게 잡아뗐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얼굴로 헤실헤실 웃으며 나에게 먼저 설명을 요구하는 눈치였다.


“네가 아는 걸 공유하지 않으면, 나 역시 너와 대화할 생각이 없어.”


선원실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여태 다른 동기들 앞에서 제 존재감을 아로새기려고 발버둥이던 녀석들이 저절로 목소리를 낮췄다.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니었다.

녀석들은 항해 훈련에서 일 등을 차지한 나보다도, 브레메르의 눈치를 더욱 살피고 있었다.


‘과연.’


이게 나의 현실이다.

일 등을 차지했지만 일 등 대접을 받지 못한다. 육지 훈련소에서의 성적이 워낙 형편없었기 때문에, 해상 훈련의 결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방의 실질적인 대장은 브레메르다. 아직까지는.


‘저 녀석들.’


다른 훈련병들의 자리를 빼앗고, 목청을 높여 기선을 제압하던 녀석들. 모두 브레메르에게 강요나 사주를 받고 그의 뜻대로 움직인 것일 테다.


‘지켜보는 녀석들도 알고 있을 테지.’


그러나 장교에게 카리스마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특히, 육지로부터 고립되어 배라는 공간에 있는 해군 장교라면 더더욱.


까딱했다가는 쿠데타가 일어나도 소리소문 없이 묻힌 채, 범선을 타고 다니는 무장 해적단이 탄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브레메르의 이런 카리스마는 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어떻게 하냐.

설계를 아무리 잘해도 기본 스펙 자체가 넘사벽인 내가 있는데.


“잘 부탁해. 브레메르.”

“그래, 기마르크. 잘 지내보자.”


나는 브레메르의 손을 잡고 반갑게 흔들었다.

이 악수를 통해서, 브레메르는 나를 낮잡아 보기 시작할 것이다.


‘불쌍한 브레메르. 정치력을 타고난 캐릭터가 하필.’


이 게임을 20년 플레이한 외곬한테 걸렸으니···.


브레메르는 날 이겨 먹을 수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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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련 올스타 +2 22.11.16 725 34 13쪽
17 연금술의 비원, 신화의 원소 에테르 +2 22.11.15 847 37 13쪽
16 신세계로 +7 22.11.14 908 40 12쪽
15 신세계로 +2 22.11.13 979 45 13쪽
14 신세계로 +2 22.11.12 1,080 47 12쪽
13 두 남자와 김용실 +2 22.11.11 1,163 48 12쪽
12 두 여자와 김용실 +2 22.11.10 1,308 44 13쪽
11 헌터로의 환골탈태 +4 22.11.09 1,400 49 12쪽
10 헌터로의 환골탈태 +4 22.11.08 1,457 53 13쪽
9 김용실(23세, 대마도사) +5 22.11.07 1,532 56 13쪽
8 딜 되는 힐러라고요? +6 22.11.06 1,641 59 14쪽
7 딜 되는 힐러라고요? +4 22.11.05 1,644 63 13쪽
6 딜 되는 힐러라고요? +3 22.11.04 1,782 56 13쪽
» 전화위복, 최고의 길드로 +5 22.11.03 1,889 62 13쪽
4 전화위복, 최고의 길드로 +3 22.11.02 1,927 64 14쪽
3 화안금정 +5 22.11.01 2,086 82 12쪽
2 화안금정 +5 22.11.01 2,197 89 12쪽
1 프롤로그 +10 22.11.01 2,387 12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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