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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림이 님의 서재입니다.

상태창을 물려받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태림이
작품등록일 :
2022.10.30 23:11
최근연재일 :
2022.11.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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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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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1,099

작성
22.11.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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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신세계로

DUMMY

“점사략결···.”


수련의 집행관 오범규 대리가 지나간 자리.

나는 점사략결이라는 책에 손을 뻗었다.


‘로드 오브 파이어를 다루는 일부터 마스터해야 할 테지만···.’


조금만 세게 쥐어도 바스라질 듯 오래된 종이의 촉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이 감촉을 어떻게 참아! 눈앞에 보물이 있는데 어떤 연구직이 참겠냐고.’


킁킁.

나는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며 고서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만끽했다.


아아···.

이거지.


“점사략결 냄새가 좋긴 하지.”

“지소장님도 아시는 책입니까?”

“그야 물론이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교범 중 하나이니까. 김 인턴은 고대 교범을 공부한 적이 없나?”

“아카데미 3학년 때 외국어 공부 용도로만 잠깐···.”


지소장은 내 대답을 듣고 경악했다.

그는 계산대 위에 나뒹굴던 수첩과 펜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무언가를 휘갈겼다. 수첩을 찢는 듯한 소리가 날 정도로 그의 펜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지소장님?”

“김 인턴. 이게 무슨 조합식인지 알겠어?”


그러더니 대뜸 내게 수첩을 들이밀었다.

종이에는 쌀알만 한 글씨로 적은 수십 줄의 수식이 적혀 있었다.


【 초급 원소 이해 58/100 】

【 조합식 해독 활성화 】


화안금정이 재빠르게 조합식을 읽어나갔다.

나의 인지력보다 한발 앞서, 화안금정의 스킬 【조합식 해독】이 저절로 조합식을 해독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줄에서 막히고 말았다.

눈앞에는 【 스킬의 레벨이 낮아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라는 메시지만이 가득했다. 조합식을 구성한 수많은 수식 중 단 하나의 수식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윽···!’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화안금정을 처음 획득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증상이다. 무차별적인 정보의 홍수로 인해 뇌에 과부하가 발생한 것이다.


화안금정이 해석하지 못하는 수식은 처음.

이 정도의 난이도는 하나밖에 없다.

나는 표정을 구기며 대꾸했다.


“이건··· 설마 난제입니까.”

“맞아. 마일하이의 난제.”


마일하이(Mile-High).

그리스에 소재한 1마일 높이의 마탑.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모여 있다.

그 마일하이의 천재들조차 수십 년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가 바로 난제.


지소장은 그걸 무턱대고 내게 들이민 것이고.


“어째서 이걸?”

“해석해 보세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내가 난제를 해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전혀 모르겠습니다.”


지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기나 다름없는 고대 교범 공부를 소홀히 했군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가까스로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난제가 고대 교범과 연계되는 겁니까?”

“모든 난제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난제까지 가는 길에 고대 교범 공부는 필수네.”


그런가.

그런데 나는 난제를 풀 생각이 없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현장에서 전투하는 현장직 헌터니까.


“난제를 풀 생각은 없거든요.”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든 연구직 헌터들의 비원. 그렇다면 김 인턴은 어째서 델로스 동맹에 입사하려고 하는 겁니까.”


정곡을 찔렸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지소장은 슬그머니 수첩을 들이밀었다. 누런 종이 위에는 마찬가지로 생전 처음 보는 조합식이 적혀 있었다.


“이건··· 근력 강화의 매커니즘을 포함한 영약의 한 종류이군요. 수식의 절묘한 운용이 놀랍습니다. 각각 근력과 마력에 작용하는 두 개의 영약을 한데로 합친 천재적인 발상.”


눈앞에 나타난 팝업 메시지의 글자를 그대로 발음했다. 이번 조합식은 화안금정이 완전하게 해독했다. 난제보다는 훨씬 난이도가 낮았다.


그런데···.

정작 지소장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화안금정의 해독이 틀린 걸까?


“제 풀이가 틀렸습니까?”

“아니···.”


지소장이 혀를 찼다.


“···쳇.”


쳇?


“암산으로 풀어버리다니. 자존심이 상해서.”

“자존심이 상해요?”

“그럼 이건, 이건 어때. 이번에도 암산이 될까?”


지소장은 내 물음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재차 누런 수첩 위에 새로운 수식을 제시했다.


“음용자의 마력 섬유 다발을 일부러 훼손하여 마력량 증진을 도모하는 조합식입니다.”

“쳇.”


쳇?

방금 분명히 혀를 차지 않았나?

그러나 이에 대해서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럼 이건?!”


지소장은 곧장 다음 장을 들이밀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이나 필담을 주고받았다.

지소장은 묻고, 나는 대답하고.

해가 저물어 더 이상 글자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우리의 선문답은 계속 이어졌다.


【 초급 원소 이해 100/100 】

【 중급 원소 이해 0/300 】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수첩 위의 검은색 잉크가 어둠에 동화되어 보이지 않게 됐을 즈음에서야 비로소 우리의 선문답은 끝이 났다.


‘젠장. 벌써 시간이! 로드 오브 파이어에 대해서 연구해야 할 귀중한 시간이었는데.’


오산이었다.

몇 시간 만에 고개를 든 나는 깨달았다.

공방에 진열된 포션 몇 가지의 조합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 스킬 획득 】

【 원소 조합식 창조 1/1 】


덩달아 반가운 팝업 메시지가 나타났다.

새로운 경지가 열렸다.



**




출근 직전에 했던 청소가 무색하게 금세 더러워진 집 앞의 돌계단. 그 위로 널브러진 모래 먼지가 꿈틀거리기를 잠시.


츠츠츠츠츠-


【 중급 원소 조작 활성화 】


이윽고 모래 먼지는 중력을 거스르며 일어섰다.


‘됐다.’


포션 제작을 거듭하며 기초 단계에 이르렀던 화안금정이 지소장과의 선문답을 통해 한층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실전과 이론의 조화.’


게이트에서의 경험 역시 못지않게 컸다.

석영 골렘과 싸우면서 원거리 조작의 요령을 깨달은 것이 원소 조작의 실마리가 되었고, 구울을 비롯한 몬스터들을 상대로 실전을 치르며 가닥을 잡았다.


드디어 완성되었다.

원소 조작.


나는 이 원소 조작을 이용하여 가게 바닥에 널브러진 모래 먼지를 한데 모았다. 그 먼지들은 스스로 엉겨 붙더니 이윽고 단단한 돌멩이로 변했다.


‘몸에 무리가 안 가는 건 딱 이 정도인가.’


로드 오브 파이어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아직은 고작 이 정도의 수준으로도 벅차다.


이것도 석영 골렘의 영약을 통해 마력을 많이 늘린 덕을 본 것이다.


고작 이 정도의 위력으로 실전에서 사용할 일은 요원하겠지만, 전투에서 사용할 만한 새로운 재주가 생겼다는 사실이 몹시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거야말로 로드 오브 파이어의 화력 레버다.’


나와 계약한 불의 군주, 로드 오브 파이어를 원소 조작을 통해 조종할 수 있었다.


【 중급 원소 이해 13/300 】

―중급 연금술

―중급 원소 조작


여기서 끝이 아니다.


【 스킬 획득 】

【 원소 조합식 창조 1/1 】


며칠 전 있었던 선문답을 통해 획득한 스킬, 조합식 창조.


이미 사용해버린 원소 정령 소환과 마찬가지로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이었다.


‘창조···라.’


지나치게 거창한 이름이었다.

정말 원소를 창조할 수 있는 걸까?

자연계에 존재하는 원소를 조합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원소를 창조하는 것.


그건 신의 영역이 아닌가.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이 스킬이 불러올 나비효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건 두고두고 고민하면서 신중하게 사용하자. 당장은 연금술이 먼저야.’


이 스킬은 로드 오브 파이어를 불러냈던 원소 정령 소환처럼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따로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연금술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언제까지 기성 장인들의 조합식을 흉내만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동안은 사고가 경직돼 있었다.

지소장이 소개하는 고대 장인들의 거대한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수 없이 많은 특허를 낸 발명가인데.

서유리 연구소장의 밑에서 일할 적에는 그렇게 시간에 쫓기면서도 내 연구를 해냈다.


난제는 해결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포션을 연구하는 것은 화안금정의 레벨을 올리는 데에 필수.


나는 고삐를 고쳐잡았다.

마냥 빛, 흙, 물 따위의 기초적인 물질로 수식을 꾸려내던 조합식은 더 이상 내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 않는다. 화안금정의 레벨이 지나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때마침 지소장은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책 몇 권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다 교범입니까?”

“고대 화학식 교범.”


고대 화학식 교범?

아카데미 도서관에서도 고작 한 권씩밖에 없고, 대여하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만 하던 그 귀한 책을 이렇게 쌓아두고 있다고?


“맙소사.”


연구자의 피가 들끓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손이 나갔다. 책장을 넘기자 빼곡히 화학식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건 왜···.”

“김 인턴, 요즘 통 포션 제작에는 흥미가 없어 보여서.”

“···저 때문에 일부러 구하셨습니까? 이 책을?”

“나 정도 되는 사람한테는 별거 아니야.”


지소장은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먼 옛날에, 그러니까 과학자라는 이름이 미처 존재하지 않던 시절, 연금술사라고 불리던 이들의 시행착오 일지.”

“연금술사···.”


연금술사.

바로 나.

화안금정을 손에 넣은 나의 이야기다.


“관심 있나?”

“물론입니다.”


지소장이 건넨 책은 총 세 권이었다.

그리스 편과 중국 편, 그리고 이집트 편.

그리스는 말할 것도 없는 연금술의 발원지이다.


고대의 중국에서는 ‘연단술’이라는 독자적인 학파가 부흥했다. 연금술의 엘릭서 내지는 현자의 돌처럼, 불로장생의 비원이 담긴 도술의 존재로 유명하다.


이집트는··· 잘 아는 바가 없다.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이 운석으로 만든 칼을 사용했다는 점 정도?


“언제까지 빌려주시는 겁니까?”

“가져. 나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니까.”


미친···.

나는 당장 그리스의 고대 교범에 손을 올렸다. 한데 나의 손등 위로 지소장의 손이 날아들었다.


“대신, 조건을 걸고 싶은데.”

“무슨 조건 말입니까.”

“조건은 아니고 부탁이지만··· 연구에도 꾸준히 힘 써줬으면 좋겠어.”

“그건···.”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짜장면 먹다가 짬뽕 냄새 맡으면 짬뽕 먹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거라지만, 김 주임씩이나 되는 인재를 놓치는 건 학계의 어마어마한 손실이거든.”


지소장은 사뭇 진지했다.

나도 표정을 고치고 진지하게 대꾸했다.


“당연히 그럴 겁니다.”


연구만 하라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연구에도 적당히 힘써달라는 약속 정도야 지킬 수 있다. 가뜩이나 이 정도로 신세를 지게 된다면야.


“···그렇다면 이제 이 책들은 몽땅 자네 거야.”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

그러나 기왕 딜을 할 거라면, 아주 뽕을 뽑아야 한다. 고작 케케묵은 고서 몇 권 받고 끝내기엔 아쉽다.


“다만.”

“다만?”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책 줬잖아. 조건이 또 있다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고인광 지소장이 말을 더듬었다. 나는 그 틈을 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 헌터 장터 계정을 델로스 동맹의 명의로 옮겨주세요.”

“본사에 문의해보겠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턱.

고대 교범을 덮었다.


“왜, 왜 그러나? 김 주임?”

“괜한 데 시간 들일 필요 없겠군요. 현장 헌터 일 보수가 쏠쏠하던데···.”

“뭐? 잠깐! 내가 힘 써보지! 오늘 내로 해결해보겠네!”


과연, 같은 연구자끼리는 입장 이해가 빨랐다.


“약속하신 겁니다.”

“하아···. 완전히 당했군. 역시 아카데미를 조기 졸업한 천재는 다른 건가.”


이게 그거랑 무슨 상관이지.


‘···그나저나.’


꿀꺽.

군침이 돌았다.

현장직 헌터로 전향을 다짐했다지만, 연구직으로 살아온 세월이 반평생.


지소장이 제공한 고대 교범에 저절로 눈이 갔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긴 순간.


【 새로운 룬 획득 】

【 Arete 】


‘화안금정이 반응했다.’


신세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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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련 올스타 +2 22.11.16 725 34 13쪽
17 연금술의 비원, 신화의 원소 에테르 +2 22.11.15 849 37 13쪽
16 신세계로 +7 22.11.14 908 40 12쪽
15 신세계로 +2 22.11.13 980 45 13쪽
» 신세계로 +2 22.11.12 1,081 47 12쪽
13 두 남자와 김용실 +2 22.11.11 1,165 48 12쪽
12 두 여자와 김용실 +2 22.11.10 1,309 44 13쪽
11 헌터로의 환골탈태 +4 22.11.09 1,400 49 12쪽
10 헌터로의 환골탈태 +4 22.11.08 1,459 53 13쪽
9 김용실(23세, 대마도사) +5 22.11.07 1,533 56 13쪽
8 딜 되는 힐러라고요? +6 22.11.06 1,641 59 14쪽
7 딜 되는 힐러라고요? +4 22.11.05 1,644 63 13쪽
6 딜 되는 힐러라고요? +3 22.11.04 1,784 56 13쪽
5 전화위복, 최고의 길드로 +5 22.11.03 1,889 62 13쪽
4 전화위복, 최고의 길드로 +3 22.11.02 1,928 64 14쪽
3 화안금정 +5 22.11.01 2,086 82 12쪽
2 화안금정 +5 22.11.01 2,199 89 12쪽
1 프롤로그 +10 22.11.01 2,392 12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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