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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님의 서재입니다.

무한 회귀 게임 속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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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작품등록일 :
2024.07.20 15:35
최근연재일 :
2024.08.03 16:13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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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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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글자수 :
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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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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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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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5)

DUMMY

“어때? 잘 알았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시 시간이 된다면 다른 마법에 대해서도······.”

“그건 너에게 좋지 않을걸? 내가 알려준 방식은 일종의 편법이라, 기본기 다지는 데에는 오히려 해가 돼. 그거 말고도 마법의 구현보다 다른 부분에서 손봐야 할 곳이 많아 보이거든.”


마법 그 자체를 파고들지 않고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방법 중 하나는?


의외로 체력 증강이다.

마법도 따지고 보면 학문의 일종이니만큼 가만히 앉아서 진득하게 몰두해야 하는데, 결국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책상에 오래 앉아있을 수 있다.

집중력 역시 체력이 받쳐줘야 오래 유지할 수 있기도 하고.


하지만 마법사들은 태생적으로 움직이기 싫어하는 족속들이 대부분이다.

안드레의 삐쩍 마른 팔 꼬락서니를 보니 다른 마법사들처럼 운동하고는 담을 쌓은 게 분명하다.


“너, 병사들하고 공 한 번 같이 안 차던데. 병사들하고 사이 안 좋아?”

“사이 말입니까?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었습니다만.”

“그러면 몸 움직이기 싫어서 그런 거지?”

“네, 제 성격이 활동적인 편은 아니어서 말입니다.”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마법사들은 100이면 100, 다 그렇게 말하더라.”


예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나는 마법을 익히면서 지겹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침착함을 항시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지.”

“그렇군요.”


역시나다.

안드레의 입에서 맥 빠진 대답이 나왔다.

그래도 할 말은 마저 다 해야겠지.


“이렇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던전이나 전쟁터에서도 아까 구현했던 완성도 이상의 마법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나는 실제로 겪었던, 당시에는 미칠 듯이 괴로웠던 지난 생의 기억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적이든 아군이든 불길에 휩싸여서 죽어가는 광경을 보면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잖아? 비명까지 들으면 제멋대로 몸이 후들거린다고. 그런 상황에서 마법을 구현하는 건 상당히 고되고.”

“으······ 그건 확실히 힘들지도 모르겠군요.”


안드레는 내 설명을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말한 장면들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고 눈만 감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냐. 생명체는 죽어갈 때, 모든 감각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주변에 알려주거든. 살점이 타오르는 냄새를 맡자마자 구역질이 나오는 건 예사야. 적인지 아군 건지 모르는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면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입장에서 접할 수 있는 감각은 시각과 청각으로 한정된다.

그런데 게임 속 세상에 들어가다보니 후각과 촉각이라는, 필요 이상의 현실적인 요소가 더해졌다.

그 결과, 나는 생명체의 죽음이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지 잘 알게 되었다.


“말만 듣고도 그런 반응이면 곤란한데. 내가 경험했던, 아니다. 그, 왕궁에 있는 마법사들이 말하기를······.”


회귀를 경험하지 않았던, 게임 속 세상에서의 첫 번째 삶은 잠깐의 설레임과 즐거움 이후에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인간도 아닌 몬스터를 처음으로 죽였던 날, 나는 그 자리에서 토악질을 했다.

하필이면 처음 상대했던 몬스터가 인간에 가까운 아종족 몬스터였기에, 살인을 한 것처럼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죽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생명을 앗아간다는 게 이전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극도의 스트레스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나마 냉병기만으로 전투를 할 때는 나은 편이었다.

동료로 합류했던 마법사의 불길에, 산적의 살점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본 뒤 나는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거기에 더해 동료나 부하의 죽음을 막지 못했을 때에는 죄책감도 함께 느껴야했다.

트루 엔딩을 보기 위해 내가 갔던 길은 몬스터와 인간, 그리고 이종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 과정을 얼마나 많이 겪고 버티느냐로 이어졌다.


호러는 물론이고 고어물조차 능가하는 두려움과 잔혹함을 보여주는 게임 속 세상은 당장 뛰쳐나가고 싶지만, 출입구가 잠겨서 상영 중인 영화의 스텝롤까지 봐야만하는 영화관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회귀를 반복하다 보니 무덤덤해진 걸 보면, 인간의 적응력에는 진짜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우욱······.”


그나저나 안드레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다른 이의 이야기로 바꾼, 내 경험담을 듣는 것만으로도 저런 반응이니 또다시 화제를 돌려야겠다.

옆에서 대화를 엿듣던 불침번들의 표정도 심히 좋지 않아 보이니까.


“이것도 실전을 많이 겪으면 해결되는 문제이긴 한데, 왕립 아카데미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마탑 졸업시험 치를 때 던전 들어갔을 거 아냐? 왜 초짜처럼 굴어?”

“······.”


내 물음에 안드레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이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예상대로다.

어찌저찌 졸업시험은 통과했지만,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해서 저런 반응을 보여주는 거다. .

보잘것 없는 마법 실력은 제처두더라도, 등급이 낮은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런 부분의 문제다.


나야 트루 엔딩을 보기 위해 안드레가 겪었을,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고난을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리고 반복된 회귀를 통해 약했던 멘탈은 굳건해졌다.

아니, 사실은 망가진 게 아닐까싶지만.


아무튼 문제점이 뭔지 파악했으니, 여기까지만 조언을 해주고 도로 텐트로 돌아가야겠다.

슬슬 졸리기 시작했거든.


“뭐가 문제인지 알겠어. 그런데 넌 내가 쓴 방법으로 강해지긴 무리이니······ 음?”


뭐지?

방금 지면이 흔들렸던 것 같은데, 지진인가?

아니, 그것만이 아니다.

근방의 마나가 요동치는 게 심상치가 않다.


“너도 느꼈어?”

“설마 이 느낌은······ 아······.”


지면 위로 피어오르는,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마나의 입자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반복된 생을 살면서 지겹게 봐왔지만, 이번 생에서는 처음 보는 현상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쯧, 하필이면 여행 와서 이걸 겪게 되네. 야, 야. 모두 깨워.”


나는 나무를 붙들고 있는 불침번을 손짓으로 불렀다.

그러나 아까 지진에 이어 사방에 마나 입자가 퍼진 걸 보고 놀라서인지 벌벌 떨기만 한다.


“뭐해? 내 말 안 들려? 이 근방에 곧 던전이 발생할 거다.”

“네? 던전 말입니까? 저, 정말입니까?”

“그래, 맞으니까 애꿎은 나무 그만 붙들고 후딱 움직이라고.”

“알겠습니다!”


잠시 후, 병사들이 텐트 밖으로 후다닥 뛰쳐나오며 급하게 텐트부터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직후라 정신이 없어서인지 우왕좌왕하는 꼴이 가관이다.


안 되겠다.

내 텐트라도 혼자서 해체해야겠다.


“전하! 던전이 발생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맞으니까 던전 밖으로 몬스터들이 뛰쳐나오기 전에 빨리 정리부터 해. 올슨, 너도 짐이나 옮겨.”

“알겠습니다! 빨리 탈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아니다, 그건 무리겠다.”


마나의 입자가 퍼진 범위를 고려한다면, 곧 발생할 던전의 영향력이 미칠 구역은 호수 전체를 덮을 정도라는 건 확실하다.


“아무래도 여기 무너지고 우리 모두 던전 안에 갇힐 것 같은데?”

“네?”


던전이 생성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기존의 지형이 유지된 채로 지하에 던전이 생성되는 경우.

혹은 지면이 완전히 무너진 뒤 던전이 생성되면서 재구축되는 경우.


아쉽게도 지금 생성 중인 던전은 일대에 퍼진 마나의 흐름으로 파악해보건데 후자가 분명하다.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지금 당장 탈출해야 합니다!”

“무리야. 저 멀리까지 벗어나야 하는데, 가능하겠어?”


나는 호수 너머를 손으로 가리켰고, 그걸 본 병사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더니 들고 있는 물건들을 떨어뜨렸다.


“괜찮아. 나만 믿으면 다들 안 죽으니까 걱정 마.”


이럴 때는 허겁지겁 도망가면 오히려 위험하다.

어차피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건 확정되었으니 확실하게 준비를 마치고, 흩어지지 않도록 모여 있는 게 최선이다.


“다들 이쪽으로 와.”

“전하! 전하만이라도 빨리 도망치셔야······!”

“죽을 일이라면 내가 태연하게 굴겠어? 겁먹은 건 이해하는데 당황하지 말고 내 말에 따라. 아, 그 전에 마차하고 말 챙겨야지.”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린 후, 검지로 위에서 아래로 길게 선을 그었다.

그러자 공간이 갈라지면서, 어두컴컴한 아공간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말고삐를 직접 붙잡고 마차가 아공간 저장소 안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었다.


“저, 전하? 저건 설마······.”


안드레가 놀란 눈으로 아공간 저장소와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걸 보니 역시 마법사는 마법사인가보다.


“이거? 마법 스승한테 받은 거야.”


스승에게 받은 게 아니라 배웠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긴 하다.

그 스승이 20번째인가 회귀했을 때 만난 엘프 대마법사였다는 세세한 차이점도 있지만 말이다.


“저, 정말입니까? 생명체까지 보관이 가능한 아공간 저장소를 어떻게······.”

“나 왕세자였잖아. 왕세자라면 이 정도 특혜는 누려야 하는 거라고. 아무튼 다들 충격에 대비해. 곧 무너져 내린다.”


아공간 저장소의 입구를 닫은 나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리고 한 바퀴 돌렸다.

마나로 이뤄진 반투명한 보호막을 구현해 나를 제외한 모두를 감싸기 위해.

이러면 던전 안에서 허기나 갈증으로 죽는 경우 빼고 사망할 일은 절대 없다.


“따, 땅바닥이 갈라집니다!”


지면에 금이 쩍쩍 생기면서 땅이 아래로 푹 꺼진 바로 그 순간.

나는 고통 경감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으아악!”

“사, 살려줘!”


병사들의 비명이 귓가에 울려 퍼지면서 돌덩어리와 흙무더기가 시야 위로 빠르게 올라간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급강하할때 몸에 붕 뜨는 느낌에 눈썹 사이가 절로 일그러진다.

원래 놀이기구를 즐기지 않았던 터라 기분이 살짝 불쾌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주······ 죽을 것만 같습니다!”

“전하! 정말 괜찮은 겁니까? 살려주십시오!”


아직 한 번도 안 죽어본 놈들이 엄살은.

나는 충격에 대비하라고 했지, 충격이 아예 없다고는 말 안 했다.



*



“음······.”


10분인가? 아니, 20분은 지났나?

두 발이 허공이 아닌 돌바닥을 딛고 있는 걸 확인한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예상대로 던전 안에 갇히게 되었고, 나를 제외한 12명 전원이 쓰러져 있다.


“다들 다친 곳 없지?”


나는 왼손에 마나를 모아 만들어낸 빛으로 녀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으으윽······.”

“여기는······ 어디입니까?”

“전하······ 무사하십니까?”


나와 달리 녀석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바닥을 엉금엉금 기고 있지만, 이해한다.

나도 이런 식으로 던전에 처음 갇혔을 때는 제정신을 못 차렸으니.


“보다시피 난 멀쩡해. 너희들은 멀쩡해질 때까지 가만히 있어. 우선 이 던전이······ 어디보자.”


나는 눈을 감고서 마나 감지 스킬을 활성화했다.

고개를 들어 윗층에 생성 중인 생명체들의 마나를 파악하고, 이내 고개를 숙여 아래층도 확인했다.


“패턴 039에, 고블린과 오크들이 주로 있으니까······ C타입 던전이네.”


게임 아르테리아의 세계 속에서 등장하는 던전의 구조는 무작위로 결정된다.

하지만 게임 속의 던전이다보니 말이 무작위지, 결국 정해진 패턴 중 하나로 등장한다.

거기에 더해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가 조금씩 변형된 경우도 있어서, 나는 던전의 패턴을 숫자로 분류한 뒤 알파벳을 추가로 기입하여 기억해놨다.


게임 속 세상에 빙의한 이후 수백 년 넘게 살다 보면 잊어버리거나 헷갈리는 기억들이 존재하지 마련.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토가 나오도록 들락거렸던 던전만큼은 구조는 물론이고 등장하는 몬스터까지 모조리 암기해서 가능한 일이다.


“참나, 이렇게 억지로 던전 공략하게 만드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실 나왔다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던전을 돌아보자.


“슬슬 일어들나지?”


물론 고생하는 건 내가 아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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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고생은 너희들이 해야지(1) 24.07.31 68 7 15쪽
»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5) 24.07.30 77 8 12쪽
14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4) 24.07.30 67 6 12쪽
13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3) 24.07.29 80 6 13쪽
12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2) 24.07.28 75 7 13쪽
11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1) +1 24.07.27 95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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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LC 출시는 아직 안 되었을 텐데?(1) 24.07.24 116 11 15쪽
6 처음부터 놀 수만은 없지(3) 24.07.23 126 10 13쪽
5 처음부터 놀 수만은 없지(2) +1 24.07.22 139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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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왕위를 포기하는 중입니다(1) 24.07.20 178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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