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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님의 서재입니다.

무한 회귀 게임 속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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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작품등록일 :
2024.07.20 15:35
최근연재일 :
2024.08.03 16:13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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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추천수 :
169
글자수 :
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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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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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1)

DUMMY

“샌드위치 재료 다 챙겼지?”

“네! 소스도 넉넉하게 넣었어요.”

“다시 한번 확인해 봐. 시간 충분하니까 실수로 빠뜨리면 안 돼.”


왕세자였던 왕자, 앨버트가 실리어드의 영주로 온 지 두 달째가 되는 날.

앨버트가 머무르는 저택의 주방에서 하녀들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름에 한 번, 앨버트가 여행을 떠나는 날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간식하고 야식도 인원수 맞춰서 준비 다 됐어?”

“그건 좀 걸릴 것 같아요. 왕자님이 드실 걸 따로 만드는 중이거든요.”

“왕자님 것은 다른 사람들 것하고 섞이지 않도록 구별해 놓는 거 잊지 마. 왕자님 입맛 까다로운 거야 다들 잘 알고 있잖아?”

“덜 짜고, 덜 맵고, 덜 달게. 쓴 건 초콜릿 빼고 제외. 맞죠?”


앨버트가 처음으로 여행 준비를 지시했던 한 달 전, 저택의 고용인들은 혼란에 빠졌다.


영주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여행이라니.


때마침 병사들의 식비 횡령 건으로 관련자들이 수도로 줄줄이 압송되자, 조만간 또 다른 칼바람이 이번에는 광범위하게 펼쳐질 거라 많은 이들이 여겼다.

영주가 직접 영지 곳곳을 숙박하면서 돌아다닌다는 건, 여러 의미를 지니기 마련이니까.


“삼선 슬리퍼 수선은 다 끝났지? 그거 마리나 담당 아니었어?”

“마리나요? 어제 갑자기 그만뒀던데요? 그래서 제가 대신 해놨어요. 그리고 아까 빨아놓은 티셔츠도 좀 있으면 다 마를 거예요.”

“그래? 말도 없이 갑자기 관둔 거야? 섭섭하네. 참, 흰색하고 검은색 나눠서 빠는 거 잊지 않았고?”

“물론이죠.”


그러나 정작 앨버트의 행보는 그들의 예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행에 동행하는 인원은 기사 한 명과 10명 정도의 병사, 거기에 영주 직속 산하 마법사 한 명뿐.

여행 기간은 2박 3일로 짧았고, 준비할 물품 역시 야단법석을 피울 정도로 많지 않았다.

당연히 머물 거라 여겼던, 마을이나 중요 거점에 일절 들리지 않고 진짜 경치 좋은 곳만 구경하고 돌아온 앨버트를 맞이한 고용인들은 맥이 빠졌다.


그 뒤로 신임 영주 앨버트가 진짜 순수한 의미로의 여행만을 즐긴다는 걸 알게 된 현재, 고용인들의 여행 준비는 이전보다 부담이 훨씬 덜했다.


“그나저나 왕자님이 영주로 온다는 소식 들었을 때 많이 걱정했었는데, 벌서 두 달이나 지났네요.”

“그러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워낙 외진 곳에 있는 영지인 실리어드에 왕족이, 그것도 왕세자였던 앨버트가 영주로 온다는 소식에 저택의 고용인들은 잔뜩 긴장했었다.

상상으로만 떠올리던 왕족은 과연 어떠할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기다린 그들 앞에 나타난 앨버트는······.


“그런데 왕족이 모두 왕자님 같은 분들만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예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딱 정해진 업무를 끝내면 혼자만의 시간을 주로 보냈고, 고용인들에게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고귀하신 왕족의 눈에 천한 이들이라 무시하는 거라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오해가 풀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타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여하는 것, 타인이 귀찮게 달라붙는 것 둘 다 싫어하는 성격.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앨버트를 옆에서 봐온 고용인들이 내린 평가였다.


“왕자님이 어떤 이유로 왕세자 자리에서 물러났는지 아직도 궁금해. 소문만 무성하고 진짜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말이야.”

“왕자님이 피터슨 아저씨하고 이야기할 때 듣긴 했는데, 그냥 귀찮아서 그만뒀다고······.”

“에이, 그 이야기는 나도 알아. 왕자님 성격이 그렇긴 해도 설마 진짜로 귀찮아서 그랬겠니?”


반대로 저택의 고용인들은 앨버트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동생들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서 외지로 쫓겨난 비운의 장남.

아니면 약혼자가 아닌 여인과의 사랑을 꿈꿨지만, 왕가의 반대에 좌절한 나머지 의욕을 잃고 실리어드로 오게 된 비극의 주인공.

혹은 왕가의 세력 구도에서 밀려난 척하면서 국가의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라는 추측 등등.


온갖 상상력이 동원된 고용인들의 망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어찌됐든 우리야 편해서 좋지.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뭐라 안 하시잖아?”

“피터슨 아저씨도 예전보다 얼굴이 폈던데요. 이전 영주가 참······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술이 들어가면 개가 되어버리는 전임 영주? 진짜 상대하기 난감했는데, 왕자님은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니 너무 편해요.”


전임 영주는 술에 취하면 인사불성이 되어 민폐를 끼치기 일쑤였다.

술에 깨고 난 뒤에는 반드시 술을 끊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영주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날까지 취한 채로 마차를 타는 걸 본 고용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전임자에 비하면 단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새 영주에 대한 평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참 묘한 분이셔. 오자마자 공금 착복하던 그 인간 잡아넣을 때는 한동안 시끄럽겠구나 싶었는데······.”

“다음에는 누가 잡혀갈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별일 없던데요?”

“그러게. 결국 그 건 말고 잡혀들어간 사람들은 그 사제 말고 없었네. 흡혈귀에게 겁도 없이 덤벼들려다가 왕자님에게 혼쭐이 났다는 그 사제 말이야.”


영지 실리어드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했지만 사람 사는 곳답게 썩어 문드러진 부분은 존재했었고, 앨버트는 영주가 되자마자 그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냈다.

그러나 그 외의 변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일어났다.


“아이스박스? 그게 뭐였지? 이거 맞아요?”

“응, 전에 왕자님이 이야기했던 그 상자가 이거잖아.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냉기마법 건 상자.”

“왕자님이라면 그냥 아무 마을에나 들러서 대접받으면 되는데, 먹는 걸 굳이 마법까지 쓰면서 챙겨가는 걸 이해하긴 힘들어요.”

“그만큼 먹거리에 관해서는 진심인 분이라는 거겠지.”

“아공간 저장고가 있으면 쉽게 해결될 문제이긴 한데, 그 정도 실력을 지닌 마법사가 우리 영지에는 없으니 어쩔 수 없긴 해요.”


앨버트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하녀들의 몇 안 되는 애로사항 중 하나가 바로 그만이 사용하는 특유의 단어를 익혀야 하는 점.

피터슨의 해석을 듣지 않으면 짐작조차 힘들었기에 고용인들은 되도록 앨버트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을 정도였다.


“다들 오늘 일 마치면 모임 있는 거 잊지 않았지? 주 5일제라는 거, 처음에는 이렇게 쉬어도 되나 싶었지만 이젠 없어지면 못 살 거 같아.”

“제 말이 그말이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토요일에도 맘 편히 쉴 수 있는 게 정말 맘에 들어요.”

“왕자님 말버릇대로 편하게 살자고, 편하게.”


앨버트가 온 이후 기대치 않았던 변화 중 하나는 휴일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앨버트 왈, 일주일에 최소 2일은 쉬지 않고 일하는 건 미친 짓이라며 본인부터 주 5일만 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에 반해 아랫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저택으로 출근했지만, 할 일도 없이 휴일에 오지 말라는 앨버트의 면박 아닌 면박에 쫓기듯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러기를 몇 차례, 이제는 주당 2일 있는 휴일을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



만약 플레이하던 게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이런 질문에 백이면 백, 실제 게임을 플레이할 때와 똑같이 주도적으로 행동하겠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설사 주인공이 아닌 일개 엑스트라로 빙의했다 해도, 이미 알고 있는 게임의 지식을 활용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면 가능한 일이다.

현재 본인의 위치와 처지를 극복하기 힘든 현실과 다르게, 게임이니까 가능한 거다.

무엇보다 그러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기도 하고.


그러나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도 반복하다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건 없다며 죽어라 파고들며 반복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죽어라 노력했는데도 매번 배드엔딩만 보고, 이후 게임 중반부도 아니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식의 리셋도 한 두 번이어야지, 수십 번 넘게 반복된다면?

그것도 실제 시간으로 1000년을 훌쩍 넘는 플레이타임 내내 그런 식의 좌절을 겪는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게임 속 세상을 살아갈 의욕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금의 나는 반복된 회귀의 여파로 인해 필요 이상의 일을 하기 싫어졌다.

아니, 솔직히는 일 자체를 하기 싫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간단히 원칙 몇 가지를 세워놓고 이번 생을 편하게 지내려고 마음먹었다.


“그래, 그건 잘 처리했어. 더 손댈 필요가 없군.”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일을 제외한 자질구레한 일들은 피터슨에게 일임하고, 사후보고를 받는다.


“그런데 요건 좀 그래. 원래대로 돌려놔.”

“네! 다음부터는 전하께서 추가 지시를 내리는 일이 없도록······.”

“오버하지 마. 사람이 실수 하나도 안 하려고 하면 더 실수하는 법이야. 하던 대로 하면 돼.”


그리고 안건에 따라 추가로 지시를 내린다.

부족하다고 느끼면 덧붙이거나, 과하다고 판단하면 취소하고 아예 없던 일로 할지를.


“이건 굳이 지금 할 필요는 없으니 당분간 패스.”

“알겠습니다.”


이제 피터슨은 내가 한국에서 쓰던 말을 대충 반 이상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다.

어차피 내가 빙의했다는 걸 알지도 못할 텐데 굳이 그런 용어를 안 쓰려고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편하긴 하다.


“던전이 발생한 숲으로 들어갈 때 병사들의 호위를 부탁한다는 영주민들의 요청이 많습니다.”

“끝내 내 말 씹고 들어가는 놈들이 나왔구나.”


난 숲 안쪽에 던전이 생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영주민들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선포했고, 해당 사항이 적힌 팻말을 숲 바깥쪽에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영주민들이 왜 던전이 있는 숲 안으로 악착같이 들어가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 더 벌려고 그러는 거다.

노점상을 숲 밖이 아닌 숲 안쪽에 마련하면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모인 모험가와 용병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더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

산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컵라면과 500㎖ 생수 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미 용병과 모험가들 상대로 장사 잘하고 있는데 더 이상의 편의를 봐줄 이유는 없지. 아니, 솔직히 그건 편의가 아니라 내 명령을 무시하는 거잖아.”

“하오나 전하, 같은 민원이 한두 건이 아니라서······.”

“불가. 앞으로도 똑같은 민원이 들어오면 나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이 네 선에서 잘라버려. 그래도 계속 민원 넣는 놈들이 나오면 다른 영지로 가라고 해.”


하지 말라고 해도 꼭 그걸 하는 인간들은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게임 속에서도 넘쳐난다.

예전 군대 식비 횡령범 때처럼 잡아 가둘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내 방침이 싫다면 떠나면 되고, 예전 로베르토 건처럼 영지의 안위에 위협이 되는 짓이라면 강제로 추방하면 된다.


영지의 부흥?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이번 주 일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이번에도 그 흡혈귀가 정리 잘해놨겠지?”

“네, 이번에도 로베르토님이 수고하셨습니다.”

“소 잡는 칼로 닭도 아닌 쥐새끼를 잡는 기분이 이런 건가? 아니다, 쥐도 너무 쳐줬다. 그 흡혈귀에겐 산적 따윈 개미조차 못한 존재일 거 아냐.”


현재 영지 안에는 던전이 발생한 숲 안을 제외하고는 몬스터가 발견된 적은 아직 한 건도 없다.


문제는 몬스터가 없다 보니, 인적이 드문 지역에서 산적들이 출몰한다는 점이다.

게임 아르테리아 안에서는 경험치 셔틀밖에 안 되는 존재며, 세력을 키워 반란을 일으키는 정도는 더더욱 아니기에 난 굳이 건드리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여행갈 곳에 나타나는 일만큼은 용납할 수 없어서, 로베르토의 힘을 빌려 2주 간격으로 소탕을 진행 중이다.

상대의 역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선 덤벼들고 보는, 게임 속에서 진짜 가치 하나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한 산적들과 마주치는 일 자체가 싫어서다.


큰맘 먹고 해외여행을 갔는데 소매치기에게 털려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분 잡치고, 다행히 안 털리더라도 소매치기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로베르토에게 소일거리 주는 셈 치고 시킨 일이니 앞으로도 잘해주길 바라야겠지.


“그러면 나 자리 비운 동안 영지 잘 부탁해.”


일주일 중 무려 5일이나, 하루에 3시간씩이나 일을 했으니 이젠 진짜 푹 쉴 시간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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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고생은 너희들이 해야지(1) 24.07.31 68 7 15쪽
15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5) 24.07.30 77 8 12쪽
14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4) 24.07.30 68 6 12쪽
13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3) 24.07.29 80 6 13쪽
12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2) 24.07.28 76 7 13쪽
»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1) +1 24.07.27 96 8 13쪽
10 DLC 출시는 아직 안 되었을 텐데?(4) 24.07.26 104 9 13쪽
9 DLC 출시는 아직 안 되었을 텐데?(3) 24.07.26 102 12 12쪽
8 DLC 출시는 아직 안 되었을 텐데?(2) 24.07.25 105 11 13쪽
7 DLC 출시는 아직 안 되었을 텐데?(1) 24.07.24 116 11 15쪽
6 처음부터 놀 수만은 없지(3) 24.07.23 127 10 13쪽
5 처음부터 놀 수만은 없지(2) +1 24.07.22 140 10 13쪽
4 처음부터 놀 수만은 없지(1) 24.07.21 159 10 13쪽
3 왕위를 포기하는 중입니다(2) 24.07.20 164 12 13쪽
2 왕위를 포기하는 중입니다(1) 24.07.20 178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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