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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님의 서재입니다.

무한 회귀 게임 속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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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작품등록일 :
2024.07.20 15:35
최근연재일 :
2024.08.03 16:13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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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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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글자수 :
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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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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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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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2쪽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4)

DUMMY


나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안드레의 맞은편에 앉았다.


“혹시 저 때문에 깨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건 아냐. 마법 연습 좀 한 게 뭐 그리 대수인가.”


모닥불 주변에 짙게 남아있는 마나의 흔적만으로도 녀석이 어떤 마법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했는지 뇌리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실력을 대충 살펴보니, 밤을 새워서라도 수련해야 할 정도로 보인다.


“얘들 자는데 방해만 안 되면 상관없어.”


나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모닥불 안을 뒤적거렸다.


어두컴컴한 호숫가에 풀벌레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고, 불침번 세 명을 제외한 다른 병사들은 깊게 잠들었다.

배부르게 먹고 신나게 공을 찼으니 잠이 안 올 리가 없겠지.

그에 반해 안드레는 굳은 표정으로 잠을 못 이루고 내 맞은편에 앉아있다.


하긴, 녀석 입장에선 속이 타겠지.

게임 아르테리아의 세계관 특성상 마법사들의 마법은 당연하게도 전투를 위해서 쓰인다.

나 역시 그런 목적으로 검술 다음으로 마법을 배웠었고, 처음부터 마법사로 등장한 안드레라면 몬스터나 적들을 상대로 활약을 펼치고 싶을 게 분명하다.

이번 생애 전까지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안드레.”

“네, 전하.”

“답답하지?”


그러나 정작 영주 직속 마법사가 된 이후로 안드레가 한 일을 꼽는다면 내 여행에 따라와서 고기 굽고, 아이스박스의 냉기 유지하고, 샤워할 물 끓이는 정도가 고작이다.


“아닙니다.”

“아니긴 뭘.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걸.”


마법사 입장에서 의욕이 날 리 만무한 지시를 제대로 이행할 리 없다.

그래서인지 첫 여행 때 마법으로 고기를 구워보라고 시킨 결과는 아주 가관이었다.

숯덩이가 된 고기와 아예 꽁꽁 얼어버린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보는 병사들의 낯빛이 창백해지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나? 화내진 않았다.


처음에는 나에게 반항하나 싶었지만 등급이 낮다는 걸 직감으로 알고 있어서 그냥 넘어갔다.

몇 번 같이 다니면서 파악한 성격은 반항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소심한 편에 속하기도 하고.

물론 계속 고기를 재료로 한 숯만 생산했다면 더 이상 데리고 다니지 않고 방치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영주 따라다니면서 고기 굽는 거 말고 몬스터를 숯덩어리로 만들고 싶지?”


나는 안드레의 허리에 매달려있는 마법서를 가리키며 물어봤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난 그럴 생각 없으니까 그런쪽으로의 기대는 포기해.”

“아······.”


내 말에 안드레는 탄식하면서 아쉬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왕세자라면 응당 소드마스터급의 검술 실력을 갖추는 걸 넘어서서 몬스터를 직접 쓰러뜨리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게임적인 사고관이 통용되는 세상 속 사람이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맞긴 하다.

그렇다고 나도 그런 식으로 살 마음은 없다.


“이왕 놀러 온 거니 마음 편히 쉬다 가자고. 몬스터가 드글거리는 던전 한복판에서 뜬눈으로 밤새는 것보다야 훨씬 낫잖아?”


이렇게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편하게 야영하는 것도 예전 생에는 누리기 힘들었던 사치였다.

처음에야 모니터로만 보던 게임 속 세상에서의 야영에 들뜨기도 했었다.

몬스터의 기습에 잠이 덜 깬 상태로 검을 휘두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듣는 순간, 난 무의식 상태에서 검을 움켜쥐고 텐트 밖으로 뛰쳐나왔다.

제정신을 차렸을 땐 주변이 몬스터와 동료들의 피로 온통 붉게 물들었고, 저녁에 먹었던 걸 하나도 남김없이 게워내야 했다.

벌써 수백 년 전에 겪었던 일임에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게임 속 세상에서 가장 먼저 겪었던 충격이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응? 뭐가?”

“상당히 불편해 보이셨습니다.”

“그래? 나도 표정으로 드러난 건가?”


나는 뒤통수를 긁으면서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일렁이는 불길 너머로 과거의 편린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다들 웃고 떠들면서 그날 있었던 격렬했던 전투를 회상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서.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둘씩 각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한쪽 팔이 잘려 나간 고통으로 울부짖는 동료의 목소리가 들렸고, 앞으로는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봐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또 다른 동료의 오른쪽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하나둘씩 원래 가졌던 것을 잃어 가는 과정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중에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리면서, 모닥불을 마지막까지 내려다보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


“나 원 참······.”


정작 쉬려고 여기까지 왔건만, 희귀를 반복하면서 겪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난 혀를 찼다.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자 이번에는 또 다른 환상이 시야를 메웠다.


“몸은 멀쩡한데 머리는 안 그러네.”


이번 생에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손등이지만, 예전 생에서는 온갖 상흔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었다.

화상으로 시커멓게 타버리기도 했고, 신성력을 남발한 대가로 피부가 쩍쩍 갈라져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도 했고, 무수한 가시가 촘촘히 박혀 손바닥까지 뚫고 나오기도 했다.

그저 모닥불 앞에 앉아서 내 몸을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반복된 회귀 속에서 겪었던 고통을 자극한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따져가며 그런 것들을 피해만 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택의 침대 위에 누워서 숨 쉬는 것밖에 없다.

예전에야 회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해지는데 몰두하면서 잊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나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내가 남 신경 쓸 상황이 아니긴 한데.”


반면 안드레는 지금 본인의 처지가 누워서 숨만 쉬는 것처럼 느껴져서 답답할 거다.


“안드레, 마법 쓰는 거 보여줘 봐.”

“네?”

“어느 정도 실력인지 자세히 알고 싶어서 말이야.”


평소라면 내 일이 아니면 남의 개인사에 끼어들지 않겠지만,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잠도 안 오고하니 다른 쪽으로 집중 좀 하면서 잡념을 떨쳐내야겠다.


“다들 자고 있으니까 괜히 위력 올리지 말고, 적당히 구현해 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모닥불을 빙 돌아 안드레의 옆에 섰다.


“긴장하지 말고. 평소 마법 연습할 때처럼. 알겠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안드레는 심호흡을 하더니 양손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다.

나에게 마법적인 소양이 있는지 아닌지 마음속으로 따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영주이기 이전에 왕가의 장남인 내 말을 거스르기엔 어려울 터.

그래서인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기를 구울 때와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잠시 후, 순수한 마나로만 이뤄진 불길이 하늘을 향해 펼친 안드레의 손바닥 위로 높게 치솟았다.

불침번을 서면서 곁눈질로 구경하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자, 나는 다가올 필요가 없다며 손짓했다.

열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옆에 있는 내가 다칠 정도의 위력이 되려면 훨씬 강해야 하거든.


“됐어. 이제 그만해도 돼.”

“전하, 어떻습니까?”

“흐음······.”


심장에서 시작되어 손까지 이어졌던 마나의 흐름.

긴장 속에서 읊었던 주문의 구성 방식.

마법진이나 마법서를 활용하지 않고, 가장 직관적인 과정을 거쳐 화염마법이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까지 모두 고려해 보고 내린 결론은······.


“글쎄.”


앞선 생에서 최소 B등급 이상 마법사만을 거느렸던 내 기준에선 탈락이다.

직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고기 구울 때처럼 대충 본 게 아니라 세세하게 살펴보게 되니 확신할 수 있다.

안드레를 처음 봤을 때 직감으로 내렸던 D등급이라는 평가 그대로의 실력이다.


하지만 면전에 대고 냉정한 평가를 내려봤자 좌절만 할 게 뻔하니,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려야겠다.

아직 잠이 안 오기도 하고.


“안드레, 너 아리우스 마탑 출신이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그런데 주문을 읊을 때 프레드릭의 말버릇이 섞여 있네. 그레우스 마탑하고도 연이 닿은 거 같은데, 맞지?”

“프레드릭이라면 혹시 대마법사 프레드릭 교수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그래.”

“마, 맞습니다. 절 지도하셨던 프레드릭 교수님이 그쪽 마탑 출신이신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잘 알지.


내가 회귀를 100번 정도 했다치면, 90번 가까이 포섭했던 A등급의 마법사였으니까.

회귀가 시작된 시점 기준으로도 뛰어난 실력을 지녔기에 안드레가 괜히 대마법사라고 칭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놈의 까탈스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골치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게 더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이번 생에는 아예 상종도 안 할 생각이다.


“별거 아냐. 왕궁에 있다 보면 고명하다고 자부하는 마법사들을 곧잘 만나게 되거든? 그 마법사 중 한 명이 프레드릭이었어.”

“전하께서도 프레드릭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으신 겁니까?”

“뭐, 대충. 과외 좀 받긴 했어.”


거짓말이다.


게임 아르테리아의 시작점이 왕궁이다보니, 왕궁에 있어봤자 튜토리얼 수준의 지식만을 가르쳐준다.

검술을 비롯해 마법 역시 마찬가지라 왕궁에 머무르는 마법사들은 한결같이 가르치는 쪽에는 소질이 없고, 그 중에서도 프레드릭이 단연 압권이었다.

대학 교수들 중 스스로 익히거나 연구 부분에서 탁월한 소질을 보이지만, 강의에서 학생들을 잠재우는 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마법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스타트 지점인 왕궁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야만 했다.

게임이라서 존재하는, 무언가 뒤틀린 설정이 만들어낸 웃긴 현상이다.


“그래서 네가 마법쓰는 거 살펴보니까,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긴 하다.

우선은 기본기부터 문제가 많아 보이니, 내가 직접 똑같은 방식으로 방금 전의 불길을 구현해본 뒤 여러 방식으로 하나씩 개선해서 다시 보여주면 쉽게 이해할······.


“으아악!”

“아차, 실수.”


나름 위력 조절을 한다고 신경 썼는데, 방금 내가 구현한 불길은 모두를 깨울 만큼 너무나 컸다.

내 머리 위에 있던 나뭇잎과 가지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아래로 후두두 떨어질 정도였으니.

매번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마법을 쓸 때마다 해프닝이 벌어지곤 했는데, 말 그대로 해프닝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자칫 잘못했으면 주변이 불바다가 될 뻔했다.


“자자, 다들 들어가서 다시 자. 안드레, 다친댄 없지?”

“네, 넵!”

“아까 본 건 잊어버려. 지금 네 수준에는 하등 도움이 안 되니까. 다시 해볼테니까 잘 봐.”


나는 아까보다 좀 더 신경 써서, 위력을 확실히 줄여서, 위로 들어올린 손바닥 위에 작은 불길을 구현했다.

아니, 구현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큰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말았다.


“잘 안되네. 다시 할까?”

“아, 아닙니다! 이대로 계속 마볍을 유지해 주십시오!”


나는 봤다.

이전에 구현했던 내 마법을 봤을 때처럼 깜짝 놀랐던 안드레의 눈동자가, 내가 일부러 느리게 유도한 마나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너라면 네가 구현한 방식과 뭐가 다른지 알 수 있겠지?”

“네! 확연하게 다릅니다!”

“다들 자야 하니까 대답은 조용히. 대충 이렇게 마나의 흐름을 유도하면 소모된 마나량에 비해 위력이 확 올라간다는 건 알았지? 이번에는 방식을 바꿔서······.”


너무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까진 없다.

안드레가 마법사로서 별볼일 없다고 해도, 마법사라는 자리 자체는 쉽게 도달할 수 없다.

현대 한국으로 치면 판검사나 의사가 될 정도로 공부해야 도달할 수 있는 위치다.

지금의 내 설명을, 날 지켜보고 있는 불침번들처럼 이해 못 할 수준이면 애초에 마법사를 하면 안 된다.


“아······ 그런 이치였군요.”

“아직 설명 안 끝났어. 이번엔 또 다른 방식으로. 마나의 흐름이 아니라 마법식의 완성방식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구현해 볼게. 오른손 말고 왼손으로.”


나는 양손에 번갈아가며 불길을 구현하면서 설명을 이어나갔고, 그럴 때마다 안드레는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작가의말

오늘 18:00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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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고생은 너희들이 해야지(1) 24.07.31 68 7 15쪽
15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5) 24.07.30 77 8 12쪽
»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4) 24.07.30 68 6 12쪽
13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3) 24.07.29 80 6 13쪽
12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2) 24.07.28 75 7 13쪽
11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1) +1 24.07.27 95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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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DLC 출시는 아직 안 되었을 텐데?(3) 24.07.26 102 12 12쪽
8 DLC 출시는 아직 안 되었을 텐데?(2) 24.07.25 105 11 13쪽
7 DLC 출시는 아직 안 되었을 텐데?(1) 24.07.24 116 11 15쪽
6 처음부터 놀 수만은 없지(3) 24.07.23 126 10 13쪽
5 처음부터 놀 수만은 없지(2) +1 24.07.22 139 10 13쪽
4 처음부터 놀 수만은 없지(1) 24.07.21 158 10 13쪽
3 왕위를 포기하는 중입니다(2) 24.07.20 163 12 13쪽
2 왕위를 포기하는 중입니다(1) 24.07.20 178 13 14쪽
1 프롤로그 24.07.20 195 1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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