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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님의 서재입니다.

무한 회귀 게임 속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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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작품등록일 :
2024.07.20 15:35
최근연재일 :
2024.08.0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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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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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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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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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2)

DUMMY

*



게임 아르테리아의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 어림잡아 천 년 정도?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너무나 지겨운 시간이라는 점이다.


매번 싸우고, 성장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마지막엔 또 회귀하고.

그런 식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반복되던 삶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나니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 게임 속 세상에서 열정적으로 즐길 거리가 딱히 없다는 거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즐길 거리 자체는 많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원래 살던 곳이 21세기 한국이라는 점.

스마트폰 하나만 손에 쥐고 있어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아쉽게도 한국에 있을 땐 워낙 바쁘다보니 게임이나 OTT, 유튜브 말고는 손대본 게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 외의 즐길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자극적인지 잘 알고 있다.


그에 반해 중세와 근대의 유럽을 뒤섞어놓고, 거기에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배경을 결합한 아르테리아의 세계의 유희는 심심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야 게임 속 세상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게 신선하고 신비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게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신화나 설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기?

화려한 이펙트와 엄청난 위력의 마법?


확실히 보는 맛은 있긴 한데, 그래봤자 생명체 죽이고 모든 걸 파괴하는, 유형 혹은 무형의 병기에 불과하다.


“행군하는 것도 아닌데 왜 군가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군.”

“네? 아, 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하겠습니다!”

“냅둬. 그냥 듣기 지겨워서 그런 거야.”


아르테리아에 유행하는 음악이나 노래의 경우는 부족하다기보다 질렸다.

왜냐하면 등장인물들이 연주하거나 부르는 노래 모두가 게임 아르테리아의 BGM과 보컬곡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진짜 좋은 노래면 수백 년이 지나도 안 질릴 거라 생각했지만, 진짜 수백 년 넘게 듣다 보니 지겹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인간의 수명이 길어봤자 100년을 넘기기 힘드니까 질리기 전에 다 죽어버린 거겠지.


같은 맥락으로 연극 같은 것도 볼 생각이 안 든다.

아르테리아에 유행하는 연극이야 게임으로 플레이할 때 이벤트 동영상으로 질리게 나왔던 거고, 게임 속 세상으로 들어오니 실제 연극으로 바뀐 거 말고는 달라진 게 없으니까.


“정말 주변 경치가 아름답군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거의 안 보이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러게. 여기가 실리어드가 아니었다면 관광명소가 진작 되고도 남았겠어.”

“그렇게 되기 전에 부인하고 한 번 와봐야겠습니다.”

“부인이라······.”


이성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회귀를 반복하는 동안 주로 가까이 지낸 이성은 스칼렛이었다.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좋은 일도 많았지만, 나쁜 일 역시 많았고, 그걸 또 반복한다는 생각만 해도 몸과 마음 모두 지칠 것만 같았다.

그녀 말고 다른 여성 자체를 사귄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성관계의 A부터 Z까지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없었기에 굳이 그런 일로 골머리 앓고 싶지 않다.


아니면 왕족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또 다른 여성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런 식으로까지 이성과의 관계에 매달리고 싶지 않은 건 둘째치더라도, 지금의 나에게 이성과의 관계를 추구하고픈 욕구라는 게 남아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그래, 현자타임에 들어선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영주로서 최소한도의 할 일은 하고 있으니, 특정 이성에게 열정을 불태우긴 힘들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아이라도 생긴다면 새로운 분쟁요소가 될 건 불을 보듯 뻔하기에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그런 식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배제하고 나니 남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여행이다.


“날씨 진짜 좋네.”


나야 이전 생까지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트루 엔딩을 보기 위해 돌아다닌 거지, 지금처럼 압박감 없이 마음 편히 돌아다닌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진짜 순수한 의미의 여행을 위해 피터슨에게 영지 내에 여행 가볼만한 곳을 추려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가 작성한 문서에는 영지의 주요 요충지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난 그런 곳 말고 그냥 경치 좋고 사람들 없는 곳으로 작성하라고 재차 지시를 내렸고, 그렇게 선별된 곳들을 2주에 한 번씩 주말에 여행을 가는 중이다.


뭐, 처음에 왜 그런 보고를 했는지는 이해한다.


여행가는 김에 영지 내의 민심을 파악하면 영주 입장에서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으니까.

하지만 영주민들의 민심 같은 건 내가 직접 뛰어다니며 확인할 필요없이 다른 이들의 보고만으로 충분하다.

난 실리어드를 발전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물론 내가 파악하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 민심과 관련된 이벤트가 발생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이번에 새로 오신 영주님 아니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일부러 사람이 드문 곳을 목적지로 잡았는데, 나를 태운 마차를 끝내 찾아온 놈들처럼 말이다.

저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자가 근방에 있는 마을의 촌장인지 뭔지겠지.


그런데 저 배불뚝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 같은데?

내 마차 옆에서 말을 타고 따라가던 기사에게 넙죽 허리를 숙이고 나서 신나게 말을 걸더니, 돌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모, 몰라뵈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됐어. 솔직히 알아보면 그게 더 이상한 거야.”

“그, 그게······ 아스탈 호수로 가는 길 맞으시죠? 절경으로 잘 알려진 곳이죠! 수백 년 전, 메마른 대지였던 그곳에 물의 정령이 나타났는데······.”

“그만. 묻지도 않은 배경 설명 줄줄 늘어놓지 마. 괜스레 이벤트 발생한단 말이야.”

“네?”


특정 지역에 존재하는 설화나 민화와 연관된 이벤트가 아르테리아 대륙에 다수 존재한다.


그런데 제작사 측에서 그런 이벤트를 하나하나 개성 넘치게 만들기 귀찮았는지 해당 지역의 특성에 따라 몇 가지 패턴이 반복되곤 한다.

험한 산지에선 갑자기 등장한 몬스터를 상대로 일정 시간 동안 버텨야 한다는지, 호수나 강가에선 힘을 잃어버린 정령이 나타나서 퀘스트를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아무튼 원치 않은 이벤트는 이쪽에서 사절이다.

신물이 날 정도로 지겹기도 하고 말이다.


“긴말 말고, 용건만 짧게 말해.”

“네!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저희 마을이 있는데, 때마침 영주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희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영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

“싫은데?”

“네?”


난 배불뚝이 촌장의 말을 도중에 끊으면서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난 쉬려고 온 거지 일하려고 온 게 아니라고.”

“영주님께 감히 일을 시킨다니요! 절대 아닙니다! 저와 마을 사람들은 그저 영주님을 대접하고픈 마음으로 소소하게나마······.”

“그러니까, 너희들이 사는 마을로 가는 거 자체가 쉬는 게 아니라 일하러 가는 거라고. 내 입장에서는.”

“호, 혹시 영주님이신지 알아채지 못해서 불쾌하시다면······.”

“아까 사과했잖아. 애초에 불쾌하지도 않았고.”


그거야 뭐, 21세기 한국 기준으로도 격식 없는 차림새이니 그거 가지고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던 나의 차림새는 티셔츠와 츄리닝 바지로 평소와 똑같으니까.

그런 내가 아니라, 마차 옆에서 말을 타고 따라 기사를 더 높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건 당연한 거다.


“오히려 짜증 나는 쪽은 댁네 마을 사람들일걸. 느닷없이 높은 사람이 들이닥치는데 좋은 소리 나오는 법이 없어.”

“그럴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너 말이야, 체중 조절 좀 해야겠다. 그러다가 갑자기 훅 간다. 운동할 시간도 없으면 산책이라도 좀 하고, 식단 관리 좀 해.”

“영주님?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잘 모르겠······.”

“그런 게 있어. 얘들아, 가자.”


이런 식으로 예정에 없는 초대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데에 익숙해졌는지 날 호위 중인 기사와 병사들은 군말 없이 내 지시에 따랐다.


처음에는 날 찾아온 이들의 정성을 감안해서라도 초대에 응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날 설득하자, 나는 반대로 물어봤었다.


불특정 다수가 모여있는 곳에서 너희들만으로 날 경호할 수 있냐며.

먹는 건 고사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이들의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감시하는 걸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떠나기 전까지 가능하겠냐며.

오늘도 어김없이 모습을 감추고 마차 위와 바닥에 올라타고 붙어서 비밀 경호 중인 엘릭과 엘레나 남매와 비슷한 수준의 경호를 요구하자,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서 부정했다.


“이런 일도 벌써 네 번째로군요.”

“사람들이 진짜 말귀를 못 알아듣네.”


나는 방금 전 겪었던 일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 피터슨에게 지시를 내렸었다.


내가 여행가는 도중에는 도시나 마을을 일체 방문할 계획이 없으니, 어떤 이유에서든지 영주인 나를 초대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미리 보내놓으라고.

하지만 매번 역효과만 나는 것 같다.


뭐, 어쩔 수 없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니까.


아, 여기엔 인간 말고 다른 이종족도 많으니 말할 줄 아는 생명체로 범위를 확장해야 하나?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간에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하지 말라’고 내리는 명령이 ‘진짜 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앞으로 내가 내릴 명령의 대부분은 무언가 하지 말라는 것일테니까.



*



아스탈 호수에 도착해보니 아름답다는 소문은 과언이 아니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호수 주변을 감싸고 있고, 넓은 호수의 맑은 수면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무엇보다 내 일행들 말고 아무도 안 보인다는 점이 제일 맘에 든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걸어서 2시간이나 걸리니, 괜히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으니 여행 오기 딱 적격이다.


나는 마차에서 짐을 내리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호숫가로 다가갔다.

챙이 넓은 모자와 함께 낚싯대와 낚시 의자를 챙기고서.


“지난번보다 많이 낚이면 좋을 텐데.”


낚시야말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은, 예전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레포츠였다.


아르테리아의 모든 생명체에는 마나가 깃든다.

구슬땀을 흘리며 텐트를 설치 중인 병사들,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오리는 물론이고 지금 미끼용으로 꺼낸 지렁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수면 아래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에게도 말이다.


이런 당연한 사실이 아마도 5번째 회귀 이후부터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키우면서 문제가 되었다.


마법사로서 역량 중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타 생명체가 소유한 마나의 감지, 즉 마나 감지 스킬.

그러다보니 무의식중에 정신을 집중하면 물고기들을 비롯해 수면 아래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의 위치를 감지해 버리는, 낚시꾼 입장에서 불상사가 벌어졌다.


물고기들의 위치가 훤히 보이는 상황에서 낚싯대를 던져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고기가 낚일지 말지, 낚은 물고기의 씨알이 얼마나 굵을지를 운에 맡기고서 수면 위로 올라온 낚시찌를 지켜보는 게 바로 낚시의 묘미이니 말이다.

지금이야 마나 감지 스킬을 활성화시키고 다닐 이유가 딱히 없으니, 편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이건 음, 참나······.”


그렇다고 이런 게 낚이기를 바란 건 절대 아니다.

묵직한 것이 걸렸다고 느낀 순간, 낚싯대를 낚아채자 무언가가 담긴 유리병이 걸려서 올라왔다.

여러 번 접힌 쪽지의 내용은 굳이 펼쳐보지 않아도 뻔하다.


“난 쉬러 왔다고. 이딴 이벤트 따위 필요 없어.”


나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쪽지를 읽지도 않고 갈기갈기 찢어 옆으로 내던졌고, 빈 유리병을 도로 호수 안에 던져버렸다.


보나마나 여기로 가라, 저기로 가라, 간 김에 그쪽으로도 가봐라 등등의, 소위 말하는 뺑이를 치게하는 이벤트가 분명하다.

낮은 확률로 엄청난 성능의 아이템을 구할 수도 있지만, 그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데 안달이 났던 예전 생의 나 혹은 다음 생의 나에게나 필요한 거다.


“이쪽! 이쪽으로 차!”

“그쪽 말고 이쪽! 여기! 여기야!”

“너무 멀리 차지 마! 영주님 낚시하는데 방해 될라!”


어느새 텐트를 다 설치했는지, 병사들의 흥겨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가죽공 하나를 가지고 열 명의 남자들이 열성적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군인은 어딜 가든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게임 속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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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5) 24.07.30 77 8 12쪽
14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4) 24.07.30 68 6 12쪽
13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3) 24.07.29 80 6 13쪽
»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2) 24.07.28 76 7 13쪽
11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1) +1 24.07.27 95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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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LC 출시는 아직 안 되었을 텐데?(1) 24.07.24 116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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