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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가 님의 서재입니다.

신궁강림 이계싹쓸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실가
작품등록일 :
2019.12.10 22:17
최근연재일 :
2020.02.0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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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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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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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1,105

작성
19.12.2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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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Ep5. 어그로(1)

DUMMY

아이라를 만나기 위해 킵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성기사가 나를 찾는 다라···’


라이센은 사제나 성기사들에게 매우 익숙했다. 천애 고아로 태어난 그는 피닉스 성의 수도원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사제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던 라이센. 그랬기 때문에 그의 어릴 적 꿈은 역시나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력을 지닐 수 없었기에 진즉에 포기해 버린 꿈이지만.


게다가 지금 라이센은 한때 불탔던 신앙심이 점점 옅어져 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전생의 기억이 돌아온 후에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었다. 왜일까?


사제가 되는 걸 포기하고 수도원을 나온 뒤로도 라이센은 틈만 나면 그곳을 찾았다. 그의 신앙심이 특히나 강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지병 때문이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는 환각과 환청···’


어렸을 적부터 그는 남이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었다. 병세가 심할 때는 온몸이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기도 했다.


사실 사제들도 그 병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들의 기도가 라이센에게 큰 위로가 됐을 뿐이었다. 사제들은 언제나 신에 대한 믿음을 더 크게 가져야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최근에 라이센은 환각이나 환청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사지가 끊어지는 것 같은 병세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의 기억이 돌아왔을 때부터 발작증세가 말끔히 사라졌어.’


문득 그 사실을 깨달은 그는 그것 때문에 자신의 신앙심이 옅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라이센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옅어져 버린 신앙심.



그게 무엇이든, 어떤 것에 대한 열정이 식어간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떠올랐다.


바로 전생의 어머니.


‘내가 앓던 병은 전생의 어머니와 어떤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쫓겨난 어머니. 그래, 전생의 내 어머니는···



“자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면서 오나?”


라이센의 상념이 깨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행정관 모스타초가 서 있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하피들의 씨를 말렸다는 소식이 사실인가?”


모스타초는 놀란듯한 눈으로 라이센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블린에 하피들까지. 대체 활로 어떻게 그리 쉽게 괴물을 잡을 수 있는 거지? 정말이지 놀랍군.”


“여기 온 성기사 한 분이 저를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렇지. 따라오게. 그러지 않아도 아이라 경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네.”




***




라이센은 모스타초의 안내를 따라 킵 안의 작은 알현실에 다다랐다.


알현실 안에는 아이라와 다른 성기사 하나가 탁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이목이 쏠리자 모스타초가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셨소, 아이라 경. 여기 이 친구가 요 근래 가장 활약이 뛰어난 활잡이인, 이름이···”

“라이센, 피닉스에서 온 라이센이오.”


인사를 마치자 성기사 둘은 라이센을 빤히 쳐다봤다. 아이라의 시선이 라이센의 얼굴로 향했다가 엄지손가락에 찬 깍지에 꽂혔다. 이런, 미녀가 알아봐 주니 영광이군.


또 다른 성기사는 기사단 입성 시 아이라 대신 잠시 선두에 섰던 남자였다. 금발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던 미남자. 굉장한 미남이었지만 짙은 쌍꺼풀이 왠지 좀 느끼했다.


“반가워, 라이센. 난 모살라스 성기사단장 아이라.”

“나는 아이라 경의 충실한 수하이자 모살라스 성기사단 제1의 기사, 그리고 아스토르가의 정당한 계승자이자 새벽 별의 기사. 스칼 아스트로가.”


거참, 이놈도 자기소개 한번 요란하네. 그 미친개 삼 형제랑 비슷한 부류인가.


분위기가 뻘쭘해지자 라이센이 아이라에게 말했다.


“다시 보니 반갑소. 그때 이 깍지를 찾아준 덕택에 내가···”

“바쁘니까 본론부터 얘기할게, 라이센.”


아이라는 라이센의 말을 그대로 자르더니 살짝 헛기침했다. 나름 구면이고 서로 손도 잡은 사이인데, 이러면 좀 섭섭한 한데.


“우린 내일 당장 바하크탈로 떠나야 해. 거기까지 우릴 지원해줄 활잡이가 필요해.”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뭔 말이래. 최소한 왜 가는 건지 정도는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린 교단의 배신자를 추적 중이야. 아, 물론 당신에게 딱히 위험한 일은 없어. 그저 뒤에서 활로 우릴 좀 지원해주거나, 가끔 산짐승 몇 마리 잡아다 주는 정도를 원하니까.”


한 마디로 이것저것 잡일을 시킬 활잡이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나저나 바하크탈이라면 들어만 봤지 어디 있는 지도 모르는데. 게다가 그 넓은 지역 중 어딜 말하는 거야.


“좀 뜬금없긴 하오. 거기까지 얼마나 걸리오?”

“숲을 관통하는 지름길로 갈 생각이니까 말을 타면 한 달 정도 걸릴 거야. 그리고···”


아이라가 허리춤에서 나침반처럼 생긴 물건을 꺼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람의 정확한 위치는 잘 몰라. 그저 이 나침반을 따라갈 뿐이지. 이게 그자의 위치를 계속 알려주고 있거든.”

“한 달이 더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구려.”

“그럴지도.”


특정한 사람을 찾을 수 있는 나침반이라.


아이라는 금빛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라이센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생각을 하던 라이센이 입을 열었다.


“그럼 보수는 얼마요?”

“금화 100개.”


워메, 금화 100개라고? 그녀의 입에서 생각보다 커다란 액수가 나오자 라이센은 딸꾹질이 나오는 걸 간신히 삼켰다.


어차피 세상을 자유롭게 유랑하기 위해 사냥꾼이 되었다. 더군다나 성기사들과 함께라면 괴물로부터도 안전할 것 아닌가. 라이센의 입장에서는 거부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그때 스칼이 다소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이봐. 기껏 산토끼 몇 마리 잡고 금화 100개면 거저나 다름없어. 뭐 싫으면 다른 활잡이 알아보고.”

“좋소.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는 것 같소.”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라가 선급으로 금화 10개를 내밀었다. 그나저나 이 여자. 업무적인 말밖에는 안 한다.


“내일 아침 먼저 북쪽 대수림에 들러야 해. 이 근처에도 교단의 배반자가 한 명 더 있거든. 일단 그자를 먼저 처리한 후 바하크탈로 출발할 거야.”

“아까부터 교단의 배반자라 말하는데, 대체 어떤 자들이길래 그러오?”

“이 근처에 있는 자는 금지된 마법을 쓰는 자야. 이름은 사르 카즈빈. 마법으로 괴물을 조종해 이곳저곳에 손해를 끼쳤지. 원래 사제였던 만큼 교단에서 꼭 처리해야 하는 자고.”


문득 라이센의 뇌리를 스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대수림 초입에서 마법으로 하피를 조종하던 사제를 보긴 봤소.”

“뭐? 어디서?”

“하피가 출몰하던 봉우리 정상에서요. 손에서 막 불도 일으키던데.”

“화, 확실해? 어떻게 생겼는데?”

“뭐 비리비리 마른 대머리가 한둘은 아니잖소.”


그러자 아이라와 스칼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그럼 그자는 어떻게 됐지?”


“내가 죽였소.”


“뭐라고?···”

“그놈이 하피를 조종해 마을 아이들을 납치하고, 또 죽였소. 난 마을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놈을 처단했소. 백번 죽어도 싼 놈이었소.”


라이센은 봉우리의 남자를 떠올리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라와 스칼은 그 말을 듣고는 둘 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갑자기 스칼이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 그 말을 우리더러 믿으라고? 일개 활잡이 따위가 마법사를 잡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너 그자가 어떤 놈인 줄이나 알고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냐.”

“허 참, 못 믿겠으면 봉우리에 올라 확인해 보쇼.”

“뭐, 뭐라?”


아이라가 그런 스칼을 손으로 제지한 후 라이센에게 물었다.


“좋아, 라이센. 혹시 그자를 처치했다는 증거가 있어?”


그러자 라이센이 검은 반지를 꺼내 아이라에게 내밀었다. 하피 봉우리의 남자를 처치하고 얻은 검은 반지. 어디다 팔아먹을까 해서 챙겨둔 건데.


반지를 받아 든 아이라의 에메랄드빛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스칼도 그것을 곁눈질하더니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기세를 멈추지 않고 라이센에게 윽박질렀다.


“네 이놈, 어디서 가짜 반지를 내밀어 위증하는 거냐? 사제에게 거짓말을 한 죄가 얼마나 큰지 몰라서 이래?”

“잠깐, 스칼. 기다려.”


아이라가 허리춤에서 또 다른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을 확인한 그녀의 동공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스칼, 이거 봐. 자침이 떨어졌어···”

“그, 그런···”

“사르 카즈빈은 죽었어.”

“그럴 수가···”


아이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교단 내에서도 요주의 이단자였다. 자기들도 상대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도 아니고 일개 활잡이가 그를 죽였다니. 어떻게 그의 정신지배술을 피해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운이 그렇게도 좋았나.


“거, 확인했으면 반지나 돌려주시오.”

“···”


아이라는 말없이 반지를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이단자를 처치한 자는 그의 물건에 대해 소유권이 있었다. 라이센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반지, 당신 것이긴 하지만 부디 조심하도록.”

“그건 무슨 말이오?”

“악마의 힘이 깃든 반지니까. 잘못하면 그 반지에 지배당할 수도 있어.”


악마의 반지라. 어쩐지 범상치 않은 기운이 잔뜩 묻어나더라니. 어쨌거나 그 말은 잘만 팔면 크게 값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군. 이거 생각지도 않은 횡재인걸.



아이라는 라이센에게 일정은 변함없이 내일 아침 출발이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라이센이 나가려다 말고 아이라에게 물었다.


“근데 요즘 성기사들은 왜 그리들 성력을 내보이며 다니는 거요?”

“그건 무슨 소리지?”

“지금도 은은하게 성력을 뿜고 있지 않소. 당신이나 스칼이나.”

“뭐?”

“당신들이 뛰어난 성기사인 건 내 이미 알고 있소. 그러니 같이 다닐 거면 앞으로 그러지 말아 주시오. 눈이 부셔서 말이오.”


라이센은 그렇게 말하고선 휑하니 나가버렸다. 아이라는 멍해진 얼굴로 닫힌 문을 바라봤다.


쓰지도 않은 성력이 눈에 보일 리는 없다. 만약 보인다면 그것은 사제 개인이 가진 성력의 잠재력일 터.



‘신이 가진 힘의 근원을 아는 자만이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아이라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




다음 날 아침.


킵 앞으로 향하는 라이센의 눈이 퀭했다. 어젯밤 사냥꾼들의 질문 공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괜히 쓸데없는 구라는 쳐가지고.


킵 앞에는 말 세 마리와 스칼이 라이센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운데의 백마는 아이라의 말이었다. 그녀만큼이나 아름다운 백마였다.


그 백마를 넋 놓고 쳐다보는데, 스칼이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밥 짓는 거 포함해서 말 여물 먹이는 것도 네가 해야 하는 거 알지?”

“뭐요? 어제 그런 얘긴 없었소.”

“금화 100개가 공짜는 아니잖아? 너도 밥값은 해야지.”

“그러는 당신은 뭘 하오?”

“너를 괴물로부터 누가 보호해줄 것 같냐?”


라이센은 앞으로 이런 놈과 함께 다닐 생각을 하니 숨이 탁 막혀왔다.


“괴물은 나도 좀 잡아 봤소만.”

“푸하하, 그 쪼그만 활로?”


이놈은 어제부터 자꾸 선넘네. 기껏 예의 바르게 대해줬더니 어디다 대고 자꾸 하대냐. 느끼하게 생겨가지고.


“그러는 넌 괴물을 얼마나 잡아봤소?”

“뭐, 뭐라고? 너? 너어?”


사제는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라크교의 가르침에 따라, 사제들에게 존칭을 쓰는 것은 표면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물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없지만.


스칼도 그걸 아는지 얼굴만 벌겋게 닳아 오를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잠시 뒤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내기 하나 하지.”

“무슨 내기 말이냐?”

“네놈이 내가 잡는 괴물의 반만이라도 잡으면 네놈이 원하는 걸 하나 들어주지. 대신.”

“대신?”

“그러지 못하면 밥과 여물은 네놈이 계속 준비해야 한다.”


까짓거 밥 짓고 말 여물 먹이는 게 뭐가 대수라고. 이제껏 노예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온 라이센은 별로 잃을 게 없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흔쾌히 이를 허락하자 저쪽에서 아이라가 나타났다. 다가오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던 스칼이 나직이 말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행여 아이라 단장께 흑심이라도 품으면 그날로 목이 달아날 줄 알아. 알아들어?”


이놈 보게나. 흑심은 대체 누가 품고 있는 거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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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p6. 짐승같은(2) +11 20.01.01 7,185 161 13쪽
18 Ep6. 짐승같은(1) +14 19.12.31 7,687 166 13쪽
17 Ep5. 어그로(2) +11 19.12.30 7,534 185 14쪽
» Ep5. 어그로(1) +10 19.12.29 7,748 178 13쪽
15 Ep4. 그들의 둥지(5) (수정) +13 19.12.27 7,783 169 14쪽
14 Ep4. 그들의 둥지(4) +5 19.12.26 7,709 173 13쪽
13 Ep4. 그들의 둥지(3) +6 19.12.25 7,790 180 12쪽
12 Ep4. 그들의 둥지(2) +8 19.12.24 8,107 185 14쪽
11 Ep4. 그들의 둥지(1) +12 19.12.23 8,630 171 14쪽
10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5) +8 19.12.22 8,683 166 13쪽
9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4) +15 19.12.20 8,713 168 13쪽
8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3) +16 19.12.19 8,961 184 12쪽
7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2) +6 19.12.18 9,664 189 13쪽
6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1) +18 19.12.17 10,075 203 13쪽
5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4) +14 19.12.16 10,182 200 14쪽
4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3) +13 19.12.14 10,508 198 14쪽
3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2) +11 19.12.13 10,792 215 13쪽
2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1) +15 19.12.12 12,304 205 13쪽
1 Ep1. 프롤로그 +14 19.12.11 13,669 18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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