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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가 님의 서재입니다.

신궁강림 이계싹쓸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실가
작품등록일 :
2019.12.10 22:17
최근연재일 :
2020.02.04 21:58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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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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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1,105

작성
19.12.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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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글자
13쪽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1)

DUMMY

라이센은 동쪽 문에 다다랐다.


지금처럼 늦은 시간엔 성의 입출입이 철저히 통제된다. 일단 이 문을 무사히 통과하는 게 문제였다.


곧 그를 발견한 문지기가 창을 들이댔다.


“웬 놈이냐? 이 늦은 시간에 어딜 나가려고?”

“이거 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라이센이 후드를 내리며 얼굴을 내밀었다. 얼굴을 확인한 문지기가 그를 알아봤다.


“어라? 너 혹시 오늘 결투에서 케이드 경을 쓰러트린 놈 아니냐?”

“예, 눈썰미가 있으시군요.”

“허허, 그래? 그러는 자네야말로 정말 대단하더군. 화살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조금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문지기가 잠시 라이센의 위아래를 훑더니 다시 물었다.


“그런데 통행허가증이라도 있나? 아무리 자네라 해도 지금은 밖으로 못 내보내.”



“그게 사실은 영주 님께서 지금 당장 꺼지라고 하셔서.”



“아···”


그제야 문지기는 결투에서 죽은 자가 영주의 아들이었음을 상기했다. 아무리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영주라도 아들을 죽인 자를 계속 보고 싶진 않겠지.


문지기가 머뭇거리자 라이센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통행허가증은 받아와야겠죠? 그럼 영주 님을 다시 뵙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니. 그건 아닐세.”


문지기는 생각했다. 규칙도 규칙이지만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 괜히 이 자를 돌려보냈다간 영주의 질책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마치자 부리나케 성문을 열었다.


“그래도 정당한 결투였는데 이 야심한 밤에 영주 님도 참 너무 하시는군.”

“뭐 어쩔 수 있겠습니까?”

“정말 안됐군. 하지만 명이 떨어진 이상 나도 자네를 숨겨줄 수는 없네. 부디 조심히 가게.”


문지기는 라이센이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라이센은 살짝 머뭇거렸다.


“혹시 살짝 눈감아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적어도 날이 밝으면 떠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미안하네. 영주 님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서. 대신 가면서 이거라도 먹게.”


문지기는 미안했는지 들고 있던 육포 꾸러미를 라이센의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그의 등을 황급히 떠밀기까지 했다.


라이센은 한숨을 푹 쉬며 성 밖으로 나갔다.



‘어째 좀 싱겁네. 금화 한 개 정도는 쓸 걸 각오했는데.’




***




성 밖을 나와 길을 걷던 라이센이 어느덧 갈림길에 다다랐다. 하지만 어디로 가면 뭐가 나오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자리에 멈춰선 그가 고향 피닉스 성이 있을 법한 방향을 바라봤다. 하나 확실한 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이었다.


‘피닉스는 칼도르프에 패했다. 보상금으로 내야 할 돈도 엄청날 것이다. 만약 칼도르프에 나를 내주고 그걸 조금이나마 깎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


게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다시 그곳의 영지민으로 살아야 한다.


말이 영지민이지 사실상의 노예.


이 세계에 사는 평민들의 삶은 원래 그러했다. 자기가 속한 영지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삶.


그가 전쟁에 나온 이유는 한 번만이라도 바깥세상을 구경해보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자유로웠던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이상 더더욱 고향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하지만 영주가 영지민에게 이동의 자유를 준다 하더라도 혼자 밖으로 돌아다니기는 어려운 일.


‘숲의 괴물들···’


이 세계에서는 사람이 사는 곳을 조금만 벗어나도 무시무시한 괴물이 들끓는다. 혼자서 영지 밖으로 나간다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에 가깝다. 전생에서 기껏 산짐승이나 산적들을 조심하며 다녔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들은 딱 두 부류.


바로 라크교의 성기사, 그리고 사냥꾼.


라크교의 사제는 빛의 신 라크슈의 가호를 받는다. 그걸 어떻게 알아보는 건지 괴물은 먼저 덤비지 않는 한 그들을 잘 공격하지 않는다.


다음은 사냥꾼.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숲의 괴물을 잡거나 지역을 오가는 의뢰를 받아먹고 사는 부류다.


이 세계에서는 전생에서처럼 그저 산짐승을 잡는 사람을 사냥꾼이라 부르지 않는다. 애초에 산짐승을 잡으러 다니는 사람도 없다. 숲은 언제나 위험하니까.


그랬기 때문에 라이센은 어렸을 때부터 성기사나 사냥꾼을 동경해왔다. 그 둘만이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유롭게 떠돌던 삶.


그는 현생에서도 반드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후부터는 지금껏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것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라이센은 등에 멘 활과 화살을 더듬어 보았다.



‘이게 있으면 나도 사냥꾼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강해질수록 더 자유로워지겠지?’



라이센은 갈림길의 한쪽을 택하며 전생의 기억을 곱씹었다.


전생에서 그의 본명은 김인홍(金仁鴻).


별호는 봉이(鳳伊).


소싯적 집안 몰래 무과시험에 붙었으나 아버지의 방해로 벼슬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그처럼 무과시험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얻지 못한 사람을 일컬어 선달(先達)이라 했다.




봉이 김선달(鳳伊 金 先達).




지금은 피닉스의 라이센.


비루한 출신인 만큼 성은 없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




라이센이 길을 떠난 지 이틀이 흘렀다.


그는 바닥에 말과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곧 마을이나 성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안도한 라이센은 들고 있던 활을 다시 어깨에 걸고 화살을 집어넣었다. 다행히 이틀 동안 활을 쏠 일은 없었지만, 긴 시간 동안 손에 들고 다니느라 몹시 불편했다.


‘정말이지 불편하기 짝이 없군.’


그가 느끼기에 활을 어깨에 걸고, 화살통을 등에 메는 이 세계의 방식은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어깨에 활을 메고 있으면 갑작스럽게 적이 나타날 때 빠르게 활을 빼 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칼은 칼집에 넣어 허리춤에 찬다. 그래서 갑작스레 적이 나타나도 빠르게 뽑는 게 가능하다. 그런데 활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지?’


칼과 마찬가지로 활도 활집에 넣어 왼쪽 허리춤에 차야 한다. 그래야 쉽게 휴대할 수 있으며, 갑작스러운 괴물의 출현에 대비할 수 있다.


‘게다가 화살통을 등에 멘다니 도무지 적응이 안되네.’


화살통을 등에 메는 방식도 이해되지 않았다. 손으로 더듬어 화살을 뽑는 방식은 실수가 잦았으며, 조금이라도 크게 움직이면 화살이 빠지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눈으로 화살을 볼 수 없으니 여러 종류의 화살을 운용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화살집은 오른쪽 허리춤에 차야 하지.’


하긴, 이 세계에서 활이란 움직이면서 쏘는 무기가 아니니 그런 장비가 별로 필요도 없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라이센은 전생의 장비를 떠올렸다.



동개(筒箇).



활집과 화살집을 한데 엮어 허리춤에 차는 장비. 활집은 왼쪽에, 화살집은 오른쪽에 달린 형태다.


이 세계에서 활잡이가 인정받지 못하는 건 장비가 발달하지 못한 탓도 있지 않을까.


‘마을에 도착하면 그 동개 비스무리 한 거라도 만들어줄 장인부터 찾아야 한다.’




***




라이센은 목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영지에 도착했다. 영지의 이름은 장수풍뎅이 성.


그의 고향인 피닉스 성보다 훨씬 작고 아담한 곳. 하지만 생전 처음으로 피닉스가 아닌 다른 곳에 왔다는 생각에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물론 얼마 전까지 칼도르프 성에 있긴 했다. 하지만 살아남는 데 급급했기에 그 풍경을 여유롭게 담지 못했다. 때문에 장수풍뎅이 성은 그가 처음으로 겪는 공간적 이질감이었다.


“이야···”


늘어선 집들, 중앙의 킵, 광장, 하물며 우물의 생김새까지. 그가 살던 곳과는 매우 달랐다. 사실 얼핏 보면 별다를 것 없는 모양새지만 라이센에게는 마치 다른 세계나 다름없었다.


‘어디 보자, 어디 가죽을 다루는 곳이 있을 텐데···’


감상을 제쳐 두고 동개를 만들어줄 곳을 찾던 그는 어렵지 않게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고민하지 않고 들어선 가죽장인의 집.


불룩 나온 배와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중년인이 라이센을 맞았다. 손님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조금 뚱했다.


“어서 오시오. 이곳 사람은 아닌 걸 보니 사냥꾼이오?”

“그렇소. 가죽으로 된 거라면 뭐라도 만들어 줄 수 있소?”

“그게··· 요즘 가죽 구하기가 힘들어 좀 비쌀 텐데.”


배불뚝이는 그렇게 말하며 라이센의 위아래를 훑었다.


“그건 왜 그렇소?”

“보다시피 이곳엔 가축이 적소. 그래서 산짐승을 잡아야 하는데, 얼마 전부터 숲에 괴물이 나타나서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근처 숲에 괴물이 나타나는 거야 어디나 마찬가지고.


“게다가 마을에 상단이 안 들어 온 지도 몇 달이 넘었소. 돈을 벌래도 재료가 있어야지 이거 원, 크흠.”


이 세계의 상단은 단독으로 영지를 돌아다닐 수 없다. 밖으로 나가면 온갖 괴물들이 득실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단은 교단의 사제들이 영지 사이를 이동할 때 따라 움직인다.


어쨌거나 상단이 자주 오지 못하는 것도 어디나 마찬가지일 텐데.


‘아주 비싸게 받아먹으려고 밑밥부터 까네.’


그렇게 생각한 라이센이 가게 안을 둘러 보는데, 선반 위에 놓인 활 한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짐승도 직접 잡으시오?”

“예전엔 그랬는데 요즘엔 못하오. 멧돼지 한 마리 잡고자 목숨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활에 관심 끊은 지 십 년은 넘은 것 같소.”

“아, 그렇소?”


라이센은 화제를 돌려 가격을 깎을 밑밥을 조금이라도 깔아두고자 했다. 하지만 별다른 묘안은 들지 않았다.


짐짓 딴청을 피우는 척하던 배불뚝이가 슬쩍 라이센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주문하려는 물건은 뭐요? 들어는 봐야 가격을 말해 줄 것 아니오.”

“뭐든 말하면 만들어 줄 수는 있는 거요?”

“뭐요? 내가 무두질한 지 삼십 년이 넘었소. 내가 못 만들면 이 근방에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지.”

“그렇소? 그리 말해주니 조금은 믿음이 가는구려.”

“크흠. 그럼 어서 말해 보시오.”


라이센은 동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배불뚝이에겐 생소한 물건이었지만 원래 복잡한 구조가 아니기에 쉽게 이해했다.


“등에 메면 될 것을 굳이 활집이 필요··· 아니지. 사람도 집이 있는데 활도 집이 있는 게 맞겠소. 하하하.”

“일단 치수부터 재보시오.”


배불뚝이는 라이센으로 부터 활을 건네받았다. 활을 받자마자 그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허, 그것참 작네. 게다가 이리 울퉁불퉁 굴곡이 져 있는데 화살은 잘 나갈··· 아, 뭐 일단 재보겠소.”


저러는 걸 보니 그다지 고수는 아니군.


배불뚝이는 나무판에 대고 활을 본떠 그렸다. 활을 다시 건네주면서도 그는 얼굴의 웃음기를 가리느라 애쓰는 표정이었다.


“화살집은 밑부분이 촉을 하나마다 잡아 줄 수 있게 각각 내피를 대야 하오.”

“통에 넣으면 어차피 안 빠질 텐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오? 처음 듣는 거긴 한데 그건 좀 돈이 더 들겠소.”


하긴 니가 뭘 알겠냐. 어쨌거나 주의사항을 파악한 배불뚝이가 나무판 위에 뭔가를 계산하는 척하며 끄적댔다.


“흠, 원래 금화 한 개는 받아야 하는데, 내 특별히 반값만 받겠소. 금화 반 개만 주시오.”

“뭐요? 금화 반 개?”


금화 반 개라면 은화 다섯 개다. 대략 전생의 물가와 비교해 보면 지금 들고 있는 활도 한 자루 만들 수 있는 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 내가 이래서 사기꾼들이 싫다니까.’


하지만 도무지 깎아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데서 마땅히 구할 곳도 없는지라 라이센은 어쩔 수 없이 선급금을 냈다.



돈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 배불뚝이가 물었다.


“그나저나 이런 활 장비는 본 적이 없는데, 어디서 이런 걸 쓰는 거요?”


라이센은 그 말을 듣자마자 뭔가 촉이 왔음을 느꼈다.


“포샤트. 포샤트성에서는 이 같은 장비가 요즘 유행하고 있소. 모르셨소?”

“엥? 포샤트? 그럼 손님이 포샤트에서 왔단 말이오?”

“그렇소만.”


포샤트는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도시다. 괴물이 잘 나오지 않는 강줄기를 이용한 중계무역. 그것으로 크게 성행한 도시.


‘실제로 가본 적은 없고 들어만 봤지만.’


그리고 라이센이 알고 있는 유일한 대도시기도 했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큰 도시에서 유행이 돌기 시작했으니, 이제 이런 활 장비가 전 대륙으로 퍼질 거요.”



“뭐요? 그게 정말이오?”



좋아. 되든 안되든 뭔가 썰이라도 풀어놓고 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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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p6. 짐승같은(1) +14 19.12.31 7,687 166 13쪽
17 Ep5. 어그로(2) +11 19.12.30 7,534 185 14쪽
16 Ep5. 어그로(1) +10 19.12.29 7,748 178 13쪽
15 Ep4. 그들의 둥지(5) (수정) +13 19.12.27 7,783 169 14쪽
14 Ep4. 그들의 둥지(4) +5 19.12.26 7,709 173 13쪽
13 Ep4. 그들의 둥지(3) +6 19.12.25 7,790 180 12쪽
12 Ep4. 그들의 둥지(2) +8 19.12.24 8,107 185 14쪽
11 Ep4. 그들의 둥지(1) +12 19.12.23 8,630 171 14쪽
10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5) +8 19.12.22 8,683 166 13쪽
9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4) +15 19.12.20 8,713 168 13쪽
8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3) +16 19.12.19 8,961 184 12쪽
7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2) +6 19.12.18 9,664 189 13쪽
»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1) +18 19.12.17 10,076 203 13쪽
5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4) +14 19.12.16 10,182 200 14쪽
4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3) +13 19.12.14 10,508 198 14쪽
3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2) +11 19.12.13 10,792 215 13쪽
2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1) +15 19.12.12 12,304 205 13쪽
1 Ep1. 프롤로그 +14 19.12.11 13,669 18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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