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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가 님의 서재입니다.

신궁강림 이계싹쓸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실가
작품등록일 :
2019.12.10 22:17
최근연재일 :
2020.02.04 21:58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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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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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9
글자수 :
281,105

작성
19.12.2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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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Ep4. 그들의 둥지(3)

DUMMY

다음 날 아침. 라이센은 마을 사람들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단돈 금화 5개에 일을 하려니 속이 좀 쓰렸지만, 하피들을 죽이고 얻을 경험치와 둥지에 숨겨뒀을지도 모르는 보물을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우리 애들을 꼭 좀 구해주시오.”

“저도 부탁합니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우, 우리 아이는 감색 옷을 입고 있소. 혹시라도 보거들랑···”


의뢰를 맡겼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따라나서며 라이센을 배웅했다. 아이를 잃은 부모만큼 절실한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너무 이러면 부담되는데.


라이센을 배웅하는 무리에는 니엘도 껴있었다. 어제 활을 가르쳐 달라던 그 건방진 꼬마다. 녀석은 라이센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별말이 없었다. 이놈은 왜 나온 거냐.


“넌 뭐 덕담이라도 한마디 안 보태냐? 아, 덕담이 무슨 뜻이냐면···”

“제 동생 이름은 라엘라에요. 이제 막 2살 된 여자애요.”

“뭐?”


그렇군. 이 꼬마의 동생도 하피에게 납치됐던 거군. 라이센은 돌아서려다 말고 니엘에게 물었다.


“그럼 너 혹시 활을 가르쳐 달라던 이유가···”

“아저씨가 못 구해오면 그땐 제가 갈 거예요.”

“흠, 그러냐? 십 년은 더 연습해야 할 것 같던데.”

“···”


짧은 대화를 마친 라이센은 곧장 하피의 봉우리로 향했다. 니엘은 멀어져가는 라이센의 등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




“헥헥, 거 더럽게 가파르네.”


봉우리를 오르던 라이센이 투덜거렸다. 게다가 이곳은 나무와 풀이 거의 없는 돌투성이 산이었다. 흙바닥처럼 바닥이 부드럽지 않아 고생하기 딱 좋았다.


뻐꾹, 뻐꾹.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가 났다. 그놈들 참. 괴물이 나타나는 곳에서 잘도 사는군.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 새다. 일생을 여기저기 떠돌며 사니 그럴 필요가 없겠지. 그 소리에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살던 전생의 자신이 겹쳐져 피식 웃음이 났다.


후드를 벗고 잠시 이마의 땀을 닦던 라이센이 허리춤의 화살을 확인했다.


‘하나는 갈래살, 하나는 버들잎살.’


라이센이 차고 있는 화살집은 화살집 두 쌍이 하나로 엮인 형태였다. 그중 하나에는 갈래살을, 나머지에는 버들잎살을 꼽아 두었다.


동개의 화살집은 원래 그렇게 생겼다. 그렇게 하면 즉각 즉각 상황에 맞는 화살을 빠르게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하늘에서 하피가 나타나면 갈래살을 먼저···’


끼야아아악.

끼야악.


그때 마치 여자의 비명 같은, 높은 톤의 울음이 들려왔다. 정다운 뻐꾸기 소리와는 다른 음산한 소리.


고개를 들어 봉우리를 바라보니 저 멀리 하늘을 배회하는 하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 크기만 한 거대한 새가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사뭇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슬슬 나타날 때가 된 건가?’


하늘의 하피들을 주시하던 라이센의 눈이 다시 전방의 산비탈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순간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


산비탈에서 낯익은 남녀 둘이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남녀의 얼굴을 확인한 라이센의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그 둘은 조금 전 라이센을 배웅했던 마을 사람 중 하나였다.



감색 옷의 아이를 구해 달라던 젊은 부부.


‘저 둘이 언제 나보다 먼저 여길 올라왔지?’


라이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을 입구에서 떠나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던 부부가 아닌가?


아무리 걸음이 빠르다 해도 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이곳 단 하나. 지나쳤다면 못 봤을 리가 없는데.


‘그리고 이 위험한 곳엘 아무런 무기도 없이 왔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부부는 라이센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대체 언제 여기에 온 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오.”


부부는 라이센이 묻는 말에 엉뚱한 인사를 건넸다. 그들이 짓는 표정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마치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 같았다.


“대체 여긴 왜···”

“···”


다시 한 번 말을 걸어봤지만, 부부는 대답 없이 라이센을 지나쳐 아래로 내려간다.


그런 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라이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산행을 하려는데,


불쾌한 악취가 갑자기 그의 코끝을 스쳤다.


‘이런, 설마?’


라이센이 다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시커먼 물체가 그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끼야아아아-


불시의 일격을 맞은 라이센이 그 자리에서 나동그라졌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괴성을 지르며 하늘을 선회하는 하피 두 마리가 보였다.


다행히 라이센은 큰 상처를 입진 않았다. 날아드는 하피의 발톱을 그의 갑옷이 먼저 막아주었던 것이다. 그리핀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라더니 헛말은 아니었군.


‘하피가 인간으로 변신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라이센은 재빠르게 살을 시위에 얹으며 자세를 갖췄다.


저들이 진짜 인간으로 변했던 건 아닌 것 같았다. 돌이켜보니 어떤 환각을 통해 인간으로 보이게끔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터 한낱 괴물인 하피가 저런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거냐.


끼야, 끼야, 끼야아아아악-


공중을 선회하던 하피 두 마리가 찢어지는 괴성을 질렀다. 그러자 어디선가에서 다른 하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의 두 마리보다 조금 더 작은 크기의 하피들.


그들은 차례로 나타나 그 선회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괴성은 똘마니들을 부르는 소리였나.


한 놈, 두 놈, 세 놈···


어느덧 열 마리가 넘는 하피들이 라이센의 머리 위를 멤돌고 있었다. 라이센은 그들이 하늘 높이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라이센은 거기에 시선을 고정한 체 산비탈을 올랐다. 을씨년스러운 하피들의 울음소리가 그의 고막을 괴롭혔고, 그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하피들이 라이센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면서 그들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들의 고도도 계속 낮아졌다.


이제 한 스무 마리 즘 모였을까? 고도가 낮춰지는 게 살짝 멈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몇 마리가 라이센의 주위를 어지럽게 날며 하강했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 하지만 저렇게 날면 맞추기 힘들다.


“꺄아아아아”


기분 나뿐 울음소리와 함께 그들이 라이센을 스치고 다시 올라갔다. 상승하면서도 이리저리 갈지자로 나는 것을 보니 적당히 간을 보러 온 게 분명했다.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저 가는 발톱으로 인간의 뼈를 부러뜨리려면 직선으로 빠르게 하강하는 힘을 얹어야 할 터. 맞추기 쉬운 그때를 노려야 한다.


이때, 작은 하피 세 마리가 대열을 이탈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찢어지는 게 보였다. 빠르고 직선적인 움직임.


뿌드득.


- lv6. 저격.


라이센이 갈래살을 얹은 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그 세 마리가 동시에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날카롭게 세운 그들의 발톱이 한껏 확대된 라이센의 시야에 들어왔다.


피융.


“꺄악!”


가장 먼저 날아드는 하피를 쏘았다. 한쪽 날개가 꺾인 하피가 세차게 공중을 구르더니, 이내 하늘 위를 비틀거린다.


왼쪽으로 한발, 오른쪽으로 한 발 더.


다른 쪽에서 날아오던 놈들도 마찬가지 꼴이 되었다. 마지막 놈은 화살을 맞은 체 그대로 미끄러지듯 땅 위를 굴렀다.


“끼야아아아아-”


그러자 남은 하피들이 미친 듯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고도를 높게 유지한 상태에서의 돌격은 아무래도 화살을 맞기 쉽다고 생각했는지 놈들이 떼거리로 고도를 낮췄다.


대열을 이뤄 회전하는 질서정연한 모습은 사라지고 각자 무질서하게 하늘을 날며 라이센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에서 하피들이 날아들었다. 놈들은 일제히 발톱을 세우며 강렬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높은 톤의 괴성이 라이센의 고막을 어지럽혔다.


라이센도 활을 마구 쏘았다. 갈래살에 날개가 뜯긴 하피들이 피를 흩뿌리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곤두박질치던 하피가 다른 놈들에게 부딪혔다. 하피 하나를 뚫고 지나간 갈래살이 그 뒤의 또 다른 놈을 꿰뚫었다.


파란 하늘에 새빨간 핏물이 분무기처럼 뿌려졌다. 가공할 속도로 나는 하피들 사이로 암갈색 깃털이 느릿느릿 하늘을 떠다녔다. 하늘과 땅 사방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하피는 하늘에서만 공격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땅에 떨어진 하피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었다.


- lv1. 속사


파바박.

파바박.


세 발 단위로 끊어지는 빠른 연사가 그들의 심장을 차례로 꿰뚫었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버들잎살이 그들의 몸 혹은 머리를 깊게 후벼 팠다.


하늘을 나는 놈들은 저격과 갈래살로 날개를 찢어 떨어트렸다. 그렇게 떨어진 놈들은 다시 땅 위에서 달려들었다. 땅 위를 달려오는 놈들은 속사와 버들잎살로 머리통을 뚫었다.



‘음···’


잠시 놈들의 공격이 멈췄다. 라이센이 둘러 보니 어느새 주변은 하피들의 시체와 피로 물들어 있었다. 피 묻은 깃털들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이놈들 깃털을 다 뽑아 화살깃으로나 써볼까. 냄새가 너무 심해 쓰기 힘드려나.


라이센이 고개를 들자 어느새 커다란 하피 한 마리가 땅 위에 앉은 것이 보였다.


아까 마을의 부부로 위장했던 하피 중 암컷.


양 날개가 모두 뜯긴 놈은 가슴을 훤히 드러낸 체 라이센과 주변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겼으면 옷 좀 입고 다니지.


“끼야아아아-”


놈은 주변에 널브러진 작은 하피들의 시체를 보며 괴성을 질렀다. 머리를 감싸 쥐며 눈물까지 흘리는 걸 보니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교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하피가 이렇게 동족애가 강한 괴물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잠깐만, 혹시 작은놈들이 저놈의 새끼들인가?’


생각을 마치자마자 놈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순간 놀라긴 했지만 이미 양 날개가 모두 찢어진 하피의 돌격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피융-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살을 날렸다. 달려오던 하피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8.



‘좋아. 고블린보다 확실히 경험치는 많이 주네. 온 보람이 있어.’


라이센은 상대적으로 레벨이 낮은 속사 스킬에 점수를 투자했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가 시체를 확인했다. 죽은 암컷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크기를 보니 다른 하피들 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이 작은 하피들의 어미였던 게 분명하군.’


라이센이 그렇게 시체를 확인하고 있는데 하늘에서도 비슷한 울부짖음이 또 들려왔다. 슬픔과 분노가 교차한 듯한 울음소리.


라이센의 머리 위에는 커다란 하피가 맴돌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까 부부로 위장했던 하피 중 수컷이었다. 얘네들은 실제로도 부부 사이였던 모양이다.


라이센은 살을 시위에 얹고 놈이 하강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수컷은 울부짖으며 노려만 볼 뿐 공격해 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자꾸 봉우리와 라이센을 번갈아 보는 모습을 보였다.


‘봉우리 위에 무슨 꿀단지라도 숨겨두고 왔나?’



수컷 하피는 그렇게 한참을 갈등하더니 크게 한번 울음을 토해내고는 봉우리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




해가 하늘 한가운데 다다른 시각. 라이센은 봉우리의 정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오는 도중에 작은 하피들 몇 마리가 간헐적으로 달려들긴 했지만 크게 위험하진 않았다.


단지 아까부터 경사가 갑자기 가팔라진 덕에 거의 기어서 올라와야만 했고, 그 때문에 삭신이 다 쑤시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제 이 큰 바위 하나면 넘으면···’


드디어 봉우리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당연하다는 듯 하피들의 둥지가 보였다. 하지만 둥지들 가운데에는 이질적인 건물 하나가 떡하니 서 있었다.


돌을 쌓아 만든 작은 집.


누가 봐도 인간의 손길이 닿은 집이었다. 손이 없는 하피들이 저걸 만들었을 리는 없다.


그 작은 돌집에서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의 표정. 이번에는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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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p6. 짐승같은(3) +10 20.01.02 7,081 153 14쪽
19 Ep6. 짐승같은(2) +11 20.01.01 7,185 161 13쪽
18 Ep6. 짐승같은(1) +14 19.12.31 7,687 166 13쪽
17 Ep5. 어그로(2) +11 19.12.30 7,533 185 14쪽
16 Ep5. 어그로(1) +10 19.12.29 7,747 178 13쪽
15 Ep4. 그들의 둥지(5) (수정) +13 19.12.27 7,783 169 14쪽
14 Ep4. 그들의 둥지(4) +5 19.12.26 7,709 173 13쪽
» Ep4. 그들의 둥지(3) +6 19.12.25 7,790 180 12쪽
12 Ep4. 그들의 둥지(2) +8 19.12.24 8,107 185 14쪽
11 Ep4. 그들의 둥지(1) +12 19.12.23 8,629 171 14쪽
10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5) +8 19.12.22 8,683 166 13쪽
9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4) +15 19.12.20 8,713 168 13쪽
8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3) +16 19.12.19 8,961 184 12쪽
7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2) +6 19.12.18 9,664 189 13쪽
6 Ep3. 일단 구경이나 하자.(1) +18 19.12.17 10,075 203 13쪽
5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4) +14 19.12.16 10,182 200 14쪽
4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3) +13 19.12.14 10,508 198 14쪽
3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2) +11 19.12.13 10,792 215 13쪽
2 Ep2. 그저 살아남고 싶다.(1) +15 19.12.12 12,304 205 13쪽
1 Ep1. 프롤로그 +14 19.12.11 13,669 18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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