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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님의 서재입니다.

모르스 무토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종이향
작품등록일 :
2016.05.17 23:32
최근연재일 :
2016.09.30 23:49
연재수 :
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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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85
추천수 :
681
글자수 :
842,121

작성
16.07.1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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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20쪽

변이의 시작 (3)

DUMMY

정현은 기관실의 상황을 천천히 선장에게 설명을 했다. 한참을 말없이 정현이 하는 이야기를 듣던 선장은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말을 했다.


“상황은 알겠는데, 지금 당장 가용인원이 없어. 큰일이다. 큰일.”

“미군들에게 이야기해서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되나요? 여기 쓰러진 미군도 한 명 있는데....”


정현의 물음에 선장은 “잠시만..”을 말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선장이 다른 사람과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어로 하는 것을 보면 미군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미군들도 당장은 어려운 것 같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데크에 생긴 일로 다들 여유가 없다고 하네.”

“흠....”


정현은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혼자서는 이 상태를 감당할 수 가 없었다. 정현은 콘트롤룸을 잠시 둘러보더니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선장님!”

“그래. 2기사.”


주변을 저절로 둘러보고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조금 전에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혹시 그것과 관련된 것일까요? 혹시 아시는 것이 있나요?”

“이상한 울음소리?”

“네. 울음소리인지, 울림소리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평소에 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것은 확실했어요. 더군다나 그 소리가 난 뒤에 붉은 연기 같은 것이 기관실로 흘러 들어왔었어요.”


놀란 목소리의 선장이 다시 물어왔다.


“붉은 연기라고?”

“네.”

“혹시 미군들이 쓰는 데크에서 불이라도 난 게 아니야? 이 폭풍우에 불까지 났다면 정말 큰일인데?”


선장의 목소리가 점점 심각해졌다. 정현은 고개를 저으며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불이 난 것 같지는 않았어요. 붉은 연기이기는 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연막탄과 비슷한 느낌이었거든요.”

“연막탄? 흠....”


선장의 침묵이 조금 길어졌다. 정현은 마른 침을 삼키며 자신의 추측을 추가했다.


“지금 정확한 미군들의 상황은 모르겠지만, 혹시 데크에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요?”

“문제? 흠....”


고심하는 선장의 모습이 전화기 너머로 보이는 것 같았다. 정현은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정현의 눈에 바닥에 누워있는 1기사가 보였다. 머리에 묶은 붕대에 피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문득 그때 백신을 주사를 놓았던 올리버 박사라는 사람이 생각났다.


‘그 사람 의사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 의사가 아니라 연구원이었나?’


정현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추측보다는 지금 상황의 해결이 더 중요했다.


“선장님. 지금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요. 지금도 1기사님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거든요. 제 선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그때 예방접종을 해주신 분이 의사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 분을 좀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뭐? 1기사 머리에 아직도 피가 난다고? 휴우~~ 알았다 잠시 기다려보렴. 걱정이야.”


수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와 함께 작게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미군 측에 다시 강하게 요청을 했다. 최대한 빨리 보내준다고 했으니까. 일단 최대한 잘 간호하고 있으렴. 최대한 빨리 지원이 되도록 나도 계속 닦달을 할 테니.”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좀 보내주세요.”


정현은 선장과의 전화를 끊으며 크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은 암담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의사가 온다면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누워있는 1기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붕대가 감긴 머리 아래로 얼굴이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놀란 정현은 급하게 1기사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깐 사이에 급속도로 얼굴이 창백해졌기 때문이었다.

창백한 1기사의 얼굴을 살펴보면서 정현은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혹시 진짜 문제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피가 더 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다시 브리지에 전화를 해야 할까?’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콘트롤룸의 문이 벌컥 열렸다. 깜짝 놀란 정현은 의자 뒤로 급하게 몸을 숨겼다. 그리고 콘트롤룸에 들어온 사람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헉~헉~ 2기사님?”


거친 숨소리와 함께 말하는 사람은 3기사였다. 안도감이 든 정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휴~”


정현의 소리에 잠시 움찔하던 3기사가 놀란 얼굴로 급하게 정현에게 다가왔다. 그런 3기사를 보면서 정현은 천천히 일어섰다. 갑자기 놀라서인지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래! 3기사. 여기는....”


반갑게 말을 하려던 정현은 긴장으로 얼굴이 잔뜩 굳은 채 거친 숨을 내쉬는 3기사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유난히 불안하고 긴장된 눈빛의 3기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뛰어왔는지 내쉬는 거친 숨이 점점 긴장감이 들게 했다.

정현은 가볍게 손까지 떠는 3기사를 보면서 떨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3기사 무슨 일이야?”


조심스러운 정현의 물음에도 3기사는 얼굴을 잔뜩 굳힌 채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망설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3기사의 불안한 눈빛과 행동은 두려움이 한껏 묻어있어서 덩달아 정현까지도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왜? 3기사. 무슨 일이 있었어?”


정현의 떨리는 목소리에 3기사가 연신 콘트롤룸으로 들어오는 문을 돌아보았다. 무엇인가 결심한 듯 다시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굳어버렸다.


“3기사?”


정현은 3기사의 시선이 자신의 뒤로 향하는 것을 알고는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3기사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기관장과 1기사, 그리고 미군이 눕혀져 있었다.

1기사의 머리에 감긴 붕대에 배어나온 피로 인한 붉은 색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정현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2기사님, 도대체....”


놀란 표정의 3기사가 입을 떼었다. 정현은 어떻게 설명할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천천히 기관실에 있던 일들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3기사의 표정은 긴장감과 놀라움을 담아내었다.


“.... 아무튼 그래서 지금은 지원팀을 기다리고 있어. 선장님이 미군들에게 말했다니까 곧 올 거야.”


정현은 애써 담담한 척 말을 했다. 3기사는 정현의 표정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고개를 젓더니 긴 한숨을 쉬었다.


“3기사? 왜...”


정현은 갑작스런 3기사의 모습에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3기사는 엄청 침착한 성격으로 한 번도 이런 식으로 한숨 쉬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현의 놀란 물음에 3기사는 고개를 들고는 긴장되니 표정으로 천천히 이야기 했다.


“아마 미군들이 바로 오지는 못할 거예요.”

“왜?”


3기사의 단정적인 말에 정현은 이유를 물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3기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실은 1기사님이 기관실에 내려가시면서, 혹시라도 연락이 없으면 직접 내려오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


3기사는 1기사가 기관실에 내려가기 전부터 굳은 표정으로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2기사와 나누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왠지 자신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쉽사리 물어볼 수 는 없었다. 평소에 나서지 않는 성격이 금방 변할 리가 없었다. 이럴 때는 자신의 이런 성격이 몹시도 짜증났다.


더군다나 노퍽을 떠난 후에도 밤마다 계속되는 악몽으로 괴로워할 때도 1기사나 2기사에게 말을 해보자고 생각을 했었지만, 결국은 하지 못했다.

물론 갑자기 블랙아웃이다, 뭐다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 이유도 있는데다가 선내 분위기도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적인 문제로 나서기도 뭐해서 그냥 유야무야 되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악몽을 더 이상 꾸지 않게 되었기에 3기사도 그냥 잠시 동안의 현상이겠지 스스로 납득하면서 넘어간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하얗게 변해가는 얼굴은 여전히 걱정거리였고 1기사와 2기사도 계속해서 걱정해주었지만, 막상 뭔가 실제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걱정을 끼치기 싫다는 마음에 그냥 참고 말았다.

물론 간헐적으로 악몽은 계속되었지만, 2기사를 보면 분위기상 악몽을 꾸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기도 했으니까.


파나마를 떠나고 폭풍우에 접어들면서 황천항해를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불안해 보이는 1기사와 2기사의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결국 무슨 문제가 발생하려는 전조였는지, 2기사 당직 때 블랙아웃이 일어나고 1기사가 급하게 기관실로 내려가면서 연락을 부탁 받았다.


3기사는 같이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데크를 통제하는 미군들이 때문에 같이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기관장님도 내려가셨네?’


3기사는 혼자 남아있다는 사실에 길게 한숨을 쉬었다. 왠지 자신만 소외된 느낌이 들어서 살짝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거듭되는 악몽으로 마음이 약해져서 인지, 작은 일에도 감정변화가 심해졌다. 한번은 마음껏 울어보고 싶어서 울려고 노력했지만, 왠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감정의 변화가 많아진 것은 맞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감정이 말라가는 것처럼도 느껴졌기도 했다.


‘요즘은 뭔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


3기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당직을 위해서 잠을 자두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잠을 자기가 싫었다. 파나마를 떠나고 나서는 자주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휴게실에 나가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거칠게 흔들리는 배위에서 TV를 보는 것도 쉽지 않았고,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TV를 끄고 그냥 배의 움직임에 맞추어 휴게실에 널브러져 있는데, 갑자기 브리지 쪽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3기사는 놀랐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귀를 잔뜩 세우고는 귀 기울였다. 계속해서 큰소리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자세히 들어보니 데크와 전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폭풍이 치는 외부소리와 섞여서 대화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는 반복하고 있어서 정확한 내용을 알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 데크 전원문제로 1기사님도 내려가신 건가?’


3기사는 1기사가 내려가기 전에 했던 부탁이 생각났다.


‘기다려도 올라오지 않으면, 따라 내려오라고 하셨지?’


3기사는 이대로 선실에 남아 있어봤자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겠다는 생각에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군이 통제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내려가기로 결심을 하고는 거주구역과 데크를 통하는 통로로 다가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평소에 항상 미군들이 경계를 하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오늘은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3기사는 계단까지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주변을 살폈지만 역시나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3기사는 급하게 다시 선실로 돌아가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렇게 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작업복이 움직이기에 편했다. 다시 거주구역에서 데크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서 천천히 데크로 나섰다.


3기사는 잔뜩 긴장한 채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기본적으로 이번 항차에 데크는 미군들의 영역이었고, 선원들은 출입금지였기 때문이었다.

9번 데크까지는 뭔가 설치된 것은 없었다. 단지 철창과 가림 막으로 군데군데가 막혀 있었고 여러 가지 물품들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7번 데크로 내려가면서는 달랐다. 본격적으로 여기저기에 컨테이너들이 놓여있었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설치 되어있었다.


이상한 점이라면 지키고 있거나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라고 할까? 마치 유령도시나 폐공장처럼 보여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3기사는 궁금증에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우선 기관실로 내려가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고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5번 데크까지 내려오자 몇 개의 큰 컨테이너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건물들을 사이에 두고 많은 사람들이 데크 바닥에 누워있었다. 마치 시체들을 나란히 늘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3기사는 그 광경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죽은 거야?’


시체들을 늘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온통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시체처럼 누워있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3기사는 있는 대로 크게 눈을 뜨고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이 누워있는 사람들을 살피고 돌보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3기사는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누워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누워있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살피는 사람들이 모두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쓴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방독면? 그럼 혹시.... 전염병?’


3기사는 갑자기 소매로 입을 막았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방독면을 쓴 것을 보면 뭔가 공기로 전파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숨을 참으며, 입을 가린 소매 사이로 최대한 작게 나누어서 숨을 쉬었다.


‘뭔가 일이 일어난 거야.’


빨리 이 데크를 벗어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숨을 참아가며 컨테이너 건물들을 돌아서 다시 밑의 데크로 내려가려는데, 바닥에 미군무늬의 가방이 보였다. 급한 상황이었는지, 그것 말고는 몇 개가 더 떨어져 있었다.

3기사가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어보니 방독면이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지금 미군들이 방독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가방에서 방독면을 꺼내서 얼굴에 썼다.

그제야 가쁜 숨을 내쉬며 조금은 안도를 했다.


‘이것을 써도 괜찮겠지?’


잠시 가방을 찾을 거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떨쳐내고는 바닥에 떨어져있던 몇 개의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아래쪽 데크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잠시 데크를 살펴보았는데, 시체처럼 사람들이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어느 영화에서 본 바이러스가 휩쓴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세상에 종말이 찾아온 모습처럼 보였다. 온몸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며, 3기사는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으~ 생각하지 말자. 나쁜 생각하지 말자. 그런 일은 없어!!’


속으로 다짐을 했지만 3기사는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끝이 떨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천천히 기관실로 가는 길을 찾아서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낮은 울림소리와 함께 온몸을 휩싸고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눈앞이 붉어졌다.


3기사는 방독면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온통 붉은 색으로 변한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마치 붉은 연막탄이 터진 것처럼 보였다.


한치 앞도 보이지가 않아서 3기사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다행히 붉은 연기는 금세 사라졌다. 주변에 군데군데 붉은 기운이 안개처럼 남아있기도 했지만, 조금 전과 같이 아주 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3기사는 빨리 기관실로 가야겠다는 생각했다. 지금 상황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몸을 힘겹게 추스르며 아래 데크로 내려갔다. 데크통로를 따라서 기관실을 향해서 최대한 발걸음을 빨리 했다.

데크통로는 데크 옆으로 길게 연결된 데크와 구분되는 통로로 거침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연달아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커다란 것이 부딪치는, 마치 싸우는 것 같은 소리였다.


3기사는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데크 통로의 끝에서 들려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두렵고 무서운 마음도 들었지만, 기관실로 가기 위해서는 통과해야했고 더불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에 대한 궁금증도 들었다.


다시 ‘으르릉~’ 거리는 소리와 무언가 충돌하는 소리, 그리고 사람의 욕설이 데크 통로를 타고 울려왔다. 잠시 후 큰 충돌 음과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3기사는 멀리서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는데도 3기사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강한 기파가 퍼져 나오고 있었고 저절로 몸이 떨려왔다. 더 이상 가까이 갈수가 없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오히려 그 본능이 이곳을 벗어나라고 신호를 맹렬히 보내고 있었다.


3기사는 그 신호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일 수 가 없었다. 지금 움직였다가는 발각될 것 같았다. 그저 몸을 숨긴 채 떨면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 남자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더니, 공격해오는 다른 남자를 두 손을 잡아서 그대로 찢어버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흡!”


3기사는 놀라서 신음소리를 내뱉었지만, 다행이 쓰고 있던 방독면 때문에 소리가 밖으로 나지는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버렸다.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죽인 큰 사람은 어딘가 상처를 입었는지 몸을 웅크리며 서있었다. 고개를 들며 천천히 몸을 세우더니 한 차례 사방을 훑어보았다. 그 매서운 눈길에 3기사는 저절로 몸이 떨려왔다.

그리고는 옆구리를 잡고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3기사는 조금 더 다가가지 않은 것에, 그가 그대로 가버린 것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잠시의 시간을 보낸 뒤에 고개를 들어 데크통로를 살펴보았다. 멀리 통로 끝에서 붉게 반짝이는 물체도 보였지만, 그보다는 그 너머에 찢겨진 시체와 벽을 타고 흐르는 피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기관실을 가자면 이곳을 지나야만 했다. 3기사는 용기를 내보려고 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 포기하고는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그곳을 지날 용기도 없었을 뿐더러, 아까 사람을 찢어버린 사람이 다시 돌아올까 싶어서 그대로 갈 수 없었다.

배를 전체를 한 바퀴 돌아서 반대편 데크통로를 통해서 기관실로 뛰어 내려갔다. 콘트롤룸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거친 숨소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올 정도였다.

벌컥~ 콘트롤룸 문을 들어섰을 때, 3기사가 본 것은 놀란 표정으로 의자 뒤에 몸을 숨기는 2기사와 그 너머 콘트롤룸 바닥에 누워있는 기관장과 1기사였다.


3기사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


3기사의 이야기를 다 들은 정현은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데크에 시체처럼 쓰러진 사람들과 사람을 찢어버리는 괴물 같은 사람? 모든 것이 비정상이었다.


‘하긴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일 자체가 처음부터 비정상적인 일이였지....’


두려움과 긴장감, 그리고 불안함을 한 눈에 담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3기사를 보면서 정현은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휴~~~”


잠시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짓던 정현은 3기사에게 쓴웃음을 보여주었다. 사실은 정현, 자신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정현이 입을 떼려는데 눈앞의 3기사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어깨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저....”


정현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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