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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님의 서재입니다.

모르스 무토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종이향
작품등록일 :
2016.05.17 23:32
최근연재일 :
2016.09.30 23:49
연재수 :
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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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84
추천수 :
681
글자수 :
84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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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0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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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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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각성 (4)

DUMMY

여러 가지 고민으로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선장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선장의 얼굴에는 부정적인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정현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제 생각을 말한 것이에요. 하지만 신중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앞으로 기름이 부족해질 것은 명백한 사실예요. 더군다나 평택까지 직접 가는 것은 더욱 위험하고요. 앞으로 평택에 도착할 때까지 발전기는 계속해서 두 대 돌리실 거죠? 그렇다면 더욱 기름 보충 없이는 평택까지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끙~~”


선장의 앓는 소리가 나왔다. 1항사도 거듭되는 악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현도 그런 두 사람은 안타깝게 보았지만,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꼼수로 해결할 사항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기관부의 속한 일이기에, 정현은 짐을 얻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지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선장도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으리라.


“아~ 머리 아프다. 2기사! 아무래도 지금은 머리가 안돌아가서 당장 결정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미군 측과도 이야기를 해볼 사항인 것 같고, 내가 좀 더 고심을 해볼 테니까 이따가 저녁시간에 마저 이야기하자. 그리고 너도 다른 방법이 있나 좀 더 찾아봐 주고 알았지?”


선장의 하소연에 정현은 어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신이 할 일은 이것으로 다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기름 수급을 결정하는 것은 윗사람들의 몫이었으니까. 나머지는 위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좀 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에휴~ 내려가서 다시 한 번 기름 탱크의 기름 량을 측정해봐야겠네.’


정현은 식사에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다지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그리고 비어있는 의자들은 눈에 띠여서 더욱 그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사시간 때마다 식당이 시끌벅적했는데....’


정현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그때가 그리웠다. 잠시 생각에 잠겼었는지, 선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급하게 돌아보니, 선장은 머리가 아파오는지 연신 머리를 주무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음식들이 대부분 남아있는 것을 보니 식사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았다. 정현은 식당을 나서는 선장을 보고는 쫒아갔다.


“저기 선장님....”


인상을 잔뜩 찌푸린 선장은 흡사 침몰하는 배처럼 인상이 구겨져있었다. 폭발하기 직전의 폭탄처럼도 보였다. 얼굴이 벌게진 것이 머리 어딘가에서 스팀이 나올 것처럼 보였다. 그냥 척 보기에도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보였다.

정현은 그런 선장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줄지도 모를 질문을 던졌다.


“혹시 기관장님하고 1기사님, 3기사에 대해서 들으신 것 있으세요?”


선장은 정현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잠시 정현을 말없이 쳐다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정현의 예상대로 얼굴은 더욱 복잡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미간을 손으로 주무르며 자신에게 왜 이러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게 말이다.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


순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현도 어제부터 밤새 계속해서 생각을 해오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선장이 짓는 억울하다는, 자신을 놔둬달라는 듯한 표정은 정현을 욱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은 정현이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가 선장이 일으킨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과는 처음부터 입장이 달랐다. 더군다나 자신은 이제 기관실에 마지막 남은 사관일 뿐만 아니라, 이제 책임자였다. 남은 부원까지 합쳐도 4명이 고작이었지만.

정현은 오히려 선장을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나중에는 선장에 그런 태도에 순간 부하가 치밀어 올랐다.


“오늘 미군 측에 문의를 해본다고 하셨잖아요. 면회에 관한 것도요.”


살짝 굳은 표정으로 물어오는 정현의 물음에 선장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바닥을 보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선장은 다시 한 차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들어 정현을 보면서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아~ 그게 말이야. 안 그래도 어제 네 말을 듣고 미군 측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완강히 안 되다고 하더라. 그것 때문에 미군 책임자하고 한바탕 하기도 했는데, 완강하더라고.”


실망한 듯 얼굴을 찡그리는 정현을 보면서 선장을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내가 알아낸 것만 일단 말을 해보자면, 세 사람 모두 잘 있다고 하고, 지금 진행 상태를 보면서 집중치료에 들어갈 거라고 해. 면회에 대해서는.... 일단 내가 강하게 주장하니까, 검토는 해본다고 하기는 했는데.... 아마도 안 될 가능성이 큰 것 같아. 직접 ‘NO!’라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거의 ‘NO’라고 한 것 같은 뉘앙스였거든.”


정현이 고개를 숙인 채 한숨만 내쉬는 것을 보며 선장은 달래려 노력했다.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래도 잘 있다는 소식은 들었잖니? 면회를 얻어낼 수 있도록 내가 좀 더 노력을 해볼게. 사실 지금 상황이 미군들도 그렇고, 우리들도 그렇고 정신이 없는 상황이잖니.... 2기사 네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급한 것은 알겠는데, 우리 조금만 기다려 보자. 알았지?”


선장은 정현은 어깨를 힘없이 토닥이고는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정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그런 선장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기다려 보자라.... 이 상황에서도 미군이 협조를 안 해준다면, 아마도 결코 면회는 허락해주지 않겠다는 것을 선장님도 아실 텐데.... 아마 선장님도 미군들이 반대를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정현은 입술을 깨물고는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결심했다.


‘그렇다면.....’


--------------------


식사 후에 오후에 기관실로 모두 내려왔지만, 기관부 사람들 모두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일 테지만, 새롭게 감염자가 생긴 것으로 인해서 자신도 언제든지 전염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사실도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모두 정신을 딴 데 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정현은 한소리하고 싶었지만, 선원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함도 이해가 가기에, 아니 자신도 느끼고 있기에 내키지 않았다.


어찌어찌 기관실 정리를 끝냈다. 내일부터는 제대로 작업계획을 세워서 일을 진행해야하는데,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이행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사실 정현도 뭔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사항이었다.


기관부원들을 먼저 올려 보내고, 기관실 순찰을 마친 후 정현도 선실로 가기위해 힘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천천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현은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자신이 온전히 기관실을 책임져야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생각이 들 때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런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현은 빨리 치료시설로 간 기관장이나 1기사가 나아서 합류하기만을 기도했다.


미군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현은 미군에 그다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전염병이 근원이 미군들 때문이라는 말이 선내에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대하는 미군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는 사항이었다. 아마도 모든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선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리라. 더군다나 그런 미군 측에서도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선원들은 더욱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선원들 사이에서도 전염병에 거린 사람들이 나타나자, 선원들을 대하는 미군들의 태도가 조금씩 더 경직되는 것 같이 느껴졌고, 선원들은 그것에 대해 두려움을 넘어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전염병의 원인이 미군들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미군들과 선원들이 소통할 기회가 이번 일이 생기기전에도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미군 측에서 비밀 주위로 나온 데다가, 선원들과 친분을 나누지도 않았기에 초반에 선원들에게 심어졌던 의심과 의혹의 싹이 어느새 다 자라서, 이제는 불만의 나무가 되어버렸다.


선원들은 지금은 갑작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단지 침묵하고 있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선원들이 참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정현은 아마도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조만간 미군들과 선원들은 충돌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느껴졌다. 그만큼 미군에 대한 불신과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정현도 다르지 않았다.


데크 중간쯤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갔을까? 갑자기 엘리베이터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정현은 급하게 엘리베이터의 비상정지 버튼을 눌렀다. 금세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정현은 떨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주변에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안도하는데, 다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베이터 위에 뭔가가 떨어지면서 부딪치는 소리였다. 정현은 순간 흠칫 하면서 엘리베이터 천장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계속해서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지만, 궁금증을 떨치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일인데, 아마도 지금 분위기 탓이리라.


‘엘리베이터 위에서 들려왔으니까 아마도 위쪽에서 뭔가 떨어진 것이겠지?’


안 그래도 데크에 나갈 핑계거리를 찾고 있는 중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핑계꺼리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

정현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위치한 곳이 어딘지를 살폈다. 6번 데크 근처였다. 다시 가만히 귀 기울였지만, 연돌을 타고 들려오는 기관실 소리 말고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정현은 계속해서 망설이다가 눈을 꾹 감고는 비상정지 버튼을 풀었다. 그리고 위로 남은 모든 층계의 버튼을 눌렀다.

무슨 소리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왠지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데크에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천천히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데크를 지났을 때까지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층의 엘리베이터 문 앞이 막혀있었기 때문에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포기하려는 순간, 9번 데크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을 때는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엘리베이터 문을 막고 있던 판자의 일부가 떨어져 있었다. 딱 보기에도 누군가가 뜯어놓은 것 같았다.


정현은 뜯어진 판자사이로 데크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떨어진 판자 사이로 멀리 있는 컨테이너가 보였고, 주변을 밝히는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멀리서 어떤 소음, 뭔가 으르렁 거리는 것 같은 소리도 자그맣게 들려왔다.


정현은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조심스럽게 그 판자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판자에 손이 닿으려는 순간, 정현의 귀에 누군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현은 피해야겠다는,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급하게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는 버튼을 연신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그 짧은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비상정지버튼을 풀고 위층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정현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저앉았다.


정현은 뛰는 가슴을 달래며 심호흡했다. 아직은 미군에게 자신의 의도를 들키면 안됐다. 그리고 준비가 필요했다. 정현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


“이크.”


멀리서 작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를 피해서 존은 급히 발소리를 줄이고는 데크 구석의 데크 통로에 몸을 숨겼다.

데크를 순찰하는 미군들의 순찰이 조금씩 강화되고 있었다. 그나마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변이되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수색을 하는 인원이 줄어서 그렇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잡혔을 거라고 존은 생각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존은 그때 바로 교단의 사람들, 제8사도 라우렐과 그의 사자를 간신히 설득해서 자신의 방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을 천운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존의 일행이 빠져나오자마자 NSA의 요원들이 방을 습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방을 빠져나와서 다른 거점을 찾고 있던 존은 다른 부하들이 소식이 끊기면서, 그 소식을 듣게 되자, 처음에 목표로 했던 거점을 포기하고 일단 다른 곳에 몸을 숨기기로 결정했다.

라우렐이 막무가내로 이럴 수 없다며 땡깡을 부렸지만,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존도 생각 같아서는 잡히든 말든 라우렐이 마음대로 날뛰도록 놔두고 싶었지만, 이제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이상, 라우렐은 존에게 있어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라우렐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그 괴물 같은 힘과 능력을 본다면 그대로 잡힐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그가 무적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사실은 존을 망설이게 한 부분 중에 가장 큰 부분이 그 부분이었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었다.


‘휴우~~’


존은 그때 라우렐을 선택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는지, 생각할수록 저저로 한숨만 나왔다.


점점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데크 통로를 빠져나왔다. 일단 근처의 컨테이너에서 간단한 음식과 생필품 등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여건상 많은 것을 챙겨올 수 는 없었다. 흔적을 남겼다가는 나중에는 그나마도 가져올 수 가 없을지도 몰랐으니까. 이럴 때면 거점에 숨겨둔 물품들이 생각나 아쉬웠다.


‘휴~ 그래도 라우렐이 회복한다면, 반전의 기회가 있겠지? 교단이 이대로 무너질 리가 없어.’


존은 다짐을 하듯이 속으로 속삭였다.

사실 이렇게 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라우렐 때문이었다. 교단의 제 8사도라는 엄청난 지휘와 알 수 없는 힘에도 불구하고, 사자와 함께 어떤 장치를 설치하러간 길에서 자신의 사자를 죽이고서 얻은 상처로 인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라우렐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교단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이 없는 존으로써는 가벼워 보이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라우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괴물 같은 모습을 보면 더 그랬다. 하지만, 불만을 내보일 수는 없었다.

하긴 존은 더욱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괴물 같았던 사자를 직접 찢어 죽이는, 더 괴물 같은 라우렐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으니까.


‘으~~~~’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자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의 모습은 정말 사도라는 말 그대로 신의 사자 같이 보였다. 그렇기에 라우렐을 선택한 존이었다. 물론 단지 그것만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교단의 사자는 존에게 약품들과 음식을, 주로 고기를 가져오라고 지시를 했지만, 존은 가져올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주요 약품은 배스티언 안에 있었고 그 주변의 경비가 갑자기 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기회를 엿보아도 배스티언이 있는 데크조차 잠입할 수가 없었다.


그저 배스티언의 위아래 데크의 컨테이너들에서 백신이라고 부르는 주사제 몇 개와 예비품으로 적재해 놓았던 몇 가지 약품 등을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고기도 그나마 구할 수 있었는데, 보급품이 있던 컨테이너에 쌓여있던 씨레이션을 배낭 가득 챙길 수 있었다. 속으로 한 숨을 내뱉으며 존은 이것이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존은 조심스럽게 데크통로를 이용해서 기관실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다른 곳들은 경비가 강화되었지만, 이곳은 엘리베이터의 입구는 감시가 소홀했는데, 그것은 엘리베이터의 입구를 모두 막아두었기 때문이었다.


9번 데크의 엘리베이터 문까지 도착한 존은 문을 가로막은 판자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떼어낼 때 제법 소리가 시끄럽게 나서 항상 조심해야만 했다. 하나 둘씩 판자를 떼어내고 있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존은 깜짝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벌써 저녁시간이군.’


기관부 선원들은 데크에 대한 미군들의 통제가 시작된 이후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 점심, 저녁 세 차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선원들이 이동하는 통로이기에, 초기에 이곳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었다. 하지만, 폭풍우가 시작되고 멀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순찰을 할 수 있는 가용인원이 줄어들자, 맥은 각 데크의 엘리베이터 문을 봉쇄하기로 결정하고는 이쪽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작업을 존의 일행이 맡았었기에, 존이 이렇게 몸을 빼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존이 라우렐과 사자를 데리고 몸을 피한 후에 거점을 포기하고 다시 숨을 곳을 찾으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배안의 공간이라는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데크 한쪽에 패닉 룸의 역할을 하는 곳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애초에 제외했다. 누구나 연상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존은 엘리베이터 문 폐쇄 작업을 하던 때 보았던 엘리베이터 통로와 연돌의 계단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했던 숨겨진 공간이 생각났다.

비록 기관실 소음으로 무척이나 시끄러운 공간이었지만, 존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선원들도 잘 알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존은 일행을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라우렐은 숨어있어야 한다는 공간의 상태를 보고는 짜증을 부렸지만, 부상으로 조금씩 심해지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가끔 폭발적으로 나오는 라우렐의 짜증에 존은 순간순간 욱~ 했지만, 간신히 마음을 다독여야만 했다. 말 그대로 라우렐은 존의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으니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존의 마지막 카드였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존은 그만 판자 하나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존은 순간 아차하며, 속으로 ‘제발 그냥 가라~’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엘리베이터가 멈춰서는 것이 보였다.


‘젠장~!!’


존은 저절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때 다시 걸려있던 다른 판자조각이 또 떨어져 내렸다. 존은 속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도 이 소리는 들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속으로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엘리베이터가 각층에 서기 시작했다. 최악의 결과였다.


‘젠장! 제~~엔~~장!!!’


존은 속으로 잔뜩 욕설을 내뱉었다. 존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이미 9번 데크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존은 급하게 몸을 숨겼다. 제발 다른 일은 생기지 않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물론 교단에다 한 것은 아니었다. 그쪽은 지금도 난리였으니까.


엘리베이터가 데크에 도착하더니 천천히 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판자틈 사이로 배의 선원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런데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고서 그대로 판자틈으로 데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존은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젠장, 이젠 별 거지같은 게.... 산통을 다 깨네.’


존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아무리 맥이 이곳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완전히 순찰에서 배제된 곳은 아니었다. 순찰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존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어쩔 수 없이 살짝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심했다. 존은 발걸음 소리를 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미군이 선원들에게 알려줬을 리 만무하기에, 선원을 속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길 바랐다.

다행히 존의 예상대로 발걸음 소리를 들은 선원은 급하게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는 위로 올라갔다. 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하루하루가 액션영화구만...’


존은 엘리베이터가 데크 위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판자를 마저 떼어냈다. 이번에는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떼어낸 뒤에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판자를 안쪽에서 붙였다. 두 개의 조각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아쉬웠지만, 되도록 위쪽으로 붙여서 티가 나지 않게 위장을 하려고 노력했다. 다시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는 엘리베이터 통로의 벽면을 타고서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반대편을 통해서 연돌의 계단에 올라설 수 있었다. 존의 얼굴 한가득 땀이 흘러내렸다.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소득물이 있어서, 오늘도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사도와 사자가 숨어있는 공간으로 갔다.


그 공간에 도착했을 때, 얼굴에 온통 짜증이 나있는 라우렐이 모습이 순간 눈에 들어왔다.

존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라우렐은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상처를 입고 변한 것인지, 갈수록 흉포함이 드러내는 경우가 잦았다. 그리고 오늘은 나쁜 쪽인 것 같았다.


존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잘한 선택이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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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변이자들 (1) 16.07.26 326 3 20쪽
57 혼란 (4) 16.07.23 404 4 17쪽
56 혼란 (3) 16.07.21 317 3 18쪽
55 혼란 (2) 16.07.20 319 5 16쪽
54 혼란 (1) 16.07.19 310 3 20쪽
53 변이의 시작 (5) 16.07.18 385 3 17쪽
52 변이의 시작 (4) 16.07.15 322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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