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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님의 서재입니다.

모르스 무토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종이향
작품등록일 :
2016.05.17 23:32
최근연재일 :
2016.09.30 23:49
연재수 :
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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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60
추천수 :
681
글자수 :
84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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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0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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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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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각성 (3)

DUMMY

“네, 그 부분은 분명히 약속드리겠습니다.”

“....”

“네, 지금 상황을 아시잖아요. 그 부분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좀 더 검토가 필요합니다.”

“....”

“하아....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는데, 현재 여러 상황 상 허락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네, 안됩니다. 지금은 안 돼요. 하지만, 지금 상태가 빨리 안정되고나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장님도 좀 더 선원들의 통제에 힘 써주시기 바랍니다.”

“....”

“네,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지만, 지금 상황은 오히려 직접 대면해야할 문제가 되어, 또 다른 부담을 맥에게 지우고 있었다. 선원들에 대한 문제는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가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들로 인해서 맥, 자신조차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선원들의 문제까지 불거지자, 맥은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맥은 문득 예전의 끊었던 담배가 갑자기 생각났다. 지금 당장 한 대 피울 수 있다면, 그 뿜어내는 연기와 함께 복잡한 마음을 섞어서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맥에게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맥은 순간 맥없는 웃음이 나와서 혼자 피식 거렸다. 지금은 담배 한모금할 시간도 없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재빨리 변이한 사람들과 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격리한 덕분에, 더 이상 변이자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멀미로 열외 되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복귀하면서, 인원부족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놔두었던 일들도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진행된 일로 보면 조금만 지나면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맥은 생각했다.


다만 걱정이 있다면, 배에 탔을지도 모를 교단의 스파이들에 대한 것인데.... 알파팀과 델타팀이 모든 데크를 수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로 의심되었던 존의 일행을 찾아내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찾아내지 못한 것은 아마도 배의 구조상의 허점이나, 숨겨진 공간이 있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 부분은 선원들의 도움을 요청해야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맥은 실제로 선원들에게 도움을 요청을 할 생각으로 선장에게 연락을 했지만, 오히려 골치 아픈 부탁만 잔뜩 받게 되었다. 그건 선장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이해가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토록 정체를 숨기고 프로젝트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랐던 선원들에게서 변이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서 처음에 계획했던 모든 상황은 이미 뒤집혀져 버렸다.


지금은 오히려 처음부터 상황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이 반대로 독이 되어서, 선원들 사이에서 불안과 불만이 팽배해진 모양이었다. 조금 전에 전화 통화를 한 선장의 목소리에도 정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불만이 담겨있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맥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 부분은 자신도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선원들에게는 비밀로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맥은 그 명령대로 이행한 것뿐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 맥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뭐~ 지금 상황에서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지 정보를 공개해야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또 모든 내용을 다 공개할 수 도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독이 될 거라고 맥은 확신했다.


맥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정보를 가공할 시간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선장의 말을 들어보니 시간을 끌 일이 아니었다.

지금 데크 일도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상태에 갑자기 전해들은 이야기라 맥은 두뇌용량 오버로 머리가 지끈 거렸다. 계속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는 것은 하책이었다.

실제로 이 배를 움직이는 것은 선원들이고, 그들이 파업(?)이라도 한다면, 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맥 등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표류하게 될 테니까. 정말로 그들이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말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래도 간간히 연락이 되어서 조언을 받을 수 있었던 NSA 본부와의 연락도 끊겼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폭풍을 만나기전에 선장에게 넘겨주었던 기상자료를 마지막으로 우리 측에서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다. 폭풍 속에서는 폭풍을 핑계를 대고 연결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폭풍을 벗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연결이 되지 않았다.

최첨단 장비라는 명색에 걸맞지 않게, 배의 낡은 장비와 똑같이 먹통이었다.


맥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변이된 선원들도 걱정이었다. 방금 선장과 통화한 것으로 유추해보면, 이미 선원들의 미군들에 대한 믿음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만약 이 상황에서 계속해서 면회를 거절하거나 차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선원들이 어떻게 나올지 맥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기관실에서 새롭게 얻은 변이자 샘플은 이 변이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실험체였기에 노출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이미 올리버는 그 변이자 샘플을 보자마자 바로 연구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제발 올리버의 말대로 돌파구가 되어주어야할텐데.... 우리를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말이지.’


유난히 입안이 꺼끌거렸다. 옆에 놓여있던 생수를 들고 물을 마셨다. 물맛이 쓰게 느껴졌다.

벌써 며칠째 잠을 못잔 것인지, 잠시만 정신을 놓게 되면 바로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도 그렇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민으로 머리가 아플 정도 였는데, 잠시 생각이 깊어지려고 하자 바로 졸음이 밀려왔다.


‘이 상태로는 안 되겠어.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할 것 같은데....’


잠에 대해서 생각을 하자 갑자기 밀려오는 수면 욕구를 떨치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여태까지의 고민을 모두 잊고서 졸음과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무전기에서 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칙! 여기는 알파팀. 오메가 나와라. 오버.”


깜짝 놀란 맥이 급히 대답했다.


“칙! 여기는 오메가. 말하라. 오버.”

“칙! 알파팀, 내 변이자 발생.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변이자 발생. 지금 변이자를 제압하고 데크로 물러서려고 하는 중입니다. 오버.”


놀란 맥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칙! 뭐라고? 또 변이자가 생겼다고?”

“칙! 네, 알파팀에서 6번 데크의 구석의 통로를 조사하던 중 갑자기 대원 중 하나가 변이를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을 보면, 다른 대원들도 위험성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어 급히 감염여부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시를 바랍니다. 오버.”


짜증이 난 맥이 책상을 내리쳤다. 그대로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서는 어떻게 옳은 결정일지 고민을 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맥은 크게 욕설을 내뱉고는 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칙! 수색팀 모두 일단 최대한 빠르게 후퇴하도록.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감염에 대비해서 전원 마스크를 작용한다. 오버.”

“칙! 전원 후퇴와 마스크 착용 말입니까? 지시받았습니다. 오버.”

“칙! 베타팀도 마스크 착용하고 후퇴하겠습니다. 오버.”

“칙! 알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직시 감염여부를 확인하도록. 오버.”


맥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서 들고 있던 무전기를 바닥에 내던질 뻔 했다. 모든 것이 점점 최악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젠장!! 또 다시 변이자가 생기다니....’


맥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책상에 묻었다. 순간 분노가 가시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모든 것이 점차 상황이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욱 두려워졌다.

우리가 마지막 희망이기에 더욱 그랬다.


“후우~ 후우~~”


맥은 순간적으로 잠식해온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최대한 크고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다독이려 애썼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최악이고 비상상황이니만큼 대처도 그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고민을 하던 맥은 결심을 했다. 그리고는 밖에 다른 병사를 불러서는 모든 사람에게 방호복을, 방호복이 없다면 마스크를 쓰라고 지시했다.


이것이 오히려 논란과 불안을 키울지도 모르겠지만, 맥이 현재로써 판단하기에 최선의 수는 이것뿐이었다.


---------------------------


다음 날 아침부터 정현은 얼굴엔 짜증이 잔뜩 묻어나왔다. 한동안 꾸지 않던 꿈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처럼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붉은 빛이 가득한 꿈이었다는 것만은 기억이 났다.

알 수 없는 찝찝함으로 인해서 아침부터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긴 이 상황에서 기분이 나아질 것도 없지.’


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관실로 내려가는 길에는 따로 거주구역을 지키는 미군은 없었다. 연돌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관실로 내려왔는데, 살짝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멈춰서 다른 데크로 갈 수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이미 조치를 취해서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각 데크는 모두 판자들로 막혀있었다.


정현은 살펴보는 것을 포기하고 바로 기관실로 내려갔다. 콘트롤룸에는 모두 3명이 있었다. 조기장과 기관부원 두 명이었다. 정현을 포함한다면, 이렇게 네 명이 기관부에 남은 사람 전부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했던가? 네 명만이 남아있는 콘트롤룸은 더욱 비어보였다. 게다가 조기장을 비롯한 부원 2명은 얼굴가득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더욱 나머지 사람들의 부재를 느껴지게 했다.


정현은 그 자리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물론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든 지시를 내려할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정현 자신도 그렇게 내키지 않았다. 더군다나 갑자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인원만으로 작업을 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다들 불안한 눈빛으로 뭔가 말을 하고 표정들이었지만, 선뜻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현은 내키지 않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현재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잠시 돌려 말할까도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작은 거짓말(?)이 나중에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그대로 말했다.

현재 미군들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끼리는 거짓을 말하지 말고, 믿을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정현은 대충 이야기를 마쳤다. 모두들 놀란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몇 가지 질문들이 오고 갔지만, 정현도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되었으니 힘을 내자고 말한 뒤에, 우선 가벼운 일부터 지시했다.

황천항해 중에 생겼을지 모를 손상부위들을 찾고, 묶어놓았던 장비들을 원상태로 돌리는 일이었다. 다들 들은 이야기에 놀랐는지,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이내 지시를 따랐다. 정현의 생각으로는 당장 NO.1 발전기의 오버훌을 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것을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도 없었다. 다들 놀란데다가 의욕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지시를 내린 후 정현도 순찰을 위해서 기관실을 나섰다. 두 대의 힘차게 돌아가는 발전기 옆에서 정지해있는 NO.1 발전기의 모습이 걱정으로 다가왔다.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정비를 해둬야할텐데.....’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선뜻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저 다른 발전기에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고개를 돌렸다. 보고 있을수록 일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현은 천천히 기관 실내를 꼼꼼하게 순찰했다. 혹시라도 황천항해로 인해서 눈에 띠지 않은 손상을 받은 곳이 있다면, 지금은 괜찮더라도 나중에 정말 중요할 때, 문제가 될 수 도 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브리지에서 싣고 있는 물의 부족을 경고해왔다. 정현은 급하게 조수기를 돌렸다. 조수기는 기기내부를 진공에 가깝게 만든 상태에서 보일러에서 생성되는 스팀을 이용해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담수로 만드는 장치를 말했다.

조수기가 운전되는 것을 보면서 정현은 문득 볼티모어에서 기름을 적게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아~! 그때 기름을 적게 받았었지?’


순간 그때 생각이 난 정현이 급하게 줄자를 들고서, 기름 탱크들을 돌아다니며 탱크에 남은 기름의 양을 측정했다. 그때 기름 탱크 하나에서 오히려 기름이 늘어있는 것으로 측량이 되어서 놀랐는데, 줄자에 묻어나오는 것을 살펴보니 어디선가 물이라도 들어왔는지 기름은 상태가 좋지 못했다.


급하게 탱크와 연결된 밸브를 잠그고 기름을 살려보기 위해서 오일청정기로 순환을 하도록 해놨지만, 현재 오일청정기의 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하기에 얼마만큼 기름을 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얼마나 기름을 쓸 수 있게 될지 알 수 없는데다가, 무슨 이유에서 인지 볼티모어에서 이번 항차 기름을 받을 때, 처음부터 요청한 양보다 적은 양의 기름을 받았었기 때문에 기름의 여유 량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에 기름을 살리지 못하게 된다면 배의 목적지인 평택까지 가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었다.


콘트롤룸으로 돌아온 정현은 다시 한 번 차분하게 기름 량을 계산해 보았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평택까지 가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적은 양이라도 중간에 기름을 받아야만 했다.

어찌어찌 디젤유를 바닥까지 쓰고 기상이 계속 좋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그런 모험을 하는 것을 추천할 수 는 없었다. 이것은 차가 아닌 배였으니까. 중간에 어디서 서비스출동을 요청할 수 도 없었다.


‘젠장, 무슨 악재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생기냐. 이번 마지막 항차는 정말 최악의 항차가 되겠구나.’


정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점심식사 시간에 선장에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두 번 세 번 다시 계산을 했다. 계산을 마치고 보니,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다른 기관부원들은 모두 콘트롤룸에 들어와서는 정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정현이 멋쩍게 웃으며 왜 부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조기장이 너무 집중을 하고 있어서 부를 수 없었다고 했다. 정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전혀 여유를 보이지 못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되다. 앞으로도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는데, 이런 상태라면 중간에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다독이고는 웃음을 띠우며 다음부터는 그냥 기다리지 말고 바로 불렀다라고 당부했다.


무인당직으로 바꾸고 모두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관실에서 올라왔다. 데크에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정현은 맑은 하늘을 보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일행이 거주구역에 들어왔을 때 거주구역 전체를 감싸는 어색한 공기가 느껴졌다. 순간 움찔한 정현과 일행은 긴장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모퉁이 너머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정현이 급하게 다가가보니, 어떤 방문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웅성거리는 소리를 통해서 또 다른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현과 일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혹시 이제는 누가 걸릴지 모르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방안에서 미군이 한 사람을 결박해서는 들것에 싣고는 데리고 나왔다. 얼굴에 하얀 두건이 씌워져 있어서 누군지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조타수라고 했다. 미군들은 곧장 몰려있는 선원들을 헤치고 감염된 조타수를 데리고 그대로 데크로 내려가 버렸다.


몰려있던 선원들은 모두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작은 소리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점점 불안감이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현은 어두워진 표정의 기관부원들을 한 차례 바라보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런 두통으로 두통약 하나를 먹고는 식사겸 선장을 만나러 식당으로 향했다. 이미 선장은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현도 식사를 받아와 식탁에 앉았다.

식사를 하는 선장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에 갑판부원 하나가 전염병에 감염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것 같았다.


정현은 해야 할 말이 있어서 계속해서 선장의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상 나중에 말할까도 생각했지만, 자꾸 미룰 수는 없다는 생각이 더 컸다. 정현은 확인하고 싶었다. 계속해서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1항사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역시나 잔뜩 피곤에 찌든 얼굴이었다.


‘정말 타이밍 나이스구나...’


막상 선장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 들어오는 1항사를 보며 정현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선장과 1항사가 귓속말을 나누는 것이 보였다. 정현이 다시 타이밍을 재면서 두 사람을 흘끔거리자 그 시선을 느꼈는지, 선장이 고개를 돌려 정현을 보며 물었다.


“왜? 2기사 뭐 할 이야기라도 있니?”


정현이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조금 전에 기관실에서 올라오다가 봤는데, 조타수 한 명이 또 감염됐다면서요?”


선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1항사에게 설명하라는 듯 눈짓을 했다. 1항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현을 보면 말했다.


“그래. 지금 미군에게 확실히 전염병에 걸렸다는 것을 듣고 오는 길이다. 일단 빠르게 대처를 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은 것은 다행인데.... 다들 너무 동요하고 있어서 걱정이네.”


1항사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현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상황에서 말하기 껄끄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망설이는 정현을 보고는 선장이 답답하다는 듯 다시 말을 재촉했다.


“무슨 일인데? 뜸들이지 말고 얼른 이야기해봐.”


1항사도 혼자 끙끙거리는 정현이 걱정되었는지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오전에 선내의 기름 량을 다시 계산했는데.... 아무래도 평택까지 한 번에 가기에는 기름이 모자랄 것 같아요.”


선장이 뜬금없는 소리에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갑자기 기름은 또 왜?”


선정의 반응에 정현은 긴 한숨소리를 내었다.


“애초에 볼티모어에서 기름을 적게 받았거든요. 그런데다가 이번에 황천항해를 하면서, 기름을 너무 많이 소모했어요. 스케줄도 2~3일이나 늦어졌잖아요. 더군다나 발전기도 볼티모어를 출발하고 나서부터 내내 2대 이상을 계속해서 운전하고 있고요. 그래도 전 항차에 남은 기름이 있어서 괜찮다 싶었는데....”

“그랬는데....?”


정현이 말끝을 흐리자, 어서 말하라는 듯 1항사가 재촉했다. 정현은 다시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이번에 연료탱크를 측량하면서 보니깐, 탱크 한 개의 기름 상태가 너무 좋지 않더라고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묽어진 것을 보니 어딘가에서 물이 스며든 것 같아요.”


선장은 한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리고는 진저리가 났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흡사 무척이나 화난 것처럼 보였다. 정말이지 너무 많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었다. 선장은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남아있었다.


1항사가 더욱 어두워진 표정의 선장 눈치를 보고는 다시 차분하게 물었다. 하지만 1항사의 얼굴도 왠지 뭔가 다 포기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에휴~ 그래서 얼마나 살릴 수 있을 것 같니? 아니,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니?”


정현은 두 사람은 표정에 어쩔쭐 몰라 하다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확한 것은 오일청정기를 돌려서 살펴봐야겠지만, 아마도 많은 양을 살려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지금 오일청정기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거든요. 아무튼 현재로써는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평택까지 직접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선장과 1항사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정현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자신도 입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솔직히 이것은 말 그대로 쉽게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어쩌면 좋겠니?”

“미군에게 이야기를 해봐야하지 않겠어요? 지금 이 상태는 미군에게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는 거잖아요. 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부산항에 잠시 들려서 작은 바지선으로라도 기름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흠~ 부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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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혼란 (3) 16.07.21 318 3 18쪽
55 혼란 (2) 16.07.20 320 5 16쪽
54 혼란 (1) 16.07.19 310 3 20쪽
53 변이의 시작 (5) 16.07.18 386 3 17쪽
52 변이의 시작 (4) 16.07.15 323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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