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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님의 서재입니다.

모르스 무토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종이향
작품등록일 :
2016.05.17 23:32
최근연재일 :
2016.09.30 23:49
연재수 :
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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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
글자수 :
84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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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1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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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각성 (8)

DUMMY

정현은 몸을 숨긴 후에 일어난 소란과 총소리에 들킬까봐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윽고 어떤 사람이 지르는 소리와 부딪치는 소리이후 총소리가 들렸다. 총소리 이후에 조용해지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정현은 겁에 질려서 움직일 수 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는 단순히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 괴물이 싸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현은 그저 구석에서 머리를 박고서 벌벌 떨면서, 이곳을 찾아온 자신의 호기심을 자책하며 모든 게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계속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정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용기를 내서 벽을 잡고 몸을 일으켰는데, 계속해서 몸이 떨려왔다. 차마 통로에 나설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이곳에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총소리까지 났으니, 조만간 미군들이 이곳으로 몰려올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이런 싸움의 장소에 정현, 배의 선원인 자신이 있는 것을 보면, 미군들이 어떻게 나올지 정현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나도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같이 잡아가겠지?’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복장을 보면 두 사람 다 같은 미국군인 같은데, 왜 서로 싸웠을까? 그리고 저 머리가 담긴 이상한 기기는 뭐지?’


정현은 돌아가지 않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지만, 대답을 찾아 낼 수는 없었다. 아마도 미군들이 선원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숨겨서 연구하고 있는 것들과 관계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숨어있던 곳을 나와서 통로를 살피자, 기기에서 나는 붉은 빛에 옆으로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이 비춰보였다. 키와 덩치가 대단히 컸는데, 흡사 미군이 아니라 프로레슬링에서 나오는 레슬링 선수 같아 보였다.


천천히 건드리지 않게 노력하며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을 지나치려는데, 정현의 눈에 그 사람의 한 쪽 얼굴에 피를 흘리는 것이 보였다. 이마에 구멍이 난 것이, 아마도 이 사람이 총을 맞은 사람인 것 같았다.

사실 정현은 둘이 싸우기 시작할 무렵에 겁이 나서 바로 숨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정확하게 어떻게 싸웠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소리로 추측을 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총소리가 나서 총이 사용된 것을 알았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사람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핏줄이 터졌는지 눈이 온통 붉은 색을 된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 죽은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설사 아니라고 해도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가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현이 조심스럽게 그 사람을 지나쳐서 조금 더 걸어가자,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 사람은 벽에 머리를 박은 채 벽에 기대어서 쓰러져 있었는데, 한쪽 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그리고 머리도 다쳤는지, 뒷머리에 온통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정현이 무서운 마음에 그대로 지나치려는데, 어디선가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으윽~”


들려온 신음소리에 놀란 정현이 곧바로 도망갈 차비를 하면서 좌우를 확인하고는 고개만 돌려서 소리가 나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기대어 쓰러져있던 사람은 죽지 않았는지, 등이 작게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그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목 부위를 만져보자, 확실히 맥이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정현은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실 상황이 난처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부상당한 사람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났다.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이 사람을 구하려고 미군에 신고할 수 도,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고 가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어설픈 착함인지도 모르겠지만, 무시할 수 도 없었다. 그렇다고 신고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어떻게 발견을 했는지 제대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정현 자체가 허락 없이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남은 방법은 그대로 두고 무시하는 방법인데, 아직은 부상 입은 사람을 그대로 놔두고 갈 정도로 정현은 타락하지 않았기에 내키지 않았다. 부상입고 치료를 받고 있을 기관부 사람들이 생각나서 더 그랬다.


‘제기랄~ 젠장~~!!!’


속으로 마구 욕을 해댔다.

전혀 어떻게 할지 선택하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는데, 뒤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정현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에 총을 맞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몸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 어?”


정현은 놀라서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선뜻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다니.... 아니 안 죽었던 건가?’


머릿속이 갖가지 생각들로 복잡했다. 일단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 정현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서려는데, 뒤에 쓰러져 있던 사람에게 걸렸다. 넘어질 뻔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우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쓰러진 사람을 돌아나가려 했다.

그때 잠시 꿈틀대던 사람을 바라보던 정현의 눈과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사방을 쳐다보고 있던 그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의 눈은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검은 동공조차 보이지 않았다. 흡사 불타는 것처럼도 보였는데, 알 수 없는 적의를 담고 있었다. 정현은 그 눈을 보고 있자, 저절로 몸이 떨려왔는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정현은 그 남자의 눈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붉은 눈에 압도 되어 조금씩 뒤로 피하려던 움직임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붉은 눈의 남자는 뭔가 제대로 움직임의 제어가 되지 않는 지, 앉은 자리에서 한참을 버둥거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현의 눈에 그 남자의 전신이 보였는데, 붉은 눈을 타고 흐르는 피와 함께 상처가 가득한 팔에서 피가 계속 흘러 바닥을 적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의 총 맞은 자국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데, 정현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저렇듯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공포감이 슬며시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그 남자는 정현을 향해 다가왔다. 정현은 새삼 그 남자의 키가 크다고 느꼈다. 거의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데다가, 엄정한 근육질의 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부가 너무 하얘서, 창백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얀 모습이 흡사 분장한 사람처럼 보였다.


정현은 목이 말라왔다. 신체적으로 너무 압도적인 모습에, 저 사람과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천천히 다가오던 그 사람의 눈에 조금씩 붉은 빛이 감도는 것 같더니, 순간 정현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 강한 충격을 받고는 그대로 뒤로 날려졌다. 정현은 붉은 빛을 내는 유리돔을 가진 기기와 부딪치고는 그 기기와 함께 뒤로 굴러 넘어졌다.


정현과 부딪치고 구른 충격으로 인해서 기기에 설치된 유리돔이 부서졌다. 기기와 함께 구르던 정현의 얼굴로 붉은 액체가 가득 쏟아져 내렸다. 붉은 액체를 잔뜩 뒤집어쓴 정현은 자신의 품에 무엇인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는데, 자세히 보니 유리돔에 고정되어 있던 머리였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정현은 온몸에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 느껴졌다. 머리에 꽂힌 여러 개의 꼬챙이가 정현을 찌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꼬챙이를 꽂은 머리를 들고 있는 선원이라....’


정현은 마치 버스에 부딪친 것 같이 통증에도 불구하고 얼핏 웃음이 나왔다.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가운데, 온몸의 뼈가 가루가 된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렸다. 어떡해든 숨이 쉬기 위해서 혼자서 ‘꺽꺽~’ 거리는데, 덩달아 뒤집어쓴 액체가 입안에 남아 있다가 삼켜지는 바람에,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간신히 거친 숨을 몰아쉬던 정현은 자신의 가슴 앞에 있는 머리를 치우려고 손을 뻗다가 뾰족한 물체에 무심코 손이 닿았는데, 잠시 힘을 주다가 손이 미끄러지면서 꼬챙이로 머리를 더욱 찔러버렸다.


순간 정현은 생전 들어보지 못한 소리에 급하게 귀를 막았다. 처음에는 찡~~ 하고 나던 소리가 귀가를 들리고 나서, 곧바로 소리는 정현의 머리를 온통 헤집었다. 그리고 연이어서 다른 모든 통증을 다 잊을 만큼의 강한 두통이 정현의 머리를 당타했다.


한참을 울리던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나서야, 정현은 간신히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정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연신 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유리돔에서 나온 액체로 인해서 정현이 뱉는 침도 온통 붉은 색이었다.


정현은 두통으로 저절로 인상을 찌푸린 채 재빨리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의 바로 앞에 유리돔 안에 있었던 머리가 꼬챙이에 꽂힌 채 놓여 있었다.


머리는 눈을 부릅뜬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는데, 마치 고통 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는데, 자신을 공격했던 남자와는 다르게 붉은 눈동자가 뚜렷했다.


머리에 흠칫 놀란 정현은 머리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대로 뒤로 기었다. 놀란 눈으로 계속해서 머리를 살펴보는데,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로 정현의 눈이 무척이나 따가웠다. 손을 들어 눈을 닦아내려 했지만, 손에도 묻어있는 것을 보고는 정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갑자기 앞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을 공격했던 괴인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귀를 막은 채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순간 정현은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전에 그 남자에게 공격당한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같은 공격을 당한다면 위험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정현의 귀에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ㄱ.....ㅎ....ㅐ.’


처음에는 소음인 줄 알고 무시했지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어서.... ㅐ.’


제대로 들리지 않는 소리에 정현은 짜증이 났다. 이 위급한 상황에 이게 무슨 일인지.... 속에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정현이 뭔가 말하는 것이란 걸 느끼고 무심코 반문을 했다.


‘뭐라고?’


정현이 확실히 소리를 인지하자, 소리는 조금 더 크게 들려왔다.


‘어서....공...해.’


여전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씩 소리가 명확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크게 머리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공격해!’


정현은 머릿속을 울리는 큰 소리에 깜짝 놀라서, 그대로 고개를 들어 무릎을 꿇고 있는 괴인을 쳐다보았다. 괴인도 마침 정현을 향해 고개를 들려고 하고 있었다.


‘공격하라고. 지금!!!’


머릿속을 크게 울리는 소리에, 정현은 바닥에 떨어져있던 빠루를 집어 들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괴인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공격해! 어서!! 때려!!!’


계속해서 울리는 말에 정현은 고개를 들고 있는 괴인을 향해 빠루를 힘껏 휘둘렀다. 빠루는 괴인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고, 정현은 흡사 쇳덩어리를 치는 것 같은 반발력에 빠루를 놓칠 뻔했다.

빠루에 맞은 괴인의 머리가 뒤로 들쳐지면서 그대로 넘어갔다. 정현은 계속되는 머릿속의 외침에 따라 계속해서 괴인의 머리를 노리며 빠루를 휘둘렀지만, 몇 대 계속 맞던 괴인은 팔로 방어를 하더니, 이내 빠루를 손으로 잡아챘다.


정현이 빠루를 잡은 팔에 온힘을 다하며 괴인이 잡고 있는 빠루를 빼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공격한 것이 완전히 헛되지 않았는지, 괴인의 머리 반쪽이 완전히 뭉개져서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괴인은 남은 얼굴을 흉측하게 일그러지더니, 빠루 잡고 있는 정현과 함께 그대로 뒤로 밀쳤다. 괴인의 강한 힘에 정현은 빠루와 함께 뒤로 날려졌다. 바닥에 내팽개쳐지면서 그대로 굴러서 벽에 처박혔다.


강한 통증이 온몸을 지배하면서 정현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여전히 머릿속에서는 상대방을 공격하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의 정현은 자신의 상태가 움직이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간신히 몸을 뒤집고 괴인을 바라보았는데, 괴인은 깨진 반쪽 머리에서 흐른 피로 인해서 온몸이 뻘겋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머리를 공격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떤 후속 공격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현은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통증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통증으로 몸에 힘을 제대로 줄 수 없었다. 어딘가 부러진 것 같아서 몸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문득 여기까지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현은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뱉었다. 두통과 통증이 점점 옅어졌는데, 동시에 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일종의 각성상태였지만, 정현은 자신의 이런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정현은 힘없이 손을 내려뜨렸다. 손끝에 뭔가 만져지는 것이 느껴졌다. 가만히 보니 유리돔에서 나온 머리였다. 정현은 순간 흠칫 했지만, 이제는 자신도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바라본 머리에는 몇 개 남지 않은 꼬챙이를 꽂혀 있었는데, 정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온통 부릅뜨고 있었는데, 순간 정현은 눈에 붉은 빛이 감도는 것 같이 느껴졌다.

순간 정현은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싶어 눈을 비볐지만, 손에 뭍은 붉은 액체로 인해 눈만 더 따가워져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간신히 아픔을 참아가며 실눈을 뜨고 보니, 그 머리의 이마 사이로 붉은 빛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눈을 껌뻑이며 다시 바라보자, 상하로 갈라진 이마 사이로 붉은 빛을 내는 것이 나타나고 있었다.


정현은 그 붉은 빛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며,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상하로 길게 갈라진 상처 사이의 붉은 빛이 점점 힘을 더하더니, 붉은 빛 속에서 둥근 물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눈 같았다. 그것도 아주 맑은 붉은 색을 가진 눈이었다. 온통 더럽혀진 머리와 비교되며 무척 신비로운 느낌이 주고 있었다.


정현이 쓰라린 눈에도 불구하고 그 붉은 눈만은 뚜렷하게 마음에 각인 되었다. 직접 그 눈과 눈을 마주치자, 정현은 머리가 백지가 되었다. 눈앞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괴인도, 온몸에 엄습하는 통증도, 머리를 빠갤 것처럼 울리는 두통도 모두 잊어 버렸다.

단지 눈앞에 놓여있는 이마의 붉은 눈만이 머릿속을 가득 찼다. 그리고 그 눈 속으로 자신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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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이 하늘을 가득 메운 황량한 벌판에서 정현은 눈을 떴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은 멀리 지평선으로 이어졌고, 붉은 하늘과 맞닿아서 붉은 들판처럼 보였다.


문득 멍했던 정신이 차츰 돌아오면서 정현은 이 장소가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잠시 기억을 뒤지던 정현은 이 장소가 예전에 자신의 꿈에서 붉은 눈의 괴인을 보았던 바로 그 들판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란 정현이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넓은 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꿈속의 괴인은 정현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과 함께 두려움으로 남아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정현은 순간 꿈속의 괴인은 아닐까 놀라서 급하게 뒤로 물러났지만, 곧바로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현이 놀란 가슴을 다독이며 다시 살펴보자, 그 사람은 외국 사람처럼 보였는데, 고개를 들고 멀리 지평선 근처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있는가 싶어서 정현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검붉은 구름이 뭉글뭉글 피어나면서 뭉쳐있는 것이 보였다. 간혹 붉은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니 번개라도 치는 것 같았다.


순간 정현은 자신이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 이건 꿈인가? 꿈이 맞지? 세상에 이 순간에 잠이라니....’


정현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바로 조금 전만 해도 자신을 죽이려는 괴인과 싸우다가 날려졌는데, 지금은 꿈속이라니. 빨리 꿈에서 깨야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깨어나야지 반격을 하든, 도망을 치든 할 수 있을 터였다.


정현은 빨리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뺨을 힘껏 때렸다. 꿈인데도 강한 아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도 꿈속이었다. 다시 뺨을 때리기 위해 손을 올리다가, 순간 아픔이 생각나서 흠칫 거렸다.


‘휴~~ 지금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아픔에 머뭇거리다니...’


스스로가 한심해진 정현은 입술을 깨물고는 다시 뺨을 힘차게 때렸다. 뺨을 타고 통증이 온몸으로 흘렀다. 그러나 여러 차례 때렸는데도 불구하고.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아픈 통증만 느껴질 뿐이었다.


정현은 어느새 퉁퉁 부어버린 뺨을 손으로 감싼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해도 안 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깨어날지 암담했다.


‘빨리 깨어나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자신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 보였다. 정현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면서 앞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홀로 하늘을 쳐다보던 사람이 눈앞에 서있었다. 매우 잘생긴 외국인이었다. 그 사람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정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나는 빌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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