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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님의 서재입니다.

모르스 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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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작품등록일 :
2016.05.17 23:32
최근연재일 :
2016.09.30 23:49
연재수 :
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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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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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09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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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각성 (6)

DUMMY

컨테이너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 다가갈수록 들리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작은 소리가 울리면서 들리는 거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사람이 내는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정현은 최대한 주위를 살피는 것에 신경을 집중하면서 걸어서 컨테이너가 있는 곳까지 움직이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울리는 소리가 흡사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정현이 미군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허락 없이 들어온 것이기에 미군들이 어떻게 나올지 쉽게 상상할 수도 없었다.


‘제기랄....’


정현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이 미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는 정현이기에, 이런 미군들의 고압적이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생각날 때마다 울컥했다. 하지만 실제로 정현이 대항할 방법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화물을 운송하는 배의 선원인데다가, 화주는 바로 저 미군들이지 않은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지만, 이대로 쉽사리 당하고 있을 수만도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것이 우리들을 속이는 것이라면 더욱 말이다.

도대체 미군들이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이 배안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확인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무엇보다 미군이 데려간 기관장과 1기사, 3기사 등의 생사가 궁금했다. 아참 한 명 더 있었다. 실습생도....

무사히 있고 치료중이라고 미군들이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여태까지 미군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고,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을 보면, 그다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안다고 무엇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진실을 알아야할 시간이야.’


컨테이너 뒤편에 무사히 도착한 정현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 데크를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중요한 것이 없는 장소이여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숨을 가다듬은 후에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아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는데, 컨테이너 앞쪽에 같은 방향, 즉 데크 좌우방향으로 컨테이너들이 데크 뒤쪽 경사로가 있는 곳까지 연달아 놓여 있었다. 다 비슷하게 생긴 컨테이너라서 쉽게 구분 되지는 않았다.


정현은 컨테이너 사이를 빠르게 걸으면서 경사로 쪽으로 움직였다. 중간에 문이 열린 한 컨테이너가 있어 안을 살펴보니, 여러 가지 화물들이 쌓여있었다. 아마도 보급품들인 것 같았다.


경사로 근처에 도착하자, 경사로를 타고 아래 데크에서 낮게 ‘그르릉~~’ 거리는 소리가 좀더 크게 들려왔다. 정현은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일단 소리를 따라가 보기로 결심하고는 경사로 쪽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경사로 쪽에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깨진 채 방치된 데크 형광등으로 인해서 군데군데 어두웠던 것과는 달리, 따로 전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제법 밝았다.


경사로를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정현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 흡사 짐승의 낮게 으르렁 거리는 것과 비슷했는데, 그것에 음산함이 섞여있었다.

정현은 그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느낌에 선뜻 경사로를 내려갈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망설이는데, 경사로 아래쪽에서 누가 올라오는 것 같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정현은 급하게 컨테이너의 뒤로 가서 숨었다. 정현의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미군 한 명이 올라오더니, 여기저기 플래시를 비추더니 밑으로 내려갔다. 정현은 사방을 비추는 플래시와 미군의 발걸음이 사라질 때까지 컨테이너 뒤에 숨어 있었다.


새삼 그럴 깜냥도 되지 못하면서 여기까지 내려온 자신이, 정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마음속에서 자꾸 돌아가라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무시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아마도 어떤 작은 계기가 생긴다면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알아?’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겁을 먹은 것과는 별개로 기관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미군들이 뭘 숨기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시 경사로에 조심해서 다가갔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경사로를 타고 내려가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정현은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보다 주어진 시간, 기관실 알람으로 만든 알리바이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가 될지 확신할 수 없기에 빨리 결정해야 했다.


‘아무래도 경사로로 움직이는 것은 힘들겠어. 다시 돌아가는 게 멀긴 하지만, 벽 쪽에 설치된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겠어. 저번에 내가 갔던 곳이 4번 데크였던가? 아마도 치료시설이 있다면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큰데.... 그곳까지 미군한테 걸리지 않고 갈 수 있을까? 휴우~’


길게 한숨을 내쉰 정현은 천천히 다시 뒤돌아서 좌우를 살피다가 데크의 포트(왼쪽)쪽 벽을 향해 움직였다. 보통 데크의 계단은 모두 각 데크의 가장자리 벽에 붙어서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데크 벽에 도착한 정현은, 벽을 따라 움직이다가 선미로 가는 방향의 중간쯤에 설치된 계단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계단 아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따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현은 주의 깊게 아래를 살펴보고는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며 아래로 내려왔다.


이 데크도 위 데크와 마찬가지로 무슨 이유에서 그대로 놔두었는지 모르겠지만, 군데군데 깨어진 데크형광등으로 인해서 데크 전체가 많이 어두웠다. 그에 비해서 경사로를 중심으로 설치된 컨테이너 주변에는 따로 설치된 빛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아래 내려와서 들으니, 그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간헐적으로 데크 전체에 울리고 있었다. 고통에 차있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만약에 오래 이 소리를 듣고 있다면, 정현은 분명 노이로제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컨테이너는 창이 나있는 컨테이너 건물이었는데, 따로 주변에 경계를 서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조심스럽게 데크의 벽을 타고 움직이는데, 데크의 형광등 하나가 불꽃을 내면서 터졌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정현은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난히 깨어진 형광등이 많아서 어두운 데다가, 중간 중간에 일부 형광등은 흡사 싸이키 조명처럼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어서 데크 분위기를 더욱 무섭게 만들고 있었다.


‘젠장~ 분위기 한 번 끝내주네.’


정현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좀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불빛이 점등을 하면서 주변을 밝힐 때마다 등골을 타고 찬 기운이 올라와서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무서워진 정현의 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컨테이너와 수평이 되는 곳까지 벽을 타고 움직이던 정현은 눈앞에 뭔가와 부딪쳤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깜짝 놀라 자세히 살펴보니 철조망이 앞을 막고 있었다.


‘어? 웬 철조망이지?’


문득 3기사가 사람들을 눕혀놓은 진료하던 곳이 있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3기사가 말한 그곳인가? 철조망 이야기는 없었는데....’


잠시 생각을 더듬던 정현은 철조망에 손을 대고 흔들었다. 선체 벽에 고정시켜 설치되어 있는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벽에 붙여서 설치되어 있어서 이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어차피 설치된 컨테이너로 가서 살펴봐야 하기에 철조망을 따라서 데크 중심으로 이동했다.


중간중간에 철조망을 따라 설치된 빛을 피하면서 철조망에 가로질러 놓인 컨테이너에 도착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서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정현은 혹시나 들킬까 싶어서 더욱 조심히 움직였다.


‘도대체 여기에 왜 철조망이 설치된 거지?’


컨테이너에 설치된 창을 통해 안을 살펴보았다. 컨테이너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자고 있었고, 한 사람은 뭔가를 비추는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CCTV인 것 같았다.


놀란 정현이 자신이 온 철조망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따로 설치된 CCTV가 보이진 않았다. 아마도 다른 것을 비추는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정현은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발뒤꿈치를 높이 들었다.


화면에는 뭔가가 묶여있는 것이 보였는데, 사지가 결박된 것을 보니 사람 같았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지가 결박당한 채 고개를 이러 저리 움직이면서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입을 벌리는 것에 맞춰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그들이 내는 소리 같았다.


‘저 사람들은 뭐지?’


아무리 보아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하얬는데, 두 눈이 온통 충열되어 있는 가운데,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두 24개의 화면이 있었는데, 한 화면에는 묶여있는 사람의 얼굴이, 다른 화면에는 각종 수치를 표시하고 있었다. 즉, 각 사람당 두 개의 화면이었다.


잠시 후 갑자기 한 화면에서 빨간색 경고등이 뜨더니, 옆에 있는 화면의 그래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화면을 보던 사람이 이를 확인하더니 급하게 철조망 안쪽으로 난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졸던 사람도 놀란 얼굴로 일어나더니, 화면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뒤를 따랐다.


정현은 두 사람이 모두 나가자, 좀더 화면을 자세히 쳐다볼 수 있었다. 경고등이 들어와 있는 화면에 있는 사람은 묶여있었는데, 묶인 것을 풀어내는지 조금씩 사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입을 크게 벌리는 모습이 보였는데, 동시에 정현의 귀에 큰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흡사 짐승이 내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가 들린 후, 이윽고 다른 울부짖는 소리도 연이어 들려왔는데, 각 화면을 보니 다들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그때, 화면에서는 컨테이너에서 뛰쳐나간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커다란 집게를 이용해서 움직이려는 사람은 목을 붙잡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다른 사람이 나타나더니 목이 붙잡힌 사람 뒤로 돌아가서는 목에 뭔가를 주사했다.


주사를 맞고 나자, 발버둥 치는 것과 지르는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는데, 완전히 잠잠해 진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그를 결박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울부짖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고, 화면에서 사라진 두 사람은 이내 다른 화면에서 나타나서는 처음과 같은 방법으로 다른 울부짖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한 명씩 뭔가를 주사하고 있었다.


주사를 다 맞고 나자 데크를 울리던 울부짖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정현은 무슨 일인지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가지고 무엇인가 실험을 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행히도 화면에 비친 사람 중에는 정현이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컨테이너에 사람들이 들려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정현은 급하게 몸을 숨겼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들어 너무 자주 깨어나는 거 아냐? 이러다가 정말 깨어나면 어떡하지?”

“이번에 세루가 크게 활성화 된 이후부터 저러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뭔가 방법을 찾아달라고 해야지. 이러다가 완전 깨어나면 진짜 큰일이야.”

“젠장~ 새롭게 샘플도 많이 생겼다면 이것들을 이대로 두는 이유가 뭐야? 가득이나 인원도 부족해서 둘이서 지켜보는데, 이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려고.”

“휴우~ 연구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어찌 알겠냐? 교단의 샘플이라잖아. 뭔가 의미가 있겠지.”

“아래층은 어떻데?”

“그쪽도 인원이 부족해서 난리인가 봐. 안 그래도 지원을 이야기했는데... 앓는 소리를 하더라고.”

“휴~ 그래도 제발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빨리 처분을 결정을 해줬으면 싶은데.... 이것들을 보고 있을 때마다 왠지 불안불안 하다.”

“그러게 말이야.”


미군들의 한숨소리가 컨테이너 밖에까지 들려왔다.


숨죽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현이 조심스럽게 컨테이너 건물에서 떨어져 철조망이 있는 곳으로 갔다. 멀리 묶여있는 사람들이 얼핏 보였다.


‘교단? 샘플이라고?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야?’


정현은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샘플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뭔가 실험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잖아. 그리고 새로운 샘플? 새로운 샘플이라면, 새롭게 생겼다는 것이고 그건 선원들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이것들이 지금 선원들에게 뭔가 실험을 하고 있다는 거야?’


정현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여태까지 들은 것을 조합해 보면 미군들이 뭔가 실험을 하는 중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배에서 그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젠장, 우리한테는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어? 그런데 이것들을 한국으로 실어간다는 것은.... 미친 XX들! 정말 미친 거 아냐? 왜 이걸 한국으로 가져가려는 거야?’


안 그래도 미군들이 한국에서 비밀리에 무슨 실험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때도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 하는 실험을 반대하였지만, 결국 한다 안한다로 한참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더니, 어느 사이에 슬그머니 소리소문없이 이야기하던 모든 내용이 흐지부지 넘어가버렸다. 이후에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일이 처리가 되었는지 알고 싶어했지만,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때마침 어떤 TV프로그램에서 방송을 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미군의 뜻대로 진행이 되었을 거라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아마도 이 경우도 한국 사람들의 동의 없이 몰래 가져다가 한국에서 연구를 하려는 것이리라.


‘젠장! X같은 것들. 할려면 지들 나라에서 할 것이지 왜 엄한 우리나라에서 하느냔 말이야.'


저절로 욕설이 나왔다.


정현은 정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알고 있는 정보는 너무 단편적인데다가, 대부분이 추리였다. 사실상 몇 가지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알아낼 수 있는 사실엔 한계가 있었다.

이것만 가지고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 분위기상 선동하면 될 것 같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좀더 정보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


‘정보를 얻어야하는데..... 어떻게 하지?.’


정현은 다시 철조망 너머에 시선을 돌렸다. CCTV가 설치되어 있기에 저곳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아래 데크에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은, 아래층에도 그 샘플이라는-정현은 선원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것이 있다는 말이었다.


‘아래 데크에 가봐야겠다. 그리고 1기사님하고 3기사를 찾아야지.’


다시 결심을 굳힌 정현은 다시 철조망을 따라서 내려왔던 계단으로 돌아갔다. 경사로로 내려갈까 생각도 했지만, 경사로 주변에는 컨테이너 건물이 몇 개 더 있었고 불이 밝혀져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컨테이너 건물들 사이를 미군들에게 들키지 않고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다시 데크 벽 쪽에 설치된 계단으로 돌아온 정현은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 조심스럽게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이번에도 계단을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데크의 분위기는 여태까지 곳들과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래도 이곳은 관리를 하는지, 데크 가운데, 아마도 경사로를 중심으로 데크 형광등과 따로 설치된 전등으로 모두 환하게 모두 불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같은 점은 컨테이너 건물에서 떨어진 데크 외곽은 앞의 데크들과 비슷하게 전등이 나간 곳이 많았다는 점이다.

정현은 그 덕분에 어둠을 타고서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다행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데크가 밝아서 멀리서도 데크 전체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데크에는 위 데크와 마찬가지로 멀리 철조망이 설치된 것이 보였는데, 위 데크가 선체 벽까지 설치된 것이었다면, 이 데크는 컨테이너를 외곽에 두고 가운데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법 큰 소음이 들려왔는데, 바로 ‘어~어~~ 크르르~~’거리는 소리로 사람과 짐승소리가 섞인 것 같은 소리였다.


정현은 너무 밝은 데크의 불빛에 들킬 것이 걱정 되었지만, 이대로는 관찰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기 위해 노력했다.


미군들이 철조망을 중심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철조망 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 철조망에 달라붙어서는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어~어~’하는 소리가 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대로 보지 못한 정현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컨테이너 건물 뒤쪽으로 접근했다.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어 보는데, 철조망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미군들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1기사와 갑판장이 변한 모습과 비슷했는데, 다들 하얀 얼굴에 핏줄이 불거진 모습이었다.

뭉쳐서 어슬렁거리다가 미군들을 쳐다보면서 크게 울부짖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모두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들인 건가?’


그때 미군들 사이로 낯익은 복장이 보였다. 바로 선원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정현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속으로 ‘설마~설마~’를 외치며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눈을 부릅떴다.


기관장과 1기사였다. 얼굴은 더욱 하얘진 채, 얼굴은 온통 핏줄이 돋아있었다. 미군들 사이에 끼여서 철조망 밖으로 ‘그르렁~’거리며 울부짖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뭐야? 치료중이라면서? 저게 뭐야?’


순간 너무 놀라서 손에 힘이 빠진 정현이 빠루를 놓쳤다. 정현이 다시 잡으려 노력했지만, 빠루는 바닥에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었다.


정현은 숨을 삼키며 급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철조망에 붙어있던 감염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있는 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미군들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정현은 급하게 빠루를 챙겨 들고는 바로 뒤쪽으로 도망쳤다. 데크 벽에 설치된 계단까지 숨도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정현이 계단에 거의 도착했을 때 뒤쪽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플래시 불빛이 보였다.


정현은 너무 급한 마음에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와서야 위쪽으로 올라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올라가려 할 때는 계단 쪽으로 플래시 빛이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현은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어디 숨을 곳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딱히 숨을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내려갈 수만도 없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지키는 사람이 없었지만, 밑에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이 데크에도 여기저기 컨테이너 건물들이 설치되어 있은 곳이었는데, 모두 불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멀리 미군들도 듬성듬성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모두 방호복 같은 것을 입은 모습이었지만, 정현은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정현은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다가오는 플래시 불빛이 위로 올라가는 생각을 원칙적으로 차단했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을 수는 있으니까.


입술을 깨문 정현은 조심스럽게 살피며 그대로 한 계단 더 내려갔다. 멀리 컨테이너 여러 개가 합쳐진 건물이 보였다. 처음에 노퍽을 떠나서 데크에 숨어들었다가 본 그 건물이었다.


위쪽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면서 사람들이 걸어오는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정현은 머물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한 계단을 더 내려갔다. 이제 이대로 데크를 가로 질러 가면 기관실로 가는 문이 있을 터였다. 그때 기관실로 통하는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제발 용접 같은 것으로 문을 막은 것이 아니길....’


정현은 속으로 기도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려는데,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정현은 들킬 것 같아서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 움직이다가는 오히려 바로 걸릴 것만 같았다.


‘젠장, 어디로 피해야하는데....’


그때 정현의 눈에 데크통로로 들어가는 구멍이 보였다. 데크 통로는 선수와 선미의 있는 입구 중간에 일정간격으로 뚫린 구멍이 있었는데, 데크 통로로 통하는 구멍이었다. 정현은 정신없이 그대로 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정현이 구멍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사람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정현은 그대로 벽에 몸을 붙인 채 숨죽이고 있었다.

데크에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천천히 잦아들었다.


가슴을 졸이던 정현은 데크가 다시 조용해지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몸이 벌벌 떨려왔다.


빨리 기관실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기관실로 확인 전화가 올지도 몰랐다. 철조망에 갇힌 채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서있던 1기사와 간판장이 생각났지만, 아직 3기사가 어디 있는지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우선은 기관실로 가는 것이 먼저였다.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움직이려 데크를 살펴보는데, 멀리 데크 건너편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움직이려다 놀란 정현은 그대로 몸을 굳힌 채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들려오는 소리를 보니 두 사람인 것 같았는데, 조심스럽게 살펴보자 검은 복장을 한 미군이었다. 정현은 예전에 파나마에서 올라온 미군들의 복장이었던 것이 생각났다.


‘플래시도 켜지 않고 둘이서 뭐하는 거지? 함정수사 하는 건가?’


두 사람이 멀리 선미 쪽의 반대편 데크통로에서 걸어 나오더니,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면서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정현은 데크를 주시하다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멀리 기관실로 통하는 문이 보였지만, 정현의 시선은 두 미군이 나온 통로로 향해 있었다.


‘저기서 뭐한 걸까? 함정수사 같지는 않았는데.... 그리고 데크 통로에 대해서 아는 미군은 없을 텐데....’


데크 통로는 선내 외곽 벽에 이중으로 설치된 격벽 사이에 있는 통로였다. 보통은 선체 점검이나 이동, 기름 탱크의 측량 용도로 많이 쓰이는 통로로, 배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통로였다.


정현은 당장 기관실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은 통로에서 떼지 못했다. 잠시 망설이던 정현은 문과 통로를 번갈아 살펴보더니, 입술을 깨물고는 뭔가 결심한 듯 반대편 데크 통로로 걸어갔다.

왠지 확인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데크 통로에 다가선 정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빼서 통로 안을 살펴보았다. 어두운 통로 불빛 사이로 멀리에서 은은한 빛나는 붉은 조명이 보였다.


‘붉은 빛? 배에?’


비상입구를 가리키는 빛은 초록색이었다. 비상상황에서 붉은 빛을 쓰기는 하지만, 저런 곳에 붉은 빛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갑자기 긴장감이 들면서 입술이 말라왔다.


침으로 열심히 입술을 축였지만 금세 말라왔다. 마음을 다독이며, 조심스럽게 통로 안으로 발을 들였다. 통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데, 바닥에 뭔가 미끄러운 것이 흘렀는지 발이 미끄러졌다. 넘어질 뻔 한 것을 간신히 벽을 잡고서 버틸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발밑의 미끄러운 것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다시 천천히 붉은 빛을 향해 전진했다.


멀리서 붉은 빛을 내고 있는 물체가 보였다. 어떤 기계처럼 보였는데, 붉은 유리돔 같은 것이 위쪽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은은한 붉은 빛이 나고 있었다.


정현은 더욱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조금씩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붉은 유리돔 안에는 어떤 물체가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때 정현의 귀에 약하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나른하게 만드는 소리였는데, 흡사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순식간에 눈꺼풀이 무거워지게 만드는 소리였다. 정현은 점점 잠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천천히 눈이 감겨졌다.


그때, 힘이 빠진 손이 빠루를 놓치면서 그대로 빠루가 정현의 발등을 찍었다.


“큭!!”


발등의 아픔에 정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행히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아픔으로 정신을 차릴 수는 있었다. 다시 조금 더 붉은 빛을 내는 장치에 다가섰다. 순식간에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현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졸음이 쫓아내려고 노력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여기에서 잠들면 큰일이었다.


간신히 잠을 쫓으려고 혀를 깨무는 정현의 졸린 눈에 붉은 유리돔 안에 뭔가 떠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졸음이 달아났다. 붉은 유리돔 안에 사람의 머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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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스 무토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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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반전 (3) 16.08.25 472 6 18쪽
80 반전 (2) 16.08.24 349 5 19쪽
79 반전 (1) 16.08.23 498 5 18쪽
78 제8사도 라우렐 (7) 16.08.22 522 5 22쪽
77 제8사도 라우렐 (6) 16.08.19 398 4 24쪽
76 제8사도 라우렐 (5) 16.08.18 315 4 26쪽
75 제8사도 라우렐 (4) 16.08.17 331 5 16쪽
74 제8사도 라우렐 (3) 16.08.16 359 4 22쪽
73 제8사도 라우렐 (2) 16.08.15 370 3 20쪽
72 제8사도 라우렐 (1) +2 16.08.12 293 6 20쪽
71 각성 (9) +2 16.08.11 399 6 28쪽
70 각성 (8) 16.08.10 350 4 18쪽
69 각성 (7) 16.08.09 391 4 23쪽
» 각성 (6) 16.08.09 400 6 25쪽
67 각성 (5) 16.08.05 327 5 22쪽
66 각성 (4) 16.08.05 309 5 22쪽
65 각성 (3) 16.08.04 312 5 21쪽
64 각성 (2) +2 16.08.02 341 4 21쪽
63 각성 (1) 16.08.01 398 6 18쪽
62 변이자들 (5) 16.07.29 284 3 19쪽
61 변이자들 (4) 16.07.28 279 5 19쪽
60 변이자들 (3) 16.07.27 311 4 18쪽
59 변이자들 (2) 16.07.27 374 4 18쪽
58 변이자들 (1) 16.07.26 326 3 20쪽
57 혼란 (4) 16.07.23 404 4 17쪽
56 혼란 (3) 16.07.21 317 3 18쪽
55 혼란 (2) 16.07.20 319 5 16쪽
54 혼란 (1) 16.07.19 310 3 20쪽
53 변이의 시작 (5) 16.07.18 385 3 17쪽
52 변이의 시작 (4) 16.07.15 322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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