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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세요

황립 대학의 마법학 교수가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20도
작품등록일 :
2021.12.17 11:07
최근연재일 :
2022.04.1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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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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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37화 기록물(3)

DUMMY

아무래도 첫 번째 발표에서부터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


"마도공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법진의 순서를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직선이 아닌 다각형을 우선해서 마법진을 그리는 겁니다."

"다각형을 우선으로요?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건지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이 마법에 필요한 것은 안정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속 마법 특유의 불안정성을 우선적으로 잡아야만 이 이론에서 나타나는 단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하면..."

"네. 효율이 떨어지겠죠.

하지만 효율을 따지기 이전에 마법의 안정성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마법을 실패하는 순간 효율은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 효율보다는 안정성을 잡고, 차후에 연구를 통해 효율을 끌어올리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첫 번째 발표에서 프림 학장과 토론을 벌인 이후로 방금과 같이 발표를 마친 후 내 생각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물어볼때마다 전부 대답하기는 했지만, 사실 발표를 듣고 그때그때 생각나는대로 대답했을 뿐 그것이 발표자의 이론에 정말로 도움이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대답을 들은 발표자들은 내 걱정과 다르게 다들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에 나로서는 더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괜히 내 의견대로 이론을 건드렸다가 망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짧은 토론을 마치고 부리나케 강연장을 나가는 발표자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하아- 가벼운 마음으로 학술 대회에 참석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건지 모르겠네요."


내 말에 알비레오 교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들 이슬레이 교수님에게 평가받기를 원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슬레이 교수님 역시 매번 진지하게 대답을 해주시니 계속 교수님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아무래도 계속 이런 식이라면 제 건강을 위해 다음 발표는 듣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방금 발표자가 마지막 발표자였습니다."


그 말에 나는 지금까지 들었던 발표 주제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 거죠?"

"그만큼 집중해서 들으셨으니까요.

다음에는 초청 강연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들으실 생각이십니까?"

"초청 강연까지 듣고 나면 쓰러지지 않을까요? 이 이상은 들어도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럼 잠시 나가서 포스터라도 보고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너무 오랫동안 강연장에만 앉아 있다 보니 찌뿌둥한 느낌이라 조금 돌아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강연장 밖으로 나오니 조금 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느라 머리로만 쏠려있던 피가 전신에 고르게 퍼지는 느낌이랄까.

베리타스 대학의 전경도 귀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그런지 제법 멋져 보였고, 그 안에서 돌아다니는 마법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렸을 때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 닮아있어서 묘한 설렘 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돌아다니며 마법사들이 전시한 포스터를 구경하는 와중에 내 흥미를 자극하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마나의 순도과 재능의 상관관계]

[마법사에게 있어서 마나의 순도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타고난 마나의 순도가 높은 마법사의 경우 마나의 순도가 낮은 마법사와 비교했을 때 같은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 효율이나 위력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지금까지 발표된 수많은 논문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법사의 재능을 이야기할 때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마나의 순도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마나의 순도와 마법사의 재능이 얼마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몇 가지 연구를 통해 알아보려 한다.]


포스터의 내용을 쭉 읽어보니 꽤 본격적으로 연구를 한 것 같았다.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을 일일이 비교 조사하며 아카데미에서의 성적과 지금까지 이룬 마법적 성취 등을 비교하며 마나의 순도와 재능에 대한 연구 결과를 포스터 한 장에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조사 대상자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마나의 순도가 높을수록 대체적으로 아카데미에서의 성적이나 마법적 성취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마법사가 타고난 마나의 순도가 높을수록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 역시 높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 연구는 아카데미의 어린 마법사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아직 재능이 피어나지 않은 마법사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 재능을 꽃피우는 마법사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아닌 실전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법사들을 대상으로 후속 연구를 한다면 마나의 순도와 재능의 상관관계에 대한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에 나타난 연구 결과만 놓고 보면 매우 그럴듯한 결론이었다.


"결론이 참... 마음에 들지 않네요.

아무래도 연구를 시작할 때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 연구 결과를 끼워 맞춘 느낌이에요. 그래서인지 연구 결과가 완전히 틀린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엉망입니다. 이런 연구를 할 시간에 마도서를 읽는 게 더 생산적일 정도로요."


내 혹평에 알비레오 교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 마나의 순도가 높을수록 마법에 재능이 있다고?'


마나의 순도와 총량이 최상급이면서도 무재능인 사람을 두고 이런 연구를 하다니 애초부터 잘못된 연구였다.

아무리 내가 위선자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은 말을 해줄 수 없는 연구였다.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낸 나는 포스터 아래 코멘트를 적을 수 있는 공간에 한마디 남겼다.


[연구의 주제는 흥미로웠으나 결론을 주장하기 위해 연구 결과를 억지로 끼워 맞추었다. 하지만 정작 주장하는 결론마저도 틀린 주장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열심히 코멘트를 적는 내 모습에 알비레오 교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도공의 혹평이라니. 이 연구를 내놓은 사람에게는 끔찍한 결과겠군요."

"제가 뭐라고 겨우 저에게 혹평을 받았다고 끔찍하다는 말까지 나옵니까? 그리고 괜히 이런 연구 결과를 보고 마법의 길을 포기하는 어린 마법사들이 나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불필요한 연구를 하느라 시간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조금 더 생산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 이 마법사를 위해서도 더 나은 일이었다.

그 밖에도 [얼음 마법의 투명도에 따른 위력 계산]이나 [마나량에 따른 식물의 성장 속도], [마법진의 위상에 따른 금속의 성질], [낙뢰 : 기초 마법부터 거대 마법까지] 등등의 마법사들이 연구한 포스터를 읽어보면서 생각나는 대로 코멘트를 적어주었다.


그중 특히 마음에 들었던 포스터는 [마석의 종류에 따른 마법의 효율]이었다.


[광산에서 채굴하는 마력석과 다르게 몬스터에게 얻을 수 있는 마정석은 몬스터의 속성 따라 마나의 성질도 달라지게 된다. 이에 마석의 종류에 따라 어떤 마법에 활용했을 때 더 효율이 높은지 연구해보려 한다.]


사실 이런 마석의 연구는 수많은 자료가 있는 사골 연구이기는 했지만, 마법의 효율을 보기 좋게 차트로 만들어 놓은 점이 재미있었다.

쉽고 간편하게 보기에 좋은 연구라고 할까. 게임 아이템의 효율을 가지고 연구해놓은 것 같아서 그런지 더욱 재밌게 볼 수 있는 연구였다.

그리고 마나의 효율을 따지는 연구 자료였기 때문에 내 이론과 닮은 부분도 있어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포스터였다.


'내 연구도 마석을 한번 섞어 볼까? 그럼 중급 이상에서도 효율이 변할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마석의 성질에 맞춰 같은 계열의 마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마법의 효율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마법의 효율은 마석의 성질보다는 마석의 크기나 마석이 가지고 있는 마나의 순도에 영향을 더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연구에 사용되었던 마석의 등급이 대체로 낮은 등급의 마석임을 생각했을 때 상급의 마석을 사용했을 때는 다른 결과 값이 도출될 수도 있다. 이에 앞으로 더 넓은 범위의 마석을 통한 연구를 통한 재검증이 요구된다.]


"단순한 통계 자료지만, 마석의 효율을 확인하기 위한 표본으로 보면 괜찮은 자료 같네요."


그 말에 한 마법사가 슬그머니 다가와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마도공 각하."

"아- 이 연구의 주인인가요?"

"그렇습니다. 4서클-판타지아 급의 마법사 파엘 레이포드라고 합니다. 마도공께서 제 연구를 봐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별로 좋은 평가를 한 것도 아닌데 영광이라니. 바로 옆에 있는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그럴듯하게 말해 줄 걸 그랬다.


"크흠- 혹시 여기에 나오지 않은 상급 마석의 자료는 없나요?

표본이 적더라도 상급 이상의 마석에 대한 자료도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그게... 요근래에 황도에 유통되는 마석을 누가 다 쓸어가서 마석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찔렸다.

과소비 특성으로 다른 곳에 돈이 낭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석을 사재기 한게 바로 나였으니까.


"그, 그렇군요. 혹시 마석이 필요하다면 마석을 조금 지원해 드릴까요?"

"허업! 정말이십니까?"

"대신 추가 연구 자료를 저에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마도공께서 봐주시면 오히려 영광입니다."


마석에 대한 연구 자료를 얻게 되면 내 이론에 적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연신 고개를 숙이는 파엘을 뒤로 하며 다시 전시된 포스터들을 확인했다.


'이렇게 포스터를 구경 하다보니까 졸업 작품 전시회를 보는 것 같네.'


졸업 작품을 만든다고 동기들과 실험실을 빌려서 준비했던 게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모래와 돌가루등을 섞어서 제3세계에서도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여과기를 만들었었는데, 막상 만들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수질 개선이 되지 않아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었다.

마침 학술 대회 현장이 대학이라서 그런지 더욱 그때의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포스터 하나하나 코멘트를 적어주는 내 모습에 알비레오 교수는 신기하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다 적어주시는 건가요?"

"원래 적어주는 게 아닌가요?"

"읽어봤을 때 인상적인 연구만 짧게 적어주는 게 보통입니다. 이슬레이 교수님처럼 모든 포스터에 코멘트를 적어주는 일은 좀처럼 없죠."

"아- 제가 학술 대회에 참석해 본 게 처음이라..."


대학 졸업 작품처럼 방명록 품앗이를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나에게는 모든 연구가 인상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현실에서 내가 구상한 적 없던 마법 이론들이 이렇게 전시되어 있으면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 않겠나. 가능하다면 여기 붙어있는 포스터들을 전부 떼어다가 서재에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누가 학술 대회에 전시한 포스터들을 정리해서 책자로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나는 내 뒤에 모여있는 마법사들을 보며 당황하고 말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마법사들이 내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코멘트를 남기셨으려나? 조금 전 봤던 연구에는 꽤 호평을 남겨 놓으셨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포스터를 준비할 걸 그랬어. 그랬다면 나도 마도공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역시 마나리안이랄까. 아까 토론에서도 느꼈지만 겨우 코멘트 한 줄에도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아왔는지 느낄 수 있더라. 이 많은 포스터를 일일이 확인하고 코멘트까지 달아주다니 보통의 마법사와는 마법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다르잖아."


어째서인지 마법사들이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내 귀에 잘 들려왔다. 그 목소리들 때문인지 더이상 포스터를 읽어보는 게 부담스러워 질 정도였다.

교수로서 학생들 앞에 설 때와는 다른 압박감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에서는 품격 특성의 효과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그런지 더욱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알비레오 교수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그 역시 다른 마법사들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언제 이렇게 사람들이..."

"글쎄요."


괜히 마법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우리는 슬쩍 눈으로 신호를 교환하고는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모여있던 마법사들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알비레오 교수는 만찬이 시작될 때까지 마법사 무리를 이끌고 다녔다.


***


내가 학술 대회에 참석한 진짜 목적이자 학술 대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만찬 시간.

엘가드 황태자를 위해 열렸던 황실 기념행사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만찬장을 보며 역시 마법사는 돈이 많은 종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이 시간까지 아르바이트인가요?"

"행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하기로 되어있어서요. 원래 이런 일은 시간제가 아니라 일당제라서 행사가 다 끝날 때까지 있어야 해요."

"그렇군요. 수고가 많네요."


꾸뻑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윈터를 잠시 바라본 나는 윈터가 가져다준 와인잔을 손에 쥐었다.


"음- 좋네."


평소에는 아까워서 쉽게 마시지 못하는 고급 와인의 향을 음미하면서 입안에서 굴리자 오늘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피로로 지쳐있던 몸도 나른해 지면서 다른 마법사들과 친목을 위한 대화도 잘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알비레오 교수도 명성 있는 마법사였기 때문에 귀동냥을 하기 위해 모여든 마법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덕분에 나 역시 덜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마법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슬레이 교수님. 괜찮으시면 제 이론을 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이론입니까? 줘 보세요."

"마도공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도구가 있습니다. 사용해 보시고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어떤 효과가 있는 마도구인지 궁금하네요."


그렇게 다가오는 마법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깨닫고 말았다.


'발표회부터 계속 다른 사람에게 조언만 해주고 있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분명 학술 대회에 참석했던 가장 큰 목적이 다른 마법사들에게 내 이론에 대한 조언을 듣는 것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내 이론에 대한 조언은 하나도 듣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조언만 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새로운 마법을 배우는 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러다가 내 이론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내 걱정과 다르게 만찬장의 마법사들은 모두 오늘의 학술 대회에 만족하는 얼굴들이었다.


"이번 학술 대회에서는 흥미로운 이론들이 많이 나온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조금만 다듬는다면 충분히 기록물로 등재될 만한 이론들이 많았어."


그 말에 알비레오 교수가 나에게 말했다.


"이슬레이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발표된 이론이나 연구 중에 기록물로 등재될 만한 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고 보니 첫 번째로 발표했던 이론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보라스님도 토론의 내용대로 잘만 다듬는다면 3급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하는 것 같던데요."


나와 프림 학장의 토론을 듣고 보라스 학파장이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3급이라니 부럽네요. 저는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남기지 못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이번 학술 대회에 발표를 준비할 걸 그랬습니다."

"저는 5급이라도 좋으니 제 이론이 도서관에 등재되었으면 좋겠어요. 벌써 논문을 세 개나 발표했는데 하나도 인정을 못 받아서... 이러다가 평생 기록물 하나 남기지 못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네요."


마침 나 역시 내 이론이 중급 이상의 마법에서도 효과가 있었다면 기록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고, 그 약점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술 대회에 참석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내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러는데 저도 제 이론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한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이밍 좋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흐름이 끊긴 느낌이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싸움이라도 일어났나?"


이야기의 흐름이 끊긴 것은 아쉬웠지만, 술자리에서 싸움 구경을 놓칠 수는 없는 법.

만찬장의 마법사들이 점점 그쪽으로 모이는 것을 보며 나 역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마도공의 평가가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 괜히 비꼬면서 사람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말이야."

"그깟 마도공의 평가가 뭐라고 내가 널 부러워한다는 건지 모르겠군. 심지어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아니잖아? 그냥 네 연구는 통계 자료일 뿐이라고."

"결론마저 틀린 주장이라는 너보다는 낫지."

"뭐라고?!"


그런데 그쪽으로 다가갈수록 왠지 내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나를 발견한 마법사들도 흠칫 놀라며 양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홍해의 기적이 일어나듯 갈라진 사람들 틈에서 서로 멱살잡이를 하고 있는 두 마법사를 보며 생각했다.


'설마 나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 건가?

근데 마법사가 기사도 아니고 무슨 멱살잡이야? 이왕 싸울 거면 교양있게 마법으로 겨뤄야지.'


한 명은 포스터 앞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카엘. 다른 한 명은 가슴에 5개의 서클이 그려진 로브를 두른 마법사였다.

나의 등장과 함께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는지 두 사람도 잠시 눈동자를 굴리더니 서로 붙잡고 있던 멱살을 놓고 떨어졌다. 한판 붙을 것 같던 분위기가 식어버리면서 모여있던 마법사들도 하나둘 돌아섰다.

나 역시 짜게 식는 느낌이라 돌아서려는 그 순간 카엘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마법사가 나에게 말했다.


"왜 저에게는 그런 평가를 남기신 겁니까?"

"?"

"무슨 근거로 제 연구에 그런 평가를 남기신 건지 이유라도 듣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내가 평가를 남긴 포스터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저 마법사가 했다는 연구가 무엇인지 알아야 답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카엘이 나에게 말했다.


"마나의 순도와 재능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연구를 전시했던 마이아 나레스입니다."

"아~ 그거~ 근데 그건 틀린 연구니까 틀렸다고 했을 뿐인데요?"


내 대답에 마이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면전에서 자신의 연구를 부정당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제 연구가 틀렸다고 가정하는 거죠?"

"가정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커헉!"


그의 연구를 부정할 증거가 바로 이 자리에 있지 않은가.


"어떤 표본을 가지고 연구 결과를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사람 중에 타고난 마나의 순도가 높더라도 마법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 반대되는 경우도 찾아보면 많이 있을 겁니다. 타고난 마나의 순도는 낮지만 마법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요."


내 말에 마이아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게 누구죠?"

'누구긴 누구야? 나지.'


하지만 여기서 그게 나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법.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그건 비밀로 하죠."


그러자 마이아가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훗-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제 연구를 무시하는 거로군요. 아무리 마도공이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 대답할 줄은 몰랐네요."

"마이아. 마도공 각하께 무례하구나!"

"확실한 증거도 없이 남의 연구를 까내리는 게 진짜 무례 아닌가?"


그 발언이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카엘의 깜짝 놀라 그를 만류했지만, 마이아는 오히려 카엘을 뿌리치며 나에게 말했다.


"사실 마도공도 내세울 건 마나리안이라는 이름뿐이지 않습니까?

서클도 겨우 1서클일뿐더러 지금까지 발표한 이론도 겨우 하나. 물론 전투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인정을 받는 것 같지만, 그마저도 약점이 명확해서 기록물로 인정받을 정도의 이론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과연 마도공의 평가가 마법계에서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드는군요."


조금전 카엘과 시비를 붙었을 때보다 과격해진 마이아의 모습에 흩어지던 마법사들도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설마 마도공에게 시비를 걸 줄이야. 마이아가 단단히 뿔이 났나보네."

"면전에서 자신의 연구를 부정당했으니까. 그리고 최근 마이아의 연구들이 모두 좋은 결과가 있었잖아. 기록물로 등재된 이론도 두 개나 있었고. 덕분에 5서클에 오른 거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들어보니 최근 승승장구하던 마법사인 모양이다.

그만큼 자신의 연구에 자신감이 붙어있었을 테니 내 부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 세미나장에서 봤던 마탑의 마법사. 이름이 샌드 밸가로스였던가. 그 사람도 5서클의 마법사였는데 말이야. 5서클쯤 되면 자동으로 도발 능력이라도 생기는 건가?'


그때는 샌드의 공격을 받아치면서 강연장의 분위기를 내 쪽으로 가져오면서 마법사들에게 내 이론을 확실하게 각인시켰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도발을 받아칠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마이아의 말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마이아의 발언에 주변에 모여있던 마법사들이 술렁이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근데 마도공이 지금까지 이룬 업적이라고 할 만한 게 있었나? 딱히 생각하는 게 없는데?"

"마도공도 자신의 이름으로 등재된 기록물도 하나도 없지 않나요? 마나리안의 이름으로 등재된 기록물들은 전부 선대 마도공들의 유산이잖아요?"

"사실 나는 마도공의 얼굴도 오늘 처음 봤어. 원래 이런 행사에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잖아."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마법사들을 보며 마이아는 의기양양해진 채로 나에게 말했다.


"혹시 제가 모르는 마도공의 실력을 증명할 업적이라도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렇다면 저도 마도공의 평가를 받아들이고 물러나겠습니다."

"그건..."


의기양양한 그의 얼굴이 꼴 보기 싫었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다가 내 평판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앞에 메세지 창이 나타났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업적 : 기록물(1급)]


"응? 갑자기?"


갑자기 나타난 메세지 창에 나는 다시 한번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정보창까지 열어봤다.


*

[이름 : 이슬레이 마나리안]


성향 : 중립

직업 : 귀족-마도공, 라니아케아 대학 마법 학부 교수

기원 : 마나

특성 : 순수혈통 / 품격 / 위선자 / 과소비 / 무재 / 관찰자

업적 : 기록물(1급)

*


정보창까지 갱신이 된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마이아에게 말했다.


"있네요. 내 실력을 증명할 업적이..."

"네?"

"아무래도 1급 기록물로 제 이론이 도서관에 등록된 모양입니다."


내 말에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1급 기록물로 등재될 마법 이론이라면 마법사들이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그 말에 마이아도 조금 전의 의기양양했던 표정을 지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설마 새로운 이론이라도 발표하신 건가요?"

"딱히 발표한 이론은 없지만..."

"그런데 어떻게 기록물로 등재가 되었다는 거죠?"

"글쎄요..."


갑자기 업적이라면서 메세지 창이 나타났는데 나라고 알 수가 있나.

솔직히 내가 내놓은 이론이라고는 마나의 집합과 중첩 하나뿐이라 갑자기 업적이 왜 생겼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 내 대답에 마이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론을 발표하신 적도 없는데 기록물로 등재가 되었다고요? 지금 장난하십니까?"


분노하는 마이아의 모습에 나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뒤에서 윈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헙! 진짜다. 지금 위자드 타임에 이슬레이 교수님의 이야기가 올라왔어요.

정말로 1급 기록물로 등재가 되었다는데요?"


그 말에 모든 마법사의 눈이 윈터에게 향했다.


작가의말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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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대학의 마법학 교수가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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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작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7 22.04.18 2,369 0 -
50 49화 졸업 논문(3) +6 22.04.16 3,105 110 13쪽
49 48화 졸업 논문(2) +3 22.04.12 3,413 98 12쪽
48 47화 졸업 논문(1) +2 22.04.10 3,795 108 14쪽
47 46화 조별회의(2) +3 22.04.07 4,328 111 16쪽
46 45화 조별회의(1) +7 22.04.04 4,572 120 13쪽
45 44화 아침 산책(2) +5 22.04.02 4,948 135 16쪽
44 43화 아침 산책(1) +5 22.03.28 5,679 135 14쪽
43 42화 창의적 마법 설계(3) +3 22.03.24 6,266 127 13쪽
42 41화 창의적 마법 설계(2) +9 22.03.20 6,566 153 17쪽
41 40화 창의적 마법설계(1) +33 22.03.16 6,929 180 16쪽
40 39화 기록물의 반향 +14 22.03.12 7,215 166 15쪽
39 38화 기록물(4) +5 22.03.10 7,132 174 12쪽
» 37화 기록물(3) +10 22.03.08 7,210 165 24쪽
37 36화 기록물(2) +4 22.03.04 7,500 166 15쪽
36 35화 기록물(1) +2 22.03.01 7,992 175 13쪽
35 34화 모험가 특강(5) +3 22.02.26 8,173 169 16쪽
34 33화 모험가 특강(4) +5 22.02.22 8,848 176 18쪽
33 32화 모험가 특강(3) +8 22.02.19 9,455 197 15쪽
32 31화 모험가 특강(2) +8 22.02.16 9,799 208 15쪽
31 30화 모험가 특강(1) +6 22.02.14 10,814 193 14쪽
30 29화 시험 후 +13 22.02.07 11,497 268 12쪽
29 28화 시험(4) +12 22.02.04 11,473 275 12쪽
28 27화 시험(3) +9 22.02.02 11,441 245 15쪽
27 26화 시험(2) +8 22.01.30 11,769 235 14쪽
26 25화 시험(1) +9 22.01.29 12,059 226 15쪽
25 24화 마법 지팡이(2) +4 22.01.25 12,016 212 14쪽
24 23화 마법 지팡이(1) +3 22.01.22 12,379 193 13쪽
23 22화 명가(5) +5 22.01.20 12,557 199 13쪽
22 21화 명가(4) +9 22.01.19 12,451 222 17쪽
21 20화 명가(3) +8 22.01.17 12,580 210 13쪽
20 19화 명가(2) +6 22.01.15 13,013 222 17쪽
19 18화 명가(1) +4 22.01.12 13,501 214 15쪽
18 17화 공개 강연(2) +4 22.01.11 13,359 226 16쪽
17 16화 공개 강연(1) +4 22.01.07 13,437 233 13쪽
16 15화 하르당 절벽(5) +5 22.01.05 13,334 249 13쪽
15 14화 하르당 절벽(4) +3 22.01.04 13,410 245 13쪽
14 13화 하르당 절벽(3) +8 22.01.03 13,659 240 14쪽
13 12화 하르당 절벽(2) +2 22.01.01 14,079 248 13쪽
12 11화 하르당 절벽(1) +10 21.12.31 14,690 240 12쪽
11 10화 적성 테스트(3) +3 21.12.30 15,074 253 17쪽
10 9화 적성 테스트(2) +1 21.12.29 14,957 277 13쪽
9 8화 적성 테스트(1) +11 21.12.28 15,332 267 15쪽
8 7화 마법 수련장(2) +5 21.12.27 15,678 253 16쪽
7 6화 마법 수련장(1) +1 21.12.25 16,056 242 14쪽
6 5화 첫 강의(2) +8 21.12.24 16,404 273 13쪽
5 4화 첫 강의(1) +12 21.12.23 16,747 301 16쪽
4 3화 입학식 +11 21.12.22 17,442 269 16쪽
3 2화 무재능의 마법사(2) +10 21.12.21 18,923 272 14쪽
2 1화 무재능의 마법사(1) +17 21.12.20 23,031 30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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