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명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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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도록 하자.
기사 학부의 학생으로 보이는 녀석과 그 녀석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는 윈터 그리고 그들 옆에서 힘겹게 서 있는 유스티아까지.
그냥 보기에도 불편한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그 손부터 놓도록 하죠."
그 말과 함께 작은 마나탄을 만들어 기사 녀석의 팔꿈치에 날리자, 녀석도 윈터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하- 하읍-"
"괜찮아?"
겨우 기사 녀석의 손에서 벗어난 윈터가 숨을 고르는 모습에 유스티아가 윈터를 부축했다.
그러자 기사 녀석이 불쾌한듯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나를 노려봤다.
'저렇게 쓰기에 아까운 얼굴인 것 같은데?'
"괜히 끼어들지 말고 꺼져."
"꺼지라니... 마법 학부 교수로서 마법 학부의 학생들이 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내 말에 녀석의 일그러졌던 표정이 조금은 원상태로 돌아왔다.
"크흠- 교수님이셨다니, 조금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사소한 다툼이 있었을 뿐입니다.
학생들 사이에 일이니 교수님께서는 그냥 돌아가시는 게..."
"이미 관여를 했으니 무슨 일인지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카데미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아니지만, 무슨 상황인지 정도는 알아도 괜찮을 것 같네요."
내 말에 녀석은 순간적으로 표정을 찡그렸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는 나에게 말했다.
"저는 라이올라 포르닉스라고 합니다.
여기 있는 유스티아 프로디기움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같은 사이죠."
"친구라니! 누가 너 같은 놈이랑!"
곧바로 반박하는 유스티아를 보면 친구는 아니었나보다.
"포르닉스면... 5대 기사 가문?"
"오!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포르닉스 가문의 주인이신 그란디스 포르닉스님이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내 말에 라이올라는 자랑스러운 듯 자신의 가문과 아버지에 대해서 떠들었다.
얼마전이었다면 기사 가문에 대해 이렇게 떠들어봐야 알아듣지도 못했겠지만, 유스티아와의 일 이후로 명가들에 대해서만큼은 알고 있었다.
포르닉스라면 기사 명가들 중에서도 첫 번째에 위치한 가문.
그리고 가문의 주인인 그란디스는 제국에서 한 손에 꼽힐 만큼 뛰어난 기사였다.
그런 걸 생각하면 그의 아들인 라이올라도 만만한 캐릭터는 아닐 것이다.
*
[이름 : 라이올라 포르닉스]
성향 : 악
직업 : 라니아케아 대학 기사 학부 학생
기원 :
특성 : 망나니 / 명가 / ** / ** / 영재
업적 : 살행
*
'특성이 5개에 업적도 가지고 있네.'
이렇게 캐릭터 정보창이 화려한 것만 봐도 엑스트라급은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특성을 확인해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명가라면 망나니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모두가 유스티아처럼 모범생일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명문가에 망나니가 하나씩 존재하는 건 고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클리셰인 만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에 망나니로서 열심히 활약할 수 있도록 재능도 타고났지 않은가.
내 생각을 알 수 없는 라이올라는 마치 가문의 힘이 자신의 것인 것 마냥 포르닉스 가문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렇게 라이올라의 이야기를 잠시 듣고 있으려니 조금씩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네.'
아무리 망나니라도 이렇게 대놓고 진상을 부리는 건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하물며 배경에 상관없이 학생들은 모두 같은 신분이라는 라니아케아에서?
그만큼 라이올라는 자신의 가문이 가진 힘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라니아케아서는 모두 같은 신분이 된다고 해서 그 배경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에어린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봐라.
누가 에어린이 자신과 같은 신분이라고 생각하겠느냐 이 말이다.
그리고 라니아케아에는 학생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수들과 교직원들, 그리고 라니아케아가 삶의 터전인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도 과연 모두 똑같은 학생일까?
하물며 개인주의가 강한 마법사라면 모를까, 집단주의가 강한 기사의 세계에서 명가의 아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법 학부만 해도 명가인 메시에 가문이나 허셜 가문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교수들이 존재하는데 기사 학부에서는 없을까.
기사 명가중에서도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포르닉스가 아니던가.
분명 포르닉스 가문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교수들이나 교직원들이 있을 것이다.
라이올라는 가문의 힘으로 지금의 사건을 충분히 무마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진상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올라에게 그건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죠?"
"학생들 사이의 일이니 교수님께서는 그냥 지나가시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린다는 말 안에 숨겨져 있는 의도가 너무 뻔했다.
어떻게 이렇게 전통적인 클리셰를 덕지덕지 바른 녀석이 나온 건지.
'그래. 슬슬 이런 빌런 하나쯤은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게임에 흔히 등장하는 이벤트성 일회용 빌런이라고 생각하면 익숙한 등장이었다.
다만 내가 학교에 왔을 때 등장한 것이 귀찮을 뿐.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오늘은 카니발에게 자료 정리를 시키지, 아니- 부탁하지 말고 혼자 할 걸 그랬다.
'근데 일회용 빌런치고는 디자인이나 설정이 지나친 것 아닌가? 조금 아까운데?'
"그럼 제 말을 알아들으신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라이올라는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윈터를 한번 흘겨보고는 유스티아에게 다시 손을 뻗으려 했다.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라이올라를 향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라이올라 포르닉스.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그러는 건가요?"
"?"
"포르닉스 가문이 힘이 있는 건 알겠는데,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그렇게 건방지게 떠들어 댔나 싶어서 말이죠.
그까짓 포르닉스가 무슨 대단한 이름이라고."
"지금 뭐라고? 그, 그까짓?"
내 말에 라이올라의 표정이 다시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야. 망나니짓도 사람을 봐가면서 하는 거야.
하아- 제국 최고의 기사중 한 명인 그란디스 포르닉스 밑에서 어떻게 이런 개망나니가 태어난거지?"
그 말이 라이올라의 역린을 건드린 것일까?
라이올라는 이를 빠드득 갈며 유스티아를 향하던 손길을 나에게 뻗으며 공격해왔다.
그 갑작스러운 손길에 나는 손끝에 마나를 모았다.
-팡!
허공에서 마나가 터져 나가며 그 충격으로 인해 라이올라가 뒷걸음질 쳤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내가 바보도 아니고 기사에게 거리를 내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인 것만으로도 이미 나와 라이올라 사이에는 작은 마나탄 수십개가 떠올라 있었다.
허공에 떠있는 마나탄의 모습에 라이올라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그런 라이올라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따위 마법으로!"
"이따위 마법인지는 직접 상대해봐라."
기초 마법이라고 부르기에도 우스운 그저 마나를 뭉쳐서 날리는 것에 불과한 마나탄이었지만, 그 사용자가 나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나의 기원은 '마나'.
마나탄을 이루고 있는 마나의 순도과 그 안에 압축되어있는 마나량 덕분에 다른 마나탄과는 차원이 다른 마나탄이었다.
"크윽! 빌어먹을!"
하지만 내 마나탄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라이올라의 눈빛은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
기사는 기사라는 것인지 마나탄에 저항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나를 공격하기 위해 손과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마나탄에 익숙해지는 것인지 나를 향해 뻗어오는 손길도 점점 위협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슬슬 맞을만 하다고 느낀 것일까?
라이올라가 순간적으로 마나탄을 무시하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이 새끼야!"
"아무리 개망나니라지만 교수님한테 죽으라니?
그건 말이 좀 심하지 않나?"
-퍽
"끄악-!"
'호오- 사람을 지면에 처박으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나에게 달려들던 그 모습 그대로 하늘을 날은 라이올라가 지면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에 꿈틀거리면서도 다시금 일어나 자세를 잡는 라이올라를 보며 역시 기사를 상대로는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손가락에 마나를 담았다.
"크흑- 나를 이렇게 대하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
포르닉스가 이런 꼴을 보고도 그냥 있을 것 같아?!"
여전히 당당하게 소리치는 라이올라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네 잘못으로 시작된 일인데, 당연히 가만히 있어야지?"
"푸흣- 푸하하하- 내 잘못?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다짜고짜 나를 공격한 것은 당신이야!"
역시 빌런답게 당당한 라이올라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했던 짓을 벌써 잊어버린 거야?
설마 붕어 대가리도 아니고... 아니, 개망나니니까 개 대가리인가?"
내 말에 라이올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겨우 저 잡것들 때문에 나를 이렇게 만든다고?
나 라이올라 포르닉스를?"
내가 오래전부터 눈여겨봐 온 마법계의 소중한 인재들에게 잡것들이라니...
심지어 유스티아는 라이올라와 같은 기사 명가 출신 아니던가.
그런 라이올라의 분노에 한쪽에서 윈터를 부축하고 있던 유스티아도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미친 망나니 새끼."
그 목소리에 라이올라는 유스티아를 마주 노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가문에서도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버러지 주제에...
검도 제대로 못 쥐어서 하찮은 마법이나 배우는 게 잡것이 아니면 뭐지?"
"......"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러지다.
그런 너 때문에 내가, 이 라이올라 포르닉스가 이런 꼴을 당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
라이올라의 분노에 유스티아는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유스티아 나름의 아픔이 있는 것인지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라이올라만 노려볼 뿐이었다.
그런 유스티아의 표정 때문인지 라이올라는 다시 기세등등해져서 나에게 소리쳤다.
"하아- 그만하지. 아니, 그만하시죠. 교수님.
괜히 더 이상 분란을 일으켜봐야 교수님에게도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이번만은 조용히 넘어가드릴테니..."
"하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라이올라의 모습에 다시 한번 한숨이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유스티아와 라이올라가 무슨 관계이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뭐? 하찮은 마법?"
내 앞에서 마법을 비하하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아주 중대한 일이었다.
감히 내 시간과 노력을 모두 쏟아내서 만들어낸 마법을 보고 하찮은 마법이라고 하다니...
이젠 라이올라가 빌어봐야 그만할 생각이 없었다.
"마침 잘됐네요. 유스티아 학생. 잘 보세요.
결계 마법은 이렇게 사용하는 겁니다."
나는 유스티아에게 말하며 유스티아가 전투 실습 때 사용했던 결계 마법인 '작은 상자'를 만들었다.
"?!"
자신의 주위에 마나가 모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라이올라가 뒤로 물러났지만, 내가 만든 결계는 이미 '작은' 상자라고 불리기에는 그 크기가 조금 지나쳤기에 라이올라는 결계 안에 갇히고 말았다.
-탕! 타탕!
"이런 빌어먹을! 이거 풀어!"
결계의 벽을 때리면서 소리치는 라이올라였지만, 그렇게 쉽게 깨질 결계였다면 그 안에 가두지도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당장 풀지 않으면 포르닉스의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널 죽여버리겠어!"
"네 잘못은 이제부터 너 스스로 불게 될 거야."
라이올라에게 짧게 경고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유스티아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특별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죠.
기사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기사의 길이 아닌 마법사의 길을 선택한 유스티아 학생을 위한 특별 강의입니다."
"네?"
"유스티아 학생은 환혹 계열에 적성이 있다고 했죠?
그럼 우선은 환상 마법부터 시작하죠."
나는 유스티아가 잘 볼 수 있도록 그녀의 시선에 맞춰 마법진을 만들었다.
"이 마법진은 알고 있겠죠? 바로 환상 마법의 가장 기초 마법인 '환영'입니다.
그리고 그려 놓은 마법진에 이렇게 찌르듯이 2개의 직선을 더하면 만들어진 환영에 공격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러자 내가 만들어낸 환영이 라이올라가 붙잡혀 있는 결계 안으로 들어가 라이올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자신을 공격하는 그림자에 라이올라도 대항하며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자신의 손길에 터져나가면서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환영에 라이올라는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치광이 새끼야! 당장 풀어!"
그렇게 달라붙는 환영을 떼어내기 바쁜 라이올라를 보며 유스티아에게 말했다.
"환상 마법을 배웠으면, 다음은 현혹 마법도 배워야겠죠?
현혹 마법은 조금 더 복잡하지만, 저렇게 정신없는 상대에게는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잘 보고 외워두세요."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유스티아에 나는 현혹 마법인 '혼란'을 사용해 결계 안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라이올라에게 뒤집어씌웠다.
"으아아악!"
그러자 라이올라는 환영이 없는 곳에까지 마구잡이로 손을 휘두르며 발버둥쳤다.
"으악! 이건 또 뭐야!!"
"잘 먹힌 것 같네요."
"교, 교수님..."
"아직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침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으니, 라이올라 포르닉스가 왜 이런 꼴이 되어있는지 알려주도록 하죠."
라이올라와 실랑이를 벌인 게 짧은 시간은 아니었으니, 슬슬 소란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기사 학부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모습에 나는 새로운 마법을 만들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니- 이 학생은... 포르닉스 가문의 라이올라가 아닙니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마법 학부에서 기사 학부의 학생을 이런 꼴로 가둬 놓은 겁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갇혀있는 라이올라에게 직접 듣도록 하죠."
그 말과 함께 나는 라이올라에게 또 다른 마법을 걸었다.
그 마법의 이름은 '자백'.
웬만해서는 걸리지 않는 마법이었지만, 이미 환영과 혼란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라이올라는 자백에 저항하지 못하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자기 입으로 뱉기 시작했다.
"유스티아를 끌고가서...
어차피 프로디기움 가문에서도 신경 쓰지 않을테니까...
혹시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르닉스 가문에서 품어준다고 하면 프로디기움에서도... 헉!"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린 라이올라가 자신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들은 상태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역겹다는 듯이 바라보자 라이올라는 다시 한번 결계를 두드리며 나에게 소리쳤다.
"죽이겠다!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그럼 조금 더 듣도록 하지."
"뭐- 뭘?!"
"너, 사람도 많이 죽였지?"
"!"
내 말에 라이올라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라이올라가 가지고 있는 업적 '살행'.
그건 사람을 죽여서 얻은 업적이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을.
그래서 업적의 이름도 살인이 아닌 살행인 것이다.
하지만 라이올라는 이내 그게 무슨 잘못이냐며 소리쳤다.
"기사 수행을 하면서 마을을 습격한 도적들을 물리쳤을 뿐이다!
기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수행을 했을 뿐. 그게 무슨 잘못이라는 거냐!"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세계에서 기사나 마법사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라이올라 본인도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라이올라의 성향이 '악'이라는 것.
태생부터 악인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잘못이나 실수 한 두 번으로는 악 성향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한번 들어보자. 무슨 이유로 그렇게 사람을 죽여 왔는지."
"!"
떨리는 라이올라의 눈동자에 다시 한번 마법진이 비춰졌다.
그리고 점점 눈동자가 흐리멍텅해지며 과거의 일들이 튀어나왔다.
"검술을 수련하다가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문 밖으로 나와 돈이 필요한 친구들과 어울렸지.
놈들은 돈만 주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져다주었거든.
그러다가 기분에 취해 사람을 죽여도 놈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니까... 끄읍!"
황급히 혀를 깨물며 자신의 입을 막은 라이올라였지만, 이내 사람들의 눈빛을 마주하고는 허탈하다는 듯 입에서 손을 떼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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