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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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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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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33

DUMMY

133


"흐음~!"

급보를 읽고 있는 라이너 후작의 호흡이 길어졌다.

라이너 후작의 집무실에는 힐튼 백작과 로던 백작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쌍둥이 요새를 비워두고 두 사람이 모두 모일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군."

"그러게 말입니다. 남부 난민들이 설마 그렇게 아이샤 영애를 따라 나설 줄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그러게…."

라이너 후작은 수도의 첩자들이 보내온 대 이주에 관한 첩보를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수도의 첩보원들은 세비안을 노리면서도 틈틈이 착실하게 수도의 여러 동향을 서부로 보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나?"

집무실의 심각한 분위기를 한쪽에서 지켜보던 거구의 사나이가 몸을 일으켰다. 뮨족의 혼파로였다.

이날도 혼파로는 한가하게 라이너 후작의 집무실 창가에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수도의 급보랍시고 전령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밀서가 건네졌다. 그러자 라이너 후작이 서둘러 자신의 주요 수하들을 모두 집합시키라고 한 것이다.

"아니, 혼파로. 자네에겐 별일 아닐지도 모르네."

그러면서도 라이너 후작은 혼파로에게 한번 보라면서 종이를 건넸다.

"난민들? 수십만에서 수백만?"

혼파로는 종이를 돌려주며 말했다.

"그래서? 이게 무슨 급보란 말인가? 그래봐야 아무런 힘도 되지 않는 난민들 아닌가? 우리 뮨족 기마 전사들이나 고램 몇 기면 금방 해결 될 텐데."

혼파로의 호언에 라이너 후작은 쓴 웃음을 지었다.

"혼파로, 자네 지난겨울에 내가 했던 왕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나?"

혼파로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말일세. 그때 내가 말하던 바로 그런 류의 사람들이라네. 자진해서 충성을 바칠 사람들. 비록 미미하고 힘없는 존재 이만 기꺼이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서 받들어 왕을 만들 진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네. 가만있자, 그렇지! 왕과 거지 카드 게임을 생각해보게."

"그런 거 모르는 거 알잖나."

"아! 그랬던가?"

왕과 거지 카드게임은 사회 계급을 나타내는 그림으로 구성된 카드게임이었다. 사회에 자연스럽게 계급의식을 주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카드의 수는 높은 신분일수록 그 수가 적고 낮은 신분 카드일수록 그 수가 많아졌다. 하지만 왕과 거지 카드는 오직 한 장씩만 존재했다. 가장 강력한 왕은 모든 카드를 이길 수 있지만 거지 카드는 오직 왕만을 이길 수 있었다.

또 하나 하층민 카드를 많이 모으면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규칙이 있었다.

"아무튼 오크들이 사육하는 트롤이나 오거 같은 경우가 아니라 말이지?"

"그래, 가장 비천한 존재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을 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으음~!"

혼파로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뭔가 알듯 말듯 하다는 뜻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몸짓이었다.

뮨족은 각 부족을 대표하는 마루도 자격시험을 거쳐 다른 마루들과 각 부족의 구성원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했다. 유일한 절대 권력이 탄생 할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됐네. 너무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말게나. 지금은 그걸로 족하다네."

라이너 후작은 혼파로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발걸음을 돌렸다. 아직도 왕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혼파로였다.


라이너 후작가를 당주로 하는 서부의 귀족들이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힐튼 백작과 로던 백작을 필두로 여섯 명의 하위 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가신들이 모이는 전체 회의도 그동안 외부에 세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질까 조심하며 꺼려하던 라이너 후작이었다.

"의회가 끝나고 봄에 각자 새 영지 계획을 수립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을 텐데 이렇게 급히 모여 달라고 해서 미안하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지금이 정말 민감한 시기라 사소한 문제 하나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음을 이해해 주시오!"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의 당주의 대업의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흥망성쇠가 걸려있다는 것을.

"이 건이 얼마 남지 않은 우리 대업의 거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숙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오. 또한 아시다시피 오베른님의 마음이 어느 정도 우리에게 기운 상태이니, 행여 민심을 중히 여기는 오베른 성자에게 또 어떻게 비칠지,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요."

라이너 후작의 긴 서두로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곧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남부와 연합해야 한다는 의견에서부터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 등 많은 말들이 나왔다. 하층민들의 민심 이반으로 중앙 귀족들의 반발이 더 심해져 라이너 후작의 대업에 도움이 될 거라는 낙관적인 추론도 있었다.

가신들이 내린 대체적인 중론은 크게 상관이 없을 거라는 의견들이었다.

그러나 라이너 후작은 그다지 말이 없었다. 회의 내내 라이너 후작은 약간은 우울한 표정으로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라이너, 자네 정신은 어디다 두고 있었나?"

회의가 끝나자 조용히 지켜보던 혼파로가 라이너에게 물었다.

"알고 있었나?"

"자네와 나 사이가 아닌가?"

"훗, 역시 자네는 못 속이겠군."

라이너 후작은 조용히 선반에서 술병을 꺼내왔다. 평소 음주를 잘 하지 않는 라이너 후작이었다. 반면 혼파로는 통으로 마셔도 잘 취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술을 대작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옛날에 철없던 꼬맹이 소녀를 하나 알고 있었네."

"응?"

뜬금없는 라이너 후작의 말에 혼파로는 술잔을 받으며 되물었다.

"마냥 철이 없는 아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숙녀가 되었다 싶었더니 이제는 정말 거물이 되어버렸군."

두 사람의 술잔에 금빛으로 찰랑이는 술이 가득 부어졌다. 멀리 바다건너 레반터의 대 족장들만이 마신다는 황금여명이라는 술이었다. 미주라고 하기엔 어려웠다. 기름이나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젤리 같은 무미건조한 맛으로 목을 넘기면 타는 듯 독했다. 모래가 날리는 뜨거운 레반터에서 입안의 모래를 씻기 위해 마신다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휴페리온 대륙에서는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귀한 술이었다.

"나는 말일세. 지금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 꼬맹이가 부럽네. 아니 질투하고 있다네."

"그 보고서의 아이샤라는 소녀를 말하는 건가?"

라이너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들었다.

"자네답지 않게…."

혼파로는 친우의 눈빛을 보며 같이 잔을 들어 마주쳤다. 그가 알기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친구였다. 그런 그가 부럽다는 말을 꺼내는 걸 듣는 날이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이샤를 위하여!"

혼파로는 라이너 후작의 선창에 따라 술잔을 들었다. 라이너 후작은 창문 너머 남쪽을 한번 바라본 후 조용히 잔을 비웠다.



콜마르 공작령의 흑성은 절벽을 깎아 만든 성이었다. 본래는 라스타드 백작의 성이 콜마르 공작의 성이었으나 동부 제국의 침입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동부 산맥이 남북으로 끊어지는 거대한 골짜기 양쪽의 벽을 깎고 또는 연결해 쌓아올린 흑성은 동쪽으로 골짜기를 따라 7개의 성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각 변동으로 생긴 그 골짜기 길이 동부 산맥을 동서로 통과해 에덜라드에서 이스테로드 제국으로 통하는 현재 유일한 협로였다.

"…때문에 늦어졌습니다."

라스타드 백작은 요한에게 수도의 사정을 설명하고 늦어진 이류를 보고했다.

"흠, 생각보다 빨랐군."

"예?"

자신이 방금 늦어진 이유를 설명했는데 엉뚱한 대답을 하는 요한이었다.

"아니, 백작의 이야기가 아니야. 아이샤 녀석의 얘기였네."

"아, 그렇군요."

그러나 라스타드 백작의 얼굴은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언제나 만족할 만큼 대답을 해주지 않는 요한이었다.

올해 요한의 흑성에서 수년 만에 고램 우선 배정권을 신청했다. 10여기의 고램을 싣고 의회를 나서던 라스타드 백작도 역시 다른 귀족들처럼 동문을 들어서는 난민들의 인파에 막혀야만 했던 것이다.

나름 서둘러 고램을 전달하려고 했던 계획은 때 아닌 수도의 대 사건으로 꽤나 늦어졌다. 때문에 이번에야 말로 드웨인 녀석을 흑성에 끌고 오려고 했던 계획마저 접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 드웨인 자작이 남아서 정보 수집을 하게했다고?"

"예, 하지만 아시다시피 워낙 믿음이 안가서…."

"알고 있네. 괜찮아.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까마득하게 깎아지른 흑성의 절벽, 성의 창가 아래로 넓게 흑성 절벽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싼 커다란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성벽의 북서쪽 위에서 흐르던 강줄기는 성 내부를 가로질러 동부산맥의 경계를 타고 남쪽으로 흘러갔다.

용병들이 말하는 방식으로는 콜마르 령 1시 방향에 위치한 흑성과 흑성의 성채 도시인 슈바르츠 캐슬이었다.

"요한 공자님. 그 생각보다 빨랐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음? 아! 이번 아이샤의 일말일세."

"예? 설마 요한 공자님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설마? 내가 무슨 예언자도 아니고…. 다만 어떤 일, 어쩌면 비슷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 이정도 규모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라스타드 백작이 그래도 의아한 표정을 짓자 요한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작년에 남부 연합이 만들어지던 때 기억나는가?"

"예…. 아! 그러고 보니 당시 최고 귀족 회의가 끝나고 그런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분명 다른 중앙 귀족들에게 나중에 후회 하실 거라고."

"흠."

요한이 보일 듯 말듯 미소를 지었다.

"휘이잉~!"

라스타드 백작이 말을 마치자 갑작스럽게 절벽을 타고 급한 바람이 한바탕 불어 올랐다. 이맘때면 남서풍이 불어오다 흑성의 절벽에 부딪혀 발생하는 상승기류였다. 한참 날리던 머리칼이 진정되자 요한은 조용히 라스타드 백작을 돌아보며 물었다.

"라스타드 백작! 자네는 권력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뜬금없는 질문에 라스타드 백작이 즉답을 회피했다.

"돈? 고램? 왕족이나 귀족으로서의 지위? 마법이나 오러같은 절대적인 힘? 아니야. 그 어느 것도 권력의 요소는 될지 몰라도 본질은 될 수 없어."

"그렇다면 권력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글쎄, 내가 하는 말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나는 나름 이렇게 정의를 내렸지."

"…."

"사람이라고…."

라스타드 백작은 요한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어린 요한이지만 어릴 적 왕궁에서 자라며 에드워드 왕자와 같이 제왕학을 배웠던 요한이었다. 거기다 젊은 나이에도 이미 흑성의 지배자로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는 존재였다.

"백성이 없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는 사회가 없으면 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홀로 검이나 마법으로 힘을 얻는다고 무슨 권력이 생기나? 고램이 수백 수천대가 있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그걸 조종할 사람이 없다면 말이야."

"…권력이라는 말 자체가 사회라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파생한 말이라는 뜻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아무튼 그날, 최고위 귀족회의에서 다른 모두가 놓친 것은 그 결과였어. 다들 고램 우선 신청 권에만 신경이 팔려있어 정작 사람의 힘을 놓친 것이지. 남부 귀족들의 복권과 의결권? 정말로 모두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를 주의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는 거지."

"하지만 요한 공자님도 이런 결과를 예상한건 아니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나도 기껏해야 병력의 이탈과 수요 변화를 걱정하는 정도였지."

"병력과 수요라고 하시면?"

요한은 창가에서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으며 책상위로 턱하니 발을 올렸다.

"알다시피 에덜라드는 백년 가까이 전쟁을 하고 있어. 거기다 동쪽과 북쪽 모두 상대하기 어려운 적들이지. 이런 풍전등화의 위기가 수십 년이 넘게 이어왔는데 그동안 왕국에 감히 수상한 생각을 하는 자들이 없었을 거 같은가?"

"예?"

"생각해보게. 지금도 중앙에서의 팔미온 후작이나 데이브 공작의 힘은 서슬이 퍼렇지, 수상한 변방의 귀족들의 움직임들도 있지, 몬스터는 들끓지, 하지만 그럼에도 왕국은 아직도 유지되어 왔네. 왜 그럴 거 같은가?"

그러나 라스타드 백작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답은 이번에도 역시 사람이야!"

요한의 확답에 라스타드 백작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부의 누군가 예를 들면 라이너 후작 같은 먼 변방의 세력가가 수백 수천의 고램을 숨겨두고 세력을 키웠다고 가정 하자고. 정작 그걸 조종할 기사들은? 마법사들은? 뒤를 받쳐줄 지원 세력은? 데이브 공작이 숨겨둔 고램이 몇 백 몇 천기라고? 팔미온 후작도 그렇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으음!"

그제야 라스타드 백작은 무언가 깨달았다.

"전쟁이나 반란은 고램 숫자나 돈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야. 지금 에덜라드에 고램 부대를 편성해 반란을 일으킬만한 군세를 일으킬 만큼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을 키우고 보유하는 곳이 어디가 있을까?"

"일단은 기사학교가 있습니다만 그건 답이 아니겠군요."

"그래.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곳은 남부와…."

"콜마르 영지, 특히 이곳 흑성의 슈바르츠 캐슬! 뿐이군요!"

요한의 만족스럽게 끄덕이는 고개를 보며 라스타드 백작은 조용히 시선을 창문 밖 슈바르츠 캐슬로 돌렸다.

필립의 어미인 제이나와 만났던 곳이었다. 자신에게도 추억의 장소였다.


남부는 지금 환경이 위급하고 재력이 부족하지만 기사들의 수와 질만은 왕국 최고였다. 사실상 북방의 전선을 지탱하는 대다수의 기사들이 남부인 이었다. 거기다 에덜라드와 웨스터랜드 제국 전역에 걸쳐 활약하는 용병들도 대다수가 남부인 이었다.

그러나 슈바르츠 캐슬의 기사들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남부에 못지않았다. 더욱이 이곳은 남부와 비교해 고램의 수, 마법사의 수, 그리고 환경과 지원 세력 등에서는 남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슈바르츠 캐슬은 흑성에서 동쪽의 이스테로드 제국과 싸우는 기사들의 가족들로 구성된 곳이었다. 대부분이 기사계급이상의 사람들만이 사는 도시였다. 일반 평민이나 천민, 노예들은 소수만이 존재했다. 거기다 외부로의 접근이 극히 차단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생활은 콜마르의 다른 영지들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거의 소비도시에 가까운 곳이었다. 특히 라스타드 백작이 운영하는 동부 상단이 그 지원의 중심이었다.


에덜라드에서 군무를 이행할 수 있는 장소는 크게 두 곳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북쪽의 크로비스와 싸우는 것이 있었고 또 하나는 이곳 흑성에서 이스테로드 제국과 싸우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 흑성의 징병관들이 나타나면 군무를 생각하는 이들도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심지어 천민이나 노예들도 기회가 와도 흑성의 징병관들은 피했다.

"그곳에는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다!"

슈바르츠 캐슬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평이었다. 때문에 이곳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에덜라드 왕가의 고램은 대부분 북쪽에 투입되어 있지. 수도 방위를 위해 남은 고램들은 별로 많지 않아. 하지만 설마 일국을 오랜 기간 통치해온 왕가가 그렇게 허술할 거 같은가?"

요한의 말을 들으며 생각하던 라스타드 백작이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 크게 놀라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여기가, 이곳 흑성이 에덜라드 왕가의 숨겨진 힘이 있는 곳이었군요!"

"그래, 내가 괜히 왕족으로서 계승 서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요한은 라스타드 백작의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지간한 귀족 가문이나 부자 가문이 뒷주머니나 여력의 힘을 숨겨두는 것은 상식에 가까웠다. 왕가라고 다를 게 없었다.

콜마르 공작은 대대로 어릴 적에는 왕가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작위를 승계하고서야 흑성으로 왔다.

단순한 전통이나 관습으로 이어져 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 그래서 말 나온 김에 말인데. 라스타드 백작, 돌아가거든 콜마르 영지의 각 영주들에게 알리게. 올해 겨울에는 흑성에서 최대한 사람을 풀겠다고 말일세. 그리고 고램도…."

"예? 예!"

대답은 했지만 라스타드 백작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했다. 좀체 흑성의 병력을 내부로 풀지 않는 요한이 갑자기 스스로 고램 병력까지 동원하겠다니.

"하여튼 아이샤 고 계집에 여간 내기가 아니었다니까. 덕분에 다른 사람들만 고생하게 생겼군."

요한은 혼자 키득거리더니 라스타드 백작의 옆으로 다가와 창밖의 슈바르츠 캐슬을 내려다 봤다.

"어쩌면 올 겨울의 콜마르령 몬스터 퇴치는 상당히 박진감 넘치겠어."

"예?"

라스타드 백작이 되물었지만 언제나 만족할만한 대답을 해 주지 않는 요한은 이번에도 할 말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겨울이 되면 다들 알게 될 거야. 지금 벌어진 일이 어떤 일인지 말이야."

흑성의 절벽 면으로 다시 바람이 타고 올라왔다.




후기 의회가 종결 되었다.

이제 남부의 난민 소동도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지 않고 있었다. 수도는 다시 예전 분위기로 되돌아 가 있었다.

"데이나…."

줄리어스는 집무실에서 조용히 두 개의 서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내용의 서류로 하나는 상대 파벌인 크리스텐슨의 손에 건너갈 것이고 하나는 기록 보관을 위해 이언 백작에게 건네줄 것이었다.

아이샤가 건네준 전황 보고서였다. 고램 밀실 담합의 대가였다.


잠시 고민하던 줄리어스는 두 파일에서 몇 장을 빼내서 자신이 위조한 서류로 대처했다.

"후대에 사람들은 나를 에덜라드 최악의 악마라고 평가할지 모르겠군!"

줄리어스는 빼낸 원본의 서류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줄리어스의 눈동자에 타오르는 서류의 수치들이 비쳤다.

그날, 난민들로 난리가 나던 그때 이 서류를 살펴보던 줄리어스는 스스로에게 경악하고 있었다.

서류 너머의 진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피어나는 욕심, 그러자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꾸며지는 계획들에 스스로도 속으로 경악의 탄성을 질렀다.


"그래 어떤가?"

데이브 공작이 물었다.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머릿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던 줄리어스는 결국 마음속에서 자신의 악마와 손을 잡았다.

"걱정 할 수준은 아직 아닌 거 같습니다."

줄리어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데이브 공작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흠, 그거 다행이군."

하지만 줄리어스는 속으로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다. 이언 백작이 별스럽게 그날따라 방에 같이 자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언 백작이 자신의 뒤를 이어 바로 이 서류를 검토한다면 알아차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줄리어스를 구한 것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남부의 난민들 소식이었다.


"운명이라는 게 참 얄궂은 거 같군. 그대들의 운명을 내 친 나에게 마침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 그대들, 난민들이었으니…."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소식으로 데이브 공작과 이언 백작이 방을 나서자 줄리어스는 서류를 수정할 시간을 얻은 것이었다.

"앞으로 몇 년일까? 아니 당장 내년이 될 수도 있겠군."

타버린 서류조각을 난로에 던져버린 줄리어스는 서류를 들고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아이샤의 능력이라면 한번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줄리어스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봐야 에덜라드는 시한부 운명이었다.

"이런 나를 과연 데이나는 용서해 줄까?"

그러나 이미 답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아니 상관없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줄리어스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난로에 버려진 타버린 종잇조각이 소리 없이 바스러졌다.


작가의말

 

오늘은 분량이 많습니다.

여기가 처음 꺽어지는 부분이라...

 

이제 겨울 전까지는 아이샤는 안나옵니다.

 

 

이번 대 이주 단락은 몇번을 새로 쓰고 읽고 다시 고쳐쓰고 했는데도

마음에 들지를 않는군요.

그저 부족한 글에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펠릭스 전기(傳記)를

여전히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에게 정말 정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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