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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샤는 아쉬운 표정으로 아레나를 돌아봤다.
"어서 오르시지요. 아가씨."
돌로레스 백작이 아이샤를 재촉했다.
수도 인근의 귀족들과 자주 수도를 찾는 귀족들은 수도에 상주할 저택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귀족들은 고급 숙박 시설들에 머물렀다. 하지만 아이샤를 비롯해 남부 귀족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며 아레나의 임시 숙소를 사용했다.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남쪽으로 향하기위해 대기하는 남부 귀족의 마차들이 아레나 입구에 줄을 이어있었다.
"올해는 계획했던 것 이상을 손에 넣었는데도 왠지 너무 아쉽군요."
아이샤가 마차에 오르며 말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또 내년이 있잖습니까? 제가 보기엔 지금 아이샤님은 정말 잘 하고 있으신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휴~!"
돌로레스 백작이 마차 밖의 호위 기사에게 신호하자 기사는 선두에서 말에 타고 있는 로렌스 백작에게 신호를 했다. 그제야 남부로 향하는 기다란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 두 달여에 걸친 의회 전반기 일정을 마친 아이샤와 대다수의 남부 귀족들이 남쪽으로 돌아가는 첫날이었다.
아이샤의 얼굴은 많이 피곤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마지막 귀족 의회가 끝이 나고도 늦게까지 아이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 중 상당수는 중앙의 파벌과 남부 연합의 담합 의혹에 대한 항의 방문 같은 것들이었다.
"휴~!"
좌석에 기대며 지친 듯 아이샤가 작게 한숨을 내 쉬었다.
행렬이 수도의 남쪽 대로변으로 나서자 수도의 아이들이 도로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야크에 실린 수십여 대의 고램들을 보기 위해 모인 것 같았다. 고램들은 야크 수례위에서 천막 등으로 가려져 있었건만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려고 지나가는 야크의 행렬 옆에서 뛰어가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구호소 설치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마차 창의 커튼 틈으로 길가의 꼬질꼬질한 모습의 아이들을 보던 아이샤는 남부 난민들을 위해서 설치하기로 한 구호소가 생각이 났다.
"걱정 마십시오. 티버트 남작과 퍼데일 자작이 수도의 상단 본부에서 번갈아 가면서 지킬 겁니다. 그들이 맡아서 잘 할 겁니다."
돌로레스 백작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마차에는 침묵이 흘렀다. 아이샤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피곤해 보였음에도 잠도 오지 않는 듯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느릿느릿 한참을 달린 행렬은 정오 무렵이 되어서 이윽고 중앙 기사학교의 옆을 지나고 있었다.
"여기가 중앙 기사학교 인가요?"
"예, 지금쯤이면 학생들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이겠군요."
중앙 기사학교는 고램 등의 자제 반입을 위해 서편에는 수도 남부대로와 접하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2학년 때 칼들이 수도에 들어서는 아이샤와 남부 행렬을 지켜보던 그 철문이었다. 오늘은 평일이라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덜커덕!"
갑자기 마차가 멈춰 섰다. 아니 행렬 전체가 멈춰 있었다.
"무슨 일이죠?"
"그 글쎄요. 일단 아이샤님은 여기 계십시오.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마차에서 내린 돌로레스 백작은 바로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챘다. 호위 기사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나? 무슨 일인가?"
돌로레스 백작이 가까이 있는 자신의 가문소속 기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주변을 가리켰다.
"출발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속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음?"
남부행렬 양 옆과 뒤로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어 있었다. 아이샤가 마차의 커튼 틈으로 보던 아이들은 그 무리의 일부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 숫자가 심각하게 많다는 것이었다.
"이 이게 대체?!"
돌로레스 백작이 둘러보는 중에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남부대로의 주변에는 어느새 녹색옷의 수도경비대들 마저 아이샤의 행렬을 둘러싸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주변의 상황을 보며 당황하는 돌로레스 백작에게 한참 선두에 있던 로렌스 백작이 말을 몰고 다가왔다. 그의 얼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램 분배등 주요 안건을 포함한 귀족의회 전반기 일정이 끝나는 날이었다. 아직 후반기 의회가 남아있었지만 많은 귀족들이 자신의 영지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후반기 일정은 주로 국무위원들이 여는 주제별 소관회의였다. 귀족들 위주의 의회에서 발의된 안건을 주제별로 국무위원들이 분류해 국왕에게 상신한 후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였다. 사실상 무파벌에 국무위원이 아닌 귀족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래 어떤가?"
데이브 공작이 물었다.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줄리어스 백작은 아이샤에게 넘겨받은 남부의 전황 보고서를 빠르게 살펴보고 있었다. 남부의 보고서는 줄리어스 백작이 먼저 요구했던 만큼 데미안 공작 파벌의 손에 먼저 들어와 있었다. 팔미온 후작파벌의 크리스텐슨에게 넘어가기 전에 먼저 확인 해 두고 싶었던 것이다.
후반기 의회 일정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반기 의회 결과를 검토하는 자리였다. 방에는 이언 백작도 자리하고 있었다.
"걱정 할 수준은 아직 아닌 거 같습니다."
보고서의 수치를 대충 검토한 줄리어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말했다.
"흠, 그거 다행이군."
데이브 공작은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이언 백작은 여전히 편치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요?"
"자네의 그 보고서 나도 읽어 봤네만. 그렇게 크게 걱정할 정도인가?"
이언 백작이 올린 남부 상단 개점행사의 보고서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곳에 포함되어있던 이언 백작의 별첨한 '인기 과열 조짐' 이라는 쪽지는 일견 아무렇지 않은 낙서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때로는 현장의 분위기를 그 자리에서 기록한 실무자의 간단한 감상 한 문장이 수백 장의 보고서 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는 법이었다.
"제 생각엔 이번에 좀 더 강하게 제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흐음."
데이브 공작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고램 분배에 관해서 줄리어스의 한 수는 예리했다. 심지어 그날 모임이 끝난 후 상대 파벌의 크리스텐슨도 칭찬 할 정도였다.
두 파벌이 아이샤의 제재를 결정했으나 방법이 문제였다. 물론 방법이야 많았다. 다만 그동안 공식적인 자리 외에는 두 파벌과 직접 마주치기를 피하던 아이샤였다. 그러다 주말, 데미안이 줄리어스 백작의 집무실을 찾아왔을 때 줄리어스가 꾀를 낸 것이었다.
당시 줄리어스의 집무실에는 마침 데이브 공작과 줄리어스 백작이 아이샤의 제제방법을 두고 토론 중이었다. 그러다 데미안이 찾아왔다는 정리의 말을 들은 줄리어스는 서둘러 상황을 세팅하기 시작 한 것이다.
우선 줄리어스 백작은 일부러 책상위에 남부 고램 관련 서류를 놓아두었다. 그리고 데미안이 발견 할 때까지 별실에서 기다리다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방을 나선 데미안은 줄리어스의 생각대로 자신도 모르게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한 것이었다.
그동안 먼저 방을 나섰던 데이브 공작은 팔미온 후작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을 별실 앞으로 불러냈다. 당연히 별실 주변에는 두 파벌이 일부러 소문을 내 불러 모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결국 줄리어스가 데미안에게 전한 그 서류 한 장은 자연스럽게 아이샤를 두 파벌에게 데려왔고 크리스텐슨이 마지막으로 능숙하게 아이샤를 밀실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계획대로 수많은 다른 귀족들과 말 많은 상인, 마법사들이 보고 있었다.
아이샤가 들고 있던 서류가 무엇인지는 다른 사람들이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 후 의회의 결과를 본다면 다들 그 서류의 내용에 대해서 각자 상상의 나래를 마음대로 펼치고 있을 것이었다.
나름 이번 의회에서 중앙의 두 파벌은 아이샤와 남부의 이미지에 족쇄를 채우는데 성공한 것이다. 앞으로 남부가 채권이나 고램 샐베이지 사업 등으로 얼마나 커질지 모르지만 이번 의회기간 중 아이샤의 정치적 한계도 충분히 드러난 참이었다.
결국은 아이샤도 중앙의 두 파벌들처럼 밀실에서 서로 야합하여 고램 나눠먹기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동안 남부에 기대어 고램을 구매하던 이들도 앞으로는 아이샤에 대해 중앙 파벌들과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 입장에선 그저 또 다른 파벌이 하나 더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걸로 남부에 대한 제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의 제제는 이제부터 시작하는 후반기 의회에서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언 백작은 그 수위를 놓고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선은 이번 후반기 의회에서 에드워드 왕자님의 반응을 보고 다시 팔미온 후작과 회담을 해 보도록 하지."
"예."
"덜컥!"
그 순간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데이브 공작 파벌의 귀족 중 한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아 이 사람아! 노크는 하고 들어와야 할 거 아닌가!"
데이브 공작이 화를 내며 말했으나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데이브 공작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 이라니?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나?"
"지금 수도 남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응? 왜? 남부의 몬스터들이라도 몰려왔다던가?"
"그, 일단 가보시죠. 어서요."
"허허, 그 사람하고는."
데이브 공작 일행은 소식을 전한 귀족에게 끌려가다시피 방을 나서야 했다.
- 작가의말
원래는 내용상 늦은 저녁에 한편 더 올리려고 했는데
문피아가 6월 22일 월요일 점검 이라는군요.
고민 고민 하다가 일단 정상적인 연재 주기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공모전으로 인해 비축분이 심히 부족해 졌는데 채워지지가 않는군요.
처음에는 80편 가까이 비축분이 있었는데 어느새 10편 정도. 거기다 지금 쓰는 부분이 좀 정성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다보니 진도가 좀체 나가기 힘이 들어서 더 그렇군요
공모전 출품작 때문에 정신적 쇼크먹고 그래도 계속 연재하다보니 괜한 스트레스까지...
공모전 글 보시는 분들이 100분 이하만 되더라도 그냥 포기하고 내리고 펠릭스 전기에 집중 하겠는데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ㅠ.ㅠ
이러다 비축분 모자라서 펠릭스 전기 임시 연중 합니다 같은 글이 올라갈지도.... OTL
부족한 글 참고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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