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각성
25 각성
여명이 밝아 왔다.
도현은 창가에 서서 해가 떠오르는 걸 지켜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세상을 밝혀 오는 게, 마치 자신에게 뭔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조법의 비밀을 밝혀낸 후부터 세상 모든 것에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숫자가 그 증거인 셈이고.
“으음······.”
도현은 뒤를 돌아서서 테이블에 얹어져 있는 책을 쳐다보았다.
종이는 물기가 마르자,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문제 될 건 없었다.
전편은 물론 후편까지 모조리 다 외워 버렸다.
책의 마지막 장에 적혀 있었던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초인에 버금가는 능력이라······.’
그것을 확인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동법을 익혀서 단조법의 성취를 이뤄 내는 것이다.
도현은 밝아 오는 하늘을 보며 단조법의 동법을 천천히 펼쳐 보았다.
평소 펼쳤던 태극권보다도 훨씬 느리게 움직였다.
팔 하나를 앞으로 쭉 뻗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게 무척 답답해 보였다.
그러나 도현은 싫은 내색 하나 보이지 않고 묵묵히 동작을 이어 나갔다.
꽤 시간이 지났을 때쯤.
“아하······.”
동법을 끝까지 펼친 도현은 허리를 쭉 펴며 바로 섰다.
온몸이 땀으로 샤워라도 한 듯 젖어 있었고, 술 냄새가 진동했다.
도현은 한층 더 깊어진 눈빛으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동법을 펼치는 동안 신묘한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단전 부위에서 묵직한 뭔가가 느껴지고, 곧 온몸이 뜨거워졌다.
그러더니 땀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그러고 나니 몸이 깃털처럼 가까워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단조법을 펼쳤을 때 느껴졌던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 대단해.’
* * *
도현이 단조법의 비밀을 알아낸 지 한 달여 지났다.
아침마다 명상 호흡을 시작으로 동법까지, 단조법을 완벽하게 수련했다.
일주일 정도는 동법을 펼칠 때 동작들이 어색해, 서너 시간 정도 걸렸다.
하지만 동작들이 익숙해질수록 시간이 점점 단축되어 갔다.
이제는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수련이 끝나면 와이드너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컨설턴트’가 되어 활동하기 위해선 다방면으로의 지식과 견문을 넓혀 놓는 게 좋았다.
한정된 공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는 거였다.
방학이 끝나려면 한 달이 넘게 남은 상황.
지금이 딱 적기였다.
도현은 어제까지 법학, 경제학, 과학, 심리학 등 다방면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오늘은 경영학과 관련된 서적을 읽어 나갈 때였다.
“!!”
순간 도현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책의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절로 이해가 되고, 핵심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도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가며 다음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역시나.
내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몇몇 글자들이 굵직하게 나타났다.
“아······.”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굵직하게 나타나는 글자들은 이 페이지에서의 핵심 단어와 문장들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왜 이런 현상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단조법’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현은 정신을 차리고는 천천히 책장을 넘겨 갔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그냥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순식간에 책 한 권을 다 읽어 버린 도현은 입이 쩍 벌어졌다.
‘이럴 수가······.’
300페이지나 되는 책을 다 읽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책의 내용이 요약되어 머릿속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이 능력만 있으면······.
짧은 시간 안에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쌓을 수가 있었다.
만약 세상에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담는다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대단한 힘이었다.
도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책이 눈에 들어왔다.
듣기로는 와이드너 도서관의 지상층에 있는 책만 하더라도 100만 권에 달한다고 했다.
문득 왕 장리가 떠올랐다.
그는 세상을 알기 위해 사회학과 관련된 책을 다 읽었다고 했다.
지금도 다른 도서관으로 옮겨서 책을 읽고 있었고.
‘그렇다면 나도.’
도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 * *
도현은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을 읽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와이드너 도서관에 소문이 돌았다.
-제2의 왕 장리 출현!
그 소문은 이내 캠퍼스를 강타했다.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와이드너 도서관을 찾았고, 소문의 주인공이 도현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특히 1학년생들은 그동안 몬스터 4인방 중에서 도현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다른 세 명에 비해 특이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평범한 모범생 정도로만 보였다.
단지 몬스터들이 그의 말이라면 잘 따랐기 때문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추측만 무성했다.
일단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독서 괴물이라는 것.
도현은 누군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는 책을 읽다 말고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보았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자리를 뜨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언제부턴가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그냥 도서관을 찾은 사람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책이 아니라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어?”
저만치서 뜻밖의 인물이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도현은 읽던 책을 책장에 꽂아 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
“예, 선배님도 잘 지내셨죠.”
왕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잠깐 시간 되면 얘기 좀 할까?”
“넵!”
사람들은 왕이 도현을 찾아온 것을 보며 웅성거렸다.
“방금 함께 나간 사람, 그 사람 맞지?”
“어.”
“완전 대박 사건인데?”
“둘이 아는 사이였어?”
“세상에 이게 뭔 일이래?”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 찬 얼굴로 도서관을 나서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도서관에서 나온 왕은 도현은 하버드 야드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강렬한 태양 빛을 피해 큰 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 앉았다.
왕은 가져온 캔 커피를 도현에게 건넸다.
“마셔.”
“감사합니다.”
도현은 한 모금 마셨다.
“안 그래도 갈증이 났던 참인데 완전 좋네요.”
왕은 묘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요즘 캠퍼스에 재미난 소문이 돌고 있던데.”
“그래요?”
도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왕은 그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혹시나 했는데.”
“네에?”
“나도 그랬거든.”
“무슨 말인지······.”
도현은 왕이 하는 말을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이드너 도서관에 제2의 내가 출현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왕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도현을 쳐다보았다.
도현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눈치챘다.
그동안 책에 빠져 있다 보니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다.
게다가 하루에 읽어 내는 책만 하더라도 상당했으니 그런 소문이 돌 만도 했다.
“정말 모르고 있었어요.”
“괜찮아, 난 충분히 이해하니까.”
“혹시 저 때문에 껄끄러운 일이라도······.”
“그런 거 아냐. 그냥 재밌고, 얼굴도 볼 겸 찾아온 거야.”
“그렇군요.”
“도서관 괴물 선배로서 조언하자면, 주변 신경 쓸 필요 없이 묵묵히 할 거 하면 돼.”
“예. 주변의 스포트라이트 받는 건 익숙한 터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재밌는 녀석이야.”
왕은 커피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근데 책을 왜 읽는 거지?”
“왜라뇨?”
“혹시 교수님에게 무슨 말을 듣고 그러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그런 건 아니고, 앞으로 제가 하려는 일이 다방면으로 많은 지식을 요구하거든요.”
“저번에 얘기했던 컨설턴트?”
“예.”
“정말 특이해.”
“책에 답이 다 있으니까요. 하하하.”
도현도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왕은 호기심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
“하루에 몇 권 정도 읽어?”
“음.”
도현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믿지 않는 건 물론,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 터.
그렇다고 너무 평범하게 얘기해도 안 됐다.
적당히 놀랄 정도의 수준으로 맞춰 대답하기로 했다.
십 분의 일로 줄여서.
“한 열 권 정도 읽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적네.”
“그런가요?”
도현은 겉으로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론 의외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보통은 하루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읽기 힘들었다.
특히나 흥미 위주의 책들이 아니라 특정 분야의 전문 서적들이었다.
그런 책 한 권을 제대로 다 읽으려면 며칠은 걸렸다.
왕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하루에 열 권 읽는 게 적다?
문득 그는 하루에 몇 권을 읽는지 궁금했다.
“선배는 하루에 몇 권 정도 읽으세요?”
“음, 지금은 한 사오십 권 정도.”
“네에?”
도현은 깜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래?”
“아니,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당연히 처음엔 힘들지. 나도 이렇게 되기 전까지 4년이 걸렸으니까.”
“특별한 노하우라도 있는가 보죠?”
“당연하지. 그렇지 않고서야 하루에 그 많은 책을 읽을 수가 있겠어?”
“그건 그렇죠.”
도현은 그 비법이 뭔지 궁금해졌다.
왕은 그의 얼굴에 궁금증이 가득 찬 걸 보며 피식 웃었다.
“노하우가 궁금한가 봐?”
“당연하죠.”
“근데 어쩌나? 그냥은 가르쳐 주기 싫은데 말이야.”
“혹시 오늘 저녁 어때요?”
“약해.”
“그럼 내일 저녁도 제가 사 드릴게요.”
“먹는 걸로 날 유혹하긴 힘들 거야.”
왕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면 노하우를 들을 수 있죠?”
“내 부탁 한 가지 들어주면 돼.”
“말해 보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하죠.”
“간단해. 방학 동안 나랑 함께 지내면 돼.”
“네에?”
뜻밖의 부탁이었다.
함께 지내자니?
도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왕은 피식 웃으며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다음 날.
도현은 왕과 함께 와이드너 도서관에 나타났다.
각자 서고를 돌아다니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캠퍼스에는 또 다른 소문들이 나돌았다.
몬스터들의 격돌!
원조와 신예의 대결.
한편으로는 이런 말도 있었다.
왕이 그동안 자신이 쌓아 놓은 업적이 도현에 의해 깨지는 걸 원치 않아, 다른 전공 서적도 읽기 시작했다고.
흥미진진한 상황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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