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그림자꾼의 서재입니다.

마신 유희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그림자꾼
그림/삽화
sion422
작품등록일 :
2018.06.24 20:23
최근연재일 :
2019.07.22 00:10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810,385
추천수 :
19,289
글자수 :
548,659

작성
18.09.01 23:25
조회
12,426
추천
249
글자
22쪽

스쳐지나가는 인연

후원은 NO! 작가를 응원하는 후원은 오히려 작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후원보다는 댓글을 남겨주시는 것이 작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DUMMY

레이몽은 놀란 듯 소녀를 쳐다봤다.


소녀는 그런 레이몽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목에 힘을 주었다.


“500년 전, 최초의 마왕 시대 때 나온 보석이야. 마왕성에 있던 것 중 하나이며, 그때 당시만 해도 어마어마한 호가의 보물이었지. 지금이야 시대가 지나고 흠집이 좀 있기는 해도 최소 500골드에 이르는 호가는 할 거라고. 뭐, 이곳에 그리 큰돈이 있을 리 없으니, 내 넓은 마음으로 절반 값에···.”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하지만 이건 아무리 많이 쳐봐야 80골드 이상이 나오기 힘든 물건입니다.”


팔짱을 끼며 자랑스럽게 말하던 소녀가 의기양양한 표정이 굳어져렸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소녀의 눈 근육이 실룩거리며 날카롭게 레이몽을 노려봤다.


그녀는 마치 건달처럼 인상을 와락 구기며 버럭 소리쳤다.


“앙? 어디서 헛소리야! 설마 나에게 사기를 치려는 거 아니지? 이게 얼마나 귀한···!”


“네, 물론 귀한 물건이기는 합니다. 다만...”


레이몽은 루비를 조심스레 가죽 주머니에 넣고 카운터 위에 올려 넣으며 소녀에게 내밀었다.


“...상당히 불길한 물건입니다.”


“불길해?”


소녀가 어리둥절하자 레이몽은 곤혹스러운 듯 볼을 긁적거렸다.


“물건만 보면 아가씨가 말한 500골드, 아니, 그보다도 더한 값에 거래될 정도로 아주 훌륭한 보석입니다. 대귀족이나 왕족, 혹은 황족조차도 탐할 정도의 값어치가 있지요.”


“그런데 왜···!”


“...최초의 마왕 시대에 나온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레이몽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500년 전, 최초의 마왕이 지닌 물건들은 대부분 신성 교단의 소유였습니다. 귀한 보석과 금화는 물론이고 마왕성에 걸린 초상화나 혹은 자잘하기 짝이 없는 잡다한 물건까지 모두 신성 교단이 거두어갔지요.”


최초의 마왕 시대, 한 소녀가 마왕으로 강림하여 몬스터들의 왕으로 군림한 시대였다.


그때부터 용사라고 불리는 자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신성 교단이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 마왕성을 공략 후 그곳에 있는 모든 보물을 비롯해 각종 물건을 독식했다.


그 과정 중 신성 교단에 속하지 않는 자들이 보물을 몰래 빼돌린 사건이 발생했다.


“신성 교단에서 고용한 용병, 또는 그들의 조력을 받은 타국의 병사들이 마왕성의 물건중 일부를 빼돌렸지요. 그래서 어떤 일이 발생한 줄 아십니까?”


“그, 글쎄···? 그때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소녀는 말하기 주저하자 레이몽이 말했다.


“...일방적인 대륙 학살이 이루어졌습니다.”


보물을 훔친 자는 물론, 그곳에 있는 도자기, 초상화, 혹은 화분 같은 자잘한 물건을 훔친 자마저 잡혀 고문을 당하거나 죽어 나갔다.


어떤 왕국에서는 그 물건을 독식하려고 하다 왕족이 이단으로 몰려 이단 심문을 통해 화형 당하고 왕국의 수천 명의 시민이 노예로 내몰렸다고 한다.


최초의 마왕을 토벌하고자 파병된 병력만 해도 20만, 마왕과의 전쟁에서 토벌대가 5만5천 명 정도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쟁이 끝나고 마왕성의 보물을 몰래 빼돌린 자들을 향한 신성 교단 보복은 최소 15만여 명이라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 역사 기록자가 남긴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물건을 훔치지 않은 자 또한 누명을 씌워 이단 심문을 당했다. 그들의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까지 고문으로 죽고, 이웃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모두 빼앗겼다. 그렇게 죽은 무고한 자들의 시신만으로 산을 만들 수 있었으며, 그들이 흘린 피로 바다를 붉게 물들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 기록을 남겼던 역사 학자 또한 이단으로 낙인찍혀 화형당했다고 알려졌다.


그야말로 대학살이 일어난 암흑기였다.


레이몽은 가죽 보석을 쳐다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때부터 마왕의 물건들은 불행을 불러오는 저주받은 물건이라고 칭하여 사람들 사이에서는 꺼리게 되었지요. 50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의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아직 그런 미신이 남아 있는 편입니다. 하급 귀족이나 자랑스럽게 여기며 사들일 물건이지, 어느 정도 이름 있는 귀족이라면 쳐다보지도 않는 물건이지요.”


레이몽의 설명에 소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럼 진짜로?”


“80골드입니다. 제국에 팔면 그나마 높은 가격, 아마도 110골드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짓은 아닌 듯했다.


오히려 레이몽은 보석을 받기 꺼리는 듯 소녀를 힐끔 쳐다보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아아, 신이시여.”


소녀는 이마를 짚었다. 기도라기보단 한탄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할 겁니까?”


설명을 듣던 중 유아가 말했다.

원래 가격의 5분의 1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중고품도 이렇게 싸게 팔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일단 팔아야지. 돈이 필요해. 어차피 그리 미련이 있는 물건도 아니고 처분해야 할 물건이니까.”


소녀는 아니꼬운 시선으로 레이몽을 쳐다보며 말했다.


“...팔 거야.”


“후우···.”


레이몽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소녀는 다시 한 번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우울한 듯 어깨가 축 늘어진 소녀는 주머니 속, 10이라는 숫자와 그 위에 멋들어진 기사 무늬가 새겨진 금화 8개를 받아들었다.


주머니가 생각보다 가볍자 소녀는 고개를 숙였다.


“우세요?”


“안 울어.”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표정이다.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으,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소녀의 힘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유아는 주머니에 있는 금화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모습이 금으로 색칠되어 있지만 그 속은 조금 달라 보인다.


‘이곳 화폐는 순수 금으로 만들지 않는 모양이네.’


"일단 조언을 드리자면, 현재 영지에 신성 교단이 들어온 상태입니다. 이런 초라한 보석상에는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러한 물건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면 위험할 수 있으니, 함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레이몽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사실상 내쫓기듯 유아와 소녀는 가게에서 나와야 했다.


* * *


화폐 교환소에 나온 유아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를 쳐다봤다.


“...뭔지 몰라도 위험한 물건을 잘 처분한 거 같습니다.”


유아의 말에 소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유아는 힐끔 소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습니까?"


유아의 말에 소녀는 흠칫 놀라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는 시선을 거두고 유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아, 하하,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보석인데 가격이 생각보다 싸네. 가지고 있어 봤자 짐만 될 거라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 싸게 팔아서 좀 그렇기는 해.”


“돈 때문에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식은땀을 많이 흘리시고 있습니까. 역시 몸이 안 좋은 게...”


소녀는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떨어진다. 분명 눈이 내리는 싸늘한 날씨다.


그녀는 노을이 지는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그냥 햇빛에 약한 거뿐이야. 졸리기도 하고. 나 야행성이니까. 어쨌든 방금 보석상 말 들었지? 절대로 그 보석에 대해 성직자들에게 말하지 마.”


눈을 치켜들고 손가락마저 세우고는 유아의 이마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단단히 이르는 것이 상당히 걱정하는 듯한 말투다.


‘누나 같네.’


말과 행동이 거칠어도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소녀였다.


이렇게 친절하게 나오니 저절로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남 도와주길 좋아하는 성격인가 봅니다.”


진짜로 친절하거나 아니면 무슨 목적이 있어 접근했을 가능성도 있다.


유아의 말에 소녀는 흠칫 놀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 그러게···.”


소녀는 말을 흘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턱을 짚더니 골똘히 생각하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왜 남 도와주는 걸까. 그것도 생판 모르는 남을.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소녀의 애매모한 말에 유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답이 나오지 않자 생각나는 되로 둘러댔다.


“나도 몰라. 그냥 동생 같아서 그런 가보지.”


여관에 도착한 소녀는 유아에게서 짐가방을 건네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방을 향하며 말했다.


“덕분에 도움이 되었어. 짐꾼에 어울려줘서 고마워. 나는 내일 아침 이곳을 떠날 거야. 이걸로 작별이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도 죄야. 마지막으로 한 마디 조언을 해줄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누구도 믿지마. 그리고 마음 굳게 먹고 힘차게 살아. 알았지? 그럼···!”


마치 보호자처럼 주의를 준 소녀는 손을 흘들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모습에 유아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는 그녀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상당히 좋은 사람이네.'


몸도 좋지 않건만, 남을 위해 이 정도로 어울려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좋은 인연이었어.’


소녀가 떠나면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오늘 하루만 지나면 곧바로 테라의 영역에 갈 것이고, 저 소녀는 여행을 떠날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묻지 않았었네.’


유아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지며 방으로 들어갔다.


* * *


“방으로 들어갔나?”


방문에 귀를 가져다 대며 소리를 들은 은발의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짐가방을 바닥에 던져두고는 침대에 쓰러질 듯 누웠다.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이 허공에 흐트러지며 천천히 내려앉았다.


해가 저물고 있는 시기다. 빈혈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언데드’, ‘뱀파이어’, ‘흡혈귀’ 등등, 각종 명칭으로 불리던 그녀로서는 해가 뜬 파란 대낮에 걸어 다니는 일만 해도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보통 뱀파이어라면 피부가 타 화상을 입거나 혹은 죽게 되겠지만, 그녀만큼은 예외였다.


‘최초의 마왕’으로 선택받은 그녀로서는 ‘신의 은총’이 있어 태양 빛에도 내성이 있었다.


덕분에 피부가 그을린 정도이지 다른 언데드들 처럼 소멸하지는 않았다.


다만···.


‘몸이 무거워.’


몸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짓눌러진 느낌이다. 피로함에 금방이라도 잠들어 버릴 거 같았다.


소녀는 조금 전 소년을 떠올렸다.


왜 난 그 녀석을 도와준 거지?


곤란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는 유독 곤란해 하는 보면 내버려 두지 않는 성격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번엔 도와주는 것이 지나쳤다.


‘동생을 닮아서?’


사실 닮지 않았다.


그녀의 동생은 은발에 붉은 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저 소년보다도 한참 어렸었다. 그런 동생과 닮은 점이 없는 녀석을 도와줄 리 없었다.


동생을 닮았다는 이유도 그저 핑곗거리로 말했을 뿐이었다.


‘그럼 어째서···.’


사실 이유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단지 ‘친근’해서.


왠지 모르게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처럼, 너무나도 오래전부터 곁에 있는 사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를 본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돕고 있었다.


‘왜 그런 걸까?’


이유를 알지 못한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직 저녁노을이 있다. 낮이라고 할 수 있으니, 체력과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잠을 청하는 것이 좋았다.


* * * *


“으아아아악!”


“악마 따위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비병과 건달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곳은 지하감옥이었다.


습하고 곰팡내가 나는 밀폐된 공간 속에서 죄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고문을 당하는 자들만 해도 수십 명.


가시가 박힌 고문용 의자에 앉아 있는 이들, 손톱이 빠지거나 이가 빠지는 이들, 뜨거운 물 속에 잠겨 허우적거리거나 천장에 매달려 채찍질을 당하는 이까지 존재했다.


모두 범죄를 저질러 잡힌 죄인들이었다.


그중에는 살인, 강간 등의 악질적인 범죄자도 있지만, 굶주림에 빵조각을 훔치거나, 혹은 누명을 받은 자도 있었다.


그런 그들은 똑같이 평등하게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가! 정화의 소리이다. 가이아 여신께서 이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뻐할지를 생각해 보라! 너희의 죄가 비명과 함께 씻겨나가고, 영혼은 곧 정화되어 신의 곁으로 갈 수 있을지어다!”


주글주글한 주름을 가진 노인, 이블리스 추기경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헛소리였다.


비명을 듣고 좋아할 신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한, 고문을 당한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죄가 정화될 리 없다. 그런데도 ‘신의 곁에 갈 때까지’라는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이 죽을 때까지 고문하겠다는 예고와도 같았다.


‘...괴물 놈들!’


레베카의 감옥 지기들은 몸을 떨었다.


성직자 중에서도 가장 광기에 미친 것으로 자자한 것이 이블리스 추기경이었다.


그가 이 영지에 올 때부터 영지내에서는 어떻게든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건만, ‘악마’라는 말 한마디에 흥분해 감옥에 찾아와 죄인들을 고문시키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말실수, 말실수였다고!”


경비병이 소리치자 그의 입과 턱이 고문관의 손에 잡혀 버렸다.


복면을 쓴 우람한 덩치의 이단 심문관이 거친 숨을 내쉬며 손에 들린 집게로 그의 입을 향해 집어넣었다.


“으아아아악!”


“악마를 숨기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악마를 보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


이블리스 추기경은 그런 죄수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비명이 즐기는 양 성서에 죄수들의 절규를 옮겨 적고 있었다.


“악마를 보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말을 해주세요. 네? 악마는 어디에 있지요?”


기괴한 가죽 가면을 쓴 여성 신관이 수술용 메스를 통해 고문 중인 죄수의 얼굴 가죽을 서서히 도려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못 봤습니다. 못 봤다고요!”


“어머, 어머, 어쩔 수 없네. 그 예쁜 얼굴을 제가 가져야겠네요. 악마를 봤다면서 못 봤다고 하다니.”


건달은 여성의 가면을 쳐다봤다.


저 울부짖는 가면, 자세히 보면 인간의 가죽으로 만든 걸 알 수 있었다. 눈앞의 미친년은 고문한 자들을 죽여 그 얼굴로 가면을 만들어 쓰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만약 만족하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저 여자의 가면은 자신의 얼굴로 바뀌게 될 것이다.


건달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며 소리쳤다.


“그만, 그만···! 봤습니다. 봤어요!”


여성 신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굴 가죽을 도려내던 메스를 멈췄다.


“저, 저 녀석이, 저놈이 악마를 봤다고 했어요! 악마 같은 놈들이라고!”


건달은 경비병에게 손가락질했다.


가시가 박힌 의자에 앉아 고문을 당하던 경비병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네 녀석, 무슨 헛소리를···!”


“...사실인가?”


“아닙니다! 저는 보지 못했···.”


우람한 덩치에 웃옷을 벗고 있는 복면의 사내가 쇳물이 담긴 그릇을 가져와 경비병의 다리에 부었다.


쇳물이 살가죽을 파고들었다.


“으악!”


“사실인가? 봤나? 안 봤나?”


“네, 봤습니다. 봤어요!”


경비병의 말에 감옥 지기들은 이마를 짚었다.


‘망했군.’


고문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경비병은 거짓 증언을 했다.


이제 곧 경비병의 헛소리에 또 다른 무고한 자들이 수 없이 죽어 나갈 것이다.


'젠, 젠장! 어,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경비병은 어떻게든 이 고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보았다’라고 말 했지만, 보지도 못한 악마를 말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고민하고 고민했다. 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자신이 어떻게서든 이 상황을 벗어날 탈출구를 찾기 위해 발악했다.


바로 그때, 그는 떠올렸다.


낮에 잡아 팔려고 했던 소년과 그 소년을 구한 로브를 쓴 소녀를 말이다.


‘그년만 없었다면···!’


모두 그 여자 때문이었다. 그년만 없었다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을 터였다.


그는 로브 틈에서 봤던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외쳤다.


“은, 은발의 소녀였습니다!”


경비병의 말에 반응을 보인 건 이블리스 추기경이었다.


그는 환희에 떨던 미소를 지우며 흠칫 놀라고는 경비병을 쳐다봤다.


“은발에 붉은 눈을 가진 소녀였어요. 피부는 살짝 탄, 구릿빛을 띠고 있었고요! 그년이 악마, 마녀입니다!”


“으음···.”


이블리스 추기경은 자신의 성서를 쳐다봤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흝어보다 하나의 초상화를 발견했다.


은발과 창백한 피부, 붉은 눈이 그려진 소녀의 모습이었다.


성서에 기록된 500년 전 강림한 최초의 마왕이 그려진 초상화였다.


“마왕···.”


이블리스 추기경이 이곳으로 온 이유 중 하나가 ‘악마’를 쫓아와서였다.


그리고 그 ‘악마’는 ‘마왕’이라고 불리는 존재.


‘최초의 마왕, 릴리!’


설마...!


이블리스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경비병을 쳐다봤다.


'분명 악마가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신빙성이 없는 정보였다. 그런데도 그가 온 이유는 단지 호기심. 그리고 잠깐의 재미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와 똑같은 생긴 존재가 여기에 있다?


‘진짜일까? 아니지.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래,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악마와 닮은 것’ 또한 신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이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존재들은 정화당하여야 할 대상이었다.


이블리스 추기경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는 성서를 덮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당신의 정화 의식은 끝났습니다.”


이블리스 추기경은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이블리스가 인자한 표정을 짓고 말하자 경비병은 ‘살았다!’라는 표정으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이제 끝난 겁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제···.”


이블리스 추기경은 성서를 들어 올렸다. 그는 눈웃음을 짓고 말했다.


“죽어 신의 곁으로 갈 자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찍었다.


* * * *


소녀는 꿈을 꾸었다.


인간이었던 시절, 푸른 숲에서 있는 자신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감싸며 보호해주었다. 단정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형태가 없는 검은 그림자는 소녀를 항상 지켜주었다.


늑대의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었다. 마을이 가뭄일 때는 비를 내려주었다.


굶주려 죽으려 할 때는 땅을 비옥하게 해주고 풍년이 오도록 해주었다.


질병이 없게 해주었으며 마을이 부흥하도록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 존재는 항상 마을을 돌보며 소녀를 아껴주었다.


[신께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분의 최초의 신도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은 신의 뜻을 전하는 목소리 같았다.


영광이었다. 그분께서 바라보고 계신 걸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자신을 도와주는 검은 그림자는 신의 것이었다.


마을을 부흥시켜주고, 늑대로부터, 그리고 성직자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동생을 구할 힘마저 주었던 구원자!


그 은혜는 평생을 섬겨도 갚지 못할 만큼 너무나도 컸다.


그런 존재가 지금, 이 세계에 ‘강림’한다고 했다.


그 예언이 대륙 곳곳에 퍼져나갔다.


‘마신 강림’.


그 존재께서 나타난다. 자신을 구원해주고 하나뿐인 동생마저 살려준 구원자께서 직접 이 세계에 오신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준비할 생각이었다.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말이다.


[신이 강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권능이 제약을 받아 약해진 상태입니다. 최초의 신도로서 그를 보호하십시오.]


머릿속에 울린 메시지, 그것은 오래전 자신을 구원했던 신을 대신해 전해주는 말과도 같았다.


이것으로 확신이 섰다.


인간들 사이에서 흐르는 소문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분께서 강림하신다!’


그래서다.


500년간 시골마을에 숨어서 평화롭게 살던 그녀가 다시 세상에 나온 이유가 말이다.


그분께서는 약하다고 했다. 그러니 그분을 지킬 군세를 만들 것이다.


예전처럼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추잡한 인간들로부터 그분을 지켜낼 것이다.


더는 소중한 이들을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을 지키는 것, 그것이 최초의 신도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그’를 보았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복잡한 감정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쫓아갔다. 그의 손을 잡고 뛰었다. 길거리를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하고 가벼운 대화, 친근한 행동, 그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500년간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을 느꼈다.


‘아, 그분께서는 세상에 대해 잘 모르시는구나!’


‘그분을 도와야 해.’


‘보호해야 해.’


‘사랑해야 해.’


‘함께하여야 해.’


그런 생각을 가지며 그녀는 그를 보았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한 명의 소년을···!

....

...

"빨리 움직여!"


그때,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그녀는 눈을 떴다.


잠에서 덜 깬 몽롱한 정신에서 찜찜한 느낌을 받았다.


날카롭운 살의가 느껴젔다.


“...살기?”


그녀는 벌떡 일어난 눈을 깜박거렸다.


너무 놀란 탓일까? 조금 전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질 않았다.


‘얼라, 무슨 꿈을 꾸었더라?’


분명 아주 중요한 꿈을 꾼 거 같다. ‘그분’과 만나는 꿈, 그리고 그분의 강림한 ‘생김새’를 본 거 같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좋은 꿈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감정이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 지난 500년간 느껴보지 못했었다.


혹 다시 한 번 자면 그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기분 좋은 꿈.’


하지만···.


‘더럽게 기분 나쁜 기척.’


달콤한 밤을 방해한 불쾌한 자들이 있었다.


그녀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몸은 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물들어 있다.


태양 빛에 탔던 피부가 회복된 것을 확인한 그녀는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슬쩍 창가를 쳐다봤다.


"빨리 움직여!"


조금 전에 들렸던 위병의 목소리다.


‘포위당했어.’


횃불을 든 병사들이다.


주변 영지민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여관 주변에서 멀어지거나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을 죽이는 모습이 보였다.


여관 주변을 레베카 영지의 병사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소녀는 손톱을 깨물었다.


‘어째서?’


왜 병사들이 자신이 있는 곳을 포위하고 있는 거지? 설마 자신의 정체를 안 것일까? 아니면 그 보석 때문에?


하지만 보석상의 태도를 보았을 때 그가 신고한 거 같지는 않았다.


‘성직자 중에 나를 알아본 사람이 있는 걸지도 몰라.’


어쨌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병사들이 들이닥치며 긴장한 표정으로 소녀를 향해 검과 창을 겨누었다.




오타 맞춤법 지적해주시면 감사드립니다. 선호작, 추천, 댓글 등을 달아주시면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강조드리지만, 후원은 NO! 작가를 응원하는 후원은 오히려 작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후원보다는 댓글을 남겨주시는 것이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컵스파게티 + 자이언트 떡볶이 = 야식 개꿀맛!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신 유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사이비 던전 +27 18.10.15 8,361 211 14쪽
34 사이비 던전 +26 18.10.13 8,556 219 16쪽
33 사이비 던전 +15 18.10.09 8,616 225 13쪽
32 사이비 던전 +29 18.10.07 8,713 233 14쪽
31 사이비 던전 +32 18.10.03 9,019 228 12쪽
30 사이비 던전 +15 18.09.30 9,180 218 14쪽
29 사이비 던전 +28 18.09.27 9,709 239 14쪽
28 3장 프롤로그 - 믿습니까! +25 18.09.23 9,804 245 13쪽
27 2장 에필로그 - 어쌔신 오크 +13 18.09.22 9,589 231 16쪽
26 2장 에필로그 - 어쌔신 오크 +17 18.09.22 9,661 208 13쪽
25 오크와 엘프 소녀 +16 18.09.19 9,670 234 13쪽
24 오크와 엘프 소녀 +28 18.09.19 9,475 228 13쪽
23 오크와 엘프 소녀 +43 18.09.17 9,636 234 14쪽
22 오크와 엘프 소녀 +30 18.09.15 9,780 225 13쪽
21 오크와 엘프 소녀 +24 18.09.14 10,029 237 13쪽
20 오크와 엘프 소녀 +26 18.09.13 10,161 229 15쪽
19 오크와 엘프 소녀 +18 18.09.12 10,222 228 13쪽
18 오크와 엘프 소녀 +18 18.09.11 10,552 237 11쪽
17 2장 프롤로그 : 어쌔신 오크 +26 18.09.10 11,232 225 13쪽
16 1장 에필로그 - 어느 시골 소녀의 이야기.-2 +33 18.09.08 11,160 230 19쪽
15 1장 에필로그 - 어느 시골 소녀의 이야기.-1 +19 18.09.07 11,587 239 15쪽
14 스처지나가는 인연 +31 18.09.06 11,824 276 14쪽
13 스쳐지나가는 인연 +22 18.09.05 11,620 264 13쪽
12 스쳐지나가는 인연 +18 18.09.04 11,675 242 13쪽
11 스쳐지나가는 인연 +23 18.09.03 11,721 246 14쪽
10 스쳐 지나가는 인연 +21 18.09.02 11,876 236 14쪽
» 스쳐지나가는 인연 +16 18.09.01 12,427 249 22쪽
8 스쳐 지나가는 인연 +22 18.08.28 13,076 239 13쪽
7 스쳐 지나가는 인연 +17 18.08.27 13,789 247 10쪽
6 스쳐 지나가는 인연 +23 18.08.26 15,342 285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