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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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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28
추천수 :
460
글자수 :
344,307

작성
20.05.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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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타구봉법 打狗棒法

DUMMY

치우는 멈출 틈 없이 달려갔다.

어차피 처음부터 저도 모르게 풀려난 내공 덕분에

지침 없이 빠르게 도주를 하긴 했지만,

그의 예민해진 귓가에 개들이 쫓아오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까까지 멀리서 쫓아오던 개들이 내던 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보조를 맞추던 사냥꾼들의 소리는 사라지고,

대신 개들이 쫓는 소리가 두 배는 빨라진 데다 개가 내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흥분한듯한, 그리고 숨찬 듯한데도 멈추지 않는 질주.

바위를 타고 넘는 속도.


그것이 광견추혼단에 취한 반쯤 미친개들이란 것을 치우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치우는

정말로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나는 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치우는 나뭇등걸을 밟고

거의 나무 위로 가지들을 밟으며 날다람쥐처럼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누군가 본다면 소년이 상승의 경공을 이용한다고 볼 것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 그 경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저 개떼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 달려갈 뿐이었다.


냇물이라기에는 꽤 넓은 냇가의 하류 지역은 강과 합류가 되는 곳이었다.

그곳은 민강 지역으로 흘러 금사강 金沙江이 합류되는 지역이라

물이 풍부해서 지나는 상선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왕위와 왕방이 도착한 구룡탄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인근 특산물이나 인구가 적어서

이따금 산을 넘어 서장이나 청해 지역으로 가는

보부상들이 배에서 내리는 때 말곤 배도 별로 멈추지 않는다.


“ 위야. 어째 이름은 거창한데 무슨 부두가 이리 작으냐?

사람도 없고.

이건 그냥 나루터잖아.”


치우와 헤어져 산에서 내려온 왕방은 실망한 듯 왕위에게 투덜댔다.


“ 이름이 다 그렇지 뭐.

듣자니 이곳에 이르는 냇물들이 아홉 갈래라고 하더라.

그래서 구룡이고,

보기엔 그렇지만 지류들이 모이는 곳이라 물살이 제법 세다고 해.

그래서 이름이 구룡탄이라 하던데.

그나저나 그 녀석 제대로 올까 몰라?


왕위에 말에 왕방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넓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 올 거야.

어쨌거나 두목이 치우의 몸에 자신도 모를 내공을 풀어놓았다고 했잖아?

그러니 어떻게든 올 거야. ”


단정하듯 말하는 왕방의 말에 왕위도 한숨을 쉬며 부둣가에 널린 덜 다듬어진 나무토막들에 걸터앉았다.


“ 어차피 이곳은 배가 제대로 오는 곳이 아니라고 했어.

굳이 여기 내리는 상인들이 오기 전에는 우리도 다른 방법은 없지만,

일단 어떤 배라도 오면 우린 무조건 타는 게······.”


“ 야! 무슨 의리 없는 소리를 해?

그래도 며칠은 기다려줘야지. ”


왕방의 말에 왕위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찬다.


“ 우리 건량도 얼마 없는데 언제 또 배가 올 줄 알고? ”


“ 아 몰라. 그래도 기다리겠다고 했으면 사내가 약속을 지켜야지. ”


왕방의 말에 왕위는 건량을 꺼내어 왕방에게 하나 건네며 자신도 입에 물었다.


“ 야, 우리가 좀 편한 길로 왔긴 해도

그 녀석 걸음이면 아무리 늦어도 오늘 저녁에는 도착해야 해.

일단 내 양보는 거기까지. 내일 배가 오면 무조건 탄다. ”


냉정하지만 상황을 꼭집어 말하는 왕위의 말에 시무룩해진 왕방.


“ 기다리지 않아도 돼. 나 도착했다. ”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말에 두 아이는 깜짝 놀라 입에 물었던 건량을 떨궜다.


“ 와! 너 정말 빨리 찾아왔다! 대단해! ”


좀 지친 안색의 치우를 보고 왕방은 두 팔을 맞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왕위는 인상을 찌푸리며 치우에게 투덜댔다.


“ 야. 왔으면 그냥 기척을 내지, 깜짝 놀랐잖아.

근데 산을 한 바퀴 돌아서 오는데 너 엄청 빠르게 왔다? ”


말을 하며 왕위는 땅에 떨어진 건량을 주우면서 치우의 발을 보았다.

치우가 신은 가죽신은 온통 흙투성이인 자신의 짚신과는 달리

말끔한 게 생각보다 편하게 산에서 내려온 것처럼 보인다.


“ 너 꽤 돌아왔을 텐데 의외로 신발이 깨끗하다? ”


왕위의 말을 듣고야 왕방도 치우의 신과 자신의 흙투성이 짚신을 번갈아 보았다.


“ 아, 대부분 바위를 밟고 나뭇가지를 밟으며 뛰었거든.

그러고 보니 그래서 신발에 흙이 덜 묻었나 보다. ”


세 아이는 강가 나루터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건량을 씹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냥개들에게 쫓겼다는 말을 들은 왕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 그런데 어떻게 그 개들을 뿌리쳤냐? 그거 쉽지 않잖아. ”


왕위의 말에 치우가 대답했다.


“ 글쎄. 일단 내 냄새를 피우지 않으려고 가능한 나뭇가지만 밟고 뛰었어.

그리고 너와 왕방이 쓰던 낡은 옷가지 보퉁이를 여기저기에 흩뿌려놨지.

그게 냄새를 분산시키는 데 도움을 주니까. ”


별 의미 없이 말하는 치우의 말에 왕위는 미간을 찌푸리고 왕방은 얼굴이 벌게졌다.


“ 야 인마. 그거 그래도 우리에겐 개방파를 나타내는 옷이야. 근데 버렸다고? ”


왕위의 말에 치우는 눈이 똥그래지며 벌떡 일어서서 포권을 한다.


“ 미안해! 개들을 유인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개들은 그 옷 보퉁이를 내 냄새라고 생각할 거 같아서······.”


진지하게 사과를 하는 치우를 본 왕위는 잔뜩 찌푸렸던 인상에 웃음을 참느라,

왕방은 냄새를 말하는 치우의 말에 창피해서

얼굴이 동시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 야, 됐다, 됐어.

우리가 뭐 일결 제자도 못 되는데 그깟 누더기야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

그냥 농담이야.

어쨌든 개가 쫓아온다고 하니 행여라도 이곳으로 올 수도 있겠네. ”


왕위의 대답에 머쓱해진 치우가 다시 나무토막 위에 걸터앉았다.


“ 글쎄,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런데 이곳엔 배가 그리 자주 안 온다며.

그러면 우린 개떼에 꼼짝없이 포위당하는 거 아닐까. ”


치우의 말에 왕방도 걱정스러워졌는지 다시 시무룩하다.

그때 왕위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루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길고 짧은 작대기 세 자루를 주워왔다.

치우와 왕방은 뭔가 싶어 왕위를 쳐다봤다.


“ 그래도 사냥꾼들은 떨어져 나갔다며.

사냥개만 잡으면 되는 거 아냐? ”


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야, 우리가 개방의 끄트머리 방도이긴 해도

무공을 따로 배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개 정도는 쫓을 수 있지.

너 타구봉법 이라고 들어봤냐? ”


치우도 들어본 이름이었다.

개방파에서 방파 특유의 무공으로 유명한 것이

송나라 때 유명했다는 항룡십팔장 亢龍十八掌 과 타구봉법 打狗棒法 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항룡십팔장은 언제부터인가 소실 되었고,

타구봉법은 명맥을 이어온다고 들었다.


하지만 왕위는 개방파라곤 해도 무파도 아니고

정식으로 무공을 전승받은 적도 없지 않은가.

왕방이 그 내용을 말하며 왕위가 허세를 부린다고 타박하자,

왕위는 발끈하며 주워온 나무막대를 들고 갑자기 사방으로 때리고 치며 움직였다.


비록 힘이 크게 실리지는 않았지만,

사방팔방을 일정한 간격으로 휘저으며 빙글빙글 도는 막대기가 제법 현란해서

왕방과 치우는 왕위가 보여주는 봉법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보잘것없이 나루터를 나뒹굴던 막대기가

지금은 마치 무림 고수의 제미곤 齐眉棍처럼 때리고 휘저으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팡! 팡! 나는 것이 꽤 멋들어졌다.

한바탕 타구 봉법을 시범한 왕위가 숨을 몰아쉬며 제자리에 멈추자,

왕방과 치우는 저도 모르게 손뼉을 짝짝 쳤다.

왕방은 크게 소리치며 왕위를 나무랐다.


“ 야, 너 제법이잖아. 그런데 왜 내겐 그거 안 가르쳐줬어?

무공 할 줄 아는 거 없다고 했잖아? ”


왕방의 칭찬 아닌 칭찬에 왕위는 더벅머리를 긁적였다.


“ 야, 실은 이거 타구봉법 인줄은 몰라.

그냥 두목이 구걸 나가서 일전에 왕민이 개에게 크게 물린 적 있잖아.

그때 나가서 개에게 물리지는 말라고 가르쳐 준 거야.

왕방 넌 그 당시에 몸이 아파서 며칠 누워있었잖아.

실은 이건 타구봉법이라고 이름만 두목이 붙인 거야.

어차피 사문의 타구봉법이야 장로급들이나 배우는 거라면서.

그리고 개를 때리는 방법이니

이것도 타구봉법이라 한다고 뭐 어떠냐고. 히. 히. ”


왕위의 말에 왕방은 들떠있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치우는 내공이 몸을 돌아본 이후로 안목도 좋아진 탓인지,

아무리 개를 쫓는 봉법이라 해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치우는 미약하게 들려오는 개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치우의 얼굴에서 하얗게 핏기가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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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역공격 +2 20.05.30 527 10 9쪽
25 +3 20.05.29 506 3 9쪽
24 천재 +1 20.05.29 541 6 9쪽
» 타구봉법 打狗棒法 20.05.28 568 5 9쪽
22 광견추혼단 狂犬追魂勯 +4 20.05.28 515 5 9쪽
21 유인 +4 20.05.27 515 6 9쪽
20 추종 追從 +2 20.05.26 526 5 9쪽
19 어사 20.05.25 528 3 10쪽
18 강시독 20.05.24 512 5 10쪽
17 녹죽장 20.05.23 527 4 10쪽
16 강시당 20.05.22 551 5 9쪽
15 관제묘 20.05.21 583 7 10쪽
14 역모 20.05.20 588 5 10쪽
13 고문 20.05.19 586 7 9쪽
12 동창 20.05.19 634 10 9쪽
11 탈출 20.05.15 635 5 10쪽
10 합의 20.05.15 654 8 9쪽
9 용모파기 20.05.14 681 8 10쪽
8 기록 20.05.14 714 7 10쪽
7 함정 20.05.13 752 7 9쪽
6 지하통로 +1 20.05.13 814 7 9쪽
5 습격 +1 20.05.12 920 8 12쪽
4 명분이 없다 +1 20.05.12 987 11 9쪽
3 협의 +1 20.05.12 1,052 13 9쪽
2 +1 20.05.12 1,349 19 10쪽
1 구원 +4 20.05.11 2,301 5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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