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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39,837
추천수 :
460
글자수 :
344,307

작성
20.05.26 11:22
조회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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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추종 追從

DUMMY

“ 아, 거참 정말 수수께끼도 아니고···.”

투덜대는 왕위에 갑자기 눈을 치켜뜬 왕호가 쉿! 하고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민강을 출발한 하루 만에 온갖 고초를 겪은 왕위와 왕방은 왕호의 손짓에 얼어붙었다.

이제 날도 밝아졌을 시국에 또 무슨 고초를 겪어야 하나 싶은 마음으로.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들리지 않아 의아했다.

그 사이 앞으로 고꾸라졌던 치우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그는 땀에 절어 얼룩진 얼굴로 휘휘 주변을 돌아보더니 왕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 두목. 저 소리 뭘까요?

사람들이 꽤 여럿, 숲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것 같은데. ”

치우의 말을 듣고 왕방과 왕위는 어리둥절했다.

그들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것이다.

“ 아마도 강시당의 그 못된 노인이 뭔가 방수를 숲에 풀어놓은 모양이다.

백여 장쯤에서 누군가 숲을 뒤지는 거 같구나. ”

두목과 치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왕위가 속삭였다.

“ 야! 너 백 장 거리 소리가 들린단 말이야?

나하고 왕방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

왕위의 말을 들은 치우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왕호가 피투성이 입으로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 대법이 성공했구나. 네 몸에 담겨있던 진기가 전신 혈맥을 돌아가니 안 보이던 것, 먼 거리의 소리와 냄새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네가 당장 무엇을 할 수는 없다.

내공이 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법을 모르면 단지 영민하고 신체가 보통 사람보다 좀 더 강해지는 역할밖에 못 하니까.

저들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어서 떠나라. ”

왕호의 뜻밖의 말에 세 아이는 착잡한 표정이 되었다.

왕위가 다시 속삭였다.

“ 그럼, 두목은 어쩌려고요. 우리가 가면 잘 움직일 수도 없는 몸으로···.”

울상을 짓는 왕위의 이마를 왕호가 툭 쳤다.

그 손마저 이제 힘이 다 빠져 단지 시늉만 할 뿐이다.

“ 어차피 난 못 움직인다. 게다가 이미 강시 독에 오장육부를 거의 녹이고 있는 것 같아. 그렇다고 너희들은 내 곁에 남아 있다가 저들에게 죽을 테냐?

아마 저들은 추종술 追從術을 익힌 자들일 거다.

강시당의 노인과는 달리 우리 흔적을 금방 찾아낼 거야.

다행한 건, 추종 술을 익힌 자들은 대개 무공이 약하거나 사냥꾼들이지.

어서 늦기 전에 떠나라. 치우.

그리고 내가 네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 생각이 든다면 치우 너는 앞으로 왕위와 왕방, 저 아이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벗어 놓았던 윗옷을 걸쳤다.

그가 일어서며 왕위와 왕방에 속삭였다.

“ 이제 가자. 두목 말대로 여기 있어도 우린 몰살 할 거야.

두목에게 아무 도움도 안될 거고. 그러니 어서 도망가자. ”

왕위가 치우의 말에 사납게 노려보았지만, 딴은 치우의 말이 맞는 말이라 한숨을 쉬며 동굴에서 일어섰다.

왕호는 어서 가라 손을 흔들고,

세 아이는 왕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곤 바깥으로 나섰다.

동굴 밖을 나서니 그들이 새벽에 보았던 냇가가 꽤 넓고 세찬 흐름인 것을 알았다.

왕방이 치우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 아까 말한 그 사람들, 지금은 어디쯤 온 것 같아? ”

치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 아직은 팔십여 장 거리에 있는 것 같아.

숲을 넓게 수색하느라고 시간이 걸리는 것 같은데, 이런. ”

치우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왕위와 왕방은 눈이 동그래졌다.

이제 그들 일행 중 믿을만한 어른인 왕호도 없으니 그나마 묶여있던 내공이 풀렸다는 치우의 감각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 크진 않지만 개 소리가 들려. 그것도 대여섯 마리. ”

치우의 말에 왕위가 낮게 탄식했다.

“ 아···. 젠장. 그러면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거야. 개 코를 이길 수 없으니까. ”


치우도 개에게 쫓기는 경우는 처음이라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고 무슨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치우의 생각에 개가 쫓는다면 숨었던 동굴이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이고, 개의 속도를 사람이 이기기는 힘들다.

그때 왕위가 동굴 앞으로 가더니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의 소매를 북 찢어 서너 조각으로 나눈 후 동굴의 주변 여기저기에 흩뿌렸다.

그러더니 왕방과 치우 앞으로 와서 말했다.

“ 자, 이제 우리 저 냇물을 건너가자.

좀 춥긴 하겠지만, 그래도 물을 넘어야 우리 냄새를 지울 수 있어. ”

그제야 치우는 왕위가 옷소매를 찢어 동굴 입구에 뿌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의 냄새를 뿌려 동굴 안으로 개가 들어가는 것을 막고,

추적을 자신들에게 유도하려는 생각.

치우는 새삼 왕위가 어린 나이 때부터 거리에서 살아 온 세월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세 아이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맑아서 그리 깊어 보이지 않던 냇물은 생각보다 깊어서 허리께까지 왔다.

게다가 물살이 제법 세찼다.

왕위는 안 그래도 물살에 몸이 떠밀려 가는데 애써 물길이 내려오는 방향으로 거슬러 냇물을 건너는 방향을 잡았다.

요란한 물소리 사이로 왕방이 왕위에게 투덜거렸다.

“ 야! 안 그래도 물에 떠밀리는데 왜 자꾸 거슬러 올라가.

힘들어 죽겠구먼. 냇가 거리도 더 멀어지잖아. ”

끙끙대며 앞장섰던 왕위가 뒤를 힐끗 보며 쏘아붙였다.

“ 모르는 소리 마.

개들이 쫓아오면 당연히 우리가 냇가를 건너갔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면 당연히 물흐름을 따라 하류 쪽으로 갔다고 생각할 거고.

우린 그 반대로 가야 하는 거야. ”

맨 뒤에서 왕방의 허리를 붙잡아주며 따라오던 치우는 왕위의 영리한 판단에 새삼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자신도 이 정도 물살이면 물흐름을 못 이겨 다른 아이들처럼 허우적거릴 게 분명했다.

그런데 거센 물길에 하체가 들어가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배꼽 아래 하단전으로 혈기가 모이면서 마치 다리에 납추를 단 것처럼 묵직해졌다.

덕분에 허리까지 오는 물살에도 걷는 게 크게 저항이 없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왕호의 수법에 따라 왕호의 말대로 자신의 몸에 그간 숨겨져 있던 내공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냥개들은 큰 냇가 동굴의 입구를 어정거리더니 이내 물가로 다가가 컹컹 짖었다.

추종 追從을 책임진 추종 대의 대장, 진위는 인상을 찌푸렸다.

“ 그놈이 붕산권이라 하더니 제법 만만치 않네.

어르신에게 당하고도 이리 움직이는 거 보면.

게다가 개가 쫓는 것을 눈치채고 냇가를 건너버렸어. ”

냇가는 어른들도 거의 허벅지에 이를 정도로 깊었고 꽤 넓었다.

게다가 물의 흐름도 제법 빨라서 흔적을 지우기에는 최적이었다.

진위의 눈치를 보며 개 목줄을 쥐고 있던 사내 하나가 물었다.

“ 대장. 그러면 어디로 갈까요?

저놈들이 냇가를 어디쯤에서 넘었는지 짐작해야 거기서부터 추종이 가능할 텐데요. ”

사내의 말을 들은 진위는 듬성듬성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붕산권 왕필 하면 일대에서는 꽤 악명을 떨치던 인물이다.

흑도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백도도 아닌 정사지간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현재는 개방의 그늘에 숨어지냈다고 들었다.

놈은 세파에 닳을 만큼 닳은 노련한 강호 强豪.

하오문의 추종대로 제법 추종의 달인이라 자부하는 자신이지만,

어차피 붕산권과 직접 맞붙을 만용은 없다.

하오 문이야 누가 의뢰를 하건 돈이 되면 어떤 일도,

심지어 납치 살인도 불사하는 집단이니만큼 강시당의 의뢰로 개방의 떨거지를 추적하는 일을 맡긴 했지만,

추적해서 강시당에 알려주면 그뿐이다.

공연한 일에 목숨을 걸거나,

행여 가뜩이나 사이가 좋지 않은 개방과 척을 질 이유가 없다.


진위는 왕호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더듬었다.

어차피 상처를 입은 몸에 힘들게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부상을 당했다는 것은 개 때문에 알고 있었다.

강시당 노인이 말해준 장소에는 놈의 것으로 짐작되는 피가 제법 흥건하게 흘렀었고,

그 냄새를 맡던 사냥개 중 한 마리가 피를 조금 핢아먹은 모양이었다.

그 개는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빳빳하게 굳어 죽어버렸다.

놈에게 그렇게 지독한 독이 내장까지 파고들었는데 멀쩡할 리가 없다.

그리고 놈이 노련한 만큼 추종을 하는 자신들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쫓을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놈이 갈 곳은 쓰촨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 산을 통해 넘어가면 앞으로 사나흘이면 도착하겠지만,

지금 부상이 심각하므로 어떨지는 모른다.

어쨌든,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찾아야 부상을 어느 정도 치료도 할 텐데.

아니면 이런 내 생각을 되짚어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놈이 이 냇가에서 냄새를 지운 후 넘어갈 장소는 어디일까.


“ 저기다.

놈들은 저쪽으로 넘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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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유인 +4 20.05.27 516 6 9쪽
» 추종 追從 +2 20.05.26 527 5 9쪽
19 어사 20.05.25 529 3 10쪽
18 강시독 20.05.24 513 5 10쪽
17 녹죽장 20.05.23 527 4 10쪽
16 강시당 20.05.22 551 5 9쪽
15 관제묘 20.05.21 583 7 10쪽
14 역모 20.05.20 588 5 10쪽
13 고문 20.05.19 586 7 9쪽
12 동창 20.05.19 634 10 9쪽
11 탈출 20.05.15 635 5 10쪽
10 합의 20.05.15 654 8 9쪽
9 용모파기 20.05.14 681 8 10쪽
8 기록 20.05.14 714 7 10쪽
7 함정 20.05.13 753 7 9쪽
6 지하통로 +1 20.05.13 815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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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명분이 없다 +1 20.05.12 988 11 9쪽
3 협의 +1 20.05.12 1,052 13 9쪽
2 +1 20.05.12 1,349 1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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