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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39,831
추천수 :
460
글자수 :
344,307

작성
20.05.25 17:49
조회
528
추천
3
글자
10쪽

어사

DUMMY

피를 토하고 난 왕호는 조금은 나아졌는지 치우를 앉으라 이르고,

왕위와 왕방은 오른쪽 왼쪽에 나란히 앉으라고 일렀다.

비록 크게 다치긴 했지만, 늘 욕설과 주먹질에 익숙하던 왕위와 왕방은 어쩐지 조용히 말하며 늘 성난 것 같던 눈빛도 거둔 왕호가 어쩐지 부담스럽다.

“ 시간이 없으니 묻지 말고 들어라.

묻고 싶은 것은 내가 강치우 네게 할 말을 다 한 이후에 해라.

나는 개방의 쓰촨 지부 민강 현 지파장이며 한때 철혈방의 붕산권 왕필로 불리던 사람이다.

그러나 내 진짜 신분과 이름은 도찰원 都察院 의 감찰어사 監察御史 왕필호 다.

물론 지금은 품직명단에서 삭제된지 오래 지나긴 했지만. ”


왕호의 말을 들은 세아이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치우는 역시 뭔가, 싶은 표정을.

왕위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하는 얼굴을.

왕방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중 치우가 입을 열려다가, 왕호가 손가락을 흔들자 입을 다물었다.

“ 너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감찰어사로 오랫동안 강호에 숨어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너, 치우를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네가 이런 상황과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미리 짐작했다는 건 아니다.

난 너의 신분과 사는 곳도 몰랐다.

단지 내 임무는 강호에서 무림인으로 이름을 크게 떨칠 것 없이,

적당한 수준으로 지내다가 오래전 약조되어있던 인물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그간 숨기고 있었던 진짜 임무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안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내가 오랜 기간 강호에 몸을 숨기고 무림인으로 살아가다가,

십 년의 기한이 넘어가면 다시 궁으로 복귀하기로 되어 있었지.

그런데 강치우 네놈은. ”

나직하지만 연이어 말을 하다 좀 버거웠든지 왕호는 다시 앉은 상태에서 울컥, 피를 토했다.

이제 피는 아주 검고 독하게 썩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두 거지 아이들에게는 익숙한 시체 썩는 냄새였다.

피를 토하고 잠시 한숨을 돌린 왕호는 말을 이었다.

“ 지금 내게 긴말할 시간은 없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겠지만 애초의 계획대로 쓰촨 지부로 가서 지부장을 찾아라.

그에게서 전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건 따로 있으니 내 앞에 와서 윗도리를 벗고 내게 등을 내민 상태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

치우는 뭐라 입을 열려다가 왕호의 안색이 지나치게 하얗게 변한 상태라 그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보고 왕위와 왕방도 움찔했지만 왕호의 표정과 혈색이 너무 엄중한지라, 달리 말을 할 수 없었다.

치우가 어색한 모습으로 가부좌를 틀어 앞에 앉자,

왕호가 허리를 반듯하게 펴며 치우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 내가 지금 네게 하려는 건 흔히 강호에서 말하는 격체전력 隔體傳力 같은 게 아니다.

너는 모르겠지만 네 조상 대대로 물려온 양생 호흡법이 있을 것이다.

그건 사실은 상승의 내가 기공이다.

다만 그 수법은 평상시에 단전에 내공을 쌓는 방식이 아니라,

너의 전신 혈맥에 내공이 흐르게 하여주고 그것으로 평소에는 건강을 위한 도인 양생술 같은 역할만 한다.

네가 아무리 이불 속에 들어있었다곤 해도 무림인도 견디기 힘든 천리속달을 타고 온 것과,

큰 화상을 입고도 겉에 보이는 상처 외에 크게 곯지도 않고 화독에도 영향을 안 받은 것은 다 그 내력이다.

네 조상은 모종의 이유로 자손들이 그냥 상가의 후손으로 크기를 바랐지,

강호에서 무림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네 혈맥에 숨겨져 있는 내공들을 필요할 때 각 단전에 머물 수 있도록 일종의 잠겨진 열쇠를 열어주는 것뿐이다.

이것 또한 내게 주어진, 기다리던 임무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원래는 지부장을 만난 이후에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 도리없이 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일을 치를 수밖엔 없다.

넌 이제부터 너희 가문의 양생법 구결을 외고 평소대로 양생 호흡을 해라,

그리고 이 사실은 저 아이들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


빠르게 말을 끝낸 왕호는 치우의 등 여기저기의 혈을 빠른 속도로 쳐나가기 시작했다.

치우는 알지 못할 왕호의 말에 대답하려다 순간적으로 그가 격타를 하기 시작하자 ‘욱’하고 신음을 하며 양생 호흡법을 하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몸을 쓰는 탓인지 왕호의 입에서는 검은색 선혈이 계속 흘렀다.

하지만 왕호는 손을 멈추지 않고 눈에 보이기도 힘들 정도 속도로 치우의 등 이곳저곳을 두드렸다.

치우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왕호의 손바닥이 두드리는 곳마다 참기 힘든 격통이 은은히 전해졌다.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전신의 혈맥들이 때로는 복부 아래, 가슴 명치, 그리고 이마 부위까지 세 곳에 불규칙적으로 몰려왔다 흩어지면서 마치 단단한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순간적인 통증을 주는 것이다.

치우는 저도 모르게 꽉 다문 입으로 신음을 흘렸다.

“ 으, 으···.”

‘ 입을 열지 말아라! ’

관제묘에서처럼 왕호의 전음이 머릿속에 울리자 치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신음을 참았다.

얼마나 세게 주먹을 그러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 피가 배어났다.

안 그래도 절반 정도 불그죽죽하게 진물이 흐르던 치우의 얼굴 반쪽에서는 고름 같은 진물들이 땀과 뒤섞여 흘렀다.

반 시진 정도가 흘렀을까.

이제 치우는 전신이 땀에 절고 등을 두드리는 통증에 거의 기절할 지경이다.

그러나 뒤를 돌아볼 수 없어서 그렇지 왕호는 반 시진 동안 치우의 등을 격타하면서 코피와 입에서 흐르는 검은 피가 윗옷 앞섶을 흥건히 적셔 목불인견이었다.

그걸 꼼짝하지 않고 지켜보는 왕위와 왕방마저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팡!’

어느 순간 치우의 몸이 크게 들썩이며 허공에 기막이 생겨 파공성을 내곤,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격타혈을 하던 왕호의 손이 멈추고,

치우는 전신과 세 군데 단전에 뭉치던 기운들이 전신으로 쏜살같이 흩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치우의 몸이 앞으로 수그러드는데 뒤에서는 왕호가 서서히 뒤로 무너져 내렸다.

“ 치우야! ”

“ 두목! ”

왕방은 앞으로 넘어지는 치우를, 왕위는 뒤로 넘어가고 있는 왕호를 떠받쳤다.

순간 왕방과 왕위의 시선이 묘하게 얽혔다.


“ 소란 떨지 마라. ”

왕위의 손에 받쳐 넘어가던 자세 그대로 드러누운 왕호가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연신 코피를 쏟은 탓인지 평소답지 않은 힘없는 음성은 가라앉아 있었다.

“ 강치우는 어찌하고 있냐? ”

왕호의 말에 왕위는 눈물을 쓱 훔치며 대답했다.

“ 걱정 마세요, 두목. 그놈은 지금 기절한 것 같아요, ”

“ 왕위, 왕방. 미안하다. 그동안 너희들에게 참 못되게도 굴었지. ”

왕방과 왕위는 다시 서로 마주 보며 생각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더니 이제 두목이 죽는 건가.

“ 너희들에게 유감이 있던 건 아니다.

대강 들어서 알겠지만 내 본 정체는 황궁의 감찰어사였다.

곡절이 있어서 개방에 숨어지내기는 했지만 언제 시작될지도 모를 임무 때문에 하릴없이 걸인으로 지내는 것이 무척이나 난 싫기도 하고,

십 년을 채워가도록 아무 일도 없는 상황에 외려 늘 불만에 가득했지.

그걸 애꿎은 너희들에게 분풀이한 셈이니 미안하구나. ”

그 말을 들은 왕방과 왕위는 이구동성으로 약속한 듯 말했다.

“ 아니에요. 두목. 우린 그래도······.” 라며 말을 하려던 두 아이는 서로 쳐다보며 끔뻑끔뻑했다.

생각해보니 두목이 자신들을 두들겨 팬 거 말곤 달리 정 붙을 일이 없지 않았나.

왕방이 샐쭉해진 얼굴로 말했다.

“ 체. 뭐 어쨌거나 다 지난 일이라고요.

그나저나 두목 같은 사람이 황실의 벼슬아치라니 정말 세상은 모를 일이라니까요.

근데 그토록 기다리던 치우가 나타났으면 좋아해야지 왜 애를 개 패듯 팼어요? ”

“ 그건 물론 그 아이의 실체와 자질을 알아보기 위해서···. 라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 시기가 공교로웠다.

이제 내년이면 난 잠복 임무를 마치고 복귀할 예정이었다.

십 년간을 원치 않는 거지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 복귀해도 과연 황실과 조정의 생활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가 되었는데,

이제 와서 저 녀석이 나타났고 그러면 또 저 녀석을 내가 호위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러니 얄밉기도 했었지.

어쨌든, 너희들은 저 녀석과 함께 쓰촨 지부장을 찾아라. 클록! ”

왕호는 다시 피가래를 뱉었다.

왕위가 측은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물었다.

“ 그런데, 두목. 감찰어사님? 에이, 안 어울려. 그냥 두목으로 부를래요.

저 치우라는 놈이 대체 뭐길래 두목 몸을 상해가며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

오래 데리고 있던 탓일까.

왕호는 어쩐지 왕호가 자신의 아이 같은 느낌에 가슴이 뭉클했다.

“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른다.

특정한 사연을 가지고, 특정한 상태의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그를 데리고 개방의 쓰촨분타로 간다.

모든 지시는 그 이후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게 명령이었으니까. ”

“ 아, 거참 정말 수수께끼도 아니고···.”

투덜대는 왕위에 갑자기 눈을 치켜뜬 왕호가 쉿! 하고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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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광견추혼단 狂犬追魂勯 +4 20.05.28 515 5 9쪽
21 유인 +4 20.05.27 515 6 9쪽
20 추종 追從 +2 20.05.26 526 5 9쪽
» 어사 20.05.25 529 3 10쪽
18 강시독 20.05.24 513 5 10쪽
17 녹죽장 20.05.23 527 4 10쪽
16 강시당 20.05.22 551 5 9쪽
15 관제묘 20.05.21 583 7 10쪽
14 역모 20.05.20 588 5 10쪽
13 고문 20.05.19 586 7 9쪽
12 동창 20.05.19 634 10 9쪽
11 탈출 20.05.15 635 5 10쪽
10 합의 20.05.15 654 8 9쪽
9 용모파기 20.05.14 681 8 10쪽
8 기록 20.05.14 714 7 10쪽
7 함정 20.05.13 753 7 9쪽
6 지하통로 +1 20.05.13 814 7 9쪽
5 습격 +1 20.05.12 920 8 12쪽
4 명분이 없다 +1 20.05.12 987 11 9쪽
3 협의 +1 20.05.12 1,052 13 9쪽
2 +1 20.05.12 1,349 19 10쪽
1 구원 +4 20.05.11 2,301 5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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