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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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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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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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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307

작성
20.05.2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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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녹죽장

DUMMY

사당밖에 널브러진 왕호를 무시하고 아이들이 사라진 것으로 짐작하는 방향으로 막 몸을 띄우려던 당묘의 목덜미에 날아든 초록빛은,

주변의 어둠이 제법인데도 불구하고 연녹색 빛줄기처럼 확연해서 당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짝!’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몸을 띄우던 당묘는 목덜미를 움켜쥔 채 황급히 다 무너져가는 관제묘 안으로 훌쩍 물러나고,

당묘가 서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일어났는지 왕호가 우뚝 서 있었다.

입가에는 아직 당묘와 격돌한 후 흘리던 피가 말라붙어 있는데,

그의 오른손에는 희미하게 초록빛을 내는 청록색 죽장이 들려있다.

그 죽장을 본 당묘의 무표정하던 눈이 크게 떠지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 녹죽장 綠竹杖? 네놈은 개방의 방주와 무슨 관계냐? ”


당묘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개방파 방주의 신물은 녹죽장이었다.

그것은 방주의 대를 이어 내려왔는데, 기원은 송나라 때부터라는 말도 있었고 그보다 더 오랜 옛날이라는 말도 있었다.

여러 가지 약물로 제련된 녹 죽으로 만들어 강하기가 강철에 버금간다고 하며,

부드러움은 버들가지와도 같다고 한다.

십만 개방도들은 어디서든 그 녹죽장을 마주하면 방주의 령이라 생각하고 따라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런 신물을 일개 지역 분타의 지파장이 가지고 있다니.


당묘는 목에 난 상처를 어루만졌다.

강시당은 세 가지 무공이 탁월했다.

그 하나가 신법으로 보여준 유령부영 이고 내가권으로 손을 강철처럼 굳히는 철골수 였다. 그리고 또 하나가 전신을 강철처럼 굳혀 공격을 막아내는 강시공 鋼屍功 이었다.

호신 강기로 유명한 무공들은 철포삼, 금종조 등이 있지만 유명하진 않은 강시공은 다른 호신 강기 보다 더 강했다.

강시당 의 성격이 외문무공이 아니고,

원래 당의 성격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강시공은 마치 얼어 죽은 시체를 두드리는 것만큼 공격자에게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세간에는 강시공을 쓰는 자가 실제 죽어서 움직이는 강시라는 오해를 받곤 했다.

강시공의 특징이 살 거죽뿐 아니라 전신을 딱딱하게 굳혀 기이한 동작으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어서 더욱더 그러했다.

그런데 당묘의 강시공을 깨고 목덜미에 단 한수로 피가 흐를 정도의 상처를 입힌 것이다.

게다가 칼도 아닌 죽장으로.

강시공 하나로 천하에 어떤 외부 공격도 막을 수 있다 자신하던 당묘에겐 등골이 서늘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죽장.

그것은 개방의 방주만이 지니는 신물 아닌가?

천방지축인 저 붕산권의 손에 왜 그 신물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너, 숨겨둔 한 수가 있구나.

내 강시공을 깨뜨릴 만큼의 수법.

내가 알기로 개방의 녹죽장이 신물이라고는 하나 그건 상징적인 의미일 뿐 그 자체가 신병이기는 아니거늘···. 넌 대체 누구냐? ”

지그시 왕호를 노려보며 고저장단 없는 무심한 음성으로 말을 하지만,

당묘의 누렇던 안색이 창백해졌음을 왕호는 눈치챘다.

“ 노인치고도 말이 많아. ”

“ 뭣이? ”

왕호의 신랄한 비꼼에 어지간한 당묘가 화가 치솟았다.

“ 생각해 보시오.

내가 왜 내 정체를, 쉬고 있던 애꿎은 아이들을 공격한 무지막지한 노괴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게다가 이미 자신이 동창의 개라고 공언한 거 아닌가? ”


오래전부터 관과 무림은 서로 간여하지 않는다. 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것은 대체로 무림방파 라는 것이 불가 나 도관과 같이 본래 종교적인 성격을 갖고 수련의 일종으로 무공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세상에서 움직이는 무림방파란 대개 무력을 이용하는 지역의 유지 이거나 세력을 유지하는 흑도의 인물들,

혹은 대중을 현혹하는 사이비 종교인 마교와 같이 그다지 나라의 권력자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집단들의 모임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충돌하자니 넓은 중원 천지에서 매일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중앙에서 그만큼 넓은 지역으로 일일이 통치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평소 어느 정도 자치 세력으로 인정을 하고,

자치 세력 간에 벌어지는 다툼에 대해서는 크게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범위 안에서는 내버려 두곤 했다.

그건 팽배해지는 무력집단을 서로 견제하고 조율하는 의미에서 효과적이었고,

무림방파에서는 관과 부딪쳐서 역적이나 이적 세력으로 쫓기는 게 아니니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무력과 세력이 인정되면 반드시 거기에서 생기는 이점을 노리는 상황도 생기는 법.


강시당은 원래 장례식을 대행해주는 제의 행사로 유명한 집단이었다.

중원이 넓고, 장례방식은 매장방식을 선호하니 다른 지역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옮겨줄 특별한 표국이 필요했고 거기서 생긴 게 강시당 이었다.

최초에는 표행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그 시신이 귀족 집안이나 돈이 많은 거부의 일족이거나 유명한 무림인의 일가 일 때는 운구 과정에서 시신을 인질 삼아 흥정을 하는 산적들이 등장했다.

자체적으로 표행을 지킬 무력이 필요했던 강시당은 그들이 가진 고유의 의학 기술을 무공에 접목했다.

먼 거리를 훼손과 부패가 가장 적도록 해야 하는 방법을 각종 약물을 이용한 의학 기술로 해결하던 강시당 의 특성이 깃든 그들 고유의 무공은,

타 방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여 괴이한 무공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중원 각처에서 시신을 운구하다 보면 늘 성과 성을 넘나들어야 하고,

표물이 물건이 아닌 시신이다 보니 관료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얽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드러난 강시당의 독특하고 뛰어난 실전 무공에 동창이 관심을 기울였고,

동창과의 거래를 통해 지역 통행에서 얻는 이점과 이익 때문에 강시당이 동창의 ‘은밀한 손’이 된 것은 드러나지 않은 무림계의 비밀이었다.


“ 뭐 어쨌거나 노인네.

솔직히 나는 노인네와 내가 겨루었을 때 누가 살아남을지는 몰라.

하지만 말이야, 적어도 노인이 알고 있는 붕산권의 실력이 내 실력의 전부가 아니란 것은 분명하지.

내가 애들을 돌보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거둔 새끼들인데 내 눈앞에서 잡혀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고,

그래도 노인이 굳이 역모 어쩌고저쩌고하며 꼬리를 붙인다면 어쩌겠어?

이 이름 모를 산속에서 죽자 살자 싸울밖에. ”


귀곡자 당묘는 그의 별호처럼 귀신 우는 소리 같은 웃음을 더는 낼 수 없었다.

붕산권 왕필이라는 놈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건대 자신이 상대할 만했다.

방심 중에 느닷없는 청죽장 공격으로 목을 좀 다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놈과 제대로 어울리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녹죽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라도,

개방 내에서 가짜 녹죽장을 들고 다니는 간 큰 놈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것은 저 왕필이란 놈이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개방의 방주와 직접이든 간접이든 뭔가 얽힌 놈이라는 뜻이다.

거지 떼가 무서울 건 없지만,

전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강시당 과 개방은 비슷한 점도 많다.

과거 명나라를 세울 때 주원장에게 협조했던 것도 그렇고,

전국적인 정보망이 있다는 것도 비슷했다.

그러나 개국 공헌을 이유로 관과 처음부터 협력 관계를 이뤄온 강시당 과 달리,

개방은 모든 혜택을 물리치고 무림으로 돌아갔었다.

그런 개방이 저 왕필의 뒤에 있다는 건 어쩐지 내키는 대로 하기에 거북스러운 것이다.

만에 하나, 놈으로 인해 개방이 중원 전국에서 강시당 과 충돌을 일으킨다면 그건 강시당의 사업 전체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 좋다.

네 놈이 그리 나오니 노부가 한 수 물러주지 않을 수 없구나.

하나, 지금 네놈이 만약 개방의 입장으로 그리 나오는 것이라면 네놈은 실수하는 것이다.

역모죄로 쫓기는 아이를 숨기고 도주하게 만드는 게 개방의 입장이라면 개방이란 방파 또한 역모를 저지르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음이다.

그걸 다 감당 할 수 있느냐? ”

딴은 점잖게 타이른다고 동묘는 팔짱을 끼고 말을 했건만 왕필은 도무지 그런 건 눈에도 안 차는 모양이다.

“ 아, 뭐래.

난 알 바 없고, 아까 말한 대로 우리 애들 건드리면 나도 죽자 살자 붙겠다. 이거요.

뭔 말이 그리 많지? 노인네 해골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먼.

카악! 퉤! ”

피가 섞인 가래침을 보란 듯이 땅에 뱉는 왕필에 욱하여 순간 주먹이 나갈 뻔한 동묘는 꾹 참았다.

어디까지나 오늘의 행사는 공적인 것.

자신의 심사로 인해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아까까지 의기양양했던 자신이었건만,

이제 도리없이 약한 모습을 보일 밖에.

망할 거지새끼들.

그들 하나하나는 그냥 거지에 불과했지만 십만이라는 숫자는 대단하다.

그중 얼마나 많은 기인이사가 숨어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과거 유명했던 소림이나 무당의 기인들도 세상에 숨어들어 사는 방법으로 개방을 선택하는 일이 적지 않았으니.

그러니 과거 철혈방의 붕산권으로 유명했던 왕필이 개방 속에서 숨어 지냈다고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방주의 신물, 혹은 그 신물과 유사한 무기를 가졌다는 건 중요한 사안이었다.

‘ 좋다!

오늘은 노부가 물러간다만,

다음에 내 행사를 막는 일이 생긴다면 개방과는 무관하게 나 개인과 네놈의 일로 승패를 물을 것이다. “

말을 마친 당묘는 귀신같은 걸음걸이로 아이들이 사라진 곳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사라졌다.

이내 어둠과 고요가 무너진 관제묘에 내려앉고,

아직 불길이 남아있는 장작들이 타닥거리는 소리만 빈터에 울렸다.

’울컥!‘

갑자기 피를 토하며 왕호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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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추종 追從 +2 20.05.26 526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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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강시독 20.05.24 512 5 10쪽
» 녹죽장 20.05.23 527 4 10쪽
16 강시당 20.05.22 551 5 9쪽
15 관제묘 20.05.21 583 7 10쪽
14 역모 20.05.20 588 5 10쪽
13 고문 20.05.19 586 7 9쪽
12 동창 20.05.19 634 10 9쪽
11 탈출 20.05.15 635 5 10쪽
10 합의 20.05.15 654 8 9쪽
9 용모파기 20.05.14 681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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