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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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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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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307

작성
20.05.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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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DUMMY

” 그게 정말이야? “


갑자기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서로 열변을 토하던 왕방과 왕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왕방과 왕위가 돌아보자, 지금껏 기절해 있던 아이가 상반신을 일으키고 앉아있다.

절반 화상을 입은 얼굴에는 진물이 흐르고 있는데,

통증 때문인지 창백한 얼굴을 가진 아이의 눈빛은 처참한 몰골과는 달리 형형하다.


” 어, 너 안 죽었냐?

야 인마. 일어났으면 먼저 아는 체를 해야지 깜짝 놀랐네.

야, 우리 아녔으면 너 길거리에 그냥 죽었을 판인데 고맙지 않아?

인사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 “


대뜸 쏘아붙이는 왕위와 달리 왕방은 조심스럽게 일어난 아이에게 다가가서 살핀다.


” 너···. 괜찮아? 심하게 화상을 입었는데, 무척 아플 건데 참는 거야? 난 왕방이라고 하고 저 아이는 왕위라고 해. “


선의로 다가간 것이긴 하지만, 본색이 거지인지라 몸에서 역한 냄새가 풍겼는지 아이는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왕방에게서 얼굴을 물린다.

그 사실을 깨달은 왕방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둘이 하는 꼴을 본 왕위의 눈초리가 샐쭉하니 올라가며 거칠게 입을 열었다.


” 얀마! 너 우리가 더럽고 냄새나니?

네 꼴은 뭐 대단해 보이는 줄 알아?

사나흘이면 네 상처가 썩는 냄새로 거의 시체 냄새 풍길 놈이.

너 인마, 우리가 구해주긴 했어도 너 치료 못 하면 그대로 화독이 올라서 죽어.

화독 올라 죽은 놈 봤어? 온몸에 고름이 흐르고 구더기가···.“

” 야! 돌 거지! 너 조용히 못 해? “


정색하고 소리를 지르는 왕방의 서슬에 왕위가 투덜대는 말을 입속으로 삼키며 돌아앉는다.


소년은 끙, 하고 소리를 내더니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왕방과 왕위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오히려 왕방과 왕위가 당황스럽다.

아직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돌발적인 소년의 정중한 인사에 허둥댄다.

세상의 사람 중 가장 업신여김을 당하는 거지, 그중에서도 중앙과 거리가 먼 지방의 꼬마 거지들에게 그 누가 정중함을 보여주었을까.


”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

나를 여기까지 데려오느라고 힘들었을 건데,

그냥 내버려 둬도 그만인 걸 지켜줘서 고맙다.

언젠가 내 사정이 좀 나아진다면 신세 갚을 일이 있을 거야.

내 이름은 강치우 라고 해. “


소년의 예의 바른 인사와 자기소개는 왕방과 왕위에겐 맞지 않은 비단옷을 걸친 것처럼 뭔가 어색하고 민망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왕방이 씩 웃으며 소년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어, 그래. 네 이름이 치우구나.

그런데 넌 왜 그런 곳에서 쓰러져있었어?

근처에 불이 난 곳은 없던데 말이야.

혹시나 해서 여기저기 뒤져봐도 그런 곳이 안 보여서 여기까지 데려왔거든. “


왕방의 질문에 소년은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얼굴이 더 시무룩해졌다.

왕방은 못물을 것을 물어봤나 싶어서 약간 당황했다.

보통 집에 불이 나면 그 근처에 쓰러져 있는 것이 정상이고,

그 집에 관련된 어른들이 아이를 챙기는 게 보통 아닌가.

그러나 그 아이는 분명 큰 화상을 입었는데도 그 인근에는 불난 집이 없었다.

그건 누군가 화상 입은 아이를 그곳까지 데려와 버렸던가,

아니면 그 아이가 어딘가 먼 곳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거지들 간에도 구걸하는 영역이 구분되어 있느니만큼 왕방이나 왕위나 그 구역 이상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 글쎄, 너희들에게는 그 사정을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미안해.

하지만 만약에라도 너희들이 내게 연관되어 곤란한 일이 생길지 몰라서 그런다. 그나저나.“


아이답지 않게 소년은 두 거지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는 듯 답을 하면서 다시 묻는다.


” 왕위라고 했지?

네 말대로 개방이 무림 방파이긴 하지만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냥 거지들의 집단이고 협 하고는 거리가 있다는 말. 진짜니? “


엉뚱하게 정신을 잃었다 일어난 녀석이 개방파에 대해 질문을 하니 왕방이나 왕위나 모두 좀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 야, 그냥 거지집단이라니 좀 듣기 불편한데. 사실이 그래.

생각해봐라.

당장 구걸해서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나마 정기적으로 우리가 구걸해 번 푼돈도 빼앗아간단 말야. 분타에서 말이지.

물론 그 덕에 개방이란 이름을 걸고서 구걸을 하니까 덜 맞고 덜 쫓겨나는 건 있긴 하지만 말야.

하지만 그게 무슨 협의 같은 거창한 건 아니라는 거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잖아.“


왕위가 아이답지 않게 한숨을 섞어가며 말을 하자 소년의 얼굴이 더 우울해졌다.

보다 못한 왕방이 나섰다.


” 야, 그건 꼭 아니지.

모든 무림 방파가 다 말단 꼬마들까지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협이라는 것도, 정파라고 늘 정의로운 일만 하는 건 또 아니고.

그러니 개방파가 꼭 협하곤 관계가 없다는 왕위의 말은 좀 지나친 거야.

그보다 치우 너는 개방파에 협이 살아있다면 뭐 부탁이라도 하려던 거야? “


자신에게는 툭툭 내뱉듯 늘 말을 쏘아대는 왕방이 오늘 처음 본 치우에게 친근하게 말을 하는 모양이 영 마뜩잖은 왕위가 왕방을 쏘아보았다.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준 왕방을 힐끗 본 치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 사실, 아까 네가 물어본 것을 대답하지 않는 것은 너희들이 개방 문도라 생각을 했었지만, 왕위의 말대로 개방파 어른들이 너희들을 지켜주거나 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보니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야.

나도 아이지만, 아이들이 알아서 좋아질 게 없는 일인지도 몰라서 그래.

내가 소문에 듣던 정의감 불타는 개방파라면,

나부터 분타에 가서 하소연이라도 하려던 참 이었거든. “


치우의 말을 듣고는 왕위와 왕방,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둥절 해졌다.

그러더니 왕방보다는 좀 더 산전수전을 겪었노라 자부하는 왕위가 치우에게 물었다.


” 야, 뭔지 모르지만 너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지금 말하는 거잖아.

그런 거라면 관가에 가야지 그걸 거지 문파에 하소연하면 뭐가 났냐?

여기 쓰촨성에는 정파 무림에 속하는 아미파, 청성파, 점창파도 있고 좀 무섭기는 해도 사천당문도 있는데.

뭔가 억울함을 하소연하려면 그들이 낫지 않을까?

개방파는 원래 이쪽 지역은 가뜩이나 영향력도 약해. “


왕위의 말은 아이답지 않게 제법 정연한 논리에 맞았다.

사실 무림이 있다고는 해도 가장 기본적인 사법권을 가진 관가가 우선이고,

관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오늘날의 민사소송에 해당할 만한 일들은 지역의 정파 무가나 영향력 있는 호족들이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관과 무림은 상호 불간섭한다고,


과거 개방이 무림에서 위치가 꽤 영향력이 있었다는 말들은 무성했다.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거지무리들이 일부러 보기보다 뒷배가 든든하다 하는 식으로 여론을 몰기 위해 만들어낸 조작에 가깝다는 게 실은 정설이었다.

실제로 요나라와의 전쟁 때 개방의 개파 조사로 알려진 교봉이 거지 떼를 이끌고 항쟁을 했다는 말도 전하고,

송나라 때는 개방의 문도들이 금나라에 대항하는 협사들중 다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혼란의 와중에 자위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힘을 보탰던 뒷배경도 있었고,

적어도 전쟁의 와중이라 개방도라 해도 민중들의 지원이 꽤 넉넉했었던 이유도 있다.

평화기의 개방이란, 결국 거지집단에 불과했기에 힘을 쓸 수 있는 소수의 개방 간부들은 무림인으로서 대접받으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은 더는 구걸로 연명하는 거지라고 할 수는 없었다.

거지처럼 의복을 입고, 실제 회합을 할 때는 거지들과 어울려 힘을 과시하고는 했지만, 개방의 총타에 모여있는 인물들은 거지가 아니라 거지무리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무파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개방도가 최소한의 무공을 지닌 제자를 일결 제자라 칭하며,

허리에 새끼줄 매듭 한 개를 표식으로 삼는 것과 최고가 오결 제자까지 올라갈 수 있고 그 위 육결 제자는 분타의 우두머리를 맡는 것만 봐도 그들은 위계질서가 분명한 무림 방파인 것이다.

물론 그런 중앙조직 외 지파들이야 천지에 널리고 널린 힘없는 거지들에 불과하지만.

그런 개방의 성격으로, 무림과 연관도 없는 어린아이인 치우의 말에 귀를 기울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길게 개방이 함부로 나서지 않는 이유와 사실들을 들은 치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들조차 그렇다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곳은 이 천지에 없다고 봐야 했다.

침울해진 치우가 안 되었던지 왕방이 치우에게 말을 걸었다.


” 치우야. 그렇지만 개방 문도가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잖아? 그러니 아예 분타로 가서 네 사연을 고해보면 어떨까? “


치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왕위가 왕방의 말에 덜컥 화를 내며 반박했다.


” 야! 말귀를 못 알아듣네. 우리는 지금 변두리 지파 소속이잖아.

만에 하나라도 어떤 알릴 일이 있으면 우리 지파 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게다가 우리는 매일 돈벌이 나가야 하는데 먼 분타까지 다녀오도록 허락 해줄 거 같아? 그냥 지파 장한테 맞아서 머리가 깨지고 싶냐?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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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각성하다 20.06.01 538 4 9쪽
26 역공격 +2 20.05.30 527 10 9쪽
25 +3 20.05.29 506 3 9쪽
24 천재 +1 20.05.29 541 6 9쪽
23 타구봉법 打狗棒法 20.05.28 567 5 9쪽
22 광견추혼단 狂犬追魂勯 +4 20.05.28 515 5 9쪽
21 유인 +4 20.05.27 515 6 9쪽
20 추종 追從 +2 20.05.26 526 5 9쪽
19 어사 20.05.25 528 3 10쪽
18 강시독 20.05.24 512 5 10쪽
17 녹죽장 20.05.23 526 4 10쪽
16 강시당 20.05.22 550 5 9쪽
15 관제묘 20.05.21 582 7 10쪽
14 역모 20.05.20 588 5 10쪽
13 고문 20.05.19 586 7 9쪽
12 동창 20.05.19 634 10 9쪽
11 탈출 20.05.15 634 5 10쪽
10 합의 20.05.15 653 8 9쪽
9 용모파기 20.05.14 681 8 10쪽
8 기록 20.05.14 714 7 10쪽
7 함정 20.05.13 752 7 9쪽
6 지하통로 +1 20.05.13 814 7 9쪽
5 습격 +1 20.05.12 920 8 12쪽
4 명분이 없다 +1 20.05.12 987 11 9쪽
3 협의 +1 20.05.12 1,052 13 9쪽
» +1 20.05.12 1,349 19 10쪽
1 구원 +4 20.05.11 2,300 5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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